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판무로 시작해서 글쓴지 10년 좀 넘었고... 종이책 출판경력은 있지만 사실 이렇다할 인기작도 없고 다작을 한 작가도 아님. 다만 이 바닥 오래 구르다 보니까, 처음 소설 쓰고 싶다고 뛰어들었다가 좌절하고 쓰러지는 지망생들을 좀 많이 본 것 같다.
요즘 웹소설 쪽이 흥하면서 지망생들이 늘어나는 분위기인데, 옛날 생각이 나서 글 올려봄.
여기서 전업작가를 꿈꾸며 소설을 쓰는 망생이라면 당연히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글을 쓰고 싶어할 거다. 작가는 이슬 먹고 사는 생물이 아니니까(참이슬 제외. 꼭 이 말 하면 참이슬!을 외치는 작가들이 하나씩 있더라).
하지만 처음으로 글을 써보는 망생이라면, 어떻게 해야 글 써서 성공하는가를 고민하는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냐.
사람은 의외로 자기가 뭘 원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잘 몰라. 작가라면 더더욱. 처음 글을 쓰는 작가는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이 어떤 것인지 의외로 잘 몰라. 좋아하는 장르나 취향은 있지만, 그게 장편소설의 스토리라는 형태로 구체화된 상태가 아닌 거지.
그 상태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글, 남들이 쓰는 글을 보고 '아 성공하려면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하고 따라 쓰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진짜로 자기가 뭘 쓰고 싶었는지 헷갈리게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그렇게 해서 쓴 글이 성공하느냐? 그것도 아님. 작가는 로망으로 먹고 사는 존재인데 자기 로망도 담겨있지 않고 상업적으로도 어설픈 글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해. 물론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 자기 취향과 트렌드가 운 좋게 일치하고, 타고난 센스가 있는 경우. 하지만 이건 그냥 재능빨이고, 절대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냐. 뭣보다 이 글을 읽는 갤러가 여기에 속한다면 애초에 이런 글을 보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리 없다.
나는 자기가 처음으로 써보는 글은 100% 자기가 원하는 데로, 자기 취향만을 담아서 써야 한다고 생각해. 상업적으로 팔리고 어쩌고 하는 건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순수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내용과 전개로 밀고 나가는 거야. 그냥 습작이라고 생각하고.
분명히 말해두는데, 습작으로 장편 하나를 쓰는 건 절대로 낭비가 아냐.
보통 조아라나 문피아에서 판무 연재하는 작가는 하루에 10k정도를 써. 물론 그건 되는 사람만 되는 거니까 보통은 5~7k 정도. 보통 판무 장편의 기준이 되는 종이책 5~7권 분량의 글을 쓰는데 이 속도면 1년도 걸리지 않아.
진짜로 전업작가로 나갈 생각이 있다면, 장편 하나는 자기 인생이 걸린 문제가 아냐. 작품 하나는 그저 긴 작가 인생 동안에 쓰는 '글 중 하나'에 불과해. 처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1~2년을 써서 장편 하나를 완결한다는게 굉장한 일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뒤를 돌아보면 절대 그렇지 않아.
사족이 좀 길었는데, 첫 장편을 상업성 무시하고 자기 꼴리는 데로 써보라고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
첫째로, 위에서도 말했듯이 자기가 원하는 글, 작가로서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를 구체화시킬 수 있어. 작가라면 누구나 그런 게 있을 거야.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이 없는데 작가가 되고 싶을 리가 없지. 설마라고는 생각하지만, 만약 진짜로 글에는 관심 없는데 돈벌이가 된다길래 글 쓰는 사람이 있다면, 갤질 그만하고 빨리 다른 일자리 알아봐. 요즘 이 바닥이 좀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돈벌이 수단으로는 평범하게 취업해서 월급 받는 게 100배 낫다.
작가의 파워는 자신의 로망, 자기가 작가로서 쓰고 싶은 이야기에서 나와. 자신이 원하는 글을 하나 완결해보면, 자기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나 로망에 대한 뼈대가 잡혀. 이게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상업적으로 먹히는 글을 쓰려고 하면, 자기 중심이 흔들려서 뭘 하려는 건지도 모르게 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자주 하는 말인데, 자기가 봐서 재미없는 글은 누가 봐도 재미없어. 근데 자기 중심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어중간하게 상업성을 추구하면, 절대 자기가 좋아할 글이 안 나와. 그러다 보면 '그래도 상업성 공식에 맞춰 썼으니까 남들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기가 봐도 불안한 글을 한 100매쯤 써놓고 남들에게 평가 부탁한다고 올리고, 다른 사람들 반응에 목을 매게 되는 거지. 아마 작가 커뮤니티 자주 봤으면 알 거야. 그렇게 평가 부탁한다고 올리는 글 중 정말 괜찮은 글은 거의 없다는 거.
일단 자신의 로망, 자기 취향을 글에 담아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보고 나면, 다음 글을 쓸 때 상업적 요소를 받아들이더라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덜 흔들릴 수 있어.
그 다음은 누구나 다 아는 '완결 경험'에서 얻는 장점들. 이야기를 만드는 법, 장편 하나를 쓰고 그 결과물을 돌아보면서 얻는 경험 같은 거. 장편 완결을 한 번 해본 사람과 해보지 못한 사람은 글을 보는 시각에서부터 차이가 나.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한번 해 본 일은 두 번째에는 더 쉽게 할 수 있어.
완결 경험이 없는 망생들이 주로 빠지는 함정 중 하나가 글 하나를 붙잡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를 반복하는 거야. '글 하나'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기성작가들이랑 다르거든. 이게 아니다 싶으면 일단 접고, 다른 글 쓰다가 자기 경험과 실력이 쌓이고 이제 쓸 수 있겠다 싶으면 그때 다시 꺼내도 되는데 경험이 없는 작가 지망생들은 그런 발상 자체를 못 해.
물론 첫 작품이 터지고 그걸로 끝인 원히터도 많지만, 전업작가는 그런 걸 바래서는 안 돼. 재능빨로 한 작품 대박 터트린 작가가 아무리 돈을 벌어도 완결하고 2~3년도 못 버텨.
이 부분은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한 거라 자세한 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다.
세번째는 자기가 원하는 데로 쓰는 글이 완결까지 끌고나가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야.
경험과 실력도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상업성을 고민하다 보면 글이 막히거든. 그러면 첫 작품을 완결까지 끌고가기는 더 힘들어져. 그렇게 취향과 상업성 사이에서 갈팡징팡하다가 첫 작 완결도 못내고 떨어져나간 작가들을 정말 많이 봤어.
안 팔리든, 선작이 낮든 그냥 자기 취향대로 끝까지 밀고나간 후에, 그 글을 완결하고 나서 뒤를 돌아봐야 해. 그게 핵심이야.
마지막은 자신감이야. 자기가 글을 하나 완결해봤다는 자신감. 그리고 자신이 글을 쓸 수 있고, 그걸로 독자들의 격려와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
아무리 막 쓴 글이고 마이너한 취향이라고 해도, 자신의 로망과 취향이 담겨 있고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글이라면 반드시 좋아하는 독자들이 붙게 되어 있어. 꾸준하게 연재를 하다 보면 그런 독자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선작이 조금씩 늘어. 그리고 '작가님 글 재미있어요!'라는 댓글도 달리고. 그런 경험 하나하나, 독자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작가에게는 큰 힘이 되고, 나중에도 힘든 작가 생활을 버티는 원동력이 돼. '아,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걸 경험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커.
나는 어쩌다보니 문피아/조아라 유료연재 경험은 없지만 조아라에서 딱 한번 팬픽을 올려본적이 있어. 마이너를 넘어서 요즘은 화석이나 고대유적 취급받는 장르고 상업적으로 먹힐 만한 요소 따위는 1mg도 고려하지 않고 막 써댄 작품이었는데, 시작할 때는 조회수 10대이던 글이 한 권 분량... 35화 정도에서 완결할 때는 평조 1천대, 선작 400에 근접하더라. 그때 이런 마이너에 상업성 엿바꿔먹은 글도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아마 100화, 200화짜리 장편을 연재해본 사람들이라면 나보다 더 극적인 경험을 했겠지.
물론 35화에 선작 400이면 조아라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글은 아닐 거야. 하지만 트렌드니 상업성이니 그딴거 고려 안해도, 자기가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글이면 좋아하는 독자는 어딘가에는 있다는 거지.
나는 처음 글을 쓰는 지망생이라면 그런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통장에 돈 찍히는 건 중요하지만, 아직 10대나 20대고 작가지망생이라면 그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닐거야.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이면 내가 뭐라 해줄 말은 없고...)
그리고 나중에 돌아보면, 그 작품이 자기 작가인생에 유일하게 취향대로 써본 글이 될 수도 있어 ㅠㅜ;
이야기가 좀 횡설수설이 된 것 같으니 3줄 요약.
- 첫 작품은 상업성 같은거 신경쓰지 말고 그냥 자기 취향대로 막 써서, 반드시 장편으로 완결해볼 것.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완성해 본 경험'과 '완결작을 써 본 경험'이라는 건 작가 인생에서 더없이 중요한 경험이다.
저는 읽는거좋아하는데 갤럼님들 기대하겠습니다!
와.... 구구절절 정말... 다 와닿는다... 내가 이 갤의 삼한사온 겪으면서도 계속 오게 되는 건 이런 얘기들 때문이야. 다른데 가면 이렇게 담담하게 기본자세를 얘기해 주는 사람 하나 없더라.. 내가 딱 이 시점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한데도 도무지 도움되는 얘기를 접할 곳이 없어. 정말 고마워. 많이 도움된다 ㅠㅠ)bb
그리고 짤의 강아지 너무 귀여워서 눈을 못 떼겠닼ㅋㅋㅋㅋ
첫작에 덕심을 갈아넣었더니 재미가 실종됨ㅋㅋ 상업적으론 망했지만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야ㅎ
짤 강아지~~!!!!엉덩이에서 눈을 못 떼겠어!!!우왕 토실토실해!!
이거 ㄹㅇ 내가 재밌어야 팔리기도 잘팔림
구구절절 맞는 말이야. 시작한 글 완결내는 거 정말 중요하고 속도보단 방향이지. 여기서 하루 몇자 쓰는 글 보고 글자수 맞추는 연습 보단 내가 쓰고자 하는 내용을 얼마나 잘 썼는지가 중요해. 속도에 너무 연연하고 쫓기면 결국 이도저도 아닌 글 나오는 경우가 있으니 그것도 조심해야 돼. 내가 지금 그 꼴나서 처음부터 다시 정신잡고 수정하는 중 ㅜㅜ
ㄴ 속도보단 방향...! 와, 이것도 와닿는다. 그런데 속도가 떨어지면 보던 독자도 떨어질 것 같은 불안심리 때문에 그게 안되던데..? 나를 잃지 않는다면 독자가 속도를 무시해서라도 정말 끝까지 와줄까?
ㄴ 사실 내가 속도 무시하고 방향 잡았다가 독자가 떨어지고 있어서... ㅠㅠ
난 이미 독자들이 포기함ㅋㅋㅋ 그냥 내 속도에 맞춰 올리는중. 많이 떨어져나갔지만 볼 사람은 또 봄
나도 독자 떨어져서 그 부분은 어느정도 감안하고 담들부터 완결낸 거만 연재하기로 마음 먹었어ㅋㅋ 조바심에 분량만 맞춰 올리니 캐릭이고 설정이고 다 붕괴되고 있다. 이건 내가 쓰려던 게 아닌데 할당량 채우고픈 욕망에 내 꺼인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망측한 글을 싸고 있어서... 눈물이...
헉, 다들 비슷하구나.;; 나도 혼자 완결내고 연재해보려고 세이브원고 쌓고 있는데 4개월만에 한계가 오더랔ㅋㅋㅋ 초보라서 정신이 피폐해지고 광광 울게 됨ㅋㅋㅋㅋㅋ 그래서 그냥 연재하는데 방향을 이번엔 또 잃어가고 있엌ㅋㅋ 아... 이 초보운전 어떻게 해야 하나...ㅠㅠㅠㅠㅠㅠ
확실히 지난 글은 묵혔다 다시 보면 객관적으로 보이더라. 시간 길게 두고 투자한 글은 퀄차이 나. 근데 출간 스케줄 쫓겨서 막 쪄낸 글은 결국 후회만 남기지ㅜㅜ 넘 느린것도 문제지만 빠르다고 마냥 좋은 것도 아냐. 중심을 잃지 않음서 빠르면 그게 최고.
어차피 로설은 연재로 뭐 어쩔것도 아닌데 뭐. 그냥 독자없이 좀 씁쓸하고 머쓱한 연재를 하는것뿐. 어차피 출간이후가 본게임이잖아ㅎ
ㄴ 그냥 독자없이 좀 씁쓸하고 머쓱한 연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웃프닼ㅋㅋㅋㅋㅋ
맞아. 로설은 그리고 연재랑 출간본 똑같으면 아쉬워하니까. 연재는 좀 듬성하면서 뼈대만 제대로 잡은 초고면 충분. 하지만 난 여기서 하루 몇천자 글보고 분량 채우기 시도하다 뼈대 무너짐ㅋㅋ판무는 기본적으로 권수가 많아서 가능하다는 걸 간과함
양쪽 정보를 다 알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아.
올해 너무 달렸나봐 ... 신작 쓰다 갑자기 훅 막혔어ㅠㅠ 충전도 할겸 천천히 나가는 중
결국은 자기 하고 싶은거 쓰라는 거 아닌가요?
이 글 내용은 글 잘 쓰는 법이나 조회수 올리는 법은 아냐. 선작이나 조회수는 다들 알다시피 내용보다는 속도가 우선이지. 한 권 분량정도 쌓아놓고 연재 시작하면 독자들 반응 보고 방향이 조금씩은 보일 텐데... 나는 종이책 출판이랑 완결후 연재만 해봐서 연재에 대해서는 별로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뭐, 여기 그런 쪽으로 나보다 훨씬 빠삭한 작가들 많으니 누군가 이야기해줄 거라고 믿을게 ㅎㅎ.
그리고 어디까지나 첫 작 쓸 때 이야기. 한 작품 정도 완결하고 이제 돈 버는 생각을 할 때가 되면, 그때는 고려해야 할 게 많아지지. 그래도 장편 하나를 완결하고 나면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자기 중심이나 관점이 잡혀 있을 거라는 게 요지야.
지금껏 읽은 무수한 웹갤 글 중에서 가장 좋은 글이다. 실용적이고 힐링도 되고 네비개인션 역할도 해 주는 글이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