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서브컬쳐계나 인터넷 전반에서 '여성혐오' 를 다루는 작품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작품들 중 가장 메이저에 가까운 작품은 네이버 웹툰의 "내 ID는 강남미인" 이다.

 네이버라는 거대 플랫폼에서 토요웹툰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또 공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웹툰을 볼때마다 작가의 주제의식에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특히나 최근 2주에 걸친 '꽃' 에피소드 (31화, 32화)는 작가의 부족한 연출, 스토리텔링을 넘어 왜곡된 세계관과 잘못된 생각을 보여준다.

 또한 이런 문제가 비단 작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서브컬쳐계의 잘못된 페미니즘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라고 본다.


 '꽃' 에피소드의 내용을 간단하게 간추리자면, 

 어려서부터 예쁘고 능력있던 여자 나혜성이, 돈많고 능력도 있지만 여자를 남자의 부속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남편과 결혼해

 전통적 아내상을 요구받게 되고, 자신의 일을 하고 싶었던 혜성의 바람과 충돌하며 서로 다투다 혜성이 머리를 부딪혀 후각을 잃게 된다는 내용이다.


 작가 스스로도 '기획단계부터 잘 그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에피소드인데 그리게 되어 감개무량' 이라고 작가의 말에 언급했고

 댓글은 나혜성과 이시대의 워킹맘들, 그리고 남자의 부속품으로 살기를 요구받는 여자들의 한탄과 분노로 가득차있다.

 베스트 댓글의 추천수는 10만이 넘는다.


 하지만 나는 나혜성이라는 여자에게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을 뿐더러, 나혜성을 '여성혐오' 라는 프레임과 연결시켜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나는 나혜성에게 "왜 그런 남자와 결혼을 했나?" 라고 묻고 싶다.


첫째, 남편의 여성비하 가치관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남편은 초면부터 이미 여자를 장식품으로만 여기는 듯한 뉘앙스를 드러냈다. 사실 첫만남뿐 아니라 작품 내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그런 말을 대놓고 한다.

후각을 잃고 충격으로 폐인이 된 아내를 두고, 친구들에게 " 이제 진짜 꽃인 걸 수도 있지. 예쁘고 가만있고"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서 그 사람의 가치관을 파악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혜성은 그런 부분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둘째, 아무도 나혜성에게 남편과의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다. 

머리에 총을 들이밀고 협박한것도 아니고,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으면 징역산다는 법이 있는것도 아니다.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팔려간 것도 아니다. 이 남자와의 결혼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혜성의 선택이다.

주변에서 결혼하면 좋을거라고 추천하긴 했지만, 그 추천에는 어떤 강요성도 없다. 결국 최종 선택은 나혜성 자신이 한 것이다.



셋째, 결혼상대는 남편만 있는게 아니다.

가장 최신 에피소드 (32화) 에서도 드러나듯이, 혜성의 재능과 열정을 알고 있고, 일을 그만둔다는 사실에 안타까워 하며, 물심양면으로 복귀를 돕겠다는

착한 남자 후배도 있다. 묘사를 보면 그 후배 하나만의 의견이라기보단 연구실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식인 듯 하다.

나혜성이 결혼 후에도 일을 하고 싶었다면, 이 후배처럼 자기 일을 존중해주고 응원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 그건 상식이다.

하지만 나혜성은 그런 남자 대신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 왜? 답은 간단하다. 남편의 '스펙' 이 좋기 때문이다.

남편에 대한 묘사는 두가지밖에 없다. 좋은 스펙과 남성우월 가치관. 주변에서 남편을 추천한 이유도, 혜성의 어머니(인걸로 추정되는)가 결혼을 권유한것도,

혜성이 결혼을 선택한 것도 결국 그 남자의 스펙 때문이다. 남편을 언급하며 나온 얘기는 전부 '스펙' 뿐이다.

(사실 이것도 모순이다. 여자가 외모로 품평받는건 거부하면서, 남자는 당연하게 버는 돈으로 품평하고 있다.) 


넷째, 나혜성은 자신의 '아름다움' 으로 불로소득을 얻는 삶을 살고 있었다.

작중 나혜성은 지나칠 정도로 예쁘게 묘사된다. 학창시절부터 주변에서 예쁘다며 칭찬 일색이었고,

나혜성 스스로도 "내가 예쁜 건 너무 당연했고, 사람들의 호의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라며 독백한다.

오픈카를 타는 남자와 다니며 "나는 명실상부한 권력자였다" 고 회상하는 장면도 있다.

무슨 관계였는지는 정확히 묘사되지 않아 모르지만, 남자들이 나혜성에게 호의를 보인 이유가, 스포츠카를 탈 수 있었던 이유가,

'권력' 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가 나혜성의 향수에 대한 재능과 열정 때문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종합해보면, 나혜성은 예쁜 외모 때문에 주어지는 호의와 권력은 당연하게 받아먹는 삶을 살았고,

자신의 일을 존중해주는 남자를 두고도, 돈 많고 능력있는 남자에게 스스로의 선택으로 시집갔으며,

쉽게 파악할수 있는 남성우월 가치관이 보임에도 이 결혼생활이 자기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나혜성은 '여성혐오 사회의 피해자' 가 아니라, '외모 하나 믿고 인생 대충대충 살아온 머리빈 사람' 에 가깝지 않을까?


학창시절부터 예쁘다는 이유로 그 많은 대접을 받아왔으면서, 그 대접이 결국 자신의 외모 하나 때문이라는걸 생각해보는게 어려웠나?

자신을 외모로만 판단하는 남자들은, 결국 자기를 관상용 취급한다는걸 깨닫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자신의 일에 손톱만큼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외모얘기만 하는 가부장적 가치관의 남자와 결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나?


최신화에서 나헤성은 '내 몸은 나의 것' 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엔 나혜성은 그동안 자신의 외모를 너무 많이 판매하고 다녔다.

나혜성이 그동안 받은 권력과 호의는, 그 외모를 바라는 남자들의 기대감이나 욕망을 채워줌으로서 얻는 대가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혜성은 자신의 외모를 남자들에게 관상용으로 제공하는 댓가로, 수많은 선망과 호의와 권력과 '스포츠카를 타는' 생활을 누린 것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이제와서 '나는 관상용이 아니야!' 라고 외쳐봤자 공감이 잘 가지 않는다.

너는 관상용 인생을 살았고,  그 댓가로 편한 삶과 권력을 누려왔잖아? 그것도 너 스스로의 선택으로.


재미있는 것은, 이런 나혜성의 삶에 대다수의 평범한 여성들, 정말 남녀차별로 고생하던 여성들이 환호하고 공감을 한다는 점이다.

나혜성은 외모차별, 남녀차별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 꼭대기에서 외모차별의 불로소득을 충분히 빨아먹던 계층이었다.

나혜성이 못생긴 여자의 서러움을 알까? 내가 이렇게 예뻐서 대접받는만큼, 못생긴 애들은 처절한 대접 받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봤을까?

그런 묘사는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혜성이 생각하는건 '내 몸', '내 커리어', '내 일' 일 뿐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평생 자기 외모를 판매하며 머리비우고 살던 한 사람이, 결혼이라는 큰 거래에서 실패한 것 뿐이다.


만약 내가 작가라면, (정말 현실이 어떤지는 일단 논외로 하고), 여성차별이라는 주제의식은 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겠다.

일단 나혜성처럼 '외모만으로 스포츠카를 탈 수 있는' 여자가 아니라. 예쁘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평범한 여자를 내세우겠다.

특출나게 예쁘진 않지만 꾸미면 스스로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외모이고 스스로를 관상용으로 제공하는 인생은 생각도 해본적 없는 여자.

열심히 공부하고 마음맞는 좋은 남자친구와 결혼까지 갔는데, 착하기만 하던 남자친구가 결혼후에는 서서히 가부장적 마인드를 드러낸다는 식으로.


나혜성처럼 딱 봐도 문제있는 남편을 스펙 보고 결혼하고 나서 피해자 코스프레하는게 아니라,

정말 착하고 마음 잘맞던 남자친구마저, 사람 좋아보이고 잘 챙겨주시던 시어머니마저 사실은 가부장적 마인드에 영향받고 있다는걸 알았을 때,

그 때 여자가 느끼는 충격이 훨씬 크고 비난의 여지도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아닐 줄 알았던 내 남자마저 가부장적이라면, 도대체 이 사회에

그런 마인드가 얼마나 뿌리박혀 있다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사회 구조로 시선을 돌리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


내가 작가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이런 부분이다. 

만약 작가가 나혜성을 둘러싼 모든 남자가 다 남편같이 가부장적인 남자들로 묘사했다면 (이것도 사실하곤 너무 괴리가 크지만)

그나마 어떻게 이해해볼 수가 있다. 하지만 최신화에서 나혜성을 이해해주는 후배를 등장시킴으로써 나혜성은 이제 단순히 머리 빈 여자로 전락했다.

나헤성이 자신을 외모로만 판단하는 걸 거부하고 그로 인한 불로소득도 거부하고 철벽을 쳤다면

(실제로 어려서부터 몸매가 유난히 좋은 여자들은 지나친 성적 접근에 질려서 오히려 철벽치는 경우도 많다)

나혜성이 '나는 관상용이 아니야' 라고 외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카를 타는 모습을 묘사하고 '나는 권력자' 드립을 치면서

나혜성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외모를 판매하는 여자가 됐다.


나혜성이라는 캐릭터는 한마디로 이중적이다.

내가 외모로 대접받을땐 의문 한번 품지않고 불로소득을 얻고, 그렇게 생각없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피할 수 있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을땐 갑자기 남녀차별과 사회구조를 원망한다.


현재 인터넷 세대 남성의 대부분이 페미니즘, 여성혐오 얘기를 꺼내면 질색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중적인 일부 여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로서 편하게 사는 부분, 여자라서 대접받는 부분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반대 입장에선 펄쩍 뛰는 여자들.

생각없이 살아가다 자신의 실수를 사회탓으로 돌리는 여자들. 

이런 여자들마저 '같은 여자' 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쉴드를 받고 남녀차별의 피해자로 포장된다면, 진정한 남녀평등은 요연하다.




----------------------------------------------------------------------------------------------------------


웹갤에 이번에 처음 오는거라 이런 글 올리는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한번쯤은 써보고 싶었던 감상.

웹툰 보면서 이거 좀 이상한데.. 하고 느끼던 부분을 하나씩 정리해서 몇 가지 웹툰의 감상문 형태로 쓰고

사람들하고도 얘기 나눠보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