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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미켈란젤로와 소설 - <소설>과 <이야기 그 자체>의 차이



소설을 완결내지 못하는 자는 쓰는 도중에 스토리가 꼬였기 때문에 소설을 중단할까? 빈약한 자신의 문장력에 환멸을 느껴서? 아니면 그냥 지루해서?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소설을 완결내지 못하는 자가 가진 특징들 중 하나는, 일종의 천재-콤플렉스 내지 완벽-콤플렉스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구상했다하더라도 첫 문장을 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완벽한 무언가를 쓰고 싶은 오만, 혹은 본인이 천재라는 자의식을 어떤 식으로든 증명하고픈 욕망이 소설의 완결을 방해하는 것이다. 물론 좋은 글에 대한 노고를 이런 식으로 일반화하는 데는 문제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자의식 과잉들은 짧은 뻘글들을 쓰는 데는 일가견을 보인다. 왜냐하면 딱히 이해하진 못해도, 짧은 글을 그럴싸한 아포리즘으로 표현했을 때 얻어지는 기묘한 개똥철학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데 기대는 순간, 소설가로서는 반쯤 끝이다.


시詩는 잘 모르겠다만, 소설의 경우엔, 특히나 장편소설의 경우엔 한방에 완결을 지을 수 없다. 그런 자가 있다면 천재이므로, 본 논의에서는 극소수의 예외로 치겠다. 많은 유명한 소설가들이 쓴 초고와 완성본이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은, 이미 많은 실증적 연구를 통해 증명된바 있는 부분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건 <이야기 그 자체>와 <소설>은 조금 다른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단언코 말하지만 <이야기 그 자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야기>와는 아주 다르다. 소설을 쓰기 위해 이런저런 구상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겠지만, <이야기 그 자체>라는 것은 다분히 중구난방스러운 구석이 크다. 정제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 그 이야기를 창작하는 경우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이야기라는 것은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다채로운 장면들의 총합이다. 드래곤을 탄 기사가 소리를 지르며 전투현장으로 낙하하는 장면, 공주에게 기습뽀뽀를 하는 장면, 뜬금없이 인물이 <자연법칙엔 예외가 없어.> <뭔가 크게 오해하고 있군, 귀도. 예외가 곧 자연법칙이라네.>라는 명대사를 뱉는 장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바바리코트를 입은 탐정이 술집주인과 하드보일드한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 갑자기 묘사하고 싶은 조명, 풍경, 음악…… 이런 것들의 이유 없는 나열들이다. 인간의 욕망이나 충동이라는 것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변칙스러움의 극치이므로, 이로부터 말미암은 이야기 역시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설이 그런가? 특별히 실험적인 기법을 사용하는 게 목적이지 않는 한, 그렇지 않다. <소설>은 작화집이 아니다. 이런 온갖 이미지와 음성들을 나름대로의 논리적 구성으로서 정제하는 작업이다. 물론 이게 주제의식의 논리구성인지, 아니면 이야기 내적인 개연성을 다듬는 논리구성인지에 대한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어쨌거나 다듬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이런 의미에서 <퇴고가 곧 소설>이라는 말은 지극히 유효한 명제다. 그리고 완결을 하지 못하는 소설가들은, 대개 퇴고를 하기 위한 <이야기 그 자체>를 온전히 끌어내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의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처음부터 <소설>을 끄집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혹은 오만의 정점을 찍으며 자신의 머릿속에선 <소설=이야기 그 자체>라는 기적의 등식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품기 때문이다. 이는 반성이 결여된다는 점에서 지극히 유아적인 마인드이다.


비유컨대 소설가의 작업은 조각가와 비슷하다. 조각가는 원석을 이리저리 살피며 끌로 원하는 부분에 불필요한 부분들을 모두 깎아내는 사람이다. 미켈란젤로의 말과 같다. <모든 대리석 안에는 조각상이 깃들어 있다. 조각가의 임무는 그 형상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단지 조각가와 소설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가는 <대리석>까지도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다음 깎기에 들어간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작가지망생들은 그게 논리에 맞든 안 맞든, 일관성이 있든 말든, 일단은 <이야기 그 자체>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미친 듯이 풀어놓기 바란다. 아무리 미켈란젤로라도 허공에 조각질한다고 조각이 나오지 않듯이, 대리석이 없으면 조각품을 만들 수 없다. 대리석을 만들었다면, 그때부턴 조각하라. 퇴고가 끝나면, 그것이 <소설>이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