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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소설가가 다독(多讀)을 한다는 것에 대한 소고



소설을 쓰려는 자는 우선적으론 뭐든 읽어야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그런데 소설가는 왜 읽어야하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많이 읽으면 깊은 생각과 좋은 문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건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부분인데, 다독(多讀)이 좋은 문장력을 만들어주진 않는다. 아무거나 많이 먹으면 배탈 나서 설사한다. 소설도 이와 같다. 책이란 세상을 담아내고, 또한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에 대한 것. 다독을 하면 확실히 수많은 소설적 아이디어들의 자양분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소설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일 테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곧 좋은 소설이 되진 않는다. 문장력이 없으면, 결국 참신한 설사를 할 뿐이다.


다시 비유를 들자. 물리학을 봐라. 이론물리학과 실험물리학이 있다. 이론물리학은 온갖 천재적인 아이디로 무장한 이론들을 내놓지만,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이 이론은 실험실이나 세상에서 증명되지 않는다면 공허할 뿐이다. 소설도 이와 같다. 소설이란 실험물리학적인 것으로 이론을 구체화시킬 수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문장으로서 구체화시킬 수 없다면 아이디어는, 결국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다독은 왜 문장력을 높여주지 않는가? 그건 네가 그 책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갔을 뿐이기 때문이다. 네가 다독을 했다하더라도 네가 기억하는 건 논리계단이 아닌, 그 계단의 끝에 있는 결과를 요약한 명제일 뿐이다. 물론 이는 뇌가 기억할 수 있는 용량의 문제이기도 하고, 동시에 실생활에서의 효율적인 쓰임새를 위해서라도 요약된 결론의 목록을 가지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학도 공식의 증명과정을 이해하면, 그때부터는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풀지 않나? 이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설은 수학이 아니며, 독자가 아닌 소설가의 경우엔 이런 식의 독서가 오히려 폐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떠올리면 당신은 무의식이나, 혹은 무의식이 지닌 성충동으로서의 속성 같은 것을 떠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프로이트가 밝혀냈던 결론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는 소설을 쓰는 문장력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부분이다. 소설이란 그 나름의 논리적 계단을 밟는 과정이다. 톨킨의『반지의 제왕』이 대뜸 자기 소설에서 절대반지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서사와 인물들의 군상을 통해 이 주제의식을 논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소설이란 사회과학이나 철학에서 말하는 논리학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그들 자신만의 상징과 비유, 그리고 서사로서 논리적 논증을 하는 공간인 셈이다. 소설은 세줄요약이 아니다. 사건과 사건의 연계가 필요한데, 이는 결론이 아닌, 그 결론으로 향해 달려가는 논리계단 그 자체다.


기본적으로 문장력이란 그럴싸한 아포리즘 따위를 뜻하지 않는다. 여기서 문장력이란 논리적 배열을 가지는 문장들의 연쇄다. 소설의 문장이란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집합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소설에서 있어서 그 맥락을 떠난 문장 중에 의미 있는 문장이란 없다. 따라서 문장 간 연결고리를 촘촘히 짜는 것이 곧 문장력이 되는 것이며, 이 말인즉 단순한 결론이 아닌, 그 결론이 도출되는 논리적 과정을 적확히 파악하는 게 핵심이다. 문장력에 대한 이와 다른 견해는, 대개는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거리가 멀어진다는 점에서 한국식 미문(美文)주의일 따름이다. 이런 걸 쓸 바엔 차라리 그림을 그리도록. 어떻게 봐도 그게 좀 더 아름다우니.


결론적으로 이런 문장력은 다독이 아닌 정독으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적어도 소설가에게 있어서 다독은, 적당한 주의가 수반되어야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결론은 정독을 많이[多]하도록 하자. 그런데 빌어먹을, 이런 모범답안을 누가 모른단 말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