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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소설을 욕하는 눈먼 꼰대들아, 저주받으라



중견작가가 아닌 이상 웹소설의 주류인구는 20~30대의 젊은 작가층들이다―90년대에 태어난 친구들. 물론 이들 중 대다수는 10화정도 글을 끼적거리다가 글쓰기를 중단해버리는 경우가 태반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인구분포를 그러할 것이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웹소설에 뛰어들었을까? 단순히는 소설쓰기의 즐거움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창조적인 일을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영상문화의 발전이 강력하게 엮여 들어갔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까 JJR톨킨보다 2001년에 개봉한 피터 잭슨의 영화 <반지의 제왕>이 본격적인 판타지붐을 일으켰다는 말이지.


아아, 물론 그 이전에도 판타지소설은 있었다. 가령 한국보다 먼저 판타지 열풍이 불었던 일본에서 87년도에 발간된 미즈노 료의『로도스도 전기』같은 경우를 떠올리면 되겠다. 또한 한국 판타지소설의 총아로 거듭난 이영도가 그의 대표작『드래곤 라자』를 인터넷에 연재하기 시작해 출간한 년도가 97-98년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자들이 본격적으로 작가로 거듭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도라고 볼 수 있다. 독자와 작가의 경계가 본격적으로 박살난 것은 명백히 이 시기다. 영화가 가진 파급력의 근본은 너무도 선명한 이미지에 있고, 이미지를 접한 사람은 그 이미지를 재현하고픈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이런 의미에서 스티븐 잡스의 이 말은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무엇을 원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이 뭐하는 게 뭐였을까?


재미있는 건 이 지점과 문학위기론이 시기를 같이했다는 것이다. 뭐, 매년 위기론이 대두되는 문단이기에 이런 위기론 자체가 연례행사처럼 느껴지는 하지만, 어쨌거나 위기론은 또다시 대두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서사의 빈곤>문제가 튀어나왔다. 특별한 사건이랄 것 없이 일상적인 소소함에만 큰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여담으로, 이 문제에 시기를 같이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던 하루키 소설이 엮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문학이 지향해야할 거대한 서사가 있었다. 이를테면 독재타도&민주화 성취라는 시대적 과제. 하지만 이 시대가 끝나고 서사가 공중을 붕 떠버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일상으로의 회귀는 방향성을 잃은 문학의 일시적 도피처였다. 하지만 일상이 인생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사실 그 일상을 아무렇게도 않게 일상이라 여기게 하는 무언가가, 바로 문학이 건드려야할 지점인데, 그 지점에서 문학은 카프카가 말한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서사의 종언은, 그저 기존 작가들의 사유의 빈곤에 문제가 있는 것일 뿐이다.


아니, 근데 이거랑 판타지붐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두 가지를 제시하면 상아탑에서 길들여진 꼰대들의 꼭두각시는 이렇게 말하겠지.「방향성을 잃은 [무지한]대중이 허구적 서사를 구축할 수 있는 환상으로 도피한 것이다.」엿 먹기 바란다. 두 번 먹어라. 이는 자기성찰이 결여된 이중잣대에 불과하다. 문단이 존재성찰이니 나발이니 하는 스스로의 무기력에 대한 눈가림으로서 제기된 관념에 뒤룩뒤룩 살이 올라, 조금만 걸어 다녀도 헉헉 거리면서 앉을 곳을 찾기 바쁠 때, 환상은 제 나름의 서사를 구축했다. 문단이 영화와 소설을 어떻게든 구분 지으려고 하면서, 판타지소설들을 영화적 이미지에 과잉된 서사진행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그 자체가 <서사의 빈곤>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궁극적으론 자위일 뿐인 엘리트의식에 사로잡힌 꼰대질일 뿐이란 거지. 이런 마인드 자체가 문학의 본령을 잊은 보수적인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서사 그 자체에 위기의식을 느낀 게 아니라, 영화나 판타지붐이라고 하는 새로운 문화콘텐츠에 자신의 몫이 넘어갈 것을 우려한 제 밥그릇 찾기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권위의식과 허세로 요약되는 목줄의 핏대, 그걸 순수함으로 위장하지 말라.


서사의 빈곤이 가지는 진짜 문제는, 그게 곧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 있다. 넓게 봤을 때 우리 삶은 IMF 이후로 정형화됐다. 좀 더 비관적인 사람은 한국전쟁 이후로 정형화됐다고도 말하겠지만, 어쨌거나 정형화된 건 사실이다. 교육제도를 착실히 밟아 성취해야할 <정상적> 기준이 설정됐고, 모든 삶은 거기로부터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게 진행되기를 강요받는다. 돈 외에 더 이상 성취해야할 목표나 가치가 상실됐다. 신자유주의 운운할 필요도 없이, 그냥 어제와 오늘이 같을 스스로의 일상을 돌아봐라. 남은 게 일상뿐이니까, 언제부터인가 사회는 <웰빙>열풍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안전이나 건강 외에는 딱히 가치를 둘 게 없어진 세상이니까. 이렇게 다 똑같이 사는 데 서사가 뭐가 필요하겠나? 예시를 하나 더 들어볼까? 우리들, 사람 만날 때 무슨 대학 나왔냐고 묻지 않나?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살아온 인생 같은 거 안 묻는다. 학창시절이 패턴화 되어 있으니까, 그냥 무슨 대학 나왔는지만 알면 그 사람에 대한 인생서사가 뻔히 짐작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예측되고. 이렇듯 우린 서로의 고유한 서사를 물을 필요가 없는 시대에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거 없으니까.


90년생 작가군들이 영화의 그 강렬한 이미지 속에서 무엇을 봤을까? 그건 서사다. 170분씩 장장 3번에 걸쳐 진행되는 <반지의 제왕>에서 구체화되는 것은, 일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비한 마법이 아니라, 그런 마법을 쓰는 인물이 만들어가는 서사 그 자체다. 판타지세계가 신기한 게 아니라, 그 세계 안에서 각자 고유한 서사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감동이 있었던 것이다. <반지의 제왕> 영화보고 나온 사람에게 물어봐라. 뭐가 기억에 남냐고. 이미지가 신기하다면 나즈굴이 타고 다니던 드래곤이나 오우거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겠지만, 그런 애들은 드물다. 대개는 거기에 등장하는, 상대적으로 딱히 신기할 게 없다고 볼 수 있는 인간이나 인간형 엘프&드워프의 이름을 말한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괴물에게 감동한 게 아니니까. 수많은 대사와 사건을 같이한 그들의 서사에 감동했으니까. 로한기마대의 돌격에 감동하는 것은, 전쟁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장면까지 왔던 반지원정대와 다른 주인공들의 우여곡절이 같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서사가 감동이지, 단순히 웅장한 이미지만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끝이라니?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란다. 죽음도 또 다른 길일뿐이지. 모두가 가야하는 길. 이 세상에 내리던 잿빛비가 멈추고 나면, 모든 게 은빛유리처럼 반짝일게다. 그러면 보게 될게야.」


이런 점에서 판타지붐이 한 장짜리 일러스트보다는, 소설이라는 서사형식을 띤 장르로 뻗어나간 것에 주목해야 한다. 단순히 그림보다 글 쓰는 게 접근이 쉬워서가 아니다. 사람들의 무의식은 서사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걸어온 서사가, 곧 그 사람의 자의식을 구체화시킨다. 거기에 감동이 깃든다. 일상 속에서 정확히 왜 사는 지도 모르겠는, 흐릿한 자의식을 가지고 부유해온 현대인이 <반지의 제왕>에 열광하는 건, 너무도 필연적 귀결인 셈이다. 그들은 단순히 이미지에 취한 게 아니라, 끊임없이 서사를 지향하며 현실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 열망이 꼰대들의 눈에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그들에겐 열망이 없다. 늙은 고도비만의 몸뚱이들은 그런 거 잊은 지 오래다. 애당초 진정한 서사의 복권이 아닌, 서열 매기기에만 관심이 쏠려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과도한 학업이라는 현실도피를 위해 허구한 날 판타지소설이나 뒤적거리는 한심한 학생들이나 읽는 소설>이란 이미지를 판타지소설에게 심어줘야만 했던 것이다. 진짜 문제의식을 잃은 것은 오만에 눈이 먼 자신들이라는 것도 모른 채…… 오호 통재라.


자각하고 있든 말든, 웹소설은 제대로 걷고 있다. 허구한 날 구보씨랑 산책만 하고 있을 문단은 잊고, 계속해서 서사를 지향하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