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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문학적 재능이란 무엇인가? - 어쩌면 그건 <적당히> 흐릿한 자의식



문학적 재능이란 무엇일까? 사실 이 질문은 갤러리에서 잊으려고 하면 다시 뜨는 떡밥이자, 비단 여기뿐만 아니라 문학판 전체에서 화두가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질문이 오래된 만큼 답들이 분분하다는 소리인데, 과연 그러하다. 단순히 생각해서는 감정이입에 탁월한 감수성이나, 혹은 간명한 묘사를 위해 사물의 특징만을 빠르게 포착한 뒤 나머지 군더더기들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능력, 기발한 서사를 생각해내는 상상력, 또 아니면 도스토예프스키 식으로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게 잡아내는 시선…… 질문을 문학의 한 분야인 <소설>로 한정시켜본다 하더라도, 이 소설마저도 평가를 할 만한 요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만병통치약 같은 재능을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이나 부족한 부분이 곧 재능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땐 이게 <문학적 재능>에 대한 거의 유일한 정의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소설적 재능이란 것은, 적당히 흐릿한 자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여기서 <적당히>라고 표현한 것은 자의식이 너무 부족한 경우에는 본인이 생각한 서사를 끝까지 밀고나갈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글이 도중에 중단되거나, 혹은 논리적 개연성들이 흐트러져버려 소설 같은 소설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의식이 너무 강력한 경우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이 다 비슷하게 나와 버리는, 한마디로 지루한 소설이 등장해버린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다른 사람과 만날 때도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에 비친 자기 자신을 확인하려는 나르시스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설을 써도 자기와 비슷한 인물만을 마구 찍어낼 따름이다. 여담이지만, 나르시즘이란 게 대개는 현실로부터 거부를 당한 반동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소설은 대개 우중충하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병약적인 분위기를 띈다. 이런 의미에서 순수문학의 지루함을 본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의 우매함에서 찾고자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본인들의 지적반성력의 결여를 증명할 따름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라.


소설이란 게 궁극적으로는 작가 한명이 자신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쓰는 것이기에, 세상 그 자체를 담는 투명한 거울일 수는 없다. 또한 그래서도 안 되고. 하지만 우리 인생의 즐거움이 다채로운 인간 군상들의 부딪힘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소설 역시 다양한 인물들이 엮이는 서사 속에서 발생한다. 또한 비단 재미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나 통찰역시도 여러 인물들 속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자기 혼자 골방에서 떠올리는 것들은 <자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걸 존재의 본질이니 연민이니 하는 것들로 포장하는 건, 본인의 애정결핍에 대한 쓸데없는 수사에 불과하다. 차라니 자전거 타고 공원이나 몇 바퀴 돌고 오라.


니체가 어디선가 말했다. <나와 나의 글은 다르다.> 옳도다. 작가와 <소설>은 비슷하지만, 궁극적으론 다른 것이다. 따라서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글이라면, 나 아닌 다양한 인물들을 적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근본적으론 작가가 자신이 아닌 인물을 적을 수 없다하더라도, 그럼에도 최대한 그 부분에 근접한 무언가를 적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설가란 불가능한 작업을 하려는 자들인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자의식은 적당히 흐릿한 것이 좋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적당히> 흐릿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문학적 재능>이란 정신의학적 우울의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