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는 두꺼운 가죽옷을 뚫고 뼈까지 스며드는 듯했으며 무릎까지 쌓인 눈밭을 부수며 지나가느라 처음 느꼈던 축축함은 사라지고 발에선 감각마저 희미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시아를 가려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지만 이미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뒤를 돌아 지나온 발자국을 살펴봤지만 가장 멀리 보이는 발자국은 이미 흔적도 없이 없어져있었다.
산맥의 어딘가에는 전설이나 동화로나 전해질 법한 사람이 산다고 한다. 남쪽에서는 마녀, 북서쪽에서는 현자라고 불렸다. 공통점이라고는 온갖 마법에 능통하다는 것뿐이었다. 그런 소문만 무성한 사람을 찾으러 간다고 했을 때 같이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나를 만류했지만 음유시인이 노랫거리를 찾으러 가는데 국왕님이 직접 오셔도 막지 못할 일이다.
높이가 3층 건물만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데도 눈을 전혀 막지 못하는 것 같다.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걸 보고 이러다가 정말 죽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손을 뻗어 허리춤에 걸어둔 삽에 손을 뻗는데 멀리서 오두막이 보였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동물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니 사냥꾼의 집은 아닐 꺼라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창을 통해 안을 살피려 했지만 서리가 껴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걸로 보아 사람이 있음은 확실했다.
어떤 것이 튀어나올지 몰라 마음에 준비를 하고 손가락을 구부려 문을 두드렸다. 가죽장갑을 끼고 있어 소리가 그리 좋진 못했다.
“여보시오. 혹시 안에 누구 없습니까? 하룻밤만 신세 질 수 있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작게 발소리가 들렸다. 문고리가 몇 번 흔들 리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문이 열렸다. 안에선 젊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엇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이런 곳까지 오신 거죠?”
여자는 검은 로브를 입고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생김새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키는 그리 크지 않고 목소리는 젊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해도 될까요? 지금 다리에 감각이 없어서.”
여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나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녀는 난로 바로 앞자리를 권하며 신발은 벗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차를 한 잔 가져다주면서 말했다.
“이런 위험하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무슨 일로 오신건가요?”
“저는 남서족에 있는 바닷가 나라에서 온 음유시인입니다. 이 설원에 마녀나 현자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기에 한걸음에 달려왔죠. 아가씨는 이곳에 사시는 겁니까? 주변에 동물도 없고 제가 아주 운이 없던 것이라도 눈이 이렇게 내리는 곳에선 살기 힘들지 않나요?”
여자는 나의 맞은편에 의자를 옮기고 앉았다. 난로불이 후드 밑으로 보이는 그녀의 눈을 비추었다. 푸른 눈동자는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날카로운 눈매는 나의 목에 칼이 들어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이곳은 오랜만에 잠깐 들른 것뿐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눈이 내리는 건 솔직히 저도 처음 봅니다. 한나절도 내리지 않은 것 같은데 아마 저는 밖으로 나가도 걷지도 못하겠네요. 그런데 마녀를 찾아서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네, 설원의 마녀라고도 불리고 눈의 현자라고도 불리더라고요. 그 사람을 만나 노래를 만들기 위해 왔습니다.”
“이 집이 없으면 죽을 뻔 하신 거 아닌가요?”
그녀는 나의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행히 색도 변하지 않고 사라졌던 감각도 서서히 돌아오는 중이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인데요.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그리고 전설치고는 목격담이 꽤나 생생해서 저는 분명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네?”하고 말했다. 그녀의 눈의 초점이 나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이유모를 기쁨을 주었다.
“안녕하세요, 설원의 마녀님. 아니면 눈의 현자가 나을까요?”
“아아…….”
“누가 봐도 수상하잖아요? 이런 곳에 여자 혼자 있는 게.”
여자는 입을 다물고 찻잔 속을 들여다보듯이 고개를 숙였다. 찻잔을 살짝씩 흔들며 말했다.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우물쭈물 거리며 말하는 게 부끄럼이라도 타는 듯했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고 후드를 벗었다. 푸른 눈은 불빛에 일렁이고 작은 입술은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눈처럼 하얀 피부에 눈 밑을 따가 점이 2개 있었고 흩뿌려지듯 움직이는 붉은색 머리카락에 침을 삼켰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낮게 깔았다.
그녀는 한 손을 들어 곧게 주먹을 쥐었다. 그러더니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감각이 들다가 떨어졌다. 내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창밖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눈도 오지 않았고 갈색 나무줄기가 아닌 청록색 나뭇잎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여자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잠에 들 때면 헛고생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며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래를 만들러 오셨다고요? 다른 마을에서 저는 어떻게 알려져 있나요?”
“간단하게 설명하면 남쪽에서는 젊은 여자가 요술을 보리며 눈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북서쪽에서는 눈의 현자가 숲에서 맹수들이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다고 하고요. 그리 특별한 이야기는 없는데 이게 거의 백년도 더 지난 이야기인데 목격담이 아직도 있더라고요.”
“그래요? 저는 이곳에서 3백년도 더 살았는데. 이제는 이름도 가물가물하네요. 마녀라고 불러주세요. 왠지 그쪽이 더 마음에 드네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설원의 마녀 씨.”
마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녀는 점점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조금씩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미소를 지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머리의 천사를 보듯이 마주보는 두 눈을 황홀감을 주었고 그녀의 미소오하 웃음소리는 쾌락과도 같은 짜릿함을 주었다. 그녀의 몸짓, 손짓, 말 하나하나가 관능적이었다.
“이런 외딴곳에 혼자 사시면 외롭지 않나요? 저라면 사흘도 참지 못할 겁니다. 아마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마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눈이 감기듯이 얇아지는 게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잘 모르겠네요, 외로움이란 거. 별로 그렇게 느껴본 적은 없어요. 가끔 심심하면 산을 내려가 이것저것 했을 뿐이죠. 그러고 보니 음유시인이라고 하셨죠? 괜찮으시다면 한곡만 들려주시겠습니까?”
“기쁜 마음으로요! 하지만 지금 목상태가 좋지는 않으니 이 피리로 참아주시죠. 서쪽의 나라에 들렀을 때 배운 겁니다.”
마녀는 기쁜 듯이 연주를 들었다. 박자에 맞춰 손바닥을 마주치며 고개를 흔들며 나의 연주를 즐겨주었다. 목소리가 상하지는 않지만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조금 무리해서 피리를 불었다. 한곡 부르고 나니 목을 비명을 지르는 듯 해 더 이상은 무리였다. 기침을 하니 마녀는 박수치던 손을 멈추고 찻잔을 채워줬다.
“괜히 저 때문에 무리하셨군요?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녀가 울적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에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보다 나를 걱정해준 것에 대한 기쁨이 더 컸다.
차를 홀짝이며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이 정도야 뭐. 하룻밤 자고나면 다 나을 겁니다.”
피리를 집어넣고 등받이에 몸을 뉘였다.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 게 잠이 쏟아지는 듯 했다. 마녀는 나에게 모포를 덮어주고 눈앞을 가린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나의 아미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편히 쉬세요. 내일은 날이 조금 풀릴 거예요.”
눈이 서서히 감기며 끈적하고 찐득한 어둠이 눈앞을 메웠다. 몸에 힘이 풀리면서 생각이 무뎌지는 게 느껴졌다. 의식이 멀어졌다.
몸을 감싸는 따뜻함이 몸을 감싸고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풍겨왔다. 침을 삼키며 눈을 떴다. 날이 밝아 아침이 된 것 같다. 마녀가 아침식사로 수프와 빵을 담에 건네주며 말했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그래도 좀 더 주무시는 게 좋겠어요. 아직 많이 피곤하실 탠데.”
“아닙니다. 너무 신세를 질 수 도 없죠.”
마녀는 웃어 보이며 포크를 건넸다.
식사를 마치고 발을 움직여보았다. 움직이는 데는 문제없었다. 마녀는 식기를 대충 물속에 담가놓고 말했다.
“어젯밤에는 잡다한 이야기만 하느라 제 이야기를 못 들려드렸네요. 시간은 충분하신가요?”
“책을 써도 될 만큼 여유롭죠.”
“그러면 저 좀 도와주실래요?”
나는 마녀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나온 곳은 3층높이의 돌탑이었다. 정말 현자나 나이 지긋한 마법사들이나 살법한 탑이었다.
눈은 발목까지 싸여있었지만 날씨는 화창하여 그리 춥지 않았다. 쌀쌀하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에 작은 빨간 열매가 열려있었다.
“여기 보이는 열매들을 따다주실래요? 키도 크시니 많이 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법을 사용하면 되지 않으신가요? 나무열매정도라면 바람마법을 사용하시면 간단할 것 같은데.”
“생물에 함부로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된답니다!”
그녀는 말꼬리를 올려 대답하고는 팔이 닿는 위치에 있는 나무열매를 따기 시작했다. 그녀의 옆에 서서 나무열매를 땋다. 꿈에나 그리던 그런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리며 그녀의 얼굴에 빛이 비추며 그녀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일렁였다.
나와 마녀는 빨간 나무열매를 잔뜩 따다가 옷에 담아 가지고 들어왔다. 나무열매를 물이 든 냄비에 붇고 불 위에 올렸다. 열매로 잼을 만들려는 것 같다.
“이 잼은 제가 이곳에 왔을 때부터 줄곧 먹던 것인데 마침 어제 뚝 떨어졌지 뭐에요.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뭘.”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황홀하여 그녀의 이야기를 물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다. 이 탑에 이 설원에 마녀와 함께.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몇 주가 지났을지도 모른다. 내가 마녀를 만난 이후로 나는 매일같이 마녀의 일을 도와주며 그녀와 대화를 주고받고 눈을 마주하고 미소로 가리켰다. 어느 시인이 떠들어대던 영원이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이 그 영원이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마녀의 마법으로 함께 마을로 들어가 사온 곡식으로 떡을 찌는데 필요한 나뭇잎을 따서 탑으로 들어갔다. 나뭇잎은 바늘처럼 생겼지만 좋은 냄새가 났다.
“여기 말한 거 가져왔어. 이 정도면 되지?”
“음! 이 정도면 충분해.”
떡을 찌며 나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의자에 앉아 창밖을 봤다. 며칠 전 인진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보다 해가 많이 낮아졌다. 날이 꽤나 지난 것 같다.
마녀는 나의 옆에 앉아 몸을 기댔다. 마녀의 머리가 어깨에 올라가 그녀의 무게가 느껴졌다. 팔을 올려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그녀는 웃으며 나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해가 저물 때쯤 되어 떡이 다 쪄졌는지 마녀는 벌떡 일어나 냄비 뚜껑을 열어보았다. 방긋 웃으며 포크로 하나 찍어 이쪽으로 달려왔다.
“어서 이거 먹어봐. 엄청 맛있어서 어떻게 돼도 모른다!”
“그래? 그럼 먹어볼까?”
그녀가 나를 향해 든 포크에 찍혀있는 떡을 한입에 물었다. 달콤하고 쫀득하여 내 입에 아주 잘 맞았다. 입에 떡을 넣은 채로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 조금씩 삼켜가며 말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씹었지만…….
“어때? 맛있지? 분명 맛있을 거야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인걸.”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손가락 하나, 눈동자조차 굴릴 수 없었다. 몸에서 완전히 힘이 빠져나가 시체처럼 나동그라지게 되자 마녀는 나를 부축하여 의자에 편안하게 눕혀주었다.
그녀는 나의 위에 올라타고 양손으로 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코끝을 마주 댔다. 관능적인 시선으로 나의 눈을 쳐다보며 그녀는 행복에 겨워 참을 수 없겠다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 무엇 하나 할 수 없었다. 숨조차 쉬어지지 않게 되었다.
“네가 찾아와 주어서 정말 기뻤어. 금방 가버리면 어쩌나 정말 걱정했는데 계속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 겉을 떠날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너를 영원히 내 곁에 두기로 했어. 영원히.”
그녀는 눈을 감고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내 감각도 소리도 느끼지 못하게 되어 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뿐인 상황이었다. 그녀가 미소를 짓고 웃고 눈을 감으며 나에게 속삭이는 것들은 침묵에 사로잡혀 나에게 닿지 못했고 그녀가 나의 이마에 입을 맞춘 순간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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