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3일, 테런스 크로퍼드는 140lbs 무대의 최고를 가르기 위해 mgm grand에서 빅토르 포스톨과 겨뤘다. 많은 복싱 애디지 중에 '후커에는 훅으로 맞서지 말고, 재버에는 잽으로 맞서라'라는 말이 있다. 잽이 좋은 레인지 복서 포스톨에 맞서, 이날 크로퍼드는 리드핸드와 무브먼트로 응수했다. 크로퍼드는 포스톨이 잽을 던지면 더 나은 잽을 돌려주고 어퍼바디와 풋 무브먼트로 포스톨의 리어핸드를 잠가두었다. 크로퍼드는 12 라운드 내내 춤을 추었고, 포스톨은 커리어를 결정짓는 패배를 당하고 말았던 것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이때 포스톨의 헤드 트레이너는 매니 파퀴아오의 트레이너이기도 한 프레디 로치였다. 로치는 크로퍼드-포스톨 시합 직후 탑랭크의 관계자들과 만나 파퀴아오와 크로퍼드 간의 시합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근 2년 후, 크로퍼드가 147lbs로 자리를 옮겨 파퀴아오가 부당하게 빼앗긴 WBO 타이틀을 손에 쥐자 탑랭크는 파퀴아오-크로퍼드를 추진하게 된다. 이때 파퀴아오가 요구한 개런티는 $20m이었다. 기대수익과 비용을 고려할 때 실현 불가능한 숫자였고, 크로퍼드 파이트를 뒤로 한 채 파퀴아오는 탑랭크를 떠나 알 헤이먼과 손을 잡고 새로운 역사를 남겼다. 이 모든 것이 지금은 다 지난 이야기.


팀 브래들리의 오랜 트레이너였고 현재 이스라일 마드리모프를 지도하는 호엘 디아스는 대 파퀴아오 훈련 캠프에 찾아와 브래들리와 스파링했던 크로퍼드를 잘 기억하고 있다. 96년 하계 올림픽 팀 usa 멤버였던 잽 주다와 플로이드 메이웨더는 언젠가 마이크 타이슨의 자택에 초대 받은 적이 있다. 둘을 앉혀놓은 자리에서 타이슨은 체격이 엇비슷한 주다와 메이웨더를 보며 '언젠가 너희 둘이 프로페셔널 무대에서 맞붙는 날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주다와 메이웨더는 '친구 사이에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며 반문했다. 타이슨은 웃으며 눈이 휘둥그레질 제안을 받으면 마음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호엘 디아스는 브래들리가 자신은 자신의 친구인 크로퍼드와 싸울 생각이 없다고 발언했던 것이 여전히 못마땅한 모양이다.


리야드 시즌 카드의 미국 시장성에 대해 사우디 주최자들이 다소 실망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실제로 수요를 가장하기 위해 티켓 수량을 조절하고 나중에는 할인도 단행했지만 대회 당일 객석에는 주인 없는 자리가 더러 있었다. 비판적 관찰자들은 미국 복싱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스포츠워싱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상황에 분노하며 워닝 사인을 보내고 있다. 이벤트 기획자가 이벤트의 중간을 스스로에게 경의를 표하는 자리에 할애하는 것은 한국 복싱처럼 비정상적 시장에서나 볼 법한 일이기는 하다. 리야드 시즌은 스포츠워싱을 넘어 문화적, 지정학적 클라우트를 목표로 하는 관제사업이다. 이날 BMO 스테이디엄을 찾은 사람들의 손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홍보하는 전단물이 건네졌다. 투르키 알라셰이크는 자신에게 줄을 대려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고 있겠지만 그들의 도덕성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미국 복싱은 보다 쓰레기 같은 다수와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소수로 이루어져 있다. 에디 헌이 사울 알바레스와 만나 알바레스에게 투르키 알 셰이크가 비지니스를 의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알바레스는 자신과 이야기하고 싶다면 9월 대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전했다. 자신과 일하고 싶으면 그들이 아니라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라는 것이다. 복싱과 사우디의 불안한 결혼생활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두고볼 일이다. 나는 사우디를 트랜젼트로 본다.


미국 복서들은 링 위에서 춤을 출 때 백 풋을 밟고 사이드 투 사이드 무브먼트로 공간을 폭넓게 활용하는 데에 집중하는 반면, 동유럽 복서들은 춤을 출 때 가드를 세우고 프론트 풋을 밟으며 상대를 압박한다. 상대방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이들이 끊임없이 날아드는 비행물체처럼 보일 것이다. 우시크도 자신보다 사이즈가 훨씬 큰 퓨리를 상대로 춤을 췄다. 퓨리는 날아드는 비행물체가 파리 또는 모기라고 믿었지만 그 정체는 말벌이었고 퓨리는 벌 떼의 습격을 받은 몰골로 링을 떠나야 했다.


경기 당일, 마드리모프도 우시크와 로머첸커처럼 춤을 추기로 결정했다. 크로퍼드는 리드 핸드를 미끼로 쓰며 마드리모프가 미끼를 물면 하프스탭 백 & 풀 레프트핸드로 마드리모프를 박살낼 계획이었다. 이전 시합들에서 마드리모프가 어느 시점부터 가드를 풀고 상대를 향해 오버리치하는 모습을 보여왔던 점을 생각해보면 크로퍼드의 전략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마드리모프는 한번 춤추기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르는 무용수였고 크로퍼드가 던진 미끼를 좀처럼 물지 않는 영리한 복서였다. 크로퍼드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마드리모프의 페이션스에 놀랐다고 밝혔다. 마드리모프는 크로퍼드 앞에서 끊임없이 춤추며 자신의 차례를 침착하게 기다렸고, 기회가 오면 튼튼한 로워 바디와 밸런스를 바탕으로 리어 핸드를 적중하고는 자신의 컴포트 존으로 돌아갔다. 이런 식으로 마드리모프는 경기 후반까지 많은 라운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일리트 복서가 라운드를 훔치면 마스터풀 복서는 디시전을 훔친다. 챔피언십 라운드에 접어들면서 크로퍼드는 세컨드 기어를 발동하며 마드리모프를 몰아부쳤고 이전 라운드에서 바디에 큰 충격을 받은 마드리모프는 이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었다. 마드리모프가 라운드를 훔치기 위해 힘을 뺀 사이 크로퍼드는 저지들을 설득하며 디시전을 훔쳐 간 것이다.


얼마 전 참담한 대선 토론 퍼포먼스 후 조 바이든이 대선 후보 사퇴 압박을 받던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민주당 내부의 전방위적 압박에도 바이든이 물러나지 않자 당에서는 그에게 최후통첩을 보내며 easy way와 hard way 중 선택을 강요했다. 이와 동시에, 전 연방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는 사람들을 모아 바이든에 공개 사퇴 촉구를 단행할 예정이었다. 곱게 나가든, 험하게 나가든 선택은 자유지만 바이든은 후보직을 사퇴해야 했고 이지 웨이를 선택했다. 자긍심 강한 크로퍼드는 이날 본인의 프라이드에 상처를 남기는 일, 두 가지를 경험했다. 하나는 본인의 완력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 아웃머슬, 아웃허슬 당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12 라운드에 일어났는데, 크로퍼드는 해당 라운드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는 판단과 동시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백 풋을 밟으며 춤을 췄다. 이때 크로퍼드는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자신의 이고와 타협하고 easy way를 선택한 것인데 사실은 우리 모두 이와 비슷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라운드 도둑과 디시전 도둑의 대결은 그렇게 후자의 승리로 마무리됐고, 크로퍼드는 이제 두란, 위태커, 델 라 호야, 메이웨더, 파퀴아오와 함께 -135부터 -154 사이 모든 체급에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