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고의 요리사, 피에르 코프만
강레오가 주방에서 겪은 시련은 혹독합니다. 재밌는 일화들이 많지요.
강레오는 최고의 셰프들을 거쳐갔는데, 보통 그런 셰프들은 포악하기로 유명합니다. 팬을 치우라고 했는데 깜박하고 안치우면 기름이 든 팬을 던지는가 하면, 초코릿무스를 잘 못 만들었다며 달걀 한판을 머리에 던지기도 합니다. 하나씩 말이죠. 그의 스승 피엘 코르만도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강레오가 독감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눈물 콧물이 줄줄 흐르고 고열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죠. 피엘 코프만이 다가와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감기에 걸려 그렇다고 하자, 코프만은 어깨를 쭉 피라고 하더니, 주먹으로 강레오의 배를 세차게 후려 갈겼습니다. 숨이 막히고 하늘이 노래졌죠. 그러더니 하는 말이,
\"주먹이 아파? 몸살이 아파?\"
\"주먹이 더 아픕니다!\"
\"그럼 죽을 병은 아니니까 뛰어!\"
악명 높은 피에르 코프만
또 한번은 서비스 15분 전, 열심히 냉장고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는데, 피엘 코프만이 아직 다 안되었냐고 묻더랍니다. 네, 아직 다 안되었고 빨리 끝내겠다고 했죠. 코프만은 지하에 가서 생선 한 마리를 가져오라고 했고, 강레오가 생선을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올라와서 보니 4L짜리 기름통이 엎어진 채로 냉장고에 처박혀 있었죠. 5분이 남았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오더는 물밀 듯이 들어오고, 요리는 만들어야 하고, 냉장고까지 치우려고 하니 정신이 없었죠. 그리고 옆을 보니 피엘 코프만이 다리를 까닥이며 보고 있더랍니다. 코프만이 엎은 것이죠. 일은 미리미리 하라는 냉혹한 교훈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루 18~20시간을 일하던 강레오는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곤 했습니다. 하루는 새벽 1시에 일을 마치고 돌아와 \'오늘은 정말 일을 열심히 했다\'는 생각해 맥주 한 캔을 땄습니다. 그리고는 잠깐 정신을 잃었는데, 갑자기 알람이 울리더랍니다. 벌써 아침이 된 것이죠. 맥주는 캔만 따져있는 채로 그대로 있었다고.
작은 동양인, 어떻게 수석 요리사가 되었을까?
이렇게 힘든 유럽의 요리 바닥에서 어떻게 동양인이 수석 요리사가 되었을까?
고든 램지 셰프 밑에서 일할 때의 에피소드인데, 방법은 의외로 단순무식했습니다. 그저 남들보다 두 시간 더 일찍 나오고 두 시간 더 늦게 퇴근한 것. 원래 고기 요리를 하는 것이 주방에선 최고의 지위인데, 유럽 주방에서는 동양인에게 그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생선이나 야채요리를 시켰죠. 그래서 강레오는 두 시간 일찍 나와 자신의 일을 끝내놓고 남의 일들을 도와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기 파트에 가서 도와주고, 또 끝나고는 디저트 파트에 가서 도와주고, 그렇게 모든 섹션의 요리를 조금씩 도와주다 보니 모든 요리를 할 줄 알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저트를 담당하는 요리사가 도망을 갔습니다. 비상이 걸렸죠. 오더는 들어오는데 아무도 디저트를 만들 줄 몰랐으니까요. 그때 강레오가 나섰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는 완벽한 디저트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모습에 놀란 고든 램지는 나중에 은글슬쩍 물어봤습니다.
\"너 그럼 이건 할 줄 아니? 저건 할 줄 아니?\",
\"네, 다 할 줄 알아요.\"
\"그래? 그럼 넌 가운데 서서 애들을 도와줘라.\"
그렇게 고든 램지의 부주방장이 된 것입니다. 이후 강레오는 피에르 코프판의 유일한 한국인 수제자, 장조지, 두바이 고든 램지 레스토랑의 수셰프로서 한국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명성을 얻게 되었지요.
이제는 한국의 맛을 세계로 알리는 강레오
최고의 요리사 밑에서 배운 강레오는 스승들의 음식을 똑같이 만들 수도 있을만큼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분들의 좋은 제자로 만족할 게 아니라, 이제부터 내 스스로가 ‘나에게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겠다’고 말이지요.
7년 전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프렌치 레스토랑을 차린다고 하자 업계가 뒤숭숭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태원의 레스토랑 <마카로니 마켓>인데, 지금은 셰프 자리를 놓고 나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궁중음식연구원에서 한국의 맛을 배우고, 정여창 선생의 5백55년 제사 음식도 전수 받았습니다. 지금은 작년에는 비비고(bibigo)의 런던 1호점을 도맡아 진출시켰으며, 2012년 여름에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면서, 훈남 스타 셰프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죠.
아니 넘한거 아냐? 이건 걍 인종차별 수준인데?
나도 영국에서 일하는데, 여기애들이 특히 좀 악랄하다.. 대놓고 인종차별하는데 이젠 그냥 그런가부다 한다.. 나한테 인종차별하면 다른애들은 또 걔들 약점 가지고 지X들 하니까 그냥 똑같다고 생각하고 일하는겨
근데 암것도없이 날라갔는데 딴건모르겠고 비자가 딱딱나오나? 주위애들보면 몇년못하고오던데
말이되냐 무슨 위인전 쓰냐 600만원들고 대체 무슨 비자로 갔대? 학생비자도 통장에 잔고 증명해야지 내주는 시대에 그럼 여행비자로 갔다고치면 무보수로 일을 할순있어도 샐러리는 받을수 없는데 구라도 정도껏 쳐라 스케치에서 수쉐프로 있었단 무용담은 왜없냐 구라라서ㅋㅋㅋ
영국은 호주보다 까다롭긴해도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가능한 나라야 병신아... 일하다가 업소에서 마음에 들면 스폰서 서주고 그때부터 취업비자 전환 가능하긴한데 희귀한 케이스여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 하여튼 열등감에 질투 뚝뚝 묻은 리플 뱉고 다니는 놈들 보면 하나같이 유동이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스스로 수치를 알아야 한다.
근데 강레오 있을때면 한국 - 영국 워홀 안되던땐데
원래 있던 비자들 보수당이 다 없앴데 이민자들 쫒아낼라고 그 전에 간거겠지
강레오가쓴게 아니라 리포터가 쓴거지?
성륜// 빙신 워홀 뜷린가 2011년인가 2012년인가 부터거덩 잘알고 씨부려라 빙신아ㅋㅋ 너는 계속 레오강 빠세요ㅋㅋㅋ
꼭 줫도 없는것들이 이런걸로 까지..지들이 세상을 다 아는듯이.. 이세상 살면서 변수가얼마나 많은데 무슨 지들이 다 맞는것처럼 씨부리는거보면 타진요도 만들어진게 이해갈정도다. \'강레오 저새끼 저게말이되냐? 구라지ㅉㅉ 아님말고.\' 이런식이지. 이런애들이 요리해서 뭐한다고 참..그렇다고 나도 강레오 요리 별로 안좋아하지만 확실하지도않은걸로 사람좀 깎아내리려하지좀마.
실제로 들고가는 돈하고 비자 통과하는 돈하고 틀리다. 비자에서 요구하는 돈은 부모 명의로 된 통장 돈까지 포함된다. 진짜 위에 말 처럼 열등감에 쩔었네... 모르면 좀 가만히 있던가...
강레오욕하지마삼!!!!!내우상이거덩!!!!!!!!짜증마게하지말라규!!!!!!!!!!
우리보다더훨씬멎진인제거덩!!!멋있어~~~~~~~~##♥♥
ㄴ 워,홀비자 문제가 아니라 강레오처럼 셰프밑에서 걷어차든 기름들어잇는 팬 던지든 그거 참고 견뎠다는 내용을 더 유익하게 본거같은데?
요즘,옛날처럼주방에들어가서일배우냐?대학이고,외식조리학교에서,열심히,하고현장에 적용하지! 술마시면 ×가되고,어른몰라보고ㄱㄱ연예인병! 소설을적어라.어휴!
'농사를 크게 짓는 집안이라 일꾼들도 많아서 하루 세 끼를 늘 잔칫상처럼 차리곤 했지요' 첫줄에서 답이 나오쟈나 ~~~~그냥 강셰프는 돈많은 집 자제여서 문제없이 영국으로 고고씽 할 수 있었던거임. 뭔 600만원 ...;;;;;
재미있군ㅋㅋㅋ 워홀얘기부터 해서... 영국이랑 워홀 한지 오래 되지도 않았다는게 첫번째 문제고. 학생비자 받을 때 어디선가의 대출로 돈 잠깐만 채운다음에 입국할때는 다시 빼서 돌려주고 자기돈만 갖고 가는 사람들 수두룩하다는게 두번제 문제고. 세번째 문제는 이 글의 요지는 그게 아닌데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라는거.
여튼 나를 포함해서 우리들보다 잘난놈은 확실하다ㅋㅋ 욕하고 까봣자 얼굴에 침뱉기다
다른거 냅두고 강레오 요리 먹어 봤는데 잘하더라. 솔직히 솜씨 좋았음. 다른 해외파 셰프라는 거의 반 사기꾼 모씨와는 실력 차이가 확연하더라. 그러면 된거지 뭐.
강레오는 요리도 잘 하지만 디저트도 수준급임. 먹고 깜놀했었지.
흠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