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평가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잔인하고 극악무도했던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을 2차대전 기간중 6년동안(1939~1945) 폴란드를 통치했던독일 제3제국 폴란드 총독부의 동방 식민지 정책과 비교해 보자.  
   1939년 선전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기습 침공한 독일 제3제국 군대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전격전(Blitz-Krieg)이라는 신개념 전투를 도입하여 단 3주만에 40㎢에 달하던 폴란드 전토를 제압하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입성하는 독일군 

 


 

   당시 폴란드 총독으로 취임한 독일의 한스 프랑크(Hans Frank)는 폴란드 전토에서 잔인한 동방 식민지 정책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나치정권의 로젠베르크(Rozenberg) 박사가 정립한 나치-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슬라브 계통의 폴란드인은 유대인과 함께 독일인의 피를 오염시키는  열등인종으로 분류되었고  프랑크의 폴란드 총독부는 폴란드인을  지배민족인 독일인의 필요에 따라 노예로 두거나 독일인 이주정책인 레벤스라움(Lebensraum : 생활공간)정책의 일환으로 불필요한 존재로 책정되어 굶겨죽이거나 수용소로 이송하여  폴란드 인구를 적정 수준 이하로 줄일 계획이었다.  여기서 조선총독부가 내선일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을 장려하거나 최소한  조선인을 2등 국민으로 만들어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 했던 정책이
  얼마나 관대한 정책이었는지 알 수 있다.    
  폴란드 총독부는 점령 이후  학자,  정치인, 군인, 민간인 등 수십만명을 학살하고  
    폴란드의 국교였던 카톨릭과 모든 종교활동을 탄압하고  종교인 수만명을 학살한다.  히틀러는 폴란드인을 사실상 인간 이하의 열등인종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폴란드인에게 지배민족인 독일인에게 봉사하기 위한 최소한의 초등교육 외에는 모든 교육활동이 불요했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거의 모든 폴란드 고등 교육기관이 폐쇄되고 폴란드인 대부분에게는 초등교육만이 정책적으로 시행된다.       일단 폴란드는 접수한 한스 프랑크(Hans Frank) 총독은 폴란드를 Brest-Litovsk 를 기준으로 서북부, 서남부,  동부의 3개 행정구역으로 나누고  비교적 독일계 주민이 많고 동프러시아와 근접했던 서북부는 독일에 동화되는 유화정책을 취한다. 그러나 슬라브계통이 많았던 서남부는 비교적 가혹하게 다루어 노동력 보충을 위해 강제노동을 시키거나 수용소를 건설하고 인종정책을 자행한다.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건설된 곳도 바로 이 지역이다.        마지막으로 문제의 동부지구는 열등인종이 사는 격리지역으로 분류되어 대부분의 폴란드인을 집으로부터 쫓아내고 가족을 해체하며 식량을 빼앗고 굶어죽도록 방치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당시 바르샤바에서는 각 민족의 1일 평균 섭취 칼로리  독일인 1명 당 2,613kcal  반면,                   폴란드인에게는 669 kcal, 게토의 유태인에 이르러서는 253 kcal로 추정되고 있어  음식의 암거래 없인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다만 무허가의 식량 암거래가 발각되면 현장에서 즉결 처형되었다.
   한층 더 나아가 열등인종을 근절한다는 명목하에  산아제한 정책으로 강제낙태를 시행하거나 아이를 강제입양시키고
(일부 게르만계 피는 Lebensborn 정책의 일환으로 독일로 입양시킴),
 강제 노동을 강요하며, 사소한 범죄를 이유로 곳곳에거 즉결 처형이 자행됐다.     

 

 

 

↑바르샤바 봉기후 폐허가 된 시내 중심↑   또한 1944년 8월 독립을 위해 일어선 바르샤바 시민의 무장봉기를 3개 야전군과 2개 기갑군을 동원하여 무참히 진압하고 약 15만명의 시민을 학살하고 23만명의 잔여 시민을 포로로 규정하여 강제수용소로 이송하였다. 또한 바르샤바를 지도상에서 지우라는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바르샤바의 모든 건물을 폭파시켜
바르샤바를 석기시대로 되돌렸다.
 
  그 결과 폴란드의 인구는
1939년의 34,800,000명에서 1945년에는 24,600,000명으로 줄었고
(영토 손실에 따른 수치 포함) 800만명 가량이 전쟁기간  6년동안 사망했다.  이는 당시 폴란드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수치로 2차대전 참전국중 인구 대비 가장 높은 손실 비율이다.  폴란드 거주 유대인을 포함하여 3,700,000명 이상이 처형당하고,
3,800,000명이 박해가 원인으로 사망하거나 행방 불명이 되었다고 판명되었다.       이는 물론 당시 폴란드에 거주하던 300만명의 유대인 사망자 수를 포함한 것이다. (전쟁前 폴란드에 거주하던 유대인은 총 330만8000명이었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이중 90%인 310만명이 절멸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800만명의 사망자 중에서 유대인 희생자 300만명을 제외한 나머지 500만명은 순수 폴란드인이었다는 얘기다.      대전직전 (1939년) 폴란드의 인구는 34,800,000명으로  당시 식민지 조선(2200만)의 1.5배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독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에 이어 유럽 5위의 인구대국이었다.
 
그러나 2차대전의 후유증으로 2007년 현재에 와서야 대전前의 인구를 겨우 웃도는 수준을 회복했다.
 (현재 폴란드 인구는 3800만명 전후이고 그마저 출산율 저하로 감소하는 추세)
     800만명의 폴란드인이 전쟁기간중 사망했다.

800만명의 폴란드인이 전쟁기간중 사망했다.

800만명의 폴란드인이 전쟁기간중 사망했다.

800만명의 폴란드인이 전쟁기간중 사망했다.

800만명의 폴란드인이 전쟁기간중 사망했다.
  800만명의 폴란드인이 전쟁기간중 사망했다.     위의 기술된 모든 만행이  한 백인 국가(독일)가 아프리카나 유색인종의 식민지에서 저지른 만행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절대 뒤지지 않는 유수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같은 백인 문명국가(폴란드)에 저지른 만행이다.

 


 

  ↑최근 KBS에서 방영하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비록 드라마일지라도  가상의 인물인 독립투사는 단순히 형무소에서
잠시 조사받고 석방되거나  조선인들에게 언론, 출판,종교, 집회, 문예, 활동과 갖가지 오락활동이 보장되는 장면이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국정교과서는 일제시대 35년을  『세계역사상 유래가 없는 잔인하고 가혹한 식민지 정책』 이라고 감정적 수식어를 동원하여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시대 35년동안  평균수명이 1910년의 24세에서(유아사망률 포함) 1940년대 56세 이상으로 급증한 사실.....   일제시대 35년동안 인구가 1910년의 1300만명에서  1945년 2500만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한 사실......      일제시대 35년동안 조선의 연평균 경제성장률(4.1%)가 당시 세계평균 성장률을 상당히 웃돌았다는 사실.... (※2000년 낙성대 경제 연구소 자료 참고)    근대이전 아시아에서도 가장 낙후되고 폐쇄적인 유교국가였던  아프리카 원주민 수준의 미개한 조선인들에게 일제시대 35년동안 습득된 교육,  학문,  시설·제도 의식기반 등의 infrastructure가 전후 한국이 고속 경제성장을 하는데 필수적인 밑거름이었음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폴란드는 독일의 군사적 침공에 의해 점령당했다. ☞조선은 지배층의 결정으로 무력저항 없이 일제에 병합되었다.  ☞일제는 조선인를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동화정책을 취하였다. ☞독일은 폴란드인을 열등인종으로 분류하여 절멸시키려 하였다.   ☞일제는 조선인의 인구를 2배로 만들었다. ☞독일은 6년동안 폴란드인의  1/4를 죽였다.    제3제국 시절 미국으로 망명했던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 (Thomas Mann)은  당시 선전활동을 통해 독일국민을 기만했던나치정권을 향해 이렇게 말하였다. 『 \"거짓을 말하려는 자들이여, 차라리 입을 다물어라!\" 』   한국인들은 폴란드인이 겪은 피해와 고통 앞에서 입을 다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