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노벨이란, 문자 그대로 '시각화된 소설'이다. 컴퓨터를 통해, 일러스트와 BGM을 항시 대동할 수 있게 만든 소설인 거지.

그러니까 아주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런 것도 풀 보이스+자동진행의 단편 비주얼 노벨이라고 볼 수 있음. 물론 아무도 그렇게 분류 안 한다만.


이에 반해, 미연시란 '미소녀(가끔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 그러니까 시뮬레이션 게임의 한 분파임. 게이머가 실제 연애를 하는 것을 간접체험하는 부류지.

엄밀히 말하자면, 어드벤처 게임의 후손인 비주얼 노블하고는 교집합이 있을 뿐 처음부터 같이 시작한 장르가 아님.

그렇기 때문에, 비주얼 노벨에는 미연시뿐만 아니라 수많은 장르들이 포함됨.

다들 한번쯤은 들어봤을 Fate/Stay Night(속칭 페스나)도 연애 요소는 소년만화에 흔히 있는 덤일 뿐, 주요 내용은 판타지 액션 활극이지.
우로부치 겐의 '귀곡가' 같은 경우에는 연애 요소는 일절 없는 하드보일드 SF 사이버펑크 무협지(...)고,
'학교에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같은 경우는 호러/병맛 장르로 유명한 작품이지.

거꾸로, 미연시이면서 비주얼 노벨이 아닌 작품도 물론 가능함.
미연시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러브 플러스'만 해도, 이걸 '노벨'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함.
아니, 애초에 이 장르의 시조인 '도키메키 메모리얼' 부터 '노벨'이 아니었음. 게임 진행 과정이 플레이어 캐릭터를 육성하는 거니까 말이지.

그러면 왜 미연시 하면 비주얼 노벨부터 떠올리냐 하면... 대다수의 미연시들이 비주얼 노벨 양식을 취하고 있거나, 최소한 상당한 교집합을 가지고 있기 때문.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로맨스 소설'에서 '소설'을 떼어내는 것이 가능한가 생각해 봐. 모니터 속의 여자친구와 꽁냥꽁냥하는 것'만' 있는 게임이 만들기 쉬울까?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다만, 제작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사귀게 되는가'를 가지고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게 쉽겠지. 여기에 흥미를 더하기 위해서 판타지 요소를 넣고...
그런 식으로 발전한 장르가 흔히 말하는 '미연시'인 거임. 남성향 로맨스 소설에, 성우 보이스와 귀여운 그림들, 화려한 BGM들을 붙여놓은 거라고 생각하면 됨.

거꾸로, 판타지/SF 비주얼 노벨을 만든다고 해도, 이런 류의 창작물에서 연애 묘사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잖아.
더더구나 공략 대상이 미형이면 미형일수록 잘 팔릴 테고, 다양한 취향의 소유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선택지에 따라 공략 대상이 결정되도록 하고...
그런 식으로, 장르 자체가 수렴진화를 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면 돼.


아, 덤으로 국내 오타쿠 동인(아마추어)업계에서는 '여성향 비주얼 노벨' 이 압도적인 강세임.

여덕들 중 그림 잘 그리는 사람, 글 많이 쓰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다, 이런 사람들이 '뭉치는' 건 여자들이 훨씬 더 잘 하더라고...

아마 거기서 말한 '비주얼 노벨'도 그런 맥락에서 한 말이지 않을까.


그러면 스피드왜건은 이만 물러가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