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들었습니다.”


곧바로 정강이로 군화발이 날아온다. 이를 악물고 소리를 참는다.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아마 입에서 내뿜은 담배연기 일 것이다. 


후, 그렇지. 정확하다. 


“잘 모르면 군생활 끝나냐?”


이것도 예상했던 대답이다. 


나는 고개를 숙인다. 후임이 정현재 상병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누가 점호시간에 그렇게 쪼개래?”


정 상병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고작이다. 


“재수한다고?”


정 상병이 이죽거리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면 재수한다고? 라고 되묻는 것이 정 상병의 말 버릇이었다. 


좁은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정 상병의 구취가 내 콧구멍으로 쑤시고 들어온다. 


어떻게 하면 그만 갈굼당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 나는 필사적으로 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상황은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전역을 17일 앞둔 배 병장이 점호 시간 내내 중대장의 흉내를 어찌나 찰지게 내던지 내무반 전원이 웃음을 참느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화기애애한 점호였다. 간부에게 별다른 지적도 받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어야 했다.


그런데 취침 소등까지 끝난 밤 10시 10분, 내 옆자리에 누워있는 이 인간이 내 베게를 툭툭치더니 화장실로 따라오라고 하는 것이다.


이해는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유독 상성이 맞지 않는 관계가 있다. 그건 분명하다.  


내 7개월 고참이자 맞선임인 정 상병은, A급이라는 말이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체대 출신의 건장한 남자다. 


본부중대 인사계원으로서 선임들과 간부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 인정한다. 이 인간, 일 잘한다. 


청소와 축구와 같은 체육 활동 등 단체 내무 생활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재다.


본부중대 최고의 에이스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정 상병이 가장 잘하는 것은 다름 아닌, 후임 관리였다. 쉽게 말해, 쥐 잡듯이 일이등병을 잡았다.


나를 포함한 3생활관 일이등병 칠인방에게는 희대의 개새끼가 따로 없다는 뜻이다. 


“군대가 캠프냐? 일병 달더니 정신 나갔지? 짬 좀 먹었어? 


네가 자꾸 쪼개고 그러니까 네 밑에 애 새끼들까지 같이 막장 치는 거 아냐.


너 같은 새끼가 내 맞후임이라는 게 정말 수치스럽다.“ 


군번이 단단히 꼬인 정 상병은 막내 생활을 오래했다. 


나를 포함한 신병 일곱 명이 보름 간격으로 도미노처럼 들어오며 겨우 군 생활이 풀린 케이스다.


덕분에 이제 겨우 상병 2호봉인 정 상병은 자신의 짬에 비해 비교적 큰 권력을 3생활관에서 행사하고 있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의미로 윗 선에서도 어느정도 정 상병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죄송합니다.” 


잘난 선임의 발끝도 못 쫒아가는 못난 맞후임이 할 말은 그것밖에 없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주문처럼 그 말을 되뇌었다. 


다시 한번 더 정강이로 군화발이 날아온다. 


“재수한다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결심하고 고개를 들어 정 상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결국 이렇게 해야 되나.” 


나는 들릭락 말락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참을 만큼 참은 것이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정 상병이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네가 자초한 거야.”


뭐, 정 상병이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짝.


미처 입을 열 틈도 없이, 내가 정 상병의 뺨을 힘차게 때렸다. 


턱이 돌아갈 정도로 고개가 완전히 젖혀졌다. 


일석 점호가 끝나고 어두운 복도에서 불빛을 새어나오고 있는 본부중대의 화장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이, 이, 이 또라이 새끼가.”


정 상병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어디든 미친 개에라도 물린게 분명한 눈 앞의 후임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정 상병은 머리에 심한 충격이라도 받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눈 앞에 서 있는 사내는, 후임은 아니라 정현재 상병 바로 자신이었다. 


*


“고참 몸에 손대게 되있냐?”


내가 말했다. 


눈 앞의 사내는 입만 뻐끔거릴뿐 움직이지 못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머리가 안 돌아가지?” 


김헌창 일병, 즉 내 모습을 한 정현재 상병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번씩 봤을 거 아냐. 몸이 바뀐 거야.”


나의 모습을 한 정 상병의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가 아까 네 뺨을 때렸잖아. 그 순간 체인지 된 거라고.”


나의 모습을 한 정 상병이 이번에는 느닷없이 제 볼을 꼬집었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정 상병의 모습을 한 내가 말했다.


“받아들여. 현실이야.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겠지만 어쩌겠어. 


일단 냉정히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생각은 그 이후에 하란 말이야.“


“이, 이게 정말 현실이란 말이야?”


“존댓말을 쓰는 법을 연습하는 게 좋을 텐데. ‘김헌창’ 일병.” 


내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일 아침부터 넌 그냥 일병 좆호봉, 짬찌그레기에 불과하니까.” 


“이 개새끼가-” 


얼굴이 빨개진 정 상병이 다시 주먹을 쳐들었다. 


“현재야, 아직 멀었냐.”


그 순간, 복도에서 당직 근무를 서고 있던 2생활관의 최 병장이 화장실 입구에서 말했다. 


정 상병이 주먹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최 병장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그만 갈구고 애 빨리 재워라. 당직사령 눈치 보여.” 


“예, 알겠슴다.” 


내가 화장실 칸 너머로 대답했다. 


“그래, 내일 행정반 놀러갈게.” 


최 병장이 다시 복도를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대충 알겠어?”


정 상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당분간 나는 네 몸으로 살아볼 생각이야. 


그 동안 잘난 맞선임을 둔 덕분에 너무 피곤했거든.


너무 걱정하지마.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은 분명히 있으니까. 


네가 앞으로 하기에 따라서 그 시간은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 도 있어. 


물론 이제 애들 괴롭히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아, 그리고 입 단속 잘하는 게 좋을거야. 하기사 누군가에게 말해봤자 믿어 줄리도 없겠지.


오랜만에 일병 생활을 만끽하면서 자신을 좀 되돌아보라고, 김헌창 일병.“


녀석의 몸이 부들거리며 떨리고 있다.   


나는 김헌창 일병의 모습을 한 정현재 상병을 뒤로 하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내무실로 돌아갔다.  


*


경기도 모처에 위치한 제 10보병 사단 본부근무대 소속 본부중대 행정반에서 근무중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정 상병과 비교하자면 ‘폐급’에 가깝다.


일단 업무 능력이 형편없다. 간단한 기안 작성이나 일일 결산 하나 제대로 못해서 정 상병에게 털리기 일쑤다.


그렇다면, 군인을 떠나 한 사람의 인간 김헌창은 어떠냐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신통찮은 인간이다. 


키도 작고 외모도 볼품없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동네 주민들도 잘 알지 못하는 대학교의 미래 창조 서비스 학과라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학과의 2학년 휴학 중이다. 


성격 또한 소극적이고 친구도 별로 없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편부 슬하에서 자라났으며, 특별한 재주나 취미, 특기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연예경험 역시 없다.


정말 어쩜 이렇게 골고루 갖춰 놓았을까 싶을 정도로 평균 이하의 인간인 것이다. 


*


“김헌창이.”


행보관이 말했다. 내 모습을 한 정현재 상병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정면만 바라보고 있다.


“야, 김헌창이.”


행보관이 다시 한번 더 짜증스러운 말투로 녀석을 부른다. 정현재는 대답이 없다.


“야. 너 부르시잖아.”


맞은 편 책상에 앉아있는 내가 발로 녀석의 무릎을 쿡하고 친다. 녀석이 움찔하며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행보관님이 너 부르신다고, 김.헌.창.” 


내가 깐족거리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뭔가 깨달은 ‘김헌창’ 일병이 화들짝 놀라 행보관을 바라본다.


“본부 중대 생활관 보급품 수량 조사하라고 했던 거 했어?”


“그걸 왜 제가... 어제 헌창이한테 시키셨지 말입니다.”


내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이등병 두 사람의 손이 멈춘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 


행보관은 할 말을 잃고 녀석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뭐라고?”


“헌창이한테 시키셨다고...”


말하는 도중 뭔가를 깨달았는지 ‘김헌창’ 일병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누구한테 시켰다고?”


‘김헌창’ 일병이 한쪽 눈으로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래봤자 어쩔거냐, 김 일병.


“그러니까. 예. 제가, 해야되는 거긴 한데. 금방 하겠습니다.”


“이 새끼가 진짜. 너 오늘 하루 종일 멍때리고 뭐하냐? 일병 새끼가 빠져가지고.”


“제가 데리고 가서 같이 하겠습니다, 행보관님.” 


정현재 상병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내가 짐짓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뭘 같이 해. 그냥 저 새끼 혼자 하라 그러고 너는 너 할 거 하던가 쉬어.”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도 지금 근무 명령서 다 짜서 할 일 없습니다. ‘교육’도 시킬 겸 데리고 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그럼 같이 수고 좀 해라, 현재야. 김헌창이, 너 임마 진짜 고참한테 좀 배워라, 임마.” 


행보관은 공공연하게 정현재 상병폭력 및 가혹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도 방치하고 있는 가증스러운 인간이다. 


“죄송합니다.”


나는 20cm는 작아보이는 ‘김헌창’ 일병의 어깨를 감싸쥐며 행정반을 나왔다.


*


“야이, 개새끼야.”


행정반 문이 닫히자마자 복도에서 녀석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못해도 세배는 두꺼워보이는 팔뚝으로 가볍게 녀석을 제압하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말 좀 조심하지, 김 일병.” 


내가 녀석의 목을 움켜쥔 주먹에 힘을 풀며 말했다. 


녀석은 켁켁거리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독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향해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너 진짜 돌아오기만 해봐라. 전역하는 날까지 괴롭힐 거야. 어디 두고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거야. 진짜 군생활 지옥으로 만들어 줄 거야.” 


내가 한숨을 쉬었다. 


“너 간부나 선임 똥꼬 빠는 거 말고는 머리가 도통 안 돌아가지? 


그런 말 듣고 내가 다시 몸을 되돌려 주겠니? 


넌 지금 마음에 없어도 내게 성심 성의껏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거야.”


녀석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사실이었다. 녀석은 지금 누가뭐래도 본부중대 3생활관의 폐급 병사 ‘김헌창’ 일병이다. 선임과 간부들에게도 신망이 없고 이등병들에게도 무시당하는 김헌창 일병인 것이다.


몸이 뒤바뀌었다는 것은, 녀석이 본부중대에서 군생활 내내 쌓아올렸던 모든 지지기반까지 내게 송두리째 뺏긴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제는 한 숨도 못잔 모양이지? 눈이 아주 새빨간데.”


내가 굵은 손가락을 뻗어 녀석의 얼굴을 문질렀다. ‘김헌창’은 질색하며 얼굴을 돌렸다.


“선임이 만지면 관등성명 대게 되어있지 않나. 나는 그랬던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김헌창’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안대냐, 관등성명?”


내가 녀석의 두툼한 귓불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이러면 잠이 잘온다면서 녀석이 늘상 내게 하던 행동이다. 


정말이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야.”


내가 녀석의 귓불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김헌창’이 참지 못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마침내 녀석은 굴욕적인 표정으로 관등성명을 댔다.


“일병... 김헌창.”


“잘했어.”


내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품조사하러 가자.” 


나는 ‘김헌창’ 일병의 어깨에 다시 손을 두르고 복도를 걸었다. 


*


이 능력에 나는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첫째는 그럴 싸한 이름을 아직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 능력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그 룰과 한계를 정확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


“헌창아. 이리 좀 나와 봐라.”


입대 전날, 아버지께서 나를 거실로 부르셨다. 울적한 목소리였다.


“예, 아버지.”


내가 시원하게 대꾸했다. 스스로는 입대 한다는 실감도 아직 나지 않았고 딱히 사회에서 즐거운 삶을 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술이라도 한 잔 따라 주시려나보다, 나는 총총거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짝.


거실에서 서 계시던 아버지는 다짜고짜 내 따귀를 때리셨다. 


갑작스러운 일격에 정신을 못차린 나는 한참을 멍하니 턱이 돌아간 채로 우두커니 거실에 서 있었다.


간신히 머리를 수습하고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뭐 하시는 거-”


숨이 멎었다. 눈 앞에는 아버지가 아닌 내 모습이 있었다.


그 순간 갑작스럽게 따귀를 맞았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나는’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아직 모르고 있었구나.”


    





 


문피아 연재 노려볼 생각인데


주위 지인들은 소재도, 주인공의 처지도 별로라고 하더군요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