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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순간이 아니라 그 이전의 나날을 바라보는 영화다. 유배지에서 만난 촌장 엄흥도와 함께한 시간, 왕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소년으로 존재했던 순간들. 이미 정해진 끝을 바꾸려 들기보다 그 끝을 향해 쌓여 가는 하루하루를 차분히 따라간다. 결과를 아는 이야기이기에 과정이 더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고 영화는 그 지점을 정직하게 밀어붙인다.
엄흥도는 부푼 꿈으로 이를 맞이하지만 그 앞에 나타난 이는 폐위된 왕 이홍위다. 살아가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소년과 그를 감시해야 하는 촌장. 영화는 두 사람 사이의 미세한 공기의 변화를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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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까지 버텨내는 힘은 결국 인물들의 앙상블에서 나온다. 배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시대의 공기를 입체적으로 빚어내며 극의 밀도를 촘촘하게 채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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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은 이 영화가 얻은 가장 선명한 수확이다.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정서로 이홍위를 그려내며 텅 빈 눈빛만으로도 처연한 잔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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