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털루 전투에 대한 몇가지 오해
nasica(nasica)
2007-09-22 23:54
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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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폴레옹의 압도적인 병력을 적은 수의 병력으로 쳐부순 웰링턴의 천재적인 능력
...이라고 생각할 분이 많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당시 프러시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영국 등은 복위한 나폴레옹을 몰아내기 위해 15만 병력을 모으기로 합의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급히 재건된 프랑스군을 이끄는 나폴레옹으로서는, 이 병력들이 완전히 모이기전에 선제 공격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병력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영국군 : 67,661 (이중 3분지 1 정도만 순수 영국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하노버, 브런즈윅, 네덜란드 및 나사우 등의 병력이었습니다)
프러시아군 : 48,000 (이외에 더 많았으나, 실제 워털루에 참전한 것은 이것 뿐이었습니다.)
프랑스군 : 71,947
2. 영국군의 경기병은 프랑스군의 창기병에게 개발렸다
이는 전투 초기에, 유명한 스캇츠 그레이의 돌격이 결국 처참한 패배로 이어진 것 때문에, 특히 1970년에 제작된 워털루라는 영화에서 그런 것처럼 나왔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경기병이 더 우수하냐 창기병이 더 우수하냐는 논란은 접고, 영국군 기병대는 패배하기 전에 프랑스군 보병대를 완전히 유린하여 독수리가 새겨진 깃대를 2개나 탈취할 정도였습니다. 너무 승리에 도취하여, 진열을 재정비하지 않고 프랑스군 포병대가 있는 곳까지 단숨에 달려간 것이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즉, 아무리 강한 기병대라고 하더라도, 먼거리를 단숨에 달려간 말은 완전히 지치기 마련이고, 지친 말을 탄 기병대는 보병만도 못한 상태가 되버립니다. 이때 프랑스군 창기병과 흉갑기병 등이 들이닥쳤기 때문에, 영국군 기병대는 지친 말로 제대로 도주하지도 못하고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습니다.
3.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배한 것은 예전처럼 기동성있는 우회 작전을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이때쯤해서는 너무 늙어서 제대로 머리가 안돌아갔기 때문이라는 분도 있던데,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워털루 전투 전날에도, 나폴레옹은 따로 우익과 예비 병력을 동원하여 프러시아군과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전투 당일 아침, 나폴레옹은 프러시아 군이 나타나기 전에 영국군을 무찔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우회 기동전을 펼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의 염려대로, 영국군을 무찌르기 전에 프러시아군이 등장한 것이, 나폴레옹의 패배의 직접적 원인이었습니다.
4. 프랑스 기병대의 영국군 방진에 대한 우명한 닭돌 및 패배는 네이 원수의 ㅂㅅ 짓 때문이다
웰링턴은 항상 언덕 능선 뒤에 주력군을 숨겨두는 전법을 즐겨썼고, 워털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적군에게 자신의 병력 수 및 진영을 숨기고, 또 항상 영국군보다 우세했던 프랑스 포병대로부터 병력을 보호하기 위해 자주 쓰는 전법이었습니다. 항상 언덕 위에는 포병대와 유격병, 그리고 장교들만 적군에게 보였습니다.
이날 프랑스군은, 위에서 말한대로, 프러시아군이 나타나기 전에 영국군을 박살내는 것이 최대과제였습니다. 당시 전투의 승패는 보병 및 포병으로 결정났지만, 패주하는 적병을 요리하는 것은 기병의 몫이었습니다. 네이 원수는 영국군이 언제 무너지나 하고 초조하게 계속 관측을 하다가, 영국군 부상병들이 언덕 너머로 퇴각하는 것을 보고, 영국군의 총퇴각으로 오해하여 \'옳다거니!\'하고 기병대에게 총추격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언덕 너머로 달려들어간 프랑스 기병대를 기다린 것은 영국군 보병의 방진이었습니다. 사실 총돌격에 들어간 전체 기병대를 재빨리 되돌리는 거 쉽지 않습니다. 다만, 안되는 거 뻔히 알면서 프랑스 기병대의 영광을 위해 되지도 않는 돌격을 수차례나 반복한 것은 정말 바보짓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네이가 ㅂㅅ짓한 것은 맞네요.
그래도 죽어서도 \'네이는 죽지 않았다\'라는 소문이 돌 만큼 사람들의 존경을 샀던 열혈남 네이에게 경의를...
5. 워털루의 승자는 웰링턴
이건 사실 우리가 영미 위주의 역사를 배웠기 때문인데, 독일에서는 블뤼허 원수의 승리라고 가르칠 것입니다. 나폴레옹도 영국군보다는 프러시아군을 더 중요한 상대로 보았고, 그래서 워털루 전투 전날 먼저 프러시아군을 격파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은 거의 패주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그걸 구한 것이 프러시아군의 등장이었고요. 다만, 워털루 전투의 가장 치열한 전투는 영국군이 치룬 것은 맞습니다. 프러시아군은 승리를 주워먹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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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아 군 쫓아으라고 보낸 뭔 장군이 삽질한 것도 있지 않나. 네 원수는 말을 7마리인가 갈아타면서 돌격.....ㄷㄷㄷ
그로시...
독군/ 예.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 전날에 프로이센 군을 공격했고, 프로이센 군은 열심히 퇴각합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프로이센 군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그루시 장군에게 전체 병력의 1/3을 주어서 프로이센 군을 뒤쫓도록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루시 장군에게 항상 자신과 연락을 취해서, 자신이 부를 때는 즉각 달려오도록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런데 워털루 전투가 벌어진 날..... 나폴레옹과 웰링턴의 군대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 때, 그루시는 프로이센 군을 놓쳐 버립니다. 그런데도 그루시는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멀리서 헤메고 있었죠.
나폴레옹은 프로이센 군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에야 사태의 위급함을 알았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단 한명의 병사라도 더 필요한 그 급박한 순간에 나폴레옹 군의 1/3은 완전히 다른 곳에서 헤메고 있었던 거죠.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영화 \"워털루\"에서는 전군이 박살이 나고 나폴레옹이 절망에 빠져 \"도대체 그루시는 어디있는 거야!!!\" 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오죠.
영화 워털루에서 보니 그 그로신가 먼가 장군이 왜 참가 안했느지 의문스러웠는데 리플보니까 알겠내. 그리고 어디서 본거지만 워털루 전투때는 전쟁터가 진흙탕이라 프랑스군이 자랑하는 포병화력이 제대로 안나온 영향도 있었다는데 이거 사실임미까?
그랬다라고들 하더군요. 다만 그게 파편 효과가 떨어져서라기보다는 (당시 대포알은 그냥 쇠공) 발사속도 탓인가봐요. 아무튼 나폴레옹은 들판이 마르기를 기다리느라 보병 공격을 늦췄고, 너무 오래 기다린 것이 결국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루시는 실지로 프러시아가 미끼로 던진 1만병력과 전투를 했고, 나무가 많은 구릉진 언덕이었기에 프로이센본진과 미끼를 구별할 시야가 제공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네이의 병진짓은 맞는게 전날 전투에서 영국군은 프로이센군과 떨어져 북서쪽으로 후퇴중이었는데, 네이가 이들을 끝까지 붙잡아주는 투기를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프로이센 좌익을 돌아 후퇴로를 차단할 임무를 띄고 가던 5천보병을 자신의 휘하로 두어 지원군으로 활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합니다.
이때 네이가 이들 후퇴로차단역할을 띄고 가던 보병사단을 놔주고 자신은 영국군을 끝까지 추격했다면, 일단 프로이센군은 좌익이 박살나고 후에 전투에서 재투입할 여건을 만들지 못했을 거고, 영국군역시 후미가 잡혀 웰링턴이 원하는 전투장소에서 나폴레옹군을 붙잡아두지 못했을 겁니다.
워털루구릉지넘어에서 진을 치던 웰링턴은 일단 그 지역이 포탄이 효과를 발휘하기엔 찰진 진흙밭인데다, 전날비가 와서 가뜩이나 무거운 프랑스의 대포를 옮기는데 병사들은 거의 탈진상태가 되었고, 러시아원정에서 숙련된 엘리트부대를 워낙 말었음에도 나폴레옹은 충분히 이길만한 전투를 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네이가 닥돌하는 시점에서 나폴레옹은 특별한 이유없이 전선에서 5킬로나 떨어진 곳에서 야전막사를 치고 쉬고 있었고, 자신이 반드시 점령하라고 한 라상예트언덕을 어렵게 점령하고 포병대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묵살했다는 겁니다. 당시 프랑스기병대가 물러나고 이제 막 전병력을 모아놓은 영국군 상황에서 프랑스포병대가 이들 진영에 퍼부어준다면 영국군은 박살났습니다.
후위대에 막혀서 발목잡힌거 아닌가. 그루쉬도 불쌍한게 그리 욕먹을 만한 재능을 타고난사람은 아니지요
애당초 나폴레옹은 이상한행동을 보이던 네대신에 루이스 다부원수나 자신의 처남되는 나폴리왕 뮈라를 데려와야했습니다. 뮈라의 경우 나폴레옹을 배신했지만 후에 다시 들어가기를 원하자 나폴레옹이 거절했지요. 하지만 다부원수가 파리에 있던것보다는 차라리 나폴레옹대신 전장을 지휘하는것이 더 옳지않았나 생각되네요. 머 다부원수가 파리를 보호하는것은 그만큼 그의 재능을 높이사서 전처럼 파리어택당해서 패배하지 않도록하기위해서였겠지만
머 당시 프랑스 포병대는 세계제일
네 원수가 기병 출신이라 다른 병과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측면도 있다고 들었음. 기병의 미덕은 신속한 전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