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은 영국-프랑스 진형과 독일진형에 대해 계속 연구를 하였다.
그의 정보통은 아래와 같은 정보를 그에게 제공하였다.
[
1939년 여름경 각 진형의 전력은 다음과 같다.
독일
370만 명의 지상병력(이 중 거의 절반은 기계화되었음), 탱크 3195대, 대포와 박격포 2만 6000문 이상, 공군 약 40만명, 항공기 4000여대, 해군 약 16만명, 전함 107척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전력이라고 판단.
영국-프랑스
독일이 폴란드 침공시 독일로 86개 보병 연대 투입 가능
소련
120개 보병사단 투입 준비
]
당시 상화에 대해 아시는 분은 고개를 갸우뚱 하실 것이다.
\"어라? 독일이 언제 그렇게 많이 기계화 되었지?\'
저의 생각도 그와 같다. 스탈린이 얻는 정보는 확실히 과장된 상태인 것 같다.
보병이 아직 기계화가 제대로 안이루어 진것은 물론, 탱크도 이름만 탱크지 주로 1,2호 전차로 이루어진 보병전투차 수준이였다.
또한 전함이 아니고 군함일텐데 그중 전함은 2척, 중순양함 3척, 경순양함 5척, 장갑전함 3척(포켓전함)이 배치 되거나 건조된 상태인데 겨우 이것도 해군 수상전력인가 의심 스럽다.
사실 이때는 소련에 비해 영국-프랑스 쪽이 독일의 전력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 더 크다.
소련은 독일의 과대 평가 하였고, 영국-프랑스는 독일은 약간 과소 평가 하고 이탈리아가 독일 수준의 강군 이라고 평가 하였다. 특히 이탈리아의 해군에 대해서는 높은 수준이라 생각하여 전략적 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점은 히틀러도 마찬 가지로 부족한 독일의 해군을 이탈리아 해군이 매꾸어 줄지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말기 히틀러는 뭇솔리니가 자신을 속였다고 날뛴 것이다. 하지만 속인게 아니다. 뭇솔리니도, 이탈리아 국민들도, 영국-프랑스도 이탈리아군이 그렇게 찐따짓을 할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이런상태에서 스탈린은 이전글에서 말한 것 처럼 영-프와 불가침 조약을 맺고 싶었지만 그들이 거부 하여 초조한 상태였다. 그리고 전쟁은 점점 다가 오는 것을 알았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 한다는 것은 세계 각국 수뇌부에게는 공공연한 비밀 이였다.
그리고 그당시 소련의 보로실로프가 영-프의 대표단 단장 드락스와 교섭 하고 있던 것 처럼
소련의 외상겸 수상 몰로토프와 독일의 외상 리벤트로프는 교섭 중이였다.
먼저 영-프와의 교섭은 8월 20일 아침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같은날 스탈린에게 히틀러의 전문이 날아 왔다.
[
스탈린 귀하
1939년 8월 20일
1. 본인은 독일과 소련의 관계 개선을 위한 디딤돌인 새로운 독.소 무역 협정의 서명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2.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의 체결은 장기적인 독일 정책임을 의미한다.
3. 귀측의 외무장관 몰로토프가 전달한 불가침 조약을 수락하지만 이와 관련된 몇가지 문제점들을 가장 신속히 설명하고자 한다.
4. 독일과 폴란드 간의 갈등은 더 이상 지탱 할 수 없다. 폴란드의 대국에 대한 무례한 행위는 언제라도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5. 양국이 함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의도가 있다면 빨리 서둘러야 한다. 그러므로 본인은 귀하가 나의 외무장관을 8월 22일(화), 혹은 늦어도 8월 23일(수)에 맞이 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귀하의 즉각적인 회신을 요망한다.
아돌프 히틀러
]
역시 전격전의 히틀러 다왔다. 히틀러로 서는 좀 서두르는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히틀러가 먼저 연락을 하자 스탈린은 고민 하였다.
스탈린은 포소크레비셰프의 보좌관인 드빈스키를 시켜 히틀러 및 파쇼주의에 관련된 모든 유용한 서적을 달라고 하여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훨씬 전인 1939년 3월 10일 제 18차 소련 공산당 전당대회 밤이였다.
그는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을 오랫동안 읽으면서 히틀러가 동부, 즉 소련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나의 투쟁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었다.
\"우리가 유럽의 새로운 영토에 관하여 말할 때 이는 러시아 및 그 주변국가들만을 가리킨다. 우리는 동쪽을 향하지도 서쪽을 향하지도 않으나, 단지 우리 독일 민족에 필요한 영토를 확보하는 동부정책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솔찍히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정말 졸작이라 SS 간부들도 읽기를 포기 한다. 그런 책을 스탈린이 정독 할 정도면 관심이 보통 지대 한것이 아니였다.
게다가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 독-소전쟁은 필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당시 스탈린은 히틀러의 <나의 투쟁> 말고도 콘레드 하이든의 저서 <독일 파쇼주의의 역사>를 읽었다. 그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히틀러는 자신의 약속조차 모르기 때문에 그의 약속은 신빙성이 있는 동반자의 약속이 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약속을 어긴다.\"
그런데 이 히틀러라는 놈이 자신과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전보를 보내지 않았는가.
이때쯤 스탈린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어느 한쪽과 동맹을 맺기는 맺어야 겠는데
영-프는 원하지 않고 독일은 히틀러가 직접 동맹을 맺기를 요청하였다. 이걸 우쩔까?
참 골치 아픈 일이다. 철학인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스탈린의 답장은 다음과 같다.
[
히틀러 총통 귀하
1939년 8월 21일
귀하의 서한에 감사한다. 나는 독일과 소련간의 불가침 협정을 계기로 양국간의 정치적 관계가 개선 되었으면 한다.
양국의 국민들은 평화로운 관계가 필요하다. 독일 정부가 불가침 조약에 합의키로 한 사실은 정치적 갈등의 제거와 양국간의 평화와 협력을 구축할 계기가 될 것이다.
소련정부는 독일 외상 리벤트로프의 8월 23일 모스크바 방문에 동의하는 것을 귀하께 알리라고 나에게 지시 했다.
스탈린
]
스탈린의 악마와 손 잡는 것을 선택하였다.
8월 23일 독일의 외상 리벤트로프는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가 그날 바로 불가침조약에 서명 하였다.
불가침 기간은 10년이였다.
(원래 리벤트로프가 원하던 기간은 25년이였다.)
또한 이면계약으로 독일과 소련은 전 유럽을 반으로 나눠 같기로 하였다.
1주일 후 독일이 침략할 폴란드는 소련과 반씩 나눠 같기로 합의 하였다.
하지만 이 이면계약서의 원본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레닌, 스탈린과 함께 볼셰비키 3대 지도자중 한명인 트로츠키는
스탈린과 반대 되는 공산이론을 같고 있는 아주 주요한 사람인데
그당시 스탈린을 피해 멕시코로 망명가있는 상태였다.
(스머프의 파파스머프가 스탈린이고 똘똘이 스머프가 트로츠키라고 한다.)
그는 히틀러와 스탈린이 매우 닮은 사람이라고 한적이 있으며,
독-소가 맺은 \'불가침 및 합의에 관한 선언문\'을 보고
\"스탈린과 히틀러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스탈린주의와 파쇼주의는 동맹 관계를 맺었다\"
라고 평가 하였다. 그외의 다수의 공산당은 조약을 불쾌하게 생각했으며
서유럽은 이조약에 관한 예기를 듣고 불안과 초조감에 빠져 들었다.
수고했어. 무플방지위원회. 잘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