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끔찍한 참사와, 그 뒷 이야기

미 해군 순양함, 인디애나 폴리스 호 [USS Indianapolis (CA-35)]

2차대전 말, 전쟁을 끝내기 위한 원자폭탄을 수송하는 중대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본국으로 귀환하던 미 해군 순양함 인디애나 폴리스 호. 그러나 임무완료의 기쁨도 잠시.
인디애나 폴리스 호는 귀환 길에 일본 해군 잠수함 I-58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야 맙니다.
2차대전 종전을 불과 보름여 앞둔 7월 30일의 일이었습니다.

침몰로 인해 승무원 1,199명 중 약 300명이 즉사했으며 나머지 약 900명은 바다에 빠져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극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해역은 식인
상어가 출몰하는 해역이었던 것입니다.

침몰로 인한 사상자의 피는 곧바로 바다에 퍼졌고 피냄새를 맡고 나타난 식인상어 떼는
바다 위에 떠있던 수백명의 해군을 무차별 공격, 무려 600여명에 이르는 추가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그 엄청난 비극에 대해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죠스\'에서도 잠시 언급됩니다.
인디애나 폴리스 호의 생존자가 그 날을 회상하는 대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배가 침몰한지 반시간쯤 지났을까. 엄청난 수의 상어가 몰려왔다. 큰 놈이었다. 놈들은
  우리들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상어의 눈이 가만히 우리들을 응시했다. 마치 죽은
  사람의 눈 같은 새카만, 인형같은 눈. 하지만 상어가 인간을 물기 시작하자 그 검은 눈은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비명이 울리며 바다가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늦어진 구조활동과 상어 떼의 습격으로 결국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이는 316명에 불과했습
니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인디애나 폴리스 호의 함장인 Charles Butler McVay III는 유족
들에 의해 침몰의 책임을 추궁당하며 군법회의에 회부, 그 책임을 인정받습니다. 함장은
강제로 불명예 제대를 하게되었으며 모든 명예를 박탈당합니다.

이 판결은 사실 희생양을 찾던 유족들의 원한에 의한 것으로, 2차대전을 통틀어 침몰한 700
여척에 이르는 미국선적의 함선 중 함장의 실책을 추궁당해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이 사건이
유일합니다. 더군다나 인디애나 폴리스 호를 침몰시킨 일본 잠수함의 함장의「그 함장에게
실수는 없었다」라는 증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Charles Butler McVay III 함장은 수백명의 부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억울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우울한 여생을 보내다가 1968년,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1998년, 12세의 미국 소년 Hunter Scott은 이 판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고, 미국
사회에서 그 판결은 새삼 큰 이슈가 됩니다. 그리고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은 Charles Butler
McVay III 함장의 명예회복을 승인합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씁쓸한 역사의 한 페이지로서 기록되겠지만, 그 이면에는 한
가지 더 의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디애나 폴리스 호의 침몰 직후 무려 5일 가까이 아무런 구조활동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McVay III 함장은 필사적으로 왜 구조활동이 없었는가를 물었지만 미
해군에서는 SOS 메세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기밀해제된 미 해군
공식 기록에 따르면 미 해군의 주장은 거짓으로 보입니다. 최소 3개 이상의 SOS 메세지를
수신한 기록이 있으며, 그 의문에 대한 이유로는 현재 1. 메세지를 수신한 직후 조치를 명
했어야 할 담당 장교가 매우 취했었고 2. 따라서 아무도 자신을 건들지 말라는 명령을 부하
들에게 내렸으며, 3. SOS 메세지를 일본군의 농담/허위정보 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설
이 있습니다. 또한 McVay III 함장과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종전을 목전에 앞둔 군함의 침몰, 그리고 상어 떼의 습격, 이후의 조치와 뒷 이야기에 얽힌
많은 씁쓸한 이야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원폭이라는 무거운 \'업\'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씁쓸함과 함께 새삼 섬뜩함이 듭니다.

http://newkoman.tistory.com/tag/2%EC%B0%A8%EB%8C%80%EC%A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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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치수라 하시모토, 일본

모치수라 하시모토는 일본 잠수함 I-58함장으로 종전 직전 미순양함 인디아나폴리스함을 격침시켜 미국인들을 경악시켰다.

1909년 쿄토에서 8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유하지 못한 가정환경 탓에 1927년 일본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31년에 임관, 1934년부터 잠수함 근무를 시작하였다.

인디아나폴리스함 침몰에 대한 미국인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는 당시 함장 멕베이의 과실여부에 대한 최종재판이 침몰 후 55년 만인 2000년 10월 31일에 워싱턴에서 열린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히로시마에 투하될 원자폭탄 수송임무를 마치고 1945년 7월 30일 필리핀으로 가던 인디아나폴리스함은 일본 잠수함 I-58이 쏜 어뢰 6발중 2발을 맞아 12분 만에 침몰하였다. 1196명 승조원 중 약 300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약900명이 조난당했으나 5일간 해상에 표류하면서 탈수현상과 상어공격 등으로 인해 최종 생존자는 317명에 불과했다.

미 해군은 침몰에 대한 과실을 생존한 함장에게 돌려 법정공방으로 이어갔다.

2차대전에서 미국은 수백척의 함선을 잃었지만 침몰된 배의 함장이 과실문제로 법정에 서기는 맥베이가 유일했다.

사실 대잠위험구역에서 호송세력없이 단독항해를 지시한 미 해군의 지휘부에 문제가 있었지만 미 해군은 맥베이가 단독항해를 하면서도 적절한 전술적 기동 즉, 지그재그 항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맞섰다.

맥베이는 1968년 해군군법회의 기간 중 죄책감으로 인해 권총자살하였다. 생존자들은 고인의 무죄를 주장하였고 하시모토는 미 법정에 나가 당시 인디아나폴리스가 지그재그 기동을 했다할지라도 공격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맥베이의 무혐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맥베이는 무죄로 판결되었다. 하시모토는 2000년 10월 25일 91세로 도쿄에서 사망하였다.

http://www.militaryreview.com/?inc=newsView&sno=31&no=778&ssno=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