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이 가진 맹점에 대해
순수와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은 한국문단에만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옆나라 일본에도 있다. 그럼 한국과 일본만 있는 것인가? 이번에도 역시 그렇지는 않다. 프랑스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의『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장르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다만 한/일에 비해 서구권의 순수/장르를 나누는 기준이 조금 더 모호할 뿐, 구분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나누는 기준이란 게 뭐냐?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구분하는 수많은 기준들이 있는데, 대개는 소설형식과 연결된다. 장르문학의 경우엔 로맨스, 무협, 판타지, SF, 추리소설과 같은 형식을 가진다. 여기서 형식은 정형화된 어떤 틀 같은 것을 말하는 건데, 이를테면 추리소설은 <사건발생-탐정의뢰-수사&추리과정-문제해결>의 공식을 밟는다. 물론, 공식에 대한 변칙적 운영은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큰 틀 안에서는 다 비슷하다.
그렇다면 순수문학은 정형화된 틀이나 기본적인 공식이 없는 서사를 구성하는가? 공식과 클리셰를 극단적으로 배격하는 소설도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그런 기본공식을 따르는 소설들이 더 많다는 게 내 입장이다. 이를테면 순수문학의 30%이상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는 성장소설류가 그러한 대표적 예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순수문학은 장르문학과 따로 분류되는가? 그건 순수문학을 규정하는 기준이 형식이 아닌 주제의식에 있기 때문이다. 순수문학은 주제의식의 밀도로서 정해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주제의식은 종종 가독성과 궤를 달리함으로써 이해되는 경우가 많으며, 서사가 다소 느슨하더라도 작가가 표현하고픈 주제의식의 밀도가 높을 경우에는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조이스의『율리시스』에서 서사적 재미나 사건전개의 흥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에 문제가 있거나, 아주 천재이거나 할 것이다. 물론, 이 둘이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지만.
따라서 순수문학이 장르문학의 기법들을 차용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 자체를 따라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령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심농 같은 계열이 그런데, 이 작가의 경우엔 추리소설을 잇달아 발표했지만 순수문학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범인을 검거하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막상 소설의 중점은 기발한 범죄형식이나 사건전개의 역동성에 있는 것이 아닌, 범죄를 저지른 동기나 인간에 대한 이해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장르소설의 공식에 따라서 서사를 진행시키기는 하지만, 그런 공식에 별 가치를 두지 않는 소설을 적어낸다고 말하면 적당할까? 작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국내에선 배명훈이 이쪽 계열일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구분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문학의 가치란 것이 <인간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본다면, 순수와 장르문학은 반(反)인간적인 글을 전개할 위험성을 가진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순수문학의 경우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에 따라 모든 등장인물과 서사가 끼워 맞춰지는 위험성이 있다. 특정 철학명제 하나가 곧 인간 전체일 수 있을까? 그게 인간일반일까? 그럴 순 없다. 인간에겐 늘 철학적 개념으로 잡히지 않는 어떤 <잔여>가 남기 마련이다. 주제의식에 심취한 순수문학은 <잔여>를 도외시하며 인간을 철학명제로 등치시켜버리는 폭력적 환원주의에 사로잡힐 위험이 크다. 전체주의가 발흥할 때 늘 문학적 기수들이 앞에 서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대로 이 관점에서 봤을 때 장르문학은 탁월한 장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친구들은 주제의식보다는 서사의 진행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런 식의 환원주의를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인간의 삶이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맞춰지지 않는 수많은 고뇌와 선택들의 순간으로 점철되듯, 장르문학은 매사건의 전개마다 딱히 하나의 논리적 연결고리를 가지지 않는 장면이나 생각들을 넣음으로써 인간의 <잔여>를 포착하는데 효율적일 수 있다. 그래서 독자입장에선 <딱히 뭘 말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미는 있는 것 같다.>라는 평가가 가능해지는 것인데, 여기서의 재미는 장르문학이 담아낸 소설적 인간과 실제 인간이 비슷하다는 공감에서 오는 재미인 경우가 많다. 이 시점에서 보통 장르문학이 절대악이나 드라마틱하고 허무맹랑한 인물들을 등장시킨다는 비판은, 아이러닉하게도 역전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장르문학 역시 맹점을 가진다. 그건 바로 서사가 정형화되어 있다는 근본적인 구속이다. 뭘 어떻게 하던 간에 로맨스소설에선 남녀가 사랑에 빠져하는 것이고, 판타지소설에선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 미지의 괴물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르문학이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양태란, 태생적으로 허용되는 서사범위 내에서 제한되어버린다. 상황이 곧 그 인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이는 순수문학 못지않은 치명적인 환원주의를 야기하는데, 이들이 꺼낼 수 있는 인물의 특성이 틀에 박히게 되는 것이다. 온갖 무공들이 난무하는 무협지에서 사랑의 감정을 강하게 어필하는 건 확실히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서사의 틀을 부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개 독자는 서사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숙함의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그 서사를 보기 위해 장르문학을 찾는 것이기도 하고. 너무 서사가 굳으면, 또 그건 그거대로 지루함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약간의 서사의 변칙은 허용되는 분위기지만, 큰 틀에서의 해체를 외치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이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정답은 있지만, 그 정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정답을 알려주지. 정답은 <적당히 잘 섞어서 쓰면 된다.>이다. 물론, <적당히>의 기준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끝.
순수문학은 그냥 '인간' 에 중점을 둔 것 같음 작가의 의도라던지, 시에겐 느낌이라든가
이분 닉값 지리네 ㄷㄷ 자칭 작가들 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유익함
김유식은 이분을 위해 게시판 하나를 마련해줘야한다..
이 사람 꽤 어휘력과 문장 구사력이 좋네. 단 잘 나가다가 결론을 너무 급하게 내버리거나 얼버무리는 식으로 끝낸다는 단점이 보이긴 하지만.
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