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후후...나는 신의 자식이니라.\"
고등학교 1학년 첫날, 옆에 앉은 여자애는 느닷없이 내게 말했다.
\"그러니 너는 이제부터 나를 따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
\"아니...일단 내 장래희망은 \'사\'자가 뒤에 붙는 직업인데.\"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 다음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뭘 하려나 궁금해서 가만히 내버려둬 봤더니, 이윽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문학 교과서를 펼치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를 내게 들이댄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에게 딱밤을 먹이고 \"무, 무슨 짓을...아욱!\" 교과서를 뺏어서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아니, 그러니까 자기걸 꺼내면 될 걸 가지고 왜 내 가방을 뒤지는 건데?
앞머리에 은색 십자가 머리핀을 끼고 있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뜬금없이 자기가 신의 따님이라고 주장하는 판타지스러운 사고방식의 소유자.
하지만 입만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귀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닌, 지금껏 내가 본 사람중에 단발머리가 제일 잘 어울리는 여자애.
그것이 수예를 처음 만난 날, 내가 그녀에게 받은 인상이었다.
2.
살다 보면 가끔씩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애들이 있다.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순수함이 있는 법이니까. 여기서 말하는 \'빠져 산다\' 의 의미는, 그 자신만의 세계를 아무런 관심도 없는 타인들이게 전파하려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수예는 꽤 양호한 편이다. 다른 애들에게도 가끔 기묘한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최소한 예수가 어쨌네 전생의 인연이 어쨌네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나 혼자니까. 물론 다른 애들 앞에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좀 문제지만.
\"아직 사람들은 내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럼 나는?\"
수예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와플을 베어먹으며 말했다. 기분좋게 올라간 입꼬리 끝에 생크림이 살짝 묻어 있었다.
\"너는 이천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이 시대에 환생한 내 제자잖아? 그러니까 내 말을 듣는게 당연하지!\"
예수 가라사대, 너는 내 교회의 반석이 되리라.
망할. 초등학교때는 전기장판이나 맥반석 오리구이 같은 걸로 놀림받던 이름이 이런 식으로 재조명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참고로 부모님께서 내게 반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것은 기독교 신자라서는 아니다. 우리 부모님께선 무신론자시고, 할아버지가 주신 돌림자가 \'반\'자였을 뿐이다. 돌림자라고 해봤자 형제도 없으니 같이 쓸 사람도 없지만.
\"이천년 전에 예수가 베드로에게 \'스승님은 왠지 달달한게 먹고싶구나... 앗! 저기서 와플을 파네?\'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안타깝구나. 와플 하나로 두사람을 먹이는 기적을 다시 체험하고도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다니...!\"
\"그냥 와플 하나를 둘로 쪼갰을 뿐이잖아.\"
\"흥, 자기도 맛있게 먹고 있으면서 괜히 태클은.\"
나는 대답하는 대신 와플을 살짝 베어 물었다. 크기가 작아서 집에 갈 때까지 먹으려면 아껴먹어야 하니까.
야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은 항상 둘이 함께다.
늦은 시간이지만 큰길 사거리는 상점가 불빛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봄이라지만 아직까진 밤에는 추운 날씨이다. 숨을 크게 내쉬자 희미한 입김이 가로등 불빛 사이로 사라져갔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우리는 길을 건넜다.
수예가 이 동네로 이사 온 것은 올해 초라고 했다.
전학...이 아니라, 이런 경우는 전입이라고 하던가? 어쨋든 이 동네에 살게 된지 얼마 안됐던 수예는 길을 잘 몰랐던 것이다. 어느 정도로 모르고 있었냐면, 고등학교 첫날 네이버 지도로 아파트 이름을 검색해 볼 정도로 모르고 있었다. 수예 본인은 완강히 부정하고 있지만 심각한 길치다.
그래서 첫날부터 지금까지 쭉 같이 하교하고 있는 것이다.
하필이면 수예가 검색하고 있던게 우리 아파트였으니까. 거기다가 도착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마저 같다. 수예네 집은 우리집 한칸 떨어진 라인에 있다.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나 싶을 정도의 우연이다.
\"앗, 제자야. 입가에 생크림.\"
\"너도 묻었거든.\"
\"어? 으엣, 진짜네.\"
야자가 끝나면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집에 가고, 가끔씩은 간식을 사먹기도 하고, 왜 학교도 아파트도 오르막길인지 불평하기도 하는, 그런 고등학교 1학년의 봄.
예수의 환생이라 자처하는 소녀와 나의 일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3.
비록 짧은 인생이지만 내가 그동안 겪은 바로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라고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사람들 두뇌 수준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한다. 단지 어느 쪽으로 뇌가 발달하느냐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똑같이 성장해도 누군가는 축구를 잘하는 쪽으로 발달하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는 쪽으로 발달한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순수하게 그쪽으로 뇌가 발달했을 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모의고사를 잘봤어도 그건 순수하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쪽으로 뇌가 발달했을 뿐인, 말하자면 운의 문제라는 것이다.
옆에 앉아서 내 장황한 헛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수예는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걸 보고 패배자의 변명이라고 한단다. 제.자.야.\"
\"크으윽...어쨋든 이 내기는 정당하지 못한...\"
\"그리고 설령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스.승.님.께서 이긴건 사실이잖니?\"
발단은 3월 모의고사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보는 모의고사이다. 모의고사로 한정하지 않아도, 그냥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보는 시험이다. 그리고 근거없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던 나는 수예에게 내기를 신청했던 것이다.
-이번 모의고사에서 내가 이기면 나를 제자라고 부르는건 그만 두기로, 어때? 제자보다 멍청한 스승이란건 이상하잖아?
내 말을 들은 수예가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던 기억이 난다.
-흐음...만약에 내가 이기면 어떻게 되는데?
-풋,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뭐라도 원하는 소원을 하나 들어주기로 하지.
그리고 어제, 수예는 400점 만점인 모의고사에서 372점을 맞았다. 학년 전체에서 5등이었다. 참고로 나는 우리 반에서 5등이었다. 그래서 수예가 어제 가채점이 끝난 순간부터 유독 특정 단어를 또박또박 발음하고 있는 것이다.
울고 싶다. 뭐가 \'풋,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이냐. 혹시 너무 압도적으로 이겨버려서 수예가 기분나빠하지는 않을까 고민하던 과거의 내게 가르쳐주고 싶다.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기를 취소하라고. 과거로 문자를 보내는 기술은 대체 왜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것인가!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흐흥, 우리 제.자.야.가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는데 답해주는게 스.승.님.의 도리겠지. 뭔데?\"
\"거기까지 묶음이었냐! 아니, 이게 아니라, 이길거라는 자신이 있어서 받아들인 거였어?\"
수예는 뭘 당연한 걸 물어보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맨날 옆자리에서 문제집 푸는거 보잖아? 그 정도는 당연히 알 수 있지.\"
살짝 부끄러워졌다. 왜냐하면 나는 수예가 뭘 풀고 있는지 신경써서 보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중2병 말기 주제에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랴, 하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엎어졌고, 수예는 뭘 착각했는지 내 뒤통수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당연한 거니까 너무 그렇게 상심하지는 마려므나. 원래 고수는 하수를 알아봐도 하수는 고수으흐아아아아앙!\"
\"너무 그렇게 잘난척 하시면 제가 좀 짜증납니다, 스.승.님?\"
\"아았허! 아았흐니하! 놔줘, 놔수세혀!\"
물론 부끄러운 거랑 짜증나는 건 별개다.
\"우으우...\"
나는 손을 놓았고 수예는 기괴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왼쪽 뺨을 문질렀다. 애들이 지나가다가 이쪽을 보고 쿡쿡 웃는다. 뭐가 웃기냐.
엄지손가락에 침이 살짝 묻었다. 코를 대봤더니 비릿한 냄새가 났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소매에 쓱쓱 문질러 버렸다. 감독이 들어오고,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던 애들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야자 마지막 시간이다.
교실이 평소보다도 조용하다. 오늘 야자 감독은 우리 담임이니까. 수예를 흘끗 보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연습장에다 낙서를 하고 있었다. \'엔젤모트?\' 라고 써진 낙서 위에 X 표가 되어 있고, 거기서부터 \'너무 싸다!\' 라는 말이 화살표로 연결되어 있다.
엔젤모트는 사거리에 있는 카페이고 가장 싼 메뉴가 사천원부터 시작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수예 손에서 연습장을 뺏은 다음 이렇게 써서 돌려줬다.
-자비는 어디에?
수예는 피식 웃더니 연습장에 이렇게 썼다.
-No mercy.
-니가 그러고도 자칭 예수의 환생이냐!
-전생에 나를 세번 부정한 복수다! 꺄하항!
발끈해서 다시 받아치려 했지만 아쉽게도 랠리는 그걸로 끝이었다.
갑자기 책상 위에 그림자가 진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연습장이 담임 손에 넘어간 다음이었다. 담임이 수학 공식 대신 브라우니와 이모티콘이 그려져 있는 연습장을 보곤 피식피식 웃는다.
돌돌 말린 연습장으로 한대씩 맞고 나서 사정을 설명하자 담임이 연습장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반석이는 엔젤모트에서 수예가 원하는 메뉴를 아무거나 만원 이내로 사주고, 대신 중간고사 전까지 주말마다 수예에게 개인교습을 받도록. 월요일날 검사한다. 참고로 만원 이내로 사주는건 내기와는 아무 관계 없는 과외비니까 반석이는 착각하지 마라.\"
수예는 환성을 지르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다가 담임한테 한대 더 맞았다. 쌤통이다,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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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쓰다 만거. 언젠간 끝까지 쓰게 되기를...
완결시킬필요 없고 프롤로그만 올리면 된다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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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유다였다던가, 그런 반전을 기대했는데. 그래도 라갤에서 읽은 글 중 제일 재밌었다 계속쓰길바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