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출판 했다하면 1쇄 50만부는 기본. 각 출판사 관계자들이 줄을 서서 내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으나 이미 출판한 책의 인세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에 목이 뻣뻣한 작가야.

는 꿈이고.... 익명이라 지랄 좀 해봤어 미안.

 

 

그냥 평범한 글쟁이야. 지금은 모 플랫폼에서 웹소설 연재 준비 중이고. 근데 오프닝 개연성 문제로 편집자랑 한 달 동안 아웅다웅하고 있어서 슬프다. 흑흑.

 

 

그래서 그냥 심심해서 올린당. 내 개인적인 생각은 아니고 편집자님의 의견(이 바닥에선 유명하심.)이 반영된 거니 도움은 될 거야.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럴 땐 그냥 잡설이라 생각해 주고.

 

 

첫 문장! 작가를 괴롭히는 바로 그 놈! 어렵지. 이건 몇 권을 낸 기성작가라도 똑같이 힘들어하는 문제야. 일단 첫 술이 떠져야 밥을 먹든 말든 하는데 그게 맘에 안 들면 진행이 될 리가 없지.

서론 길었다. 미안. 글 쓴다는 놈이 이러면 안 되는데. 외로워서 잡담 좀 하고 싶었어. 이제 사족 뺄게.

 

 

흔히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이 있지. “이번에도 시작이 ‘모르는 천장이다.’냐?”

어디서 시작된 건진 잘 모르겠지만 워낙 많이 쓰인 오프닝이라 뻔하다는 얘길 할 때 자주 나오는 예시야.

하지만 바꿔 말하면, 저건 실은 굉장히 대단한 첫 문장이야.

 

 

-모르는 천장이다-

아주 짧은 문장에 기본이 다 들어가 있어. 우선 1인칭 시점인 걸 알 수 있고(3인칭이라 해도 일단 서술이 1인칭 중점으로 시작된다는 뜻),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비현실/비일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그리고 스릴러적인 느낌도 낼 수 있으면서 주인공이 현재 자신의 처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정보까지 주고 있어.

굉장히 훌륭한 문장이야. 다만 너무 많이 쓰여서 이제 식상해진 거지. 저게 변주된 것은 굉장히 많아. 감옥에 있다면 철창을 묘사한다든지, 이세계라면 모르는 동물이나 처음 보는 히로인의 독특한 의상 등을 묘사하며 시작할 수도 있지. 공통점은, 주인공에 이입을 시켜야 한다는 거야. 즉, 공감을 줘야 해.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감각’. 쉽게 얘기하자면, 감정보다는 감각을 자극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좋아.

무슨 뜻이냐. 지금 처한 주인공의 상황을 감정으로 시작하면 공감하기 쉽지 않아. 예를 들어 ‘슬프다.’라는 감정은 공통적인 거 같지만 공통적이지 않거든. 구체적이지도 않고. 주인공은 슬프다 하지만 독자가 그 상황에서 같이 ‘슬프다’고 느낄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아. 게다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초반에는 더더욱.

하지만 주인공이 ‘뜨겁다.’라고 한다면 독자는 자신이 뜨거웠던 감각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 공감이 쉽다는 거야. 체온 보다 높으면 뜨거워. 다들 그래 응응.

고전소설들은 시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어. 그래서 배경묘사부터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알다시피 이건 웹소설 포맷에 적합하지 않아. 독자는 맛폰을 드는 순간 인내심이 사라지거든. 빌어먹을 디지털. 봐봐. 지금 이거 읽는 너도 슬슬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장황한 배경묘사로 시작해도 상관은 없어. 다만 그러면 너의 문체가 쩔어야 돼. 쩔어야 돼. 중요하니까 두 번 말했다. 근데 사실 저런 경지에 이르면 시작이 ‘동해물과 백두산이’라도 재밌는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부럽다.

따라서 배경묘사로 시작할 거면 중요한 정보만 주며 간략하게 치든지, 그 바로 뒤에 자극적인 얘기가 나오며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어. 너나우리는 일단 그 부분은 건너뛰고 다시 감각으로 돌아가자.

노파심에서 얘기하지만 ‘하늘은 오늘도 맑고 청량하다.’ 이런 거 하지 마라. 청량하게 혼난다.

 

 

말로만 지껄이니까 나도 내가 재수 없다.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고 앉았어. 우리 예시를 하나 만들자.

어디 보자... [1인칭 시점 로맨스 주인공이고, 짐승 같은 남주한테 어젯밤 성적인 위기를 겪었었다.] 라는 설정으로 해볼까?

그렇다면 시작하면서 어제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좋겠지. 그래야 주인공의 처지나 현재의 상황에 공감하게 만들 테니까. 간단하게 만들어보자.

-어젯밤은 끔찍한 밤이었다-

문제점이 보여? 뭐 일단 주인공이 어젯밤에 무슨 일을 겪었었다는 정보와, 그걸 회상하면서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그때를 ‘끔찍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정보를 주고 있어. 나쁘지는 않은데... 공감하기 힘들어. 독자에겐 ‘끔찍한 밤’이 뭔지 떠오르는 게 없거든. 지 혼자만 끔찍해 하고 있는 중이지. 어떤 독자에겐 이별하고 난 밤이 끔찍할 수도 있고 어떤 독자에겐 글이 더럽게 안 써지는 밤이 끔찍할 수도(!) 있는 거야.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에 끔찍하다는 거지?’라는 호기심은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그건 다른 문장으로도 가능해.

어쨌든 이런 문제점은 끔찍하다는 ‘감정’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지. 아까 감각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는 얘길 했지? 그럼 감각으로 바꿔보자.

아참 ‘성적인 위기’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에로스한 느낌을 주는 게 좋겠어. 그래! 촉각이다! 추릅. 그리고 무엇 때문에 끔찍한 건지, 가능하다면 그 가해자인 남주를 언급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래야 이게 ‘로맨스물’이라는 느낌도 낼 수 있으니까. 지금 저 문장만으론 로맨스인지 스릴러인지 모르겠어. 좋아 그럼 여기에... 독자의 관심을 끌 자극적인 단어가 하나쯤 더 들어가면 좋겠지. 역시 에로스를 자극하는 쪽으로.

자 준비물은 대충 마련됐으니 조합해보자. 물론 이걸 가능한 한 짧게 함축시키는 것도 중요해. 연성합시다!

 

 

-어젯밤 그가 남긴 키스마크가 따갑다-

어때?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아, 물론 키스마크는 따갑지 않아.(엄격.진지.)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키스마크에 대한 감정을 통증에 비유했다고 볼 수도 있는 거고.

어쨌든 이 문장엔 주인공의 처지, 어제 겪은 에로스한 경험, 그리고 상대가 되는 ‘그’에 대한 정보가 모두 담겨있어. 그리고 자극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맛폰에 익숙해진 독자의 인내심을 붙들 수도 있지. 다시 한 번 욕하자. 빌어먹을 디지털.

이 건 뒤에 이어질 문장으로 약간의 변주도 가능해. 이를테면... ‘그가 남긴’이라고 했지만 당한 주인공이 여자라곤 안했습니다. 짜잔! 그렇습니다. BL입니다! 라는 거지.

 

 

쓰고 보니 아까운데... 저거 써먹을까... 괜찮지 않아? 아닌 거 같으면 미안. 에이 몰라. 익명인데 어쩔 거야.

아참, 다시 말하지만, 이건 결코 정답이 아니야. 감정으로 시작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있어. 어디까지나 이런 방법도 있다는 참고로만 삼도록 해.

그럼 이만 주절거리고 글쓰러 갈게. 그럼, 안녕. 미래의 문호들.

 

 

3줄요약

1. 첫 문장은 독자를 자극하면서 장르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면 좋다.

2. 감정보단 감각으로 시작하는 게 독자의 공감을 이끌기에 편하다.

3. 편집자님, 이제 그만 통과시켜 주면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