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폰 비스마르크

1815년 4월 1일 출생
조선의 안동김씨, 풍양조씨에 버금가는 명문세도가의 아들로서 젊은 시절에는 양아치였습니다.
그러나 명문 괴팅겐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처음부터 고위직 관료의 길을 걸었습니다.
1859년 러시아주재 프로이센 대사
1862년 프랑스주재 프로이센 대사
1862년 9월 프로이센왕국 수상
1871년~1890년 독일 제2제국 수상

이렇듯 귀족가문으로서 화려한 코스를 거치며 융커 대지주, 대자본가들의 타협에 의한 정치를 시도한 그는 한국으로 보면 수구꼴통 극우꼴통이라 지칭되는 강남 거주 기득권층의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이회창에 해당한다고나 할까요. 그것은 확실한 애국보수우익이란 뜻도 되지요.

그러나 정작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의 정책은 그와는 딴판으로 흘러갑니다. 프랑스를 고립시키려 시도했지만 어디까지나 전쟁은 피했고 식민지를 추구하면서도 영국과의 마찰은 절대로 삼갔습니다. 오스트리아-러시아 간의 마찰로 러시아와의 3제동맹이 끊어졌지만 둘을 화해시키기에 전념하여 다시 러시아를 중립화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과거의 원수 오스트리아는 비스마르크 말년에는 완전히 충실한 우방국이 됩니다.

마치 김대중, 노무현,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등으로 이어지는 대김정일 퍼주기를 보는 듯 합니다. 이라크전에 소극적이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우려한 온건파 공화당 콜린 파월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자크 시라크, 헬무트 콜의 냄새도 납니다. 콜도 동독에게 엄청나게 퍼줬죠.

이렇듯 외교정책에서 자칭 실용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던 비스마르크는 국내 정책에 있어서는 더욱 좌익스런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세계 최초의 의료보험제도, 사회보장제도, 연금제도, 게다가 노동조합 인정까지... 영국, 프랑스도 수십년이 지나야 간신히 한 일을 그는 10년 조금 남짓해 저질러 버립니다. 좌빨 사회민주당은 비스마르크의 토양 아래서 컸습니다. 그땐 마르크스의 사상이 널리 퍼지지 않았을 때라서 없었지만 만약 공산당이 있었더라면 이들도 합법화됐을지 모릅니다

비스마르크는 그런 용공분자였습니다.

총통은 다릅니다. 그는 조선시대 종9품, 오늘의 강코쿠에서 6급 주사 정도에 해당하는 보잘것없는 공무원의 아들이었고 중학교 낙제, 미술학교와 건축학교 낙방의 쓴잔을 마셨으며 빈 거리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ㅈㅄ부랑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1차대전의 진흙탕 속에서 진정한 자아 발견을 했으며 무명의 정치소모임을 뮌헨에서 제일 잘나가고, 바이에른에서 제일 잘나가고, 드디어는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독일을 이끌어가는 대정당으로 키워냈습니다. 그의 앞에서는 나약하고 문약한 상류층, 어리버리한 사민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위험하고 음흉한 빨갱이들, 과거의 영광에만 안주하는 무능한 우익꼰대들까지 모두 일거에 사라졌습니다.

그는 1850~60년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패전국가, 세계 최악의 인플레를 겪던 말기 암환자 같은 조국을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그리스를 점령하고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핀란드를 굴복시켰으며 영국과 소련까지 짓누르고 몰타섬을 제외한 지중해 전체를 자신의 호수로 만들어버린 위대한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것은 알렉산더, 로마제국, 프랑크왕국, 몽고제국, 나폴레옹 이후 세계 역사상 10손가락 안에 드는 대정복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전의 어느 정복자들도 시도조차 못한 대과업을 그는 시도했습니다. 그는 인류의 완벽한 개조를 추구했으며 유태인을 절멸시키고 (아랍인도 말살하고) 슬라브, 집시, 라틴 등 인류의 질적 저하와 만성 질병을 일으키는 병균을 거세하여 전체 인구의 1/4만 남기고 모두 최종적 해결을 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완벽한 준비로서 이를 실행한 유일한 개혁가입니다.

모든 점령지에서 유태인과 집시를 게토에 수용하여 규모를 감소시키고 적정한 시점이 되면 동쪽으로 가는 기찻길에 실어 섬멸수용소로 보내는 일련의 과정은 현대의 어떤 전기전자장비보다도 낮은 불량률을 보였으며 거의 하나의 예술과 같은 경영시스템의 정수였습니다.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한 자동차왕 헨리 포드조차 자신의 기업을 능가하는 나치 제국의 이 엄청난 효율성, 철저하게 일관되고 안정된 시스템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총통은 또 개인적으로는 아주 다정다감하고 자상한 남자였습니다. 비스마르크처럼 항상 근엄한채하고 밖으로도 중후하고 신중한척 하는 꼰대기질의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총통의 생애에 꼰대, 비겁, 위선, 가식 같은 단어는 전혀 찾아볼수 없습니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타협이란 단어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었습니다. 벌써 고등학생 나이부터 자신의 꿈을 잃고 취직 잘되는 과만 쫓아다니는 나약한 조선남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그는 술과 담배를 싫어했습니다. 술자리에서는 거드름 피우고 다음날엔 쪽도 못서는 인간, 술자리에서는 재밌는 척 말 많은체 하지만 다음날 같은 사람 만나면 어제 잘 들어갔냐는 인사 밖에는 할 말이 없는 지금의 조선남들과는 달리 그런 가식을 일절 배제했습니다.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담배에 찌들어 사는 짓은 그와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수양하고 단련시키며 강한 조국을 만들고 안정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야망을 마침내 현실로 바꾼 사람, 그러면서도 항상 다정다감함과 자상함을, 친구에 대한 우정과 여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끝까지 지키며 화산처럼 살다가 불꽃처럼 처절하게 스러진 그 사람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