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폴레옹의 압도적인 병력을 적은 수의 병력으로 쳐부순 웰링턴의 천재적인 능력

...이라고 생각할 분이 많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당시 프러시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영국 등은 복위한 나폴레옹을 몰아내기 위해 15만 병력을 모으기로 합의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급히 재건된 프랑스군을 이끄는 나폴레옹으로서는, 이 병력들이 완전히 모이기전에 선제 공격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병력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영국군 : 67,661  (이중 3분지 1 정도만 순수 영국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하노버, 브런즈윅, 네덜란드 및 나사우 등의 병력이었습니다)
프러시아군 : 48,000 (이외에 더 많았으나, 실제 워털루에 참전한 것은 이것 뿐이었습니다.)
프랑스군 : 71,947

2. 영국군의 경기병은 프랑스군의 창기병에게 개발렸다

이는 전투 초기에, 유명한 스캇츠 그레이의 돌격이 결국 처참한 패배로 이어진 것 때문에, 특히 1970년에 제작된 워털루라는 영화에서 그런 것처럼 나왔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경기병이 더 우수하냐 창기병이 더 우수하냐는 논란은 접고, 영국군 기병대는 패배하기 전에 프랑스군 보병대를 완전히 유린하여 독수리가 새겨진 깃대를 2개나 탈취할 정도였습니다.  너무 승리에 도취하여, 진열을 재정비하지 않고 프랑스군 포병대가 있는 곳까지 단숨에 달려간 것이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즉, 아무리 강한 기병대라고 하더라도, 먼거리를 단숨에 달려간 말은 완전히 지치기 마련이고, 지친 말을 탄 기병대는 보병만도 못한 상태가 되버립니다.  이때 프랑스군 창기병과 흉갑기병 등이 들이닥쳤기 때문에, 영국군 기병대는 지친 말로 제대로 도주하지도 못하고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습니다.

3.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배한 것은 예전처럼 기동성있는 우회 작전을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이때쯤해서는 너무 늙어서 제대로 머리가 안돌아갔기 때문이라는 분도 있던데,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워털루 전투 전날에도, 나폴레옹은 따로 우익과 예비 병력을 동원하여 프러시아군과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전투 당일 아침, 나폴레옹은 프러시아 군이 나타나기 전에 영국군을 무찔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우회 기동전을 펼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의 염려대로, 영국군을 무찌르기 전에 프러시아군이 등장한 것이, 나폴레옹의 패배의 직접적 원인이었습니다.

4. 프랑스 기병대의 영국군 방진에 대한 우명한 닭돌 및 패배는 네이 원수의 ㅂㅅ 짓 때문이다

웰링턴은 항상 언덕 능선 뒤에 주력군을 숨겨두는 전법을 즐겨썼고, 워털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적군에게 자신의 병력 수 및 진영을 숨기고, 또 항상 영국군보다 우세했던 프랑스 포병대로부터 병력을 보호하기 위해 자주 쓰는 전법이었습니다.  항상 언덕 위에는 포병대와 유격병, 그리고 장교들만 적군에게 보였습니다.
이날 프랑스군은, 위에서 말한대로, 프러시아군이 나타나기 전에 영국군을 박살내는 것이 최대과제였습니다. 당시 전투의 승패는 보병 및 포병으로 결정났지만, 패주하는 적병을 요리하는 것은 기병의 몫이었습니다.  네이 원수는 영국군이 언제 무너지나 하고 초조하게 계속 관측을 하다가, 영국군 부상병들이 언덕 너머로 퇴각하는 것을 보고, 영국군의 총퇴각으로 오해하여 \'옳다거니!\'하고 기병대에게 총추격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언덕 너머로 달려들어간 프랑스 기병대를 기다린 것은 영국군 보병의 방진이었습니다.  사실 총돌격에 들어간 전체 기병대를 재빨리 되돌리는 거 쉽지 않습니다.  다만, 안되는 거 뻔히 알면서 프랑스 기병대의 영광을 위해 되지도 않는 돌격을 수차례나 반복한 것은 정말 바보짓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네이가 ㅂㅅ짓한 것은 맞네요.
그래도 죽어서도 \'네이는 죽지 않았다\'라는 소문이 돌 만큼 사람들의 존경을 샀던 열혈남 네이에게 경의를...

5. 워털루의 승자는 웰링턴

이건 사실 우리가 영미 위주의 역사를 배웠기 때문인데, 독일에서는 블뤼허 원수의 승리라고 가르칠 것입니다.  나폴레옹도 영국군보다는 프러시아군을 더 중요한 상대로 보았고, 그래서 워털루 전투 전날 먼저 프러시아군을 격파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은 거의 패주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그걸 구한 것이 프러시아군의 등장이었고요.  다만, 워털루 전투의 가장 치열한 전투는 영국군이 치룬 것은 맞습니다.  프러시아군은 승리를 주워먹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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