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소스의 뜻
글쓴이 : 책사풍후
힉소스는 '외국 땅의 통치자'란 뜻이며 본래 발음은 '헤카우 카수트'다.
저 지팡이 모양의 글자는 ‘헤카’라 읽으며 ‘통치자’란 뜻이다.
저 山 모양의 글자는 언덕들 혹은 산들인데. 발음은 ‘카수트’이며
‘외국 땅’이란 뜻이다.
이집트엔 산이나 언덕이 없고 단지 계곡만 있기 때문에.
기원전 3세기 초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파라오 왕조의 사제이자 역사가인
‘마네토’는 유대인의 조상이 힉소스이며 출애굽이 바로 힉소스 멸망과 관련 있다고
적었다.
서기 1세기 유대인 출신 로마 역사가 ‘요세푸스’는 마네토의 기록을 인용해서
힉소스를 ‘양치기 왕’이란 뜻이라 해석했다.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부하인데. 이 때문에 같은 유대인들이 요세푸스를
배신자라고 욕했고, 오늘날 요한계시록 13장을 해석하는 신학자들은
요한계시록 13장의 바다에서 나오는 1번째 짐승은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인 로마 8번째 황제
도미티아누스이며
땅에서 올라오는 어린 양처럼 2개의 뿔들을 가진 2번째 짐승은 요세푸스를 말하는거라고 단단히 헛다리 짚고있다.)
실제로 저 힉소스 상형문자엔 양치기 목자의 지팡이가 있고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양치기들의 족장을 ‘힉소스’라 불렀기 때문에
요세푸스의 그런 단어 해석이 썩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힉소스는 종족의 이름이 아니라 당시 고대 이집트어에서 팔레스타인 양치기들의 족장을 뜻하는 말이다.
즉 어떤 특정한 종족의 이름이 아닌데다가
(그래픽으로 복원된 ‘아바리스’의 모습)
나일강 하류 삼각주의 이집트 도시 ‘아바리스Avaris(현대 마을 이름 ‘텔-엘-다바Tell el-Dab'a)’
에 기원전 1850년경에 처음 정착한 아시아계(시리아 계통의 팔레스타인 주민) 정착민들은 ‘착한 힉소스’로 볼 수 있고
기원전 1650년경에 군사적 침략 형태로 쳐들어와서 아바리스를 자기들꺼로 만들고
자기들 수도로 만든 ‘사악한 힉소스’는 먼저 정착한 선배인 착한 힉소스와 어떤 혈통적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출애굽기 1장엔 ‘요셉을 모르는 한 새로운 왕’이라고만 되어있지.
‘야곱을 모른다’라는 말은 없고 ‘이집트를 모른다’는 말도 없고
‘요셉 이와의 다른 형제들을 모른다’는 말이 없는걸로 보아
그리고 이 유대인의 조상들을 강제징용 노동자로 삼고 괴롭히고 인구를 축소시키려고
끙끙대는데 뜻대로 안되니 괴로워했다는 말로 보아
이 사악한 힉소스는 굉장히 선대 조상 때에 착한 힉소스랑 사이가 안 좋았을수도 있고
어쩌면 혈통에서 어떤 관련이 있을수가 있다.
성경 출애굽기
1:1 그때 이집트로 들어간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이름들은 이러하니, 모든 남자와 그의 가족이 야곱과 함께 왔더라. Now these are the names of the children of Israel, which came into Egypt; every man and his household came with Jacob.
1: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요 Reuben, Simeon, Levi, and Judah,
1:3 잇사칼과 스불룬과 베냐민이요 Issachar, Zebulun, and Benjamin,
1:4 단과 납탈리와 갓과 아셀이니, Dan, and Naphtali, Gad, and Asher.
1:5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모든 혼들이 칠십 명이었는데 이는 요셉이 이집트에 있었음이라. And all the souls that came out of the loins of Jacob were seventy souls: for Joseph was in Egypt already.
1:6 요셉이 죽고 그의 모든 형제들과 당대의 사람들도 모두 죽었더라. And Joseph died, and all his brethren, and all that generation.
1:7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산하고 풍성하게 번식하며, 번성하고 심히 막강해져서 그 땅이 그들로 가득 찼더라. And the children of Israel were fruitful, and increased abundantly, and multiplied, and waxed exceeding mighty; and the land was filled with them.
1:8 그때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집트를 다스리는데 Now there arose up a new king over Egypt, which knew not Joseph.
1:9 그가 그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보라, 이스라엘 자손의 백성이 우리보다 더 많고 더 강하도다. And he said unto his people, Behold, the people of the children of Israel are more and mightier than we:
1:10 오라,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자. 그들이 번성하면 전쟁이 일어날 때 그들도 우리의 원수들과 합세하여 우리를 대적하여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더라. Come on, let us deal wisely with them; lest they multiply, and it come to pass, that, when there falleth out any war, they join also unto our enemies, and fight against us, and so get them up out of the land.
1:11 그리하여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관장할 공사 감독자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짐을 지워 그들을 괴롭히니라. 그들은 파라오를 위하여 국고 성읍들로 피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더라. Therefore they did set over them taskmasters to afflict them with their burdens. And they built for Pharaoh treasure cities, Pithom and Raamses.
1:12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힐수록 그들은 더욱더 번성하고 늘어나니,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괴로워하더라. But the more they afflicted them, the more they multiplied and grew. And they were grieved because of the children of Israel.
1:13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로 엄격하게 섬기게 하여 And the Egyptians made the children of Israel to serve with rigour:
1:14 그들의 생활을 고된 노예 생활, 즉 흙 이기는 일과 벽돌 만드는 일과 들에서 섬기는 모든 일에서 더욱 힘들게 하더라.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섬기도록 하는 모든 일이 엄격하더라. And they made their lives bitter with hard bondage, in morter, and in brick, and in all manner of service in the field: all their service, wherein they made them serve, was with rigour.
이렇게 성경 출애굽기 1장의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깊은 의미가 암시되어있음에도
학자들(세상 학교의 교수들이나 고고학자들은 물론 신학교의 학장이나 교수들이나 심지어 목사들,신부들에
이르기까지)은 출애굽을 기원전 13세기 람세스 2세 때로 몰아넣을려고 애를 쓰며
이스라엘 종족의 형성을 기원전 13세기~기원전 1200년 요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막 우겨댄다.
왜냐? 학자들은 성경을 어느정도 역사성이 담긴 경전으로 보려 할 뿐
절대 어떤 순수한 의미에서의 ‘사료’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고학적 증거들과 사료들과 성경의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출애굽은 힉소스 때라 봄이 맞고
그러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림에도
세상 학교 교수들,고고학자들,신학교 학장,신학교 교수들,목사들,신부들은
한사코 그런 결론은 거부하려고 들며 온갖 핑계를 댄다.
(제임스 B 프리처드 ‘고대 근동 문학 선집’)
“이집트 제13왕조(기원전 1803년~기원전 1649년)의 브룩클린 파피루스에 적힌 그 아시아계(팔레스타인 셈shem어語 종족 계통)
노동자들의 이름들은 확실히 셈어 형식 이름들은 맞고
십보라, 잇사칼 ,야곱과 같은 혹은 관련된 성경의 유대인 족장들과 관련 있는 이름들이 확인되는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유대인의 조상들이란 증거는 없다.”면서
온갖 추악한 변명을 댄다.
아니.. 그럼 기원전 13세기 이집트 제19왕조 파라오 람세스 1세나 세티 1세나 람세스 2세나
람세스 3세나 메르넵타 때 유대인 혹은 유대인의 조상들이 노예나 노동자였다는 증거가
하나도 전혀 하나도 단 하나도 없는데도
왜 기원전 13세기에 출애굽이 있었다고 우기는가?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라곤 겨우 출애굽기 1장에 그 유대인 노예들이 요셉을 모르는 그 왕에게 채찍 맞으며
피톰,람세스 2개 도시를 지었다는 말 그 딱 그 한 구절이 유일한 증거다.
그들의 주장인즉 대강 이렇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집 '피-람세스(람세스의 집이란 뜻)'를 오늘날 마을 '칸티르'가 있는 곳에 지었고
람세스 2세는 오늘날 마을 '텔-엘-레타바'가 있는 곳에 '피-톰(아톰의 집이란 뜻)'을 지었다는 것이다.
고로 람세스와 피톰은 람세스 2세 때 지어졌으므로 출애굽은 람세스 2세 때인데
문제는 여리고는 중기 청동기 시대 마지막 해인 기원전 1550년에 대지진으로 무너져버렸다는건 고고학자들도 인정한다.
기원전 1550년 이후 후기 청동기 시대에 여리고는 그냥 작은 시골로 변해버렸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럼 정상인이라면 출애굽은 기원전 13세기 람세스 2세 때가 아니라
성경에 적힌대로 여리고 멸망 전 40년전에 출애굽 했으니 기원전 1590년이나 기원전 1600년 쯤을 출애굽으로 봐야한다.
그럼 이집트 제15왕조 그러니까 사악한 힉소스 왕조 말기 때가 아닌가!
딱딱딱 맞지 않는가!
근데 그럼에도 람세스 2세 때라고 우긴다. 출애굽 후에 여리고가 무너졌다는건 그저 기원전 9세기~기원전 7세기 J P D E인지 뭔지하는
그 유대 사관들의 조작일 뿐
모세오경에 적힌 출애굽=>40년 뱅뱅 돌고=>여리고 정복 이걸 실제 역사적 시간 순서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도 인정한다.
유대인 강제징용 노동자들 혹은
유대인의 조상이나 어떤 혈통 관련이든 뭐라도 좋으니 유대인과 비슷한 혈통의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람세스 2세 때 바글바글 했으면
그런 증거가 있어야되는데 그런 증거가 람세스 2세 때에 아니..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3세 메르넵타 통틀어 ''''하나도 없다''''는거는
그들도 인정한다.
(내가 그린 그림)
그래서 그들은 출애굽기는 뻥 신화 조작 전설이며,
기원전 13세기~기원전 1200년경 바다민족들이 이집트 해변가와 팔레스타인 해변가를 들쑤시고 혼란스러웠던
후기Late 청동기Bronze 시대Period(기원전 1550년~기원전 1200년) 말기 그러니까 기원전 13세기 초에서 중반 사이에
카나안 도시들의 상류층에게 반발한 하층민들과 아라비아의 '샤슈'라는 유목민이 서로 팀 맺고
카나안 도시 상류층을 뒤엎는 원시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한 후 '야훼'라는 신을 믿는 어떤 율법 지키는 그런 공동체 사회 '이스라엘'을 세웠고
이스라엘 12지파의 형성도 그 때이며
기원전 9세기~기원전 7세기에 유대 왕국 사관들이 자기들 조상의 역사를 심각한 수준으로 뻥을 친 결과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서이며 이 성경 책들에 어떤 역사적 사실이 조금 들어있기는 하나 거의 박혁거세 김수로 수준으로 심각하게 뻥이 쳐졌으므로
그 뻥을 가려내는 것이 우리 역사학자들 신학자들의 소임이다
진정한 신앙은 이 적힌 책들이 사실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책들에 담겨져있는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바빌로니아 앗시리아 히타이트 이집트 페르시아
에서 모방 표절을 한)에서 우리 신앙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자기들도 모를 뜻 모를 헛소리를 나불나불대고 있다.
거의 정신병적인 신념으로 똘똘 뭉쳐버린 것이고 그딴걸 믿는 학파들이 신학교,학교를 다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람세스 2세와 관련된 피톰(피-아톰),람세스(피-람세스)의 문제는 매우 쉽게 풀린다.
먼저, 이를 알려면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서 판관기(=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가 언제 '편찬'되었는지를 알아야한다.
이 부분 관련해선 역사학자들 말이 맞다. 창세기~신명기 그리고 여호수아서와 판관기는 기원전 9세기~기원전 7세기 사이에 '편찬'되었다.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는 기원전 7세기~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 쯤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는 것이 결코 '창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치 서기 12세기에 편찬된 고려의 삼국사기가 삼국시대~고려시대 꾸준히 전해져온 '사료들'을 모아서
훈련받은 전문적인 사관들이 믿을수있는 내용은 싣고 믿을 수 없는 내용은 뺀 것처럼
그런 식으로 '편찬'된 것이다.
사관들은 타임머신을 탈 수 없으므로 지명이나 종족 이름이나 문명 이름을 적을 때 당시에 사용되는 당시에 알 수 있는 지명,종족,문명의 이름들을 적었다.
그래서 창세기에 '쉬나르'는 나와도 '수메르'나 '키엔기르'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창세기 10장,11장,14장의 '쉬나르'가 수메르가 아닌게 되는건 아니다. 수메르다. 창세기 10장,11장,14장의 그 쉬나르는 수메르다.
니므롯은 두무지 혹은 길가메쉬 혹은 사르곤이고
바벨탑은 최초의 지구라트이며 대략 기원전 5000년경에 건축되었을 것이고
소돔 고모라 침략한 쉬나르 왕 아므라펠은 수메르 우르제3왕조의 왕 '아마르신'이다.
이런 부분을 이런 개념을 인지한 상태에서 피톰,람세스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피톰은 '아톰의 집'이란 뜻으로 아톰 신을 숭배하는 사원이 있어서 도시의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학자들은 이집트의 '텔 엘 레타바Tell El Retaba'란 유적지에서 람세스 2세의 화강암 조각상이랑
아톰 신의 신전이 이 곳에 있었다는 2개의 비문을 발견해서
이곳이 성서 출애굽가의 피톰이며 이 곳을 람세스 2세가 세웠구나? 라고 섣부르게 결론 내린다
그러나 보다 최근의 분석에 따르면 아툼의 집이란 이름이 이 피 아툼 혹은 '피이틈pr-itm' 은 Tell El Retaba는 물론
텔 엘 마스쿠타Tell El Maskhuta란 유적지 모두에 있는 비문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아툼의 집은 람세스 2세 시기의 도시 텔엘레타바에 있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아툼의 집은 텔엘마스쿠타 Tel El MMaskhuta로 이사 갔다.(기원전 7세기 후반)
텔엘마스쿠타Tel El Maskhuta에는 기원전 18~기원전 17세기 중기 청동기 IIB 시대의 '''''힉소스''''' 정착지가 있었다
기원전 1600년경에 힉소스는 텔엘마스쿠타에 성벽 요새를 지었고
각종 보물들로 매장된 무덤들이 가득했다.
근데 고고학자들의 발굴 결과, 텔엘레타바는 '제쿠(숙곳)'라고 불렸고
힉소스 시대 텔엘마스쿠타 주민들은 계절마다 텔엘마스쿠타에서 텔엘레타바로 텔엘레타바에서 텔엘마스쿠타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텔엘레타바도 아래 지층 파보니 힉소스 시대 정착지가 발굴되었다는 것이다.
텔엘레타바엔 람세스 2세 시대의 요새가 있다 근데 아래 지층엔 힉소스 시대 마을이 있다
마을은 흙벽돌로 통 모양의 매장실을 갖춘 무덤들이 마을 안에 있다 이런건 카나안 지역에서도 확인되는 카나안 문화의 특징이다.
(텔엘레타바Tell el-Retaba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지는 기원전 17~16세기에 제15왕조로 이집트를 통치한 시리아-팔레스타인 출신의 힉소스(Hyksos)의 존재와
관련이 있으며 발굴을 통해 이 시대의 가옥 파편과 진흙 벽돌 통 금고로 덮인 매장실이 있는 여러 힉소스 무덤이 발견되었고////
레반트(팔레스타인 일대) 문화의 전형인 힉소스(Hyksos) 문화와 마찬가지로 이 무덤은 외부의 별도 묘지가 아니라 정착지 내부에 있었다.)
힉소스를 멸망시킨 아흐모세의 제18왕조(기원전 16세기 중반)가 시작될 때(기원전 1550년)
힉소스 유적 위에 이집트 정착촌이 개발되었고
이 왕조의 중간에 텔엘레타바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버려졌고 람세스 계의 제19왕조가 시작될 때까지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발굴 연구에 따르면
텔엘마스쿠타 주민들은 가을에 파종 시작부터 가을이 끝날 때 까지 계절적 으로만 거주 했다.
텔엘마스쿠타는 장거리 무역을 위해 세워진 캐러밴 스테이션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텔엘마스쿠타Tell el-Maschuta는 더운 여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주민들은 아마도 텔엘레타바Tell er-Retaba 근처에 정착했을 것이라고 한다.
텔엘마스쿠타는 기원전 1550년 힉소스 멸망 후, 한동안 사람 안사는 유령 도시가 되었다가
BC 7세기 후반에 파라오 느코 2세(Necho II)에 의해 다시 재건되고 여기로 아툼의 집이 이사 왔다.
그리고 바로 텔엘마스쿠타의 지명은 '피톰'으로 바뀌었다.
기원전 7세기 출애굽기를 적던 유대 사관은 이 텔엘마스쿠타의 '피톰' 지명을 출애굽기에 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출애굽기의 요셉이 모르는 왕이 유대인 조상들을 강제징용해서 세운 피톰은 텔엘마스쿠타로서 힉소스의 무역 요새다.
그럼 피톰과 함께 세운 도시 '람세스'는?
이 역시 문제는 간단하다. 기원전 7세기 출애굽기를 적던 이름을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유대 사관이
출애굽기에 적은 그 도시 '람세스'는 결국 기원전 7세기에 확인할 수 있거나 혹은 들은 '지명'을 적은 것일 뿐이다.
람세스 그러니까 '피-람세스'의 오늘날 마을 이름은 '칸티르'다.
오늘날 이집트 마을 '칸티르'에서 람세스 2세가 세운 도시 '피-람세스'가 발굴되었는데.
바로 그 남쪽 코앞에서 힉소스 수도 '아바리스'가 발굴되었다. 아바리스의 오늘날 이름은 텔엘다바Tell el-Dab'a다.
계속 힉소스가 연관된다. 힉소스가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오는 야곱마냥
힉소스가 자꾸 람세스 2세의 발꿈치를 잡고 나오고 있다.
출애굽은 람세스 2세 때가 아니라 힉소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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