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8월12일~1922년까지 약 7만 3천명의 병력의 동원.

 전사자 3500명과 몇배의 부상자,전비 10억엔 소모하고 소득없이 철수함.
 (북 사할린의 철수는 1925년)
 이 영향으로 일본 국내의 쌀 가격이 폭등,전국 각지에  폭동이 발생, 결국 군대가  진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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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임을 지고 당시 내각 총사퇴, 하라타카시 내각이 성립(일본 최초의 정당 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