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맡겨줘.”
“어? 으응, 고마워.”
방과 후 청소시간, 여학생이 들고 가던 쓰레기통을 남학생이 가로채다시피 받았다.
도움이라면 도움을 받은 여학생은 고마워하면서도 어색한 얼굴을 했고,
남학생도 그에 대한 자각이 있는지 허둥지둥 교실 밖으로 나갔다.
한발 늦어 아쉽다는 듯 다른 사냥감(?)을 물색하는 남자들과 ‘으엑’ 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여학생들.
최근 반에서 자주 보이는 풍경이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이번 특별시험 때문이다.
‘어느 반이 더 많이 임신하는 가’를 겨루는 희대의 막장 시험.
타락한 포르노물에서조차 쉽사리 시도할 수 없는 광기가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 흘러넘치고 있다.
어쩌면 지금 바깥 일본에는 우리가 모르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은 아닐까?
전원 임신이라는 현실을 일부 여학생들은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많은 여학생들이 혼란과 두려움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현실로 받아들이는 비율이 늘어날 것이다.
남학생들도 이 시험에서의 기여도에 따라 처우에 큰 영향이 있기에 무시할 수 없다.
시험이 공지되던 때 격렬히 저항하던 학생들이 본보기로 무거운 벌을 받은 것과,
강력히 항의하던 몇몇 교직원들이 ‘일신의 사정’으로 휴직된 것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학교에서 몇 차례 울렸던 총성이 더 효과가 좋았던 걸지도.
특별 시험의 운영진 측에서는 채찍과 당근 전략을 사용했는데,
학생들 사이에 충분히 공포와 체념이 퍼지자, 달콤한 보상으로 학생들을 구슬리기 시작했다.
제법 효과가 있었는지 요즘 일부 여자그룹들이 반을 넘어 정보를 공유하며 남학생을 물색하는 움직임도 있다.
쿠시다의 말에 따르면 입학 초기 여학생들이 반을 넘어서 미남 랭킹을 매겼던 때처럼 지금은 씨남 랭킹...
이라는 전무후무한 랭킹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호기심에 내 랭킹 지수를 물어봤었는데,
“궁금해? 아야노코지군?”
쿠시다가 내 사타구니를 뜯어낼 듯이 쥔 채 정말 살벌하게 노려봐서 식은땀을 흘렸다.
때마침 다른 학생이 근처에 지나가면서 인사를 해온 덕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는데,
얼굴 표정과 분위기를 한순간에 쓱 바꾸는 것이 변검술을 방불케 했다.
그날 밤 침대에서 비명 지르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되갚아줬지만.
“쿠시다, 무겁지? 내가 들어줄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 다더니 복도 끝에서 쿠시다가 나타났다.
무거워 보이는 프린트 더미를 들고 가는 그녀에게 남학생들이 달라붙었다.
쿠시다의 얼굴을 보는 쪽이 반, 프린트물 위에 가슴이 얹어진 것을 보는 쪽이 반. 어느 쪽이건 사심이 너무 드러나 보인다.
“무거워 보이는데, 이런 건 남자가 들어야지!”
쿠시다의 가슴을 보면서 그렇게 말하면 들어주겠다는 게 프린트인지 가슴인지 헷갈리지 않을까?
“아하하하, 괜찮아. 혼자들 수 있어.”
밝게 웃으며 사양하는 쿠시다. 오랜 시간 몸을 맞대어온 난 알 수 있다.
지금 쿠시다는 불쾌함과 환희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뭐야, 너 쿠시다 노리냐?”
옆에서 스도가 말했다.
“아니, 그냥 눈에 들어왔을 뿐이야.”
“흐음, 나로선 노려주는 편이 좋겠다만.”
스도가 경계하는 시선으로 날 보았다.
“안녕 아야노코지군, 스도군.”
그 사이 쿠시다와 남자들이 우리 옆을 지나쳤다. ‘웃스’하며 인사하는 스도와, 말없이 가볍게 손을 흔드는 나.
“아야노코지군!“
“응?”
“넥타이.”
쿠시다가 프린트 더미 사이로 요령 좋게 검지를 뻗어 목 부분을 가리켰다.
“너무 느슨해. 저기 교감 선생님 오시니까 똑바로 매야해? 나 지금 남는 손이 없거든.”
어째선지 다정하게 말해오는 쿠시다와 원수처럼 날 노려보는 다른 남학생들.
우린 눈으로 대화를 나눴다.
‘뭐하는 거야, 쿠시다.’
‘글쎄, 그냥 심술? 누구 씨가 들어주면 이런 놈팡이들이 치근덕거리지 않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싫지도 않으면서.’
‘뭐, 그건 그렇지. 후훗.“
“그럼 안녕~”
작은 눈웃음을 마지막으로 멀어져가는 쿠시다.
“아, 정말 괜찮은데... 고마워.”
참다못했는지 옆에 있던 남학생이 강제로 프린트물을 빼앗아 들었다.
기억에 있는 남자다. 마치다라고 했던가? 과거 우대자 시험에서 같은 토끼 반에 배속되었던 남자이다.
난처해하던 쿠시다는 끝내 베시시 미소 지었다.
양손은 깍지 껴서 허리 뒤로 빼고, 상체는 살짝 기울이며 싱긋. 저것을 정면으로 받고 버틸 수 있는 남자는 없다.
마치다를 포함해 주변 남자들의 얼굴에 설레임이 뚝뚝 떨어졌다.
아아, 저 포즈 잘 알지.
‘봐봐, 아야노코지군. 이건 고마움을 표할 때 하는 자세.’
‘이건 쑥스러움을 감추려고 하는 걸 은근슬쩍 보여주고 싶을 때.’
‘이건 당황스러움과 기쁨이 섞인 걸 티낼 때.’
알몸으로 내방 전신거울 앞에서 이런 저런 포즈와 그에 맞는 얼굴 표정을 보여주던 쿠시다.
그녀의 동작이나 표정 하나하나는 수십 시간의 고민과 노력으로 일궈낸 것들이었다.
‘남자는 바보니까... 직접 알려주지 않으면 여자의 마음을 모르거든.
그렇다고 말로 다해주면 싸구려 여자처럼 보이니까 이렇게 은근하게 암시해주는 거야.’
‘착각하게 만드는 거야가 아니고?’
‘에헤헤, 그런 건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줘.’
포즈를 취하다 말고 통통 달려와 그대로 침대 위의 내게 폭 안겨든 쿠시다는 귀여웠었지.
“마치다군은 힘이 세구나. 친절하기도 하고.”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래도 여자애들은 이런 작은 배려에 약하다고?”
“...당연한 걸 할 뿐이야. 저, 쿠시다.”
“응?”
“이번 주말에 혹시 시간 돼? 쿠시다가 예전에 보고 싶다고 했던 영화 이번에 개봉하거든.”
“아 그 영화? 그러자! 나도 마침 보고 싶었거든.”
짝하고 박수를 치며 기쁜 듯이 웃는 쿠시다와, 어딘지 승리감에 취한 얼굴로 날 보는 마치다.
아마, 영화 이외에도 식사며 선물이며 이런 저런 데이트 계획을 짜둔건 아닐까?
유감스럽게도 그가 공들이는 쿠시다의 자궁 속엔 이미 다른 남자가 뿌린 정자들이 열심히 헤엄쳐가고 있는게 현실.
실로 차가운 현실 앞에 마치다를 위한 애도를 보냈다.
그러던 중 호리키타에게서 문자가 왔다.
- 전에 말한 노래방에서 특별시험에 대해 다른 반과 정보를 나누기로 했어. 올 수 있으면 와. 아니, 반드시 와.
평소라면 귀찮으니 패스였겠지만, 이번은 시험이 시험이니 별 수 없나. 가기 전에 잠깐 도서관에 들러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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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러모로 어수선한 시기이기에 도서관은 한적했지만, 히요리는 변함없이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오늘은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다. 히요리처럼 차분한 아이에게도 이번 시험이 두렵기는 마찬가지인걸까?
한 무더기나 되는 책들을 안아들고 걸어가는 그녀는 평상시와 달리 등이 구부정했다.
대출대 근처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평소 똑 부러지는 히요리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안녕, 히요리.”
“아, 앗!”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놀랐는지 히요리가 소리를 질렀다.
그 직후 이곳이 도서관이란 걸 깨달아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문제는 그녀가 책을 한 무더기나 들고 있었다는 것.
책들이 요란하게 바닥으로 떨어지며 더 큰 소음을 만들어냈다.
히요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로서는 신성한 도서관에서 연달아 소음을 낸 것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도와줄게.”
“아, 아뇨 괜찮아요.”
가까이 가려하자, 히요리가 필사적으로 부정하며 혼자서 수습했다.
“정말 괜찮아요. 고마워요.”
순식간에 책들을 주워 든 히요리가 내게서 돌아섰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책들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히라타 같은 매너남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모른 척 넘어가겠지만,
평소 같지 않은 반응을 보여주는 히요리가 귀여워서 장난을 쳐보기로 했다.
“히요리도 그런 데 관심이 있었구나. 놀랍네.”
“히익.”
구부정한 자세로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그녀. 고개에서 삐걱 거리는 소리라도 날 법한 각진 움직임이었다.
“봐, 봤나요?”
대답 대신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품 안에 책들을 꼭꼭 숨기려는 히요리.
그녀의 어깨를 살짝 잡고 귓가에 속삭였다. 옅은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소녀경, 카마수트라, 인체 빅뱅 - 오르가즘 대폭발, 몸으로 화해하는 30가지 방법”
“으아아아.”
히요리가 그대로 무너지듯 쭈그려 앉았다. 무릎 위에 올린 책들에 얼굴을 묻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히요리가 불안해 보이던 건 특별시험이 아니라, 이 책들을 대출대 앞에서 꺼낼 용기가 없었던 건가보다.
그건 그렇고, 오르가즘 대폭발이라니... 도서관에 이런 책도 들여놓나?
“이리 줘,”
난 그녀에게서 반쯤 빼앗듯이 책들을 받아, 대출대로 가져갔다.
다행스럽게도 도서위원이 남학생이어서 이해한다는 식의 눈빛을 받는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이런 건 여자, 특히 히요리 같은 아이한테는 허들이 높지.
정숙한 그녀도 결국 사춘기 소녀. 이런 책에 관심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
“고, 고, 고마워요.”
책을 건네자마자 부리나케 가방 속에 집어넣는 히요리. 순식간에 가방이 빵빵해졌다.
무거워 보이기에 들어주려 했더니 고개를 붕붕 흔들며 극구 사양했다.
그 후로 도서실에서 같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녀는 끝까지 가방을 자신의 무릎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호리키타가 알려준 약속시간이 되어 도서관을 나서자 히요리도 따라왔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녀는 현재 D반의 실질적인 리더 중 한명이니까.
*
*
*
*
*
약속장소인 노래방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얏호! 어서와.”
“오! 왔냐?”
“어서와 아야노코지군. 시이나씨.”
호나미와, 스도, 히라타가 우릴 맞아주었고, 호리키타와 케이는 한번 쓱 쳐다보는 게 끝이었다.
그 외에도 C반과 D반의 여학생들 몇 명이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현재 반 구성은 사카야나기의 A반, 우리 반이 B반, 호나미의 C반, 히요리의 D반이다.
그렇다 하여도 과거 차바시라의 학창시절처럼 4개 반의 점수 격차는 매우 좁다.
특히 B반과 C반의 점수 차이는 겨우 8점으로, 한 번의 특별시험으로 역전 될 수 있는 수치다.
이젠 역전이니 뭐니 다들 신경 쓰고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지만.
특별시험 공지 이후 일주일째인 이 시점에서 각 반 내부에서의 이야기는 다 끝났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는 반을 초월하여 함께 의견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다.
각반 내에서도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일부 오다보니 10명이 살짝 넘는 인원이 모였다.
A반은 늘 그렇듯이 마이웨이다. 한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스도의 경우 호리키타의 옆 자리에서 과자들을 우걱우걱 씹어대며 폰 게임에 여념이 없다.
회의에 있으나 마나한 존재이지만, 임신 시험 공지 이후 이런 회합에는 절대 빠지려 들지 않았다.
시험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호리키타의 향후 행동방향이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결정되는 게 두려운가 보다.
“칸자키군은?”
호리키타가 물었다. 보통 특별시험에 관해서는 호나미와 칸자기 두 사람이 페어라는 느낌이니까.
“칸자키는 이런 이야기에는 워낙 약해서... 나오려 하긴 했는데 무리하는 게 한눈에 보여서 그냥 쉬라고 했어.”
‘그치?’라며 이치노세가 말하자 C반 여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반도 카네다군이 두 손 모아 부탁하더라고요. 자신한테는 능력 밖의 이야기라면서”
“사실은, 나도 나오고 싶지는 않았어.”
히요리에 이어 히라타가 말했다.
“히라타군이? 그건 좀 의왼데?”
놀랍다는 듯한 호나미에게 히라타가 특유의 난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시험에서 가장 무거운 부담을 지는 것은 여학생들이니까. 남자들도 위험요소가 있지만 임신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야.”
히라타가 양손으로 쥔 음료수잔에 시선을 내리깔았다.
“기본적으로 이번 시험은 여학생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해. 여학생이 이끌고, 남학생들은 그것에 협력하는 방식으로.”
반을 위한 헌신이 사명인 히라타에게 퇴학자 투표나 임신 시험 같이 반드시 누군가 희생되고 상처받는 시험은 쥐약이다.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이 없다는 것. 고통 받는 사람을 자신이 대신할 수가 없다는 것.
히라타는 이런 형태의 시험에는 한 없이 무력해진다.
“하지만 이번 시험, 여학생들이 임신의 위험을 진다면 남학생은 빚이라는 위험을 져요.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고요.”
곁에 앉은 히요리가 내 컵에 콜라를 따라주며 말했다.
"그걸 무마하려는 남학생들의 의향도 존중 받아야 해요."
“임신 성공시의 특혜 말이지.”
협상의 기본은 처음부터 모든 패를 내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우선 무리한 조건을 꺼낸 뒤, 잠시 후 완화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흔한 교섭 방법이다.
처음 내건 조건과 대비되어 받아들일 때의 저항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처음 임신 시험에 대해 공지할 때는 많은 학생들이 당황하여 제대로 조건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1. 임신하지 않은 여학생은 학교에서 섭외한 인력으로 반드시 임신시킨다.
2. 시험에서 꼴찌인 반은 막대한 빚을 지게 된다.
이 두 사항이 주는 압박감은 실로 엄청나서 평소 냉정하던 학생들도 한동안 패닉 상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학교에서는 추가 조항을 공개했다.
3. 임신한 여학생 및 임신시킨 남학생은 시험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는 반에 있어도 페널티가 없다.
4. 임신한 여학생의 경우 졸업 전까지 매월 20만 프라이빗 포인트가 제공된다.
5-1. 임신한 여학생은 시험 종료 시 남학생 한명에게 칭찬표를 줄 수 있다. 칭찬표에 따라 남학생 개인에 한해 반 등급 상승 및 여러 특혜를 받을 수 있다.
5-2. 칭찬표는 여학생이 학교로부터 받은 평가 등급에 비례해 가치가 증감한다. 여학생의 등급에 따라 표의 가치는 수십배 이상 차이날 수 있다.
이 추가사항이 일으킨 반향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임신 자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신할 경우 꼴찌가 되더라도 빚 페널티를 받지 않는 것.
막대한 프라이빗 포인트를 남은 반년 남짓 동안 지급받는 것.
거기에 임신 이후의 육아 지원과 막대한 보상금, 주택 무상 제공 등 애프터 케어가 상상 이상이자,
점차 시험에 대해 긍정적으로 돌아서는 여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차피 안 하면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시키고 빚까지 덮어쓸 수 있는 판에,
자발적으로 하면 돌아오는 보상이 엄청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20년 이상 고되게 일한다하여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대가였다.
남학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A반이건 D반이건 꼴찌가 되면 막대한 빚과 함께 여차하면 최하위 반으로 강등될 수도 있다.
그러니 최소한 한명의 여학생과 짝을 짓는 게 확실한 보험이 된다.
각반의 격차가 좁은 지금 여학생의 추천표를 받을 경우 A반 졸업 가능성이 크게 증가한다.
이러니 여학생은 여학생대로, 남학생은 남학생대로 각자 상대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중요한 점은 학교에서 여학생에게 내린 평가에 따라 추천표의 가치가 수십배 이상 차이난다는 것.
결국 고평가 받을 거라 예상되는 엘리트 여성들을 공략하는 전략을 세운 남자들과,
일찌감치 포기하고 주변의 평범한 여성들을 노리는 남자들까지 제각각으로 갈렸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건 기존에 커플관계로 지내던 학생들뿐이다.
“반 분위기는 다들 어때?”
평소엔 호리키타가 대화를 끌어가지만, 오늘은 호나미가 그 역할을 맡았다.
아무래도 3개 반의 학생들이 다 모인 장소에서 호리키타가 이끌어가긴 힘들다.
“남자분들이 무척 친절해졌어요.”
히요리의 말에 여기저기서 작은 웃음들이 터졌다. 입술에 검지를 대고 물음표의 표정을 띄우는 히요리.
“제가 뭔가 웃긴 말을 했나요?”
“아하하, 자각이 없나 보네 히요리씨는.”
호나미가 뺨을 긁으며 말했다.
“키요타카군, 제가 뭔가 이상한 말을 한 건가요?”
내 팔을 콕콕 찌르는 히요리.
“설명해줘야 하는 시점에서 이미 이해가 안 될 거야.”
“그런가요?”
그래도 히요리가 시작을 잘 끊어준 덕에 분위기가 좀 풀어진 것 같다.
“우리 반은 아직은 평소와 다르지 않아.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화목함은 자신 있거든.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호나미의 반은 모두가 사이좋으니까요. 저희 반은 시끌시끌해요.”
히요리가 어딘지 부럽다는 듯이 호나미를 보았다.
“그래도 류엔군이 변했다는 것엔 다들 안심하고 있어요. 옛날의 류엔군이라면 남자 1명, 여자 1명씩 강제로 합방시켰을 거라고들 이야기하니까요.”
“뭐, 류엔이라면야.”
“류엔이라면 그럴만도 하지.”
D반 여학생들이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다른 반 아이들도 다들 수긍한다.
“우리 반은 남녀 사이에 대립각이 세워진 느낌이야. 남자들 쪽에서는 접근하고 싶은데, 여자들이 거부하는 느낌이랄까?”
“당연하잖아? 우리 반 남자들은 죄다 어린애 같은 걸. 상대해주고 싶은 여자애는 없을 걸? 거기다 그 녀석들 아기를 임신? 우웩.”
호리키타의 말을 케이가 받았다.
“어이, 말 좀 가려하지 그래? 듣기 기분 나쁘다고.”
듣기 거슬렸는지 폰 게임을 하던 스도가 인상을 썼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왜? 스스로 찔리나 보지?”
“이게 진짜!”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다른 반 여자애들이 겁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그만해 스도. 여긴 모든 반이 모인 자리야. 얌전히 있어.”
호리키타가 능숙하게 스도를 컨트롤했다. 스도는 혀를 찬 후 게임을 계속 했고, 케이는 스도에게 콧방귀를 뀌었다.
“A반은 어딘지 살벌하다는 느낌? 과거에 카츠라기군과 사카야나기씨가 대립하던 때보다 더 분위기가 나빠 보이던데?”
호나미가 A반을 언급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워낙 프라이드가 강한 반이니까. 기본적으로 이 시험은 일종의 세일즈와 비슷해.
한쪽이 구애하고 한쪽이 수락하는 방식. 자존심을 접고라도 호감을 얻고자 나서야 하잖아.
거기다 지금껏 쌓아올린 A반으로서의 입지마저 순식간에 흔들리게 됐으니 못마땅한 게 당연해.”
냉정한 호리키타의 의견대로 과묵한 카츠라기나 잘난 척하는 A반 남자들이 사근사근하게 구애하는 모습이라... 상상이 안 된다.
“시험 자체를 거부하는 애들은 없어?”
호리키타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보인 정황이 있으니까요. 거부한다고 될 상황이 아니란 건 다들 깨달은 것 같아요.”
“우리 반도 그래. 어차피 해야 할 거면 챙길 건 다 챙기자는 분위기로 가고 있어.”
“당장 총을 든 자위대 군인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이니까 말이지.”
히요리의 D반, 호나미의 C반, 그리고 우리 반까지 시험 자체는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구와 짝이 되는가. 이네?”
“응. 아무래도 남학생들이 불리해.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채 꼴찌반이 될 경우 타격이 크니까.”
호리키타의 말에 호나미가 동의했다.
“혹시 남학생과 여학생 간에 짝을 맺는 방법을 결정한 반은?”
호나미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이성적으로는 1대1로 짝을 맺는 게 합리적이야. 패배시의 페널티를 상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몸을 섞고 아이를 만드는 일인데... 그걸 회의나 제비뽑기 같은 걸로 정할 수는 없어.”
“맞아요. 서로 마음이 있는 사람 간에 결합한다. 이것만은 절대 부정되어선 안 돼요. 설령 그 결과가 잔혹하다고 해도요,”
평소대로 담담하게 의견을 말하는 호리키타와, 평소와는 다르게 단호한 모습의 히요리.
“그럼 어떻게 할까? 이대로 그냥 학생들의 선택에 맡기고 놔두는 것?”
“아마도 그 방법 밖에는 없지 않을까?”
사실 회의를 하기 전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남자와 여자를 강제로 짝 지을 성격은 아니다.
좋든 싫든 각자의 선택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이 모임도 해결법을 찾기보단, 일종의 마음을 굳히고 용기를 나누는 정도의 의미였을 것이다.
회의는 끝났고, 한동안 노래를 부르거나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여자들 특유의 걸즈토크가 이어졌는데,
그 내용은 각반에 어떤 남자들이 인기 있느냐는 것이었다.
히라타는 중간 중간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에게 오는 말을 센스 있게 받아준 반면, 나나 스도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나 다름없다.
“다들 무섭지 않아? 10대에 임신한다는 건... 남자들이 인사 해올 때마다 겁이 나. 예전처럼 허물없이 지내기가 힘들어.”
호나미와 함께 온 C반의 여자아이가 말했다. 아미쿠라 아사코라고 한다.
회의가 끝나 노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처음 보는 내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붙임성 있는 여자애였다.
호나미의 친구답게 활달해서 좀 전까지 노래방 분위기를 잘 돋우고 있었지만, 화제가 화제인지라 우울해보였다.
“아사코.”
호나미가 아사코의 손을 잡아주며 다독였다.
“겁이 나는 건 당연한 거야. 이상할 게 없어.”
호리키타가 말하자, 다들 의외라는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뭐야?”
“아니, 네가 약한 말을 하니까 어색해서.”
다들 똑같이 널 봤는데 왜 나만 노려보며 말하는 거냐 호리키타.
“나도 여자야. 임신이라니 생각해본 적조차 없어.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늘 공부와 경쟁 말고는 없었던 게 내 삶이었으니까.”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속내를 드러내는 호리키타. 확실히 입학 초기의 그녀라면 절대 말하지 않았겠지.
아마도 그녀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정신적 변화를 겪은 사람일 것이다.
“솔직히 두려워. 이번 시험은 성적이나, 라이벌이나 명확히 쓰러뜨려야할 상대란 게 없잖아?
노력한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엄마가 된다니. 상상도 안 돼.
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상황이라는 게.”
자조적인 어투로 말하는 호리키타는 약해보였다. 정말 가끔씩, 그녀의 오빠 앞에서나 보일 법한 가련한 모습.
“스즈네.”
틈을 타서 호리키타의 손을 잡은 스도. 아마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나 보다.
“...놓아주겠니?”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그래.”
단번에 험악해진 호리키타의 시선을 받아 넘기는 스도. 호리키타가 힘겨워하는 걸 볼 수가 없었던 거겠지.
“놓.아.주.겠.어?”
“에이, 부끄럼타긴.”
능청스레 말하던 스도였지만 그녀가 슬슬 무력제제에 나서려는 낌새를 보이자 재빨리 손을 떼었다.
그 모습에 다른 여자애들이 ‘꺄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설마 호리키타씨?”
“아냐!”
드물게 언성을 높이는 호리키타.
“흐응~?”
“절대로. 아냐.”
고양이 눈을 한 호나미를 향해 호리키타는 끊어내듯이 말했다.
스도는 폰 게임을 하면서도 호리키타를 흘깃흘깃 곁눈질 하며 작게 웃었다.
“다들 무서운가 봐요?”
내 옆에서 홍차를 마시던 히요리가 의외라는 얼굴로 말했다.
노래방에 와서도 홍차라니, 다도부장이라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가 보다.
“히요리는 무섭지 않아? 그도 그럴게, 임신이라고?”
호나미가 말했다.
“그런가요? 저는 전혀.”
“에에? 진짜로?”
“거짓말이지?”
다른 여학생들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섭지 않으면 이상한가요?”
귀엽게 고개를 갸웃 거리는 히요리.
“그치만 임신이잖아? 10대 임신이라니, 생각만 해도 떨려. 그것도 결혼도 안 하고 싱글맘이라니.”
케이가 그녀답지 않게 불안한 어조로 말했다.
“글쎄요, 전 원래 결혼엔 관심이 없어서. 혼자서 애를 키우는 것에도 걱정은 없어요.
그런데 나라에서 집까지 무료로 주고 든든한 지원도 해준다니까 저야 아쉬울 것 없죠.”
두 손을 무릎위에 포개고 담담히 말하는 히요리에게 일동 경악한다.
“강하네. 히요리씨는.”
호리키타조차 경외가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호리키타가 오빠 이외에도 저런 눈으로 보게 만들다니 히요리는 역시 보통이 아니다.
“딱히 스스로 강하다곤 생각 안 하지만요. 아마 처음 입학했을 당시의 저라면 당황했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시이나씨는 어째서 그렇게 강할, 아니 침착할 수 있는 거야?”
듣고 있던 아미쿠라가 감탄이 섞인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음... 뭘까요?”
검지를 입술에 대고 생각하는 히요리.
“아마도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아닐까요? 사람은 의지하며 살아가는 생물이니까요.”
히요리가 생긋 웃었다. 그녀는 얼핏 보면 무뚝뚝하고 접근하기 힘든 묘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친해져보면 사실 정도 많고 웃기도 잘 웃는 따뜻한 소녀이다.
“혹시 히요리씨는 짝이 될 남자를 생각해둔 거야?”
“그럼요.”
좀전의 불안함을 다 사라졌는지 호기심에 차서 물어보는 아미쿠라. 양 손을 세모로 모으며 미소 짓는 히요리.
“와아, 그게 누구야?”
호나미를 필두로 여학생들 모두가 흥분하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심지어 호리키타조차 강한 흥미를 느끼는 듯 히요리를 바라보았다.
당연하지만, 나나 히라타, 스도는 그냥 노래방 배경처럼 있을 뿐이다.
이 장소를 지배하는 건 여자들이고 우리들 남자에게 발언권 따윈 없다.
“키요타카군이요. 뭐, 그의 아기를 갖고 싶은 건 이번 시험이랑은 상관없었지만요.”
미소 지으며 노래방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히요리.
“푸흡!”
덕분에 나는 마시던 콜라가 사레 들려서 한참동안 콜록거려야했다.
“꺄아아아아앗!”
“어쩜 좋아!”
난리 났다. 정확히는 아미쿠라를 비롯해 잘 모르는 다른 반 여자아이들은 꺄아꺄아거리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아까의 심각한 분위기는 다 사라진 듯 눈앞의 스캔들에 잔뜩 기분이 업 된 모양이다.
역시 여자라는 생물에게 있어서 연애담이란 그 어떤 명약보다 기운을 돋궈준다.
케이와 호리키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와 히요리를 번갈아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어딘지 신이 나서 '예스!'라고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는 스도.
호나미는 굉장히 당황한 얼굴로 히요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내 등을 쓸어주며 걱정스럽게 날 보는 히요리. 그 모습에 노래방이 더 시끄러워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활기를 찾은 이 모임은 2시간가량이 더 지나서야 끝났다.
*
*
*
*
*
‘오늘 밤 찾아갈게요.’
그 날로부터 이틀 후, 평소처럼 도서관에서 마주쳤던 히요리가 내게 속삭였고
그 결과 지금 내 방에는 나와 히요리 두 사람이 마주앉아 있다.
방바닥에는 카펫과 이불을 깔아둬서 푹신하면서도 그럭저럭 따뜻했다.
대충 앉은 나와 정좌한 히요리. 다도부장답게 그녀의 정좌 자세는 훌륭했다.
“키요타카군. 오늘 하루 동안 제 한 몸, 잘 부탁합니다.”
히요리가 정중히 바닥에 이마를 대며 절을 했다. 사극에서나 볼 법한 완벽한 예법이었다.
다만 옷은 의외로 파자마 차림이었다. 하긴 기모노까지 차려 입고 왔다면 내 쪽에서 진정이 안 되었을 지도.
“나야말로 잘 부탁해.”
“네.”
어색하게 대답한 내게 환하게 웃는 히요리.
“전 이런 쪽으론 전혀 경험이 없어서... 부족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너그럽고 자시고 황송할 뿐이야.”
미안한 듯이 말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녀가 기쁜 듯이 웃었다.
아니, 기쁘다기 보단 행복해하는 얼굴이라고 할까?
“자요.”
그녀가 내게 양팔을 벌렸다.
“응?”
“단추, 풀어주세요.”
“아아.”
수줍어하는 히요리의 얼굴을 감상하며 그녀의 가슴께로 손을 가져갔다.
위로부터 하나씩 풀려가는 상의 단추. 이윽고 검은색의 화려한 브래지어가 드러났다.
색깔도 그렇고 모양도 그렇고 상당히 섹시... 한 걸 넘어 도발적인 디자인이었다.
“의외네?”
“그런가요? 제 속옷은 거의 이런데”
“...”
역시 여자는 한 꺼풀 벗겨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히요리의 속옷취향이 이럴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제가 어떤 걸 입을 거라 생각했나요?”
어딘지 짓궂은 얼굴로 물어오는 히요리.
“그야, 하얀색에다 별 무늬 없는 그런.”
아니 지금 난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후후훗. 편견이에요. 여자란 직접 뜯어보기 전엔 모른 다구요?”
우물쭈물 말하는 내게 히요리의 얼굴이 다가와서, 그대로 이어지는 키스.
히요리의 입술에서는 홍차향이 낫다. 오기 전에 마시고 온 걸까? 아니면 몸에 밴 걸까?
"첫키스....다. 후후훗."
자기 입술을 매만지며 기뻐하는 히요리. 입가로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를 참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키요타카군.”
그녀가 내 귓가에 입술을 가져왔다.
“속옷만이 아니에요.”
살짝 귓불을 물었다가 떼며 귀에 속삭였다.
“제 몸 속도, 생각하곤 다를 거예요.”
살포시 웃으며 혀를 내미는 그녀의 얼굴은 내가 평소에 알아온 히요리랑은 차이가 있었다.
지금의 그녀만큼 요염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여자는 본 적이 없다.
그 ‘낯선 아름다움’에 경계심이 생기지 않는 건, 그 안에 무한한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간만큼은 절대 빼먹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구미호의 품에 안기는 기분이라고 한다면 과장된 것일까?
그녀의 브래지어를 벗겨내자 뽀얀 가슴이 드러났다.
잡티 하나 없이 고운 가슴이었다. 유륜과 유두는 작았고, 색깔도 맑은 분홍빛이었다.
“혹시 작아서 실망했나요?”
“작다니?”
히요리의 가슴은 크지는 않았지만, 결코 작다고 할 수준도 아니다.
“키요타카군은 호나미랑 쿠시다씨랑... 사쿠라씨처럼 가슴이 큰 분들하고 가깝게 지내니까. 큰 쪽이 취향이라고 생각해서요.”
고개를 떨군 그녀는 다소 침울해보였다. 난 대답 대신 그녀의 유두를 입에 물었다.
입안에서 혀로 이리저리 굴리며 자극을 주자 히요리의 숨이 점차 가빠지는 게 느껴졌다.
아니, 숨이 가빠지는 걸 떠나 그녀의 심장이 쾅쾅 뛰는 게 여기까지 들려온다.
이토록 심장이 크게 뛰는 건 부끄러워서인 걸까? 아니면...
그대로 히요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부비자, 그녀가 포근하게 머리를 감싸 안아왔다.
곁눈질로 올려다보면 그녀의 얼굴에 침울한 기색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파자마 바지를 끌어내리자, 위와 세트로 맞춘 듯 검은 색의 팬티가 나타났다.
검은색 임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그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그녀의 안으로 아주 살짝 파고들어보았다.
“하악.”
검지는 밀어 넣고, 엄지는 클리토리스를 매만지고. 이건 쿠시다가 좋아하는 방식인데, 히요리에게도 효과만점인가보다.
음핵이 껍질에 덮여있는 쿠시다와 달리, 히요리는 반 이상이 밖으로 드러나 있어서 자극하기 쉬웠다.
“어, 어쩐지 능숙하네요. 키요타카군.”
“그래?”
“그야, 키요타카군은 멋있으니까. 저 말고 다른 여성분들도 상대하고 있겠지만.”
“질투하는 거야?”
“아니요, 감히 제가 키요타카군을 독점할 생각은 없어요.”
유두에서 입을 떼고 올려다본 그녀의 얼굴에는 실로 질투 한 점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한 행복감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걸 본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뚝 끊어졌다.
“꺅!”
단번에 그녀를 안아들어 올려 침대에 던지다시피 옮겼다.
여기서도 히요리의 성격이 드러났는데, 쿠시다라면 침대에서 일어나려 버둥거렸겠지만,
히요리는 조금도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누운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볼 뿐이었다.
“왠지 얼굴이 무서워요.”
“그럴 거야. 히요리가 아파해도 안 멈출 거니깐.”
“네!”
어딘지 기쁘게 대답하는 히요리.
미치겠다.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도저히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겠다.
벌써 하복부는 팽팽하다 못해 바지를 뚫고나올 지경이다.
지익.
이미 내 상황을 알아차린 건지 히요리가 스스럼없이 지퍼를 열고 있었다.
“통찰력은 자신 있어요.”
“이건 누가 봐도 알아차릴 만하지만.”
“그러게요. 정말 크네요. 알베르트군보다 크다면서요?”
“너...”
“장난이에요.”
쿡쿡 거리며 웃는 히요리. 젠장, D반에도 소문 다 퍼진 건가?
“콘돔은 안 해도 되겠지?”
“네. 콘돔은 싫어요.”
바지와 팬티를 벗어던지고 모습을 드러낸 물건에 히요리가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내 것과 자신의 것을 번갈아보던 그녀는 조금 겁에 질린 듯 했다.
“이, 이런 게 들어갈까요?”
“아마도.”
처음으로 남성기를 본다는 사실보다도, 크기 쪽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침을 꼴깍 삼킨 히요리가 마음을 굳힌 듯 굳은 표정으로 내 성기를 부여잡았다.
가늘고 서늘한 손길이 기분 좋다.
“이거 다 커진 건가요? 작아져 있을 땐 여자가 키워주는 게 매너라고 들어서.”
“여기서 더 커지면 그건 사람의 것이 아니겠지”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가 왠지 우스워서 이마에 가볍게 키스해주자,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그녀를 침대 뒤로 눕힌 후 터질 듯이 팽팽해진 내 물건을 잡고 히요리의 음문을 향해 이끌었다.
“아!”
작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가자, 그녀가 내 등을 강하게 껴안아 왔다.
천천히 들어갔지만, 금세 처녀막에 도달하였다.
여성마다 처녀막의 형태가 다르다고 한다.
쿠시다의 경우 가운데는 뻥 뚫려있으면서, 벽에 목도리처럼 막이 달려 있는 형태였다.
반면 히요리는 전체적으로 막혀 있으면서 작은 구멍들이 여기저기 뚫려있는 형태였다.
어느 쪽이 더 아플지는 안 봐도 뻔하다.
잠시 멈춰서, 뻣뻣하게 경직되어있는 히요리에게 키스했다. 상냥하고 부드럽게.
혀를 밀어 넣어 천천히 어루만지듯 그녀의 혀와 얽혔고, 동시에 그녀의 머리와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얼굴을 내 품에 안은 채 그녀의 몸을 충분히 이완시켜주었다.
“힘 빼고 있어.”
“네.”
페니스를 그녀의 질 속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귀두 끝 부분이 얇은 처녀막에 가로막히는 묘한 감각.
쿠시다 때도 그렇지만, 단숨에 찢어발기고 싶은 본능적 욕구가 치밀어 올라왔다.
“으읏.”
고통스러운 듯 서서히 얼굴이 일그러지는 그녀. 그러나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한다.
처녀막이 찢어지는 데 소리 따윈 나지 않지만, 귀두로부터 느껴지는 감각으로 예상하건데,
만약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찌익’이 아니라 ‘폭!’에 가까울 것이다.
가련한 막은 침입자를 막지 못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뜨뜻한 액체가 귀두를 적셔왔다.
그녀의 처녀혈이었다. 귀두가의 끝부분부터 따스한 피로 물드는 이 감각.
순결한 소녀를 상처 입혔다는 죄악감과, 소녀를 한명의 여자로 만들고 있다는 정복감의 공존.
결국 히요리의 처녀성은 무너졌다. 내 페니스는 애액과 처녀혈을 휘감은 채 그녀의 몸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금단의 영역은 이미 내 살덩어리로 가득하다.
땀에 젖어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히요리.
“잘 참았어.”
피는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불을 물들이기에는 충분한 양.
붉게 물든 이불과 피가 흐르는 히요리의 가랑이를 보면서 그녀가 느낄 아픔에 대한
위로감보다 남자로서의 만족감이 먼저 드는 건, 내 인성의 문제인걸까.
“움직일게”
히요리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고개를 끄덕여왔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는데, 그 순간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첫 삽입 때도 느꼈던 거지만 그녀의 질은 좁고 탄력이 있어서 압력이 상당했었는데,
피스톤 운동을 하는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타이트했다.
긴장으로 인해 처음엔 좁았다가 점점 풀어진다는 이야긴 들어봤지만,
긴장이 풀어지자 더 좁아지면서 압력이 강해진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다.
쿠시다와의 섹스로 사정 컨트롤에는 내공이 쌓인 나조차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그녀의 안에 정액을 쏟아냈다.
첫 경험인 히요리 앞에서 조루가 된 기분에 몹시 창피한 기분이었는데,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키요타카군의 씨가 느껴져요. 한 가득... 들어왔네요.”
오히려 몇 번이고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기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좀 진정이 되는 것 같아요.”
“다행이네.”
“준비한 보람이 있어요.”
“준비라고?”
히요리가 ‘앗차!’하는 얼굴로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 그러니까 그건... 잊어주세요.”
어쩐지 그 모습을 보자니 도서관에서의 사건이 떠오른다.
“설마, 그 책들.”
“에잇!”
그녀가 양손으로 내 가슴을 강하게 밀어냈다. 상상 이상으로 강한 힘이어서 난 뒤로 넘어가 침대에 드러누웠고, 그녀가 내 위로 올라탔다.
그대로 다리 하나를 쭉 뻗어 턴을 그리듯이 180도 회전했다. 희고 예쁜 다리가 얼굴위로 휙 지나가는 모습은 꽤나 자극적이었다.
이제 그녀는 엉덩이와 등을 내게 보인 채 뒤돌아선 기승위의 모양새가 되었다.
이 자세는 서양에서 리버스 카우걸 포지션이라고 부르는 체위이다. 말하자면 역기승위.
히요리의 하얗고 매끄러운 등과 잘록한 허리라인, 귀여운 발바닥이 보여 선정성보다는 예쁘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우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히요리 앞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감탄사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키요타카군은 가만히 있어도 되요. 이제 제가 움직일게요.”
“아직 아플 텐데. 무리하지 않아도 돼.”
내 말에 살짝 나를 돌아보는 히요리는 미소 짓고 있었다. 어딘지 좀 무서운 미소였다.
“이제 괜찮아요. 그저 내가 뭔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내 성기를 잡고 그대로 자신의 질 속으로 밀어 넣었고, 즉시 강렬한 압력이 날 덮쳐왔다.
“흐읍.”
꼴 사납게도 신음성을 내고 말았다.
"귀여워라."
히요리는 그게 기뻤는지 허리를 흔들면서도 쿡쿡 웃었다.
이 아이, 처음인데도 왜 이렇게 여유롭지? 게다가 대체 뭘까? 이 말도 안 되는 흡입력은.
남녀의 성관계에는 속궁합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섹스 내적으로는 남녀 성기의 크기나 형태, 깊이에 따른 규격(?)의 일치 정도를 말할 수 있고,
섹스 외적으로는 남녀의 성욕이 강해지는 성욕주기가 비슷한 날짜일 것 등이 존재한고 한다.
좀 전에 히요리의 처녀막을 깨던 때만 해도 그녀와 나는 좀 좋은 수준의 궁합으로 여겨졌었다.
비교대상이 적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찰떡궁합 정도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순식간에 궁합이 최상으로 변해버린 느낌이다.
마치 전동드릴에 달아놓은 볼트를 너트에 체결했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정밀하고도 단단한 수천 개의 관문들로 이루어진 결합이 페니스의 진퇴에 따라, 순차적으로 풀리고 재결합하기를 반복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랫배에서 경주마처럼 쾌감이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어떤가요? 키요타카군. 제 몸은 기분 좋으신가요?”
“최고야. 히요리.”
“기뻐요.”
히요리의 잘록한 허리가 갈대처럼 흔들리고, 배와 엉덩이는 시시각각 수축하고 부풀며 모양을 바꾸었다.
이건, 단순히 기승위를 격렬하게 한다고 나오는 모습이 아니다.
생물적 움직임이라기보다 기계, 정교하게 맞물려 작동하는 내연기관을 보는 것 같았다.
고대의 방중술에는 페니스가 드나드는 것에 맞춰서 질과 아랫배에 순차적으로 힘을 가해,
빨래를 쥐어짜듯이 페니스를 압박하는 섹스 테크닉이 있다고 한다.
지금 히요리가 하고 있는 게 그것 아닐까?
그렇다면 실로 엄청난 재능이다. 무경험인 그녀가 책을 보는 것만으로 불과 하루 만에 이정도의 테크니션이 되다니.
그녀는 애액이 많은 타입인지 결합부가 흥건한 정도를 넘어 내 아랫배와 골반까지 홍수처럼 흘러내렸다.
그 때문에 마치 오일이라도 뿌린듯, 그녀와 나의 살이 맞닿는 곳마다 미끈거리는 기분 좋은 감촉이 쾌감을 한층 증폭시켰다.
“하앙."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등부터 골반까지 훑고 지나가자 사랑스런 신음이 따라왔다.
히요리가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쿠시다와 섹스하던 때랑은 비교할 수 없을 강렬한 쾌감이 몰아쳤다.
하지만 육체적 쾌감 이상으로 기분 좋은 것은 날 위해 이토록 헌신해주는 그녀의 마음씨였다.
페니스가 질 속으로 드나들며 사방으로 질척이는 애액을 흩뿌리고, 그때마다 히요리의 귀여운 항문이 뻐끔 거리는 모습 또한 장관이었다.
한편으론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리드당하는 느낌이 분해서 손가락으로 항문을 살짝 찔러보았다.
“흐깃!”
“헤에?”
“어, 어디를 만지는 거예요! 키요타카군!”
“그냥.”
“그냥이라니.”
따지면서도 허리를 계속 움직이는 게 성실한 히요리답다.
“준비 해왔다는 게 섹스 테크닉을 공부해왔다는 거였어?”
“아으.”
정답이었는지 대꾸도 못한 채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은 안 보였지만, 귀까지 새빨개져있었다.
물론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고 그와는 별개로 허리를 계속 흔들고 있다.
성실하구나 히요리.
“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어? 지금 이것도 거기서 본 대로 하는 거야? 한 구절만 이야기해줘.”
“...”
이젠 목까지 새빨개졌는데, 여전히 대답할 기미가 없었다.
그녀는 뒤돌아서 M자로 앉은 상태이기에 공격할만한 약점은 많다.
“어~서~”
“히양!”
귀여운 발바닥을 간질이니 앞으로 굽어졌던 등이 쫙 펴졌다.
동시에 그녀의 질 내부도 내 페니스를 터트릴 기세로 꽉 조여졌다.
“하....”
“하?”
늘 똑 부러지게 말하는 히요리이지만 요즘 당황하여 말 더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그게 나에게만 보여주는 모습이라 생각하니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
자꾸만 장난을 치고 싶어진다.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가?
남자는 꼬마에서 소년을 거쳐 사춘기에 돌입하기까지 이성에 대한 접근방식이 단계적으로 변한다.
그 접근방식의 초기 단계. 성관념조차 모르는 소년이 좋아하는 소녀를 일부러 괴롭히고 놀리면서 미움 속의 관심을 구하는 행위.
화이트룸에서 자라면서 모두 스킵 했던, 마땅히 누렸어야 했을 평범한 소년으로서의 절차.
나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과정을 거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귀중한 기분을 내게 선사해준 히요리가 어찌도 이리 사랑스러운지.
물론, 사랑스러운 건 사랑스러운 거고 지금은 괴롭힐 시간이다.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
“그, 그러니까... 하...”
“하아?”
“하, 항문!”
“항문?”
내가 따라 말하자 그녀의 귀여운 항문이 수축하며 귀엽게 주름진 입을 꾸욱 다물었다.
동시에 그녀의 감정기복에 맞춰 질이 페니스를 터뜨릴 듯이 쥐어짜왔다.
안에 들어있는 게 오이나 가지 같은 거였다면 진작 두 동강 났을 것이다.
이거 중독될 것 같다. 앞으론 히요리와 섹스할 때마다 그녀를 짓궂게 괴롭히는 게 습관이 될지도.
“항문을 드러낸 채 씨, 씰룩 거리는 모습을 보여 드리며 방아를 찧으면... 남자분이 정복감에 기뻐한다고... 책에...”
“책? 무슨 책?”
“소녀경이요. 소녀가 황제 앞에서 방중술에 대해 아뢰는 장면이에요.”
죽을 것처럼 부끄러워하다가도 책 내용이 주제가 되자 침착하고 상세한 어조로 돌아오는 것이 참 히요리답다.
“그럼 난 황제가 받던 서비스를 받는 거야? 너무 과분한데.”
“그렇지 않아요. 나한테는 그게...”
“응?”
잠시 망설이던 히요리가 고개를 수그렸다.
“키요타카군이, 내 황제님이니까.”
바이바이 나의 이성아.
“꺄악!”
뇌가 일하는 걸 멈췄다. 내분비선이 주도권을 꿰어 찼다.
돌아선 채로 내 위에 올라타 있던 히요리의 허벅다리를 들고 그대로 그녀의 구멍에 삽입했다.
졸지에 그녀는 개구리가 M자로 엎어져 있는 듯 웃긴 모습이 되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미 한계 직전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안에 한 가득 정액을 토해냈다.
아까 한번 쌌음에도 이번에도 양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걸론 한참 부족하다. 그대로 그녀의 허리부터 시작해 등과 목, 빨갛게 물든 귀를 게걸스럽게 탐했다.
핥고, 물고, 빨고, 마킹을 하고. 마치 입으로 가하는 폭력처럼.
“키요타카군.”
떨리는 목소리로 히요리가 돌아보며 날 불렀지만, 그건 다음 목표를 설정해준 것에 불과했다.
내 입술이 그녀의 입을 막아버리고 혓바닥은 그녀의 구강을 헤집고 다녔다.
그녀의 입안에 단 한 방울의 타액도 남기지 않을 기세로 약탈에 가까운 딥키스를 퍼부었다.
히요리는 저항하지 않고 양팔로 내 등을 힘껏 껴안아왔다.
그녀의 혀는 내 혓바닥에게 철저히 복종하였고, 진상품으로 그녀의 타액을 남김없이 바쳐왔다.
달콤하다. 아무리 빨아 마셔도 목 마르다. 더 깊이, 더 깊이, 그녀의 혀 뿌리까지 갈구하는 맹렬한 키스.
단번에 그녀의 눈이 흐려질 만큼 폭력적인 키스가 이어졌고, 쇄골과 유두, 배꼽까지 내 혓바닥이 누비고 다녔다.
히요리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내게 모든 걸 맡길 뿐이었다.
내 혀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그녀의 발. 우선 가느다란 두 발목을 잡아 들었다.
쾌감과 열락으로부터 정신을 유지기 위해서인지, 그녀는 발가락을 꼬옥 쥐고 발바닥은 잔뜩 웅크려 주름져 있었다.
내 입술이 그녀의 발바닥 사이를 훑고 지나가자 주름 한 점 없이 부드럽게 펴졌다.
단단히 결속해 있던 발가락들도 내 혀가 그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니자 하나씩 풀어져나갔다.
짭짤한 맛과 함께 약간의 식초 냄새가 났지만 조금도 싫지 않았다. 그저 감미롭기만 하였다.
원초적 욕망이 내 머릿속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기를 노리고 포탄을 쏘아 올리던 대공포들처럼,
척수로부터 아주 근원적인 욕망이 뇌를 노리며 쾅쾅 치고 올라왔다.
나는 그것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것은 성욕이라기보다 식욕에 가까웠다.
만약 내 입이 충분히 컸다면, 히요리를 입안에 반쯤 집어넣고 사탕을 빨 듯 핥아댔을 것이다.
그사이 페니스가 다시 기운을 차렸고 그대로 그녀의 질 속 깊숙히 파고들었다.
“흐아아앙.”
달콤한 신음을 지르는 히요리.
그 와중에 어느정도 정신을 차렸는지 예의 그 바다뱀과 같은 허리놀림으로 호응해오며 마약 같은 쾌감을 안겨주었다.
정숙한 그녀의 꽃잎은 양귀비와도 같아, 그곳에 나를 파묻을수록 이성은 아득해져만 간다.
아아, 다행이다. 그리고 안심이다. 히요리가 나를 선택해주었다는 것이.
그녀의 몸과 마음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
*
*
*
*
“우음....."
창문으로부터 아침 햇살이 쏟아졌다. 코앞에는 잠든 히요리의 얼굴.
귀엽다. 미치도록 귀엽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잠든 히요리는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지금 이 순간 히요리는 내 심장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얼굴을 보노라니 그녀가 눈을 떴다.
“안녕하세요, 키요타카군.”
“안녕, 히요리.”
그녀의 귀밑머리를 뒤로 넘겨주자 기분 좋은 듯 눈웃음을 지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박해버렸네요.”
“이젠 딱히 규칙 위반도 아니잖아. 오늘은 휴일이기도 하고.”
임신 특별시험이 공지된 이래, 기숙사 내에서 통금시간이 철폐되었다. 어떤 의도인지는 뻔하다.
“이불 더렵혀서 미안해요.”
히요리가 처녀혈과 애액으로 물든 이불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섹스할 때 정말 물이 많은 타입이라서, 혹시 탈수증이 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아니야, 나야말로 아프게 해서 미안했어.”
“아픈 건 처음 잠깐 뿐이었어요. 저도 기분 좋았다구요?”
히요리가 기지개를 켰다. ‘으읏!’ 하는 귀여운 기합에 아담한 가슴이 살짝 흔들렸고, 젖꼭지 옆으로 폭포처럼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아침부터 이런 거 보여주면 안 되는데.
“어머.”
히요리가 놀랐다는 듯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거대한 텐트가 있었다.
이 크기면 지휘통제실을 세워도 될 듯하다. 제법 두꺼운 이불인데 이 정도 높이로 들어 올리다니 나 스스로에게 질렸다.
“건강하네요,”
“그러니까... 음, 미안.”
“미안할 것 하나도 없어요. 난 키요타카군이 건강해서 기뻐요.”
“히요리.”
감격해서 그녀의 양손을 모아 잡았다.
“우리, 오래오래 살아요.”
상냥하게 웃는 히요리의 모습을 보니 이건 성욕 이전에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든다.
시이나 히요리. 그녀는 지상에 강림한 천사였다.
그 성스러움 앞에 방금 전까지 잔뜩 화나있던 페니스도 성질을 죽이고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아니, 이건 진짜로 대단하지 않은가! 페니스조차 교화시키는 상냥함이라니.
그 후로는 평온했다. 우린 함께 목욕하며 어젯밤 격렬한 정사의 흔적들을 씻어나갔다.
목욕타올 대신 손가락으로 서로의 몸을 닦아주고, 머리를 감겨주고,
중간 중간 서로 얼굴이 가까워질 때마다 짧지만 달콤한 키스. 그리고 작게 터지는 웃음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둥켜안았다.
히요리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가느다란 두 손은 내 등을 보듬었다.
내 팔은 그녀의 허리와 어깨에 두르고, 얼굴은 엷은 빛을 발하는 그녀의 머리칼 속으로 묻었다.
같은 샴푸를 썼다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미로운 향기가 비강으로 물밀 듯이 밀려와, 폐를 거쳐 세포 하나하나에 깃드는 기분.
그녀의 귀여운 발은 내 발등 위로 반쯤 얹어져 기분 좋은 무게감과 따뜻함을 안겨주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줄기가 축복하듯 우리 몸을 아늑하게 두드려왔고,
맞닿은 체온과 숨결.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상냥하고 포근하여서...
시간마저 잊은 채 아무 말 없이 껴안고 있기를 계속.
조금씩 쌓이던 수증기가 욕실 안에 가득 차 세상에 우리 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마침내 히요리의 뱃속에서 꼬로록 소리가 나와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 때까지.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을 욕실에서 보냈다.
"그녀들이 만족한다면 이런 것도 괜찮을지도"
어느 샌가 임신 특별시험에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는 내가 있었다.
내가 히요리를 위해 구운 팬케이크의 고소한 냄새가, 히요리가 나를 위해 끓이는 달콤한 홍차 향기가 방을 채워나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이란 감정을 알아버렸다.
글자수 제한 떄문에 등록하는데 정말 애를 먹었습니다. 몇번을 올리고 삭제를 반복했는지... 로아에 미쳐 사느라 그동안 글 쓰는 게 뒷전이었습니다만, 이제 완전히 접었습니다. 쿠시다편 컨셉이 어둠+욕망+침식+공범이라면, 히요리편은 개그+순애+정복+행복입니다. 본편책, 인터넷, 애니에서 쓸만한 짤들을 줍거나 캡쳐해 넣어봤습니다. 포샵 좀 하니 그럭저럭 삽화 느낌 나서 좋네요.
혹시 다음 편은 이치노세 인건가요? 이치노세죠?
필력 ㅆㅆㅅㅌㅊ;;
와.. 필력 보소....히요리편은 평화롭구나...쿠시다는 뭔가 배경이 밤이 더 생각나면 여기는 그후 아침이 더 좋음...
감사합니다 sensei
그저 빛...다음편 기다리겠습니다 sensei - dc App
감사합니다. 글에 집중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을 다 접었으니, 다음편은 이번처럼 오래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의 후속은 없었다고 한다
캐잘알
하... 휴지가 어디있더라...
필력 개조지네 ㅋㅋㅋㅋ
개추 매일매일 하나씩 박아줄게
닥 ㅇㅂ
로스크아크 어디서버임
이거보려고 맨날 들어왔다 개추박습니다
미춋다미쳤어;; 진짜 소설인데... - dc App
울부짖으면서 봤읍니다,,^^
오늘도 1개추박습니다 선생님
와...정말 대단합니다 선생님 ㅋㅋㅋ 진짜 필력 엄청나시네요ㅋㅋㅋㅋㅋ 호리키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작가가 한국말 배워서 쓴 줄 알겠네
보고싶어요 - dc App
3화 써줘영
형님 기대하고 있습니다..언제 오시나요 ㅠㅠ
와 후원하고 싶을정도의 글이다 ㅆㅅㅌㅊ - dc App
그렇게 후속작은 없었다고. . - dc App
다음편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