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네브래스카 이야기에서 다룬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자서전 <날 때부터 달아날 운명>이 친근하고 허물없는 어조로 자기 이야기를 전달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키스 리처즈의 자서전 <생>은 솔직한 고백과 증언의 연속이다.


키스 리처즈는 본인의 자서전에서 rock and roll은 강한 백비트를 더해 재즈를 연주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언젠가 키스리처즈가 조롱조로 말하기를 모두가 rock을 연주하는데, roll은 어디다 빼먹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rock이 육체적 힘을 뜻한다면 roll은 힘의 원천인 심장 고동과도 같다. 블루스와 재즈의 리듬감에 기초한 roll이 없이는전자악기의 힘인 rock은 소음에 가까워지고, rock 없는 roll은 맥아리 없는 움직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들은 rock과 roll의 균형을 자신의 개성을 더해 연주하던 사람들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두 배우, 알과 밥을 봐도 누가 rock을 연주하고 누가 roll을 연주하는지 알 수 있다. <스카페이스> 같은작품 등에서 격정을 토하는 알 파치노는  rock이 좋았던 배우고, <택시 드라이버> 등에서 사소한 제스처와 표정으로 인물의 사람됨을 표현하는 밥 드니로는 roll이 좋았던 배우다. 보통 rock을 연기하는 배우에게 눈길이 먼저 가기 십상이지만, roll이 더해진 연기를 통해 구현된 캐릭터의 생명력이 더 강한 편이기도 하다.


복싱에 있어 rock과 roll은 무엇일까? 스트랭스, 펀칭 파워, 펀치의 스냅, 오버럴 스피드, 턱과 내구성 등이 rock이라면, 개성과 리듬, 펀더멘털, 링 아이큐, 퀵네스와 리플렉스, 유연성 따위가 roll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이 바닥의 거장들은 rock과 roll의 균형을 승리에 대한 의지와 담대한 심장을 더해 표현해왔다.


그런 점에서 스티븐 풀턴은 roll에 비해 rock이 부족한 선수고 그래서 이노우에 나오야에게 졌다. 그런데 이노우에는 슬로피 잽을 던지는 척하며 상대를 솎이면서 카운터펀치를 날릴 기회를 만들고, 잽으로 상대 바디를 찍어대며 상대를 교란시키고, 상대의 펀치를 흘리며 첵훅을 던질 줄 아는, roll이 좋은 선수이기도 하다.. 결국 rock 과 roll 모두에서 이노우에가 풀턴보다 나은 선수이고 나는 이 점이 그날의 마스터풀 퍼포먼스의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이노우에-풀턴과 스펜스-크로포드는 불과 며칠을 간격으로 현 시점 최고의 선수가 누구인지를 가리는 무대였고, 따라서 업계 사람들과 팬들은 지난주를 가리켜 복싱사에 몇 안 되는 최고의 한 주 중 하나라 칭했다. 그리고 이노우에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해당 자리를 선취한 이상, 크로포드는 단순한 승리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예전부터 옮겨왔듯 복싱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할 만한 이들의 절대 다수는 크로포드가 스펜스를 스탑시킬 것이라고 예상해 왔다. 그들의 예상을 rock과 roll로 대치해 보면, 스펜스가 rock에서는 근소하게 앞서는 구석이 있어도 크로포드가roll에서 확연히 낫기 때문에 크로포드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신뢰할 만한 안목을 갖춘 평자들도 스펜스가 경기 초반 잽과 바디샷으로 크로포드를 괴롭히다가 경기 중반 자기 리듬을 찾은 크로포드가 카운터펀치를 전달하기시작해 후반에 스펜스를 끝낸다는 예상을 내놓았고 이에 대해 일종의 컨센서스가 형성됐다.


경기에 앞서 크로포드를 늘 곁에서 관찰하는 샤쿠어 스티븐슨은 캠프에서 크로포드가 스펜스의 잽을 봉쇄하는 데에 힘을 쏟아왔고, 스펜스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진의가 무엇인지 아리송했던 스티븐슨의 발언은 1라운드의 시작과 함께 현실이 되었다. 마이크 타이슨이 이 날 공성망치라고 칭했던 크로포드의 잽은 굳게 잠근 가드뒤에 감춰진 잘 조준된 0.44처럼 스펜스의 머리를 두드려댔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크로포드가 말하길, 스펜스가 잽이 좋기 때문에 평소처럼 플리커를 휘두르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어 단단하고 강력한 잽을 단련해 왔다고 했다. 스펜스의 잽을 묶어두는 게 훈련의 주된 포커스 중 하나였다고.


크로포드 팀의 수장은 그의 유사아버지이자 빅브라더인 보맥이지만, 크로포드가 당대 최고의 카운터펀처로 활약할 수 있게끔 리듬과 타이밍의 조율을 돕는 사람은 이사우 투토 디에게스이다. 이사우 디에게스가 카운터펀칭 기술을 단련시키는데 있어 가장 많이 참조한 모델은 그 유명한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다. 그래서 수비지향적인 선배 카운터펀처인 메이웨더나 홉킨스와는 달리, 크로포드는 백풋을 밟는 듯하다가 다이너마이트를 던지고 펀치 교환을 받아주다 갑자기 상대를 낚아챈다.


스펜스는 잽을 던지며 원하는 곳에 발을 디뎌가며 포지션을 가다듬고 크로포드의 몸통을 후벼파낼 생각이었지만 크로포드의 잽에 한 번 울고, 몸통을 굳게 잠근 크로포드의 리어 핸드에 또 한 번 울어야 했다. 평범한 예상과 달라 이 시합에서도 크로포드가 rock 과 roll 모두에서 스펜스보다 나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크로포드는 그 둘의 균형이 무엇인지를 시퀀스의 연결 속에서 한 치의 빈틈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구현해냈다.


147로 체급을 옮긴 뒤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되는 시합들이 너무 잣다는 비판을 받아온 크로포드는 이날 그에 대한 대가를 피로 지불했다. 다만 그 피는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포스트 메이웨더 시대의 웰터웨이트의 왕이 누구인지 비로소 정해졌고, 이 시대 최고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동료와 후배들을 위해 위대함으로 가는 이정표를 세워 준 크로포드는 라스 베이거스 숙소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있는 고향땅 오마하, 네브래스카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