-우리팀 한조 엄마 없음

-병신이 뭐래

-응 느금마


화면 뒤에서 부들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알았으면 욕 안 먹게 잘 좀 하라고.


-니새끼도 탱도 못하고 딜도 못하고

-응 니네 엄마보다 잘해~


키보드 배틀엔 논리가 있으면 안 된다. 어쨌든 엄마 어쩌구만 섞어 주면 우리팀이든 저쪽 팀이든 빡치게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마법의 단어.


-지랄하네 평일 오전부터 겜이나 하고 있는 백수주제에


윽. 예상치 못하게 한 대 맞았다. 백수가 아니다. 취업준비생이라는 어엿한 전문용어가 있지 않은가. 데미지는 견뎌내고 딜을 넣어야 한다. 이쯤되면 더 이상 게임 문제가 아니다. 자존심이 걸린 거다.


-니네 엄마랑 밤에 일함 ㅅㄱ

-아까부터 패드립만 치네 미친새끼가

-ㅈ같으면 실력을 키우세요^^

-너 어디사냐?


왜? 와서 때리게? 이렇게 나오면 나의 판정승이다. 나는 소리내서 웃었다. 채팅 금지 21회, 계정 정지 3회에 빛나는 키보드 배틀러. 오늘도 가뿐히 1승 적립.


-응 서울 XX구 XX동이야~

-어

-왜? 오게?ㅋㅋㅋ병신ㅋㅋ

-피방 이름


음? 심상치 않다. 에이, 대한민국에 게임 인구가 천만인데 설마 같은 지역에 있겠어.


-***PC방임 왜? 오게?


답이 없다. 저 녀석 때문에 밀리던 게임도 이미 패배로 끝났다. 자동으로 게임 로비로 나가고 난 뒤에, 나는 슬며시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방금과 같은 폭언을 들은 사람을 만난다면 욕이고 뭐고 일단 한 대 얻어맞겠지. 넷상에서야 말빨이 이긴다지만 물리적인 폭력은 막강한 법이다.


“올 리가 없지.”


평일 오전의 텅 빈 PC방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 그래, 게임하면서 패드립 좀 들었다고 누가 진짜로 쫓아오겠어. 귀찮아서라도 못하겠네. 다음 매칭을 돌리면서 과자를 먹는 기분은 행복감 그 자체다. 세 시간만 더 하고 집에 가서 공부해도 늦지 않을 거다. 그러는 와중에 서류 불합격 메시지가 왔지만, 나 정도의 인재를 몰라보는 기업은 쓰레기니까 오히려 안 가는 게 낫다. 아, 매칭 잡혔네.


“저기요.”

“음?”


막 캐릭터를 픽하려는 순간, 무언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나는 헤드셋을 벗고 옆을 돌아보았다. 한 남자가 있었다.

후줄근한 옷차림, 꾀죄죄한 얼굴, 씩씩 내뿜는 콧김. 잠깐, 이건 위험한데…….


“여기 X버워치 하시는 분이 너밖에 없네요.”

“……네?”


설마, 아까 그 녀석인가? 정말 우리 동네 사람이었던 거야?


“여긴 ***PC방이구요.”

“자, 잠깐, 진정하고…….”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다시 나타난 그의 손에는 길쭉한 칼이 들려 있었다. 위험하다. 죽을지도 몰라.


“사, 살려…….”

“‘멋진반바지’ 너 맞지!!”


미처 말릴 새도, 도망칠 새도 없이 그의 손이 휘둘러졌다. 형광등 빛을 받아 반짝 빛나던 칼날이 내 눈앞을 스쳐지나갔고, 뺨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미, 미친놈!!”

“그 지랄로 욕먹고도 내가 가만 있을 줄 알았냐!”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아픔에 나는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미친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칼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죽어어어어!!”

“제, 제바아알!!”


칼날이 살갗을 파고들고 들어왔다. 아프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곳에 통증이 느껴지기를 수십 번. 내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PC방 바닥은 피로 물들었다.

나는 어떻게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헉, 허억, 패드립을 치니까 그렇지…….”


한참을 찔러대던 그 미친놈은 자기도 피투성이가 되어서는 내게서 떨어졌다. 자기도 자기가 한 일에 놀랐는지, 나를 발로 툭툭 건드려 보더니 별안간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가지, 마…….”


제발 도와줘. 온몸이 춥다. 뼛속까지 시리다. 뒤늦게 달려오는 PC방 직원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내 시야는 완전히 암흑으로 물들었다.


*** 


김장수, 향년 29세, 무직.


아마 신문에 날 내 부고일 것이다. 부모님은 슬퍼하시겠지. 장례식장에 와서 울어줄 친구들은……없구나. 학연도 지연도 없이, 나는 이렇게 쓸쓸하게 모두에게 잊혀져 갈 것이다. 인생 부질없다. 취직하려고 아등바등했던 그 세월은 뭐였던가.

……스트레스 받는답시고 패드립 친 기억밖에 안 나지만.


그래서, 아무튼……난 죽은 건가? 실감이 안 나는데.


“눈을 뜨세요.”


여자 목소리다.


“눈을 뜨세요.”


그러고 보면 내 인생에는 여자친구 하나 없었지. 과체중에, 게임 폐인을 누가 좋아해 주겠느냐만은. 여기까지 오니까 후회만 남는 인생…….


처얼썩.


“부힉?!”

“심사관님, 역시 손을 씻고 올게요.”

“그렇게 하게. 기분 나쁜 일을 시켜서 미안하군.”


나는 눈을 떴다. 구름 안에 있는 것처럼 온통 하얗다. 나는 어느새 의자에 앉아 있고, 뺨은 얼얼하다. 내 앞에는 한쪽 손을 더러운 거라도 묻은 것처럼 탈탈 털어대는 여자아이가 있고, 그 뒤에는 긴 책상에 나란히 앉아 있는 노인들이 보였다.

여자아이는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보다가 훌쩍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러고 보니 등에 날개가 달려 있었다.


“어라, 천국인가?”

“문 앞이지, 정확히는.”


나란히 앉은 다섯 명의 노인들 중 가운데 앉은 할머니가 대답했다. 이 구도는 살아있을 때 한 번도 못 해본 면접을 연상케 했다. 자연스레 자세가 굳고 말았다.


“전 죽은 건가요?”

“물론이지. 칼로 열두 군데나 찔렸다네.”

“이거 참.”


머리를 긁적이는 내게, 할머니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보통은 이쯤에서 울거나 화를 내곤 하는데, 자네는 담담하구먼.”

“사실 속으로 욕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 간 몸에 배긴 기술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발휘되고 있었다. 안정적으로 패드립을 치기 위한 정신의 안정.

어떤 상황에도, 상대의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창의적인 패드립을 생각해내기 위해서는 긴장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니까.


“여긴 뭡니까? 천국의 문 앞?”

“자네가 보낸 인생에 따라 천국의 문 앞이 될 수도, 지옥의 문 앞이 될 수도 있네.”

“뭐요?”

“이곳은 환생심사대. 입국심사대를 생각하면 편할게야. 순서가 밀려 있으니 얼른 결정하도록 하지.”


내게 질문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할머니는 돋보기안경을 치켜올리고 손에 든 종이를 읽었다.


“영혼 김장수. 29세, 사인, 원한에 의한 살인. 직접적인 계기는 본인에게 있음. 무직.”

“마지막에 그건 꼭 필요한 겁니까?”

“볼 것도 없이 지옥행이군.”


노인들 중 한 명이 책상을 탕 내리쳤다.


“저런 악질분자는 지옥도 과분해!”

“잠깐만, 제가 무슨 연쇄살인마도 아니고!”

“네놈의 알량한 혓바닥, 아니 손가락이 몇 명을 고통에 빠트렸는지 아나?”

“그게 몇 명이나 된다고!”


노인은 손가락을 펴서 계산했다.


“자네가 게임을 시작한 게 5년 전, 일수로는 1825일, 하루 20시간 게임만 했으니까 36500시간, 한 게임당 30분이라고 치면 7만 3천 판, 한 판에 만나는 사람이 11명이니까 자네는 총합 8십만 하고도 3천 명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준 게 되는군.”

“제가 잘못했네요.”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지.


“그래도 겨우 패드립 들은 거 가지고 인생에 피해가 가는 건 아니잖습니까?”

“한 명 한 명의 피해는 미약할지라도, 다수에게 해를 끼친 자네를 천국에 보낼 수는 없지.”


그럼 역시 지옥인가?


“그럼 저 지옥갑니까?”

“지옥도 저런 녀석은 좀…….”


이젠 하다하다 지옥 입사도 떨어지는구나. 아무튼 다섯 명의 노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이더니 서로 속닥속닥하면서 의견을 나눴다. 왕따가 된 느낌이다.


“흠! 좋아!”


뭔가 결론이 났는지, 몇 분만에 그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중앙에 앉은 할머니가 짓는 장난기 어린 웃음에 나는 정체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자네, 판타지 소설 좋아하나?”

“뭐, 있으면 봅니다만.”

“잘됐군.”


할머니는 영문 모를 말을 자기 멋대로 늘어놓고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를 부르듯 손뼉을 짝짝 쳤다. 그러자 아까 손 씻으러 갔던 천사가 다시 날아와서는 허리를 굽혔다.


“게이트를 준비해 주게.”

“네, 심사관님.”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천사는 주문 비슷한 걸 웅얼거리더니 허공에 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흔히 말하는 마법진 같았다. 마법진은 푸르게 빛나더니 이내 원 모양의 문으로 변했다.


“언어로 죽은 자 언어로 살아가리라.”

“아니, 뭐가 뭔지 설명을 해 주셔야죠.”

“가면 알게 될 거야.”


나는 설명을 요구했지만, 가녀린 천사가 내 멱살을 잡고 강제로 몸을 일으켰다.


“아잉, 손 또 씻어야 되잖아요.”

“난 그렇게 안 더러워!”

“쓰레기잖아요.”


반박할 새도 없이 공중에 들렸다가, 나는 생겨난 문 앞으로 짐짝처럼 옮겨졌다. 천사가 뭐 이래?


“8십만 3천 마디만 하면 자네는 자유라네.”


마지막으로 할머니 심사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과 함께, 나는 난데없이 차가운 바람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우와아아악!!”


지상에서 5미터쯤 허공에. 이거 분명히 일부러 그런 거다. 아무리 쓰레기라도 처리는 잘 해줘야 되는 거 아냐?

나는 눈 덮인 지상에 떨어져 몇 바퀴 굴렀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내가 떨어졌던 곳을 보자, 허공에 생겼던 문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심사는 정말 이대로 끝? 패자부활전은?


“히익…….”


심사관이 한 얘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서 살아남아야 뭘 하든 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곳은 눈덮힌 숲이었고, 내 옷차림은 반팔 티에 반바지였으니까.

판타지, 판타지 소설이라고 그랬지. 기억을 더듬어 보자. 환생심사관들이 직접 체험해 보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이곳이 그 배경일 것이다. 좋아, 판타지의 정석. 숲은 가장 흔한 장소. 항상 숲에는…….


“컹, 크르르.”


늑대가 살지. 빌어먹으으을! 어느샌가 나타난 거대한 늑대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먹이로 배를 채우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도망치려 했지만 원형으로 포위된 형태였다.


“크르르릉…….”


나무를 탈까? 늑대가 나무를 탈 수 있던가? 눈밭이라 뛰어봤자 잡히고 말 테고, 망할, 환생한 지 3분만에 다시 심사대로 가게 생겼다.

나뭇가지를 들고 휘둘러 봤지만, 늑대들은 내가 저항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오더니,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마침내 높게 뛰어서 내 목을 물어뜯―


“캥!”


―지 못했다. 공중에서 공격당해 눈밭에 뒹군 것이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숨을 헐떡이는 녀석의 몸을 살펴보았다. 옆구리에 화살이 꽂혀 있었다.


“섬멸하라!”


그리고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늑대 무리는 이내 날아오는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했다.

나는 눈먼 화살이 내게도 날아올까 봐 나무 밑에 웅크리고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끝났……나?


더 이상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늑대들과, 그들을 수확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움직이기 편한 가죽 옷을 입고 활과 화살통을 장비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정체는 자명했다. 판타지의 단골손님. 귀가 뾰족한 엘프. 스무 명쯤 되는 엘프의 전사들은 모두 여자였다. 게다가 하나같이 발육이 좋다.


“이봐, 괜찮은가?”


그 중 한 명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덜덜 떨고 있는 나에게 자기 겉옷을 벗어 덮어 주고, 내 몸을 일으켜 주었다. 그야말로 여신. 외모도 마음도 가슴도 여신.


“인간이군. 어쩌다 여기에 있게 된 건가?”

“느……느느느.”


그새 입이 얼어붙은 모양이다. 나는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그들이 내민 따뜻한 물로 간신히 평소의 대화기능을 되찾았다.


“우리가 발견해서 다행이군. 간발의 차였어.”

“그, 그그.”

“괜찮으니 천천히 말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웃는 엘프들의 모습을 보니 그간의 고생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내 생명의 은인들. 이렇게나 예쁘고 상냥한 여신들의 모습에 나는 감사의 말을 입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느, 느금마.”


공기가 식었다. 그것도 절대영도로. 나를 바라보던 엘프들의 시선은 싸늘하게 굳어갔고, 나는 내 입을 의심했다.


“아, 아니, 느금마가 고맙다고.”

“이 자식이, 놀리나!”



내 정면에 서 있던 엘프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녀의 다부진 주먹이 내 명치에 그대로 꽂혔다. 하지만 주먹보다도 아픈 건 내 정신이었다.

나는 분명히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을 터다. 생명의 은인들에게 패드립을 칠 리가 없지 않은가.


—8십만 3천마디만 하면 자네는 자유라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할망구가 수작을 부린 거다. 틀림없다.

그말인즉슨, 나는 이제부터 제멋대로 나와 버리는 패드립을 8십만 번이나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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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고 보니 병신같네

아무튼 이세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