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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설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경계하라



기성작가이든 소설지망생이든 간에 소설을 쓰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지닌다는 점에서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번쯤 머릿속에 떠올려봤을 법하다. 당연히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인데, 단순히 이야기일 수도 있고, 시대를 대변하는 창일 수도 있으며, 혹은 단순재미추구 내지 식자층의 자위 같은 것으로도 여겨볼 수 있다. 어차피 앞으로도 여기에 대한 정의가 통일될 일은 없을 듯하니, 마음에 드는 정의를 가져보면 되겠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보편적인 소설의 원형 같은 것을 찾으려는 시도, 즉 <소설 그 자체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극단적인 방향으로 발전된 질문을 던지려는 욕망을 자제하는 일이다.


왜 그럴까? 투철한 작가정신을 세우기 위한 시도일수도 있는 왜 이걸 비판하는가? 물론 그런 진지한 고민에서 나온 경우에 있어서는 생산적인 결과를 도모해볼 수도 있겠지만, 대개 저런 질문을 떠올리는 사람들치고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이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은가? 단적으로 말해서, 이는 철학적 사색이 아닌, 단순한 애정결핍에 기초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평가와 인정을 받고 싶은 결핍의식의 다름이 아니란 말이다. 순수문학의 경우에는 소수 심사위원의 취향으로 편향화된 문체와 서사, 장르문학의 경우엔 도가 지나친 상업성 추구가 그런 경우다. 전자의 <그 자체>는 결국 공모전에 뽑히기 위한 심사위원의 취향인 것이고, 후자의 <그 자체>는 돈이 된다면 뭐든지 적을 수 있다는 양판소스러운 마인드를 낳는다.


물론 모든 평론가의 목소리를 불임여성의 히스테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치부하거나, 상업성과 연관관계를 갖는 독자와의 소통 같은 것을 일절 배제한 극단적인 작가주의를 추구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게다가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독자를 상정하고 쓴다는 점에서 평가받고픈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아니니까. 다만 <소설 그 자체>에 대한 유혹을 늘 경계하라는 말이다. 이런 식의 논쟁이 소설쓰기 바쁜 프로작가그룹보다는 입지를 확보하지 못한 아마추어그룹에서 자주 벌어진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계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평가와 애정결핍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이걸 왜 소설로 쓰려하는가?>이기도 하다. 전자에 답하는 자는 평론가 내지 독자가 되고, 후자에 답하는 자는 작가가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