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지갑과 핸폰 분실 사건으로 인해
(제가 시체모드로 뻗어 있을때 관제실에서 연락이
와서 빈 지갑과 핸폰 찾아오셨다더군요)
그 동안 와이프님이 제게 말을 아예 붙이지도 않으시고
이야기 할 것 있으시면 작은애 시켜서 그것도 카톡으로
하명하시더니

오늘 운동 끝내고 오니 부산 서면의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가자고 직접 말씀 하시네요.

"넵!"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아 붐비는 와중에,
갔던데 다시 가셔도 뭔가 계획이 있으셨겠거니 입다물고,
중간에 휙하니 사라지셔도 감히 소리쳐 부르거나
전화하지 않고 부동자세로 제자리 대기하고,
물건 도로 가져다 놓으시라면 재빨리 뛰어갔다가
혹여나 버리고 가실까봐 눈썹을 휘날리며 복귀했습니다.

성실한 모습에 잠시 흡족하셨던지 이야기 몇 마디
하시기에 얼었던 마음이 녹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ㅠㅠ


2층 나가는쪽에 와인코너가 있는데 쓱 둘러보고
한 두개라도 집어오려고 머리 굴리고 있는데
님의 단호한 고개저으심에 고개를 떨구고
나오는 제 심정을 저 하늘은 알고 있을까요.



집에 오는 길에 목요일 와인잔 택배로 온 것 보고
발로 확 차버리려다 말았다고 하시더군요.
마음도 넓으셔라...

이왕 이야기 나온 김에 오늘 그 잔으로 꼭 먹어보고 싶은
와인이 있다고... 먹으면 안되겠냐고...
진짜 공손히 그리고 간절히
최대한 불쌍하게 보일 표정을 짓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니 맘대로 하고 싶은것 하다가 나가 죽든지 맘대로 해라!"

나갈 생각도 죽을 생각도 추호도 없지만
맘대로 하라고 하신 그 말씀 소중하게 받들어 모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ㅠㅠ




오늘의 와인은 와라버지께서 보내주신
윌리엄스 셀렘 피노누아 2018입니다.

잘토잔에 마시고 싶어 시음후기가 늦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와라버지.






스템이 보일 정도로 영롱한 투명함이 있고
전체적인 색은 루비색입니다.

림을 보아도 역시 어린티가 나고
처음 조금 시음을 해보아도 닫힌것이 분명해보였습니다.


병 브리딩을 약 2시간 하고 본격적인 시음을 하였습니다.

혹시 와이프님이 와인과 와인잔을 어찌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문을 조금 열어놓은채 중간중간에
빼꼼히 보고 있었다는건 죽을때까지 와이프님께
이야기 하지 않을겁니다.  ㅠㅠ



향은 풍부하고 달고 진합니다.
크기는 아주 좋습니다.

처음에는 잼과 같이 진한 단 과일의 아로마가
지배적이었는데
브리딩 후에는 아로마와 부케가 잘 섞여 있습니다.

잘 익어 뭉그러질듯한 잼과 같이 달고 진한
체리, 산딸기, 딸기의 향과
부담스럽지 않은 오크, 약간의 바닐라, 후추와 계피 같은
스파이시 한 향과 특이하게 콜라 냄새가 조금 느껴집니다.
또한 약간의 흙냄새도 있습니다.

향을 휘발시켜주는 산도와 알콜이 느껴지는데
산도는 이때리와도 부르고뉴와도 조금은 틀린 느낌이며
알콜은 13.3도 보다는 약간 더 높게 노즈에서 느껴집니다.



중간 또는 중간 약간 아래의 바디감을 가지고
부드러운 텍스쳐로 입에 들어옵니다.

드라이와 오프드라이 사이의 단맛이 있으며
탄닌은 중간 이하이나 잘고 은근한 느낌이
있습니다.
산도는 중간 이상이며
이 산도가 전체의 맛을 이끌어나갑니다.

아직 터무니없이 어린 녀석이라 잠재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데 산도가 다른 요소들을 멱살잡고 끌어가고
있는듯한 느낌입니다.

발랄한듯한 산미는 지금도 괜찮지만 숙성이 좀 더 되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그때 한 입만! 와라버지. ^^



목넘김에선 상쾌하나 과도하지 않은 알콜이 느껴지며
예의 잘고 은은한 탄닌과 진하고 단 포도의 뒷맛이
중간 이상 길이의 피니쉬를 만들어냅니다.



근데 이거... 지금 먹으면 안됐는데...
좀 더 있다 먹었어야됐는데 ㅠㅠ

아직 이 녀석의 본모습을 별로 보지 못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좀 아쉽습니다.



좋은 와인을 보내주신 와라버지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와린이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