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로 전진하는 독일 쓰레기들이 노인들, 여자들, 그리고 어린이들을 앞장 세우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런 자들에게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볼셰비키들이 레닌그라드에 있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만약 이런 볼셰비키들이 있다면 그들은 독일 파쇼주의자들 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에 먼저 제거하여야 한다. 내 충고는 감정에 매달리지 말고 적과 자의적이나 타의적인 공모자들을 박살내라는 것이다. 독일군과 그들의 앞잡이들을. 그들이 누군지 신경쓰지 말고 전력을 다해 강타하라. 그들을 무너뜨려라. 타의건 자의건 적은 적이다.
1941년 9월 21일 04:00에 스탈린 동지가 구술함.
샤포시니코프 ]
그루지야 고리에서 구두공의 아들로 태어난 스탈린은 인류역사상 최고의 악인을 꼽는다면 적어도 세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다. 독일진형에서 총통 아돌프 히틀러,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 SD & 게슈타포& 유태인 전멸계획 책임자 R. 하이드리히등 상당한 라이벌이 있을 뿐이다.
그가 한 죄업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지목 되고 있는 것중 하나가,
3차에 걸친 대숙청을 뜻하는 ‘반혁명재판\'(1936~38) 일 것이다.
이 것은 한 전쟁을 앞두고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심각하게 자해를 한 사건이다.
이 대숙청으로 모든 군관구 사령관, 군관구 참모장 및 대리의 90%,
군단 및 사단장의 80%,
참모장교 및 참모장의 90%가 해임 되었다.
숫자로 보자면 1937년 5월부터 1938년 9월까지 총 3만6761명의 육군과 약 3000명의 해군이 숙청 당했고
그중에서 대위에서 원수까지 837명의 지휘관 중에 720명이 숙청당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숙청은 사형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더 경이로운 사실은 스탈린이 일인절대 권력을 갖추어 나갈때 대숙청중 죽은 사람의 숫자는 700만에 달한 다는 것이다.
당시 소련 인구가 2억이 안됐다는 점을 보면 이것은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그루지야의 인간백정의 눈에는 모두가 자기의 절대권력에 도전할 적대세력이라고 보였던 것이다. 그의 소심하고 의심많은 성격은 자신의 뜻에 조금이라도 배치 되는 자는 살려 둘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국 장교들의 대 학살이 독소전 초지 엄청난 패배의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소련군은 숙청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이 문제있는 군대였다.
내가 보기엔 소련의 전쟁초기의 패배는 새로운 전쟁방식을 이해 하지 못 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소련은 폴란드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전쟁방식을 이해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전쟁을 수행하는 독일에게 격파 당한 것이다.
소련은 독일에 비해 군대가 몇배로 많은 것은 물론 항공기와 전차에 수에서도 앞서며
무기들의 질은 부분적으로 독일에 앞서기도 했다.
게다가 기관총보급률이 높아 부대당 화력도 상당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무기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문제이다.
독일은 소련에 비해 그다지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은 무기를 이용하였고, 군대의 수도 적었지만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어 냈다.
장교단이 대규모로 숙청당하든 말든 그것은 둘째라고 본다.
소련은 폴란드와 프랑스의 경우를 뻔히 보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가장 큰 이유는 소련이 스탈린이라는 사람에 의한 1인 독제지배 체제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민주주의라면 최고지도자가 대세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견제 해줄 수도 있고, 영국의 경우처럼 최고지도자가 교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볼셰비키즘 소련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스탈린에게 그 누구도 충고란 것을 할 수 없었다. 스탈린 곁에는 그의 말이 신의 말씀과 동격이라고 생각 하는 자들로만 채워 졌다. 만약 스탈린이 옳은 사고를 하고 있다면 이것은 강력한 추진력이 될 수 있겠지만, 틀린 사고를 하고 있다면 부딛쳐 박살 날때 까지 앞만 보고 내달리 수 밖에 없다.
전쟁 중에도 스탈린의 인간 백정 행위는 계속 됐다. 후퇴하면 죽인다는 그의 생각은 전률스러울 정도였다.
알다시피 소련군은 초기에 수천km나 패주 하였다. 패주의 가장 큰 책임자는 스탈린 자신이였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자이다.
독소전쟁이 시작 한지 1달 후인 1941년 7월 22일. 패전의 책임자로 파블로프 육군대장(서부전선사령관), 클리모브스키 소장(서부전선 참모장), 그레고리예프 소장(서부전선 통신책임자). 코로브코프 소장(4군 사령관)등이 총살형에 처했졌다.
(스탈린 사후인 15년 후, 참모부에 의하여 전부 무죄 선고)
그가 생각하는 전투는 절대로 후퇴하지 않고 제자리를 고수하며 싸우는 방식이였다.
이런 그에게 일선의 소련군들은 전쟁 시작 2주만에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하였다.
[적의 사망자 131만 2천명
6월 29일 현재 아군의 실종자와 포로 숫자는 약 1만 5천명
뿐만 아니라 여러전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전투에서 적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렇지만 아군이 후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의) 피해를 계산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매사가 이런 식이였기 때문에 모스크바에 있는 스탈린이 정확한 전황파악을 하여 전쟁을 수행 한다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가 공격명령을 내린 사단은 이미 전멸 되있기 일수였고, 강력한 반격에 만족을 표하고 있는 사단은 사실은 후퇴중이였다.
독일군의 포로였다가 탈출한 자들은 바로 KGB의 전신인 NKVD의 관리 하에 수용소 행이다.
심지어 고립된 상황속에 영웅적인 전투를 수행한 빨찌산들도 적의 점령지에 있었다는 이유로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로 직행 하였다.
적에게 항복한 자들의 가족이나, 심지어 그 민족을 독일의 손에 안닫는 곳으로 강제이주 시키는 일은 스탈린에게는 당연한 행위였다.
체첸, 잉구시, 발카르, 카라차이, 크리미아, 타타르, 칼미크스, 메스케티안 투르크족등이 강제 이주 당하였다. 이들의 수는 수백만에 달하였다.(이들 민족은 배신자도 있었지만 수만은 전쟁영웅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체첸-잉구시족은 전쟁중 36명의 전쟁영웅을 배출 하였다.)
하지만 배신자 민족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한 민족보다 더 많은 배신자를 배출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도 강제이주시켜야 한다. 그러나 스탈린은 소련 전체를 차지하는 이들 민족만은 어쩌지 못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소련인민의 피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독일군 후방에 40~60km의 거리까지, 그리고 도로 좌우로부터 20~30km내에 있는 모든 주거지역을 파괴하고 불질러라]
소련인은 과연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아무리 절망스러운 전투라고 할지라고 자신의 따뜻한 고향집을 위해 싸울 것이다. 하지만 스탈린은 그러한 고향집들을 독일군이 이용 못하도록 모조리 초토화 시켰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집은 빈집이 아니고 소련군의 가족들이 사는 집이라는 점이다.
항공폭격, 곡사포, 화기, 정찰반, 스키부대, 화염병을 동원하여 소련인이 사는 도시들이 소련인에 의해 파괴되었다.
징계부대(순찰부대)와 형벌부대가 소련군에게 운용된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가. 후퇴한다는 정신 자세는 결정적으로 제거되어야 한다.
나. 방어 위치의 자의적인 포기를 허락한 군 사령관들은 해고되어 참모본부로 송환되어 즉시 군사재판을 받아야 한다.
다. 전방의 상황에 따라 각각 800명 정도로 구성되는 하나 내지 세 개의 징계 대대가 전방에 조직되어야 한다. 이 대대에는 잘못을 저지른 중간급 및 고급 장교들과 유사한 직위의 정치 요원들이 보내어 질 것이다.]
예측하셨다 시피 이것이 그 유명한 형벌부대이다. 이들은 바로 자살특공대로 사실상 맨몸으로 적의 포화에 노출된체 적의 방어진지를 뚫는데 사용되었다.
집단군당 10~15개씩 보유한 형벌대대들은 사실상 100% 전멸을 향해 뛰어 갔다.
또한 징계부대(순찰부대)역시 공포스러웠다.
무장이 잘된 부대들로, 각 사단뒤에 위치 해 있다가 그들이 후퇴하면 모조리 사살해 버렸다.(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 잘 표현되어 있다.)
소련군들은 앞에는 독일군들의 총화속에, 뒤에는 스탈린의 총화속에 끼인체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전투를 수행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군들은 어짜피 죽을꺼 싸우다 죽자는 생각속에 경의적인 방어력이나 돌파력을 종종 보여 주었다. 이미 살기를 포기한 그들의 능력은 엄청 났다. 이러한 결사적인 힘이 2차대전을 소련의 승리로 안겨 줬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스탈린의 손아귀에서 탈출할려는 자들도 엄청났다.
그들의 숫자는 막대하였는데 심지어 확실한 승리가 보장된 1944년에는 소련군 전쟁포로 16명중 1명이 탈영병 이였다.
미군, 영국군의 탈영병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본다면 이 숫자는 믿어지지 않을정도의 수치이다.
이러한 탈영병들은 인간생명을 경시하는 스탈린에 의하여 발생 된 것이다.
또한 많은 소련인들이 스탈린과 볼셰비키즘을 물리치기 위하여 독일군에 자원하기도 하였다.
물론 배고픈 포로수용소에서 나오기 위해 독일군에 들어간 자들도 있었지만, 이들까지 모두 포함하여 소련출신 독일군은 150만명에 달하였다. 사단으로 치면 100개나 되는 엄청난 소련인들이 독일군과 함께 싸운 것이다.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이 소련을 국경을 넘어 들어오자, 우크라이나, 코카서스, 코사크, 발트삼국등에서 수 많은 인민들이 독일군을 환영하였다.
이들은 스스로를 소련인이라고 부르는 것 마져 거부하고 소련과 싸우는데 목숨을 바쳤다.
만약 포로출신들로 구성된 자유러시아군(ROA)에게 점령지역을 맏기고 전쟁을 2차 적백내전형태로 끌고 나갔다면 독소전쟁은 히틀러에게 매우 유리한 국면으로 나갔을 수도 있다. 안드레이 블라소프장군이 이끄는 ROA는 충분히 대의명분이 있었다.
또한 소련인민중 매우 많은 수가 스탈린을 극도로 증오하였다.
그이유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앞에서 오는 히틀러 못지 않게 뒤에서 공격하는 스탈린 때문이다.
스탈린이야 말로 2차대전 중 최고의 인간백정이였다.
네이버 펌 milcamp님 작성
이 쉑히 소까네
솔직히말해 스탈린이 똘끼넘치다 못해 좔좔흐르는 새키는 맞잖소 -_-;;
히틀러가 스탈린을 그루지아의 개백정이라고 했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