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독일인 석유기사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르게는 1차대전이 터지자 자원입대해 철십자 훈장도 받았다. 그런 조르게의 직접적인 변신계기는 부상으로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로부터 ‘공산주의’를 접하면서 부터다. 의병제대와 함께 베를린대학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조르게는 이후 기자로 일하며 소련을 제발로 찾아가 간첩교육을 받았다.
‘프랑크푸르트차이퉁’지 상하이 특파원으로 부임(1930년)한 그는 중국어와 일본어를 익히고 아시아 농업사를 탐구하며 인맥을 쌓아나갔다. 소련의 지시로 도쿄로 가게된 조르게는 독일인 사회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일본 문화에 대한 심층기사로 일본 권력층의 환심도 얻었다. 이를 통해 조르게는 일본 수상실을 비롯한 고위층에 일본인 첩자들을 심기도 했다.
1941년 소련은 독일군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군이 시베리아로 진격할 위험성 때문에 소련은 시베리아 방면에 배치해 놓은 100만 병력을 대(對)독일 전선으로 이동시킬 수가 없었다.
이때 조르게는 ‘일본이 시베리아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극비정보를 모스크바로 타전한 후 일본 헌병에 체포된 조르게는 도쿄의 스가모(巢鴨) 형무소에 감금,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어 1944년 1월 20일 사형이 확정되고 동년 11월 7일 사형이 집행됐다.
당시 조르게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던 소련은 그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시베리아사단을 독소전에 투입·대대적인 반격으로 승리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조르게의 스파이 활동은 성공적인 공작활동의 모범적인 사례로 각국 정보기관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출처-통일뉴스- 낄낄낄
그리고 결국엔 좆관광
난늘궁금해// 그래서 만주사변때 쿠데타? ㄲㄲㄲㄲㄲㄲㄲㄲㄲ
조르게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조르게가 진성 공산주의자.맑스와 앵겔스 친구였음. 독일에서 사회운동하다가 국외추방이후 미국으로 이주, 활동.뭐 어찌보면 마이클 무어나 노엄 촘스키의 대선배뻘.
마이클 무어는 자본주의자입니다. 단 한번도 이를 부정한 일이 없죠. 그의 목표는 \'자본주의의 공정한 규칙을 다시 세우는 것\'
노엄 촘스키 역시 그다지 그렇게 좌파적이지는 않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