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황찬란한 선배들이 우후죽순 있던 시절엔


김담비는 경기는 커녕 벤치에서 고구마 굽고 물주전자에 보리차 채우다가


선배들 로테이션 도느라 벤치로 들어오면


"선배님들 군고구마 시뻘겋게 잘 익었습니다. 한 입 드셔보시죠"


"난 해남고구마 아니면 안먹는 거 알지? 어디거야?"


"크읍! 익산 고구만데요."


"엎드려 뻗쳐"


김담비가 원산폭격을 받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는지 관객석에서 어떤 아저씨가 소리쳤어


"거 선배들 먹으라고 기껏 준비하다 실수한건데 너무한 거 아뇨?"


라며 김담비 편을 들어주자


여농계 대선배 중 하나였던 ○○ 선수가 나와서 말했지


"관무불가침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무림인들에겐 무림인들만의 법칙이 적용되듯이 저희들도 전통이라는 게 있습니다. 부디 양해해주시지요."


그렇게 김담비는 2쿼터 끝나고 정기 휴식타임이 될 때까지 얼차려를 받았었지


누군가는 군대도 안다녀왔으면서 왜 그렇게 군기를 잡냐고 힐난하기도 했지만


고구마 산지 하나도 선배님들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기합과 체벌을 받는 엄정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여자농구는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어


국제 무대에서 언제나 승전보를 가져왔던 대선배들의 위상은 대단했고 그들의 말이 곧 경전이자 헌법이었지


상당수 어린 선수들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유를 애타게 갈망하다 결국 조기 은퇴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끝끝내 그 독한 시절을 견뎌내고 성장한 김담비는 8관왕의 대업을 이루며 만인의 정점에 서게 됐어


세상이 바뀌고 더 이상 벤치에는 고구마와 물주전자를 볼 수 없게 됐으나 동시에 한국 여자농구의 전성기도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김담비가 굽던 고구마에는 신인 선수들의 비애와 애환뿐만 아니라 끈기와 정신력을 강조해왔던 한국 여자농구의 정수가 담겼었던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오늘도 방긋밧긋 웃으며 인스타에 사진올리는 허유정이나 종료 1초 남기고 자폭을 시전했던 박소희를 상기하니 


신인시절 야밤에 선배들 야식을 챙기기 위해 아궁이에 쭈구리고 앉아 불을 붙이고 물집 잡힌 손으로 고구마를 뒤적이며 익었는지 확인하면서 새벽잠을 설쳤던 수많은 김담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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