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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근원적 우울에 대한 고찰



글 쓰는 자 기준으로, 대개 구상단계에서는 나르시즘에 취한다.「캬, 이거다. 다시 나올 수 없는 스토리다.」「기발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깊어지는 상징이다.」「불멸의 캐릭터다. <셜록 홈즈> 이후로 이런 캐릭터는 추리소설에 없었어.」기타 등등 자아도취의 유형은 여러 가지다. 소설장르 불문하고 그런 듯하다. 그리고 이는 그 구상을 직접적으로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대개 박살난다. 자아도취의 정도에 정확히 비례한 우울증에 걸리게 되는데, 자기가 쓴 걸 읽으면 읽을수록 미숙하고 지루하고 클리셰스러운 글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소설가는 새로운 구상을 하려고 들게 된다. 예수님도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한다고 했으니, 그 격언을 받아들여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려는 것이다. 이런 소설가들이 쓴 글 목록을 훑어봐라. 완결은 없고, 대개 10~20화 사이의 분량을 쓰다가 도중중단하거나 무한잠수를 탄 글들로 넘쳐난다.


물론 여기서 이들을 욕하거나 쓸데없는 꼰대류 조언들을 일삼자는 건 아니다. 전자의 사디즘은 이미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다른 이들이 행하고 있으니, 그냥 그걸 적절히 구경하면서 관음증으로 만족시키면 되는 것이고, 후자는 그냥 지루한 짓거리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바는, 그냥 왜 구상할 때는 멋진 데, 막상 적히면 구리게 보이냐는 것이다. 문학의 평가기준을 워낙 방대하니, 내 입장에서 안 좋게 보여도 독자입장에서는 좋게 보일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던가? 그리고 이 관점에서 내 기준이 꼭 내가 쓴 소설의 절대적인 평가일 수도 없는 노릇일거고. 게다가 고치면 나아질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글이라는 식으로, 좀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볼 수도 있는 문제잖아? 그런데 그러거나 말거나 자주 실망스럽단 말이지…….


나는 여기에 타자의 인정이나 평가가 개입하지 않는, 어떤 원초적인 우울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해봤다. 생각해봐라, 글이란 어쩔 수 없이 작가 본인의 무언가가 담기는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에 대한 재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그건 <나>가 아니라 내가 떠올린 어떤 <환상의 나>이다. 어쨌거나 소설가는 자서전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까. 내 생각에 단순히 환상을 하는 것과, 그 환상을 그림이나 글 같은 것들로서 직접 밖으로 꺼내놓는 건 전혀 다른 일이라고 여겨진다. 전자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반성이 어렵지만, 후자의 경우엔 자신의 무언가가 너무 눈앞에 똑똑히 보이는 관계로 적나라한 반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반성은 자기 상상력의 모자람에서 발생하는 건가? 아니다. 앞에서 이미 단서조항을 달았지만, 나는 이런 우울이 타자의 시선 이전에 발생하는 것이라 보는 입장이다. 소설가가 자신이 가진 문장력이나 서사의 짜임새를 짜는 능력의 부족으로 <나는 내가 본 걸 제대로 재현해낼 수가 없다>는 식의 우울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의 전제는 그런 평가요소 자체가 타자로부터의 인정을 통해 합의되는 부분이란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건 이 이전의 단계다. 그냥 소설가가 이제 막 탈고를 끝낸,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세상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독자로 존재하는 그런 순간에 느끼는 최초의 우울.


아마도 그건 소설이라는 하나의 완결이 있는 글자 속에 갇혀버린 자신을 직면할 때 느끼는 우울일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이라도 일단 적혀져버리면, 바로 그 순간부터 의미가 반감되니까. 상상력이란 본디 세상에 없는 무엇을 떠올릴 때 가치가 있는 거니까. 이런 의미에서 소설가의 우울이란, 적혀진 소설로서 보게 된 틀지어진 스스로의 모습과 계속해서 미지의 공간으로 뻗어나가고 싶은 충동의 부딪힘에서 발생하는 것일 거다. 계속해서 뻗어나가고 싶은, 무한한 가능성이고 싶은 욕망. 여담으로, 조금 비약해서, 한번 소설에 맞을 들린 사람이 죽을 때까지 글을 쓰는 건, 아마도 이러한 이유라고 본다. 새로움을 보려면 기존의 것을 다 토해내야 하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