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봉기후 피폐화된 바르샤바라고 하는데
마지막 사진은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스필만이 소련군한테 구출될때거든?
아 또 수염자르는 사진은 유대인 학살인데... 종교인 탄압이라고 써있고..
둘다 영화 피아니스트...
짜집기 저 병맛 뻘글 따윈 무시해.. 다 적절하게 편집해서 괜히 갈구는거.. ㄲㄲ
ps.난늘아 39~44년 지원병제때 대략 15000~18000명이 지원했거든?
그런데 44년~45년 일제 패망까지 20만명이 징병 되갔단다....
저 아랫글 폴란드학살 웃긴게 뭐냐면
312(hayanzero)
2007-09-2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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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있어서 수정좀 했다-.-;; 20만명을 20명이라고 쓰다니.. ㄲㄲ;
정말? 43년에 6천명 모집할때 30만 넘게 지원한건 어디 사람들이죠? ㅋㅋㅋ 자료는 제 사칭이 친절하게 올린게 있으니 찾아보시길 ^^
난늘궁금해// 근현대사 교과서에 올라온 자료입니다만? ㄲㄲㄲ
교과서라니...아직 학생같은데....제가 이런 잔인한 이야기하긴 좀 뭐하지만.....육군특별지원병령에 나온 자료에 대해서 국사편찬위원회에 질문이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그 답변에서도 그 당시 지원자 숫자와 경쟁률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하더군요. ^^;;;
즉 38~43년 사이 지원병으로 입대한 조선젊은이의 수는 17600명 정도이고, 지원자수는 80만명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그러니 예전에 그 이야기가 나왔을때 조선인이 가난해서 그랬다, 아니면 언젠간 끌려갈테니 먼저 지원했다는등 설이 난무했던 거죠...
육군의 지원병 모집은 조선인 징병제를 위한 시험성 정책이었는데, 당시 높은 지원율로 일본군부가 자신감을 얻고 1944년부터 징집제를 실시하죠.
난늘궁금해//그렇게 따지면 미드웨히 해전 이후부턴 빠르게 징병으로 바꿔야 했는데 왜 바뀌지 않았을까요?
난늘궁금해//80만명이 지원자 수라면 44년도 부턴 바로 80만을 투입해야하는데 투입되지도 않구요
난늘궁금해//지원자수 80만명이라는것은 낭설에 불가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난늘궁금해//80만은 일본측에서 조작했다고 밖에 볼수 없는데요?
난늘궁금해// 중국전선과 동남아시아 전선은 여전이 병력이 모자른 상태였습니다만?
그게 조작이면 지금 우리 역사학계가 조작이라고 주장하겠지요....왜 일부 친일파나 관공서의 독려때문이라고 하겠습니까? 관련된 사람들중에 생존한 분들도 엄청 많을텐데 말이죠....-_-;;;
그리고 그 육군특별지원병령 자료는 단순 기록이 아니고 행정기록이라 징집병들의 자세한 정보부터 훈련과정까지 다 들어 있습니다. 얼마전 모님이 반박하실땐 그 자료에서 조선인들의 정보(학력같은)가지고 반박을하시던데 ^^;;;
난늘궁금해//80만 지원이 조작이라고 하면 어떻게 우리역사학계다 조작이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하시는겁니까? ㅎ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계시네요
난늘궁금해//그러면 어째서 인원이 부족한 중국전선과 동남아시아전선에 그 병력을 투입하지 않은겁니까? ㅎ
난늘궁금해//설마 중국전선에 병력부족현상은 없었다라는 헛소리를 하시는건 아시겠죠/
당연한 것 아닌가요? 우리 역사학계야 당근 그런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할텐데....-_-;;;
그리고 왜 일본이 징집을 44년에 했느냐? 우선 식민지인에게 총을 주고 싶지 않았겠죠....반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고, 피지배인들이 전쟁에 참여하고 나면 그만한 권리를 주장하게 되거든요. 때문에 가급적이면 비전투원으로 쓰고 싶었겠죠. (그래서 포로관리등에 조선인이 많이 기용되었고....)
난늘궁금해//이젠 대한민국의 사학계까지 부정하는 난늘... ㄲㄲ
난늘궁금해//지원자가 80만이나되는 황국신민인데 무슨 소리신가요? ㅎ
무엇보다 일본이 병력이 모자랐다기 보단 오히려 물자가 없는 쪽이었기 때문에....예를들어 전쟁 말엽에는 정규병들도 실탄지급조차 30% 수준밖에 받지 못했다더군요.....그런 상황에서 자꾸 알보병만 늘여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가 뭔 사학계를 부정해요? -_-;;; 오히려 믿으니깐 그런 소릴 하는거지..
난늘궁금해//대천황폐하의 군대는 일본도, 대검만 있으면 되지 않나요? ㄲㄲ
그럴거면 걍 마을에서 농사짓게 하다가 미군왔을때 소집해도 되죠...구태여 죽창부대를 만들 필요가 있나요? ^^;
난늘궁금해//훈련은 그냥합니까? ㄲㄲ 대일본제국은 미국의 폭격앞에서 무너졌습니다만? 이젠 갑작스러운 뻘소리까지하시니 ㅎㅎ
일제말기 식민지 지배정책연구의 5장 징병제의 실시와 참정권 논의 (최유리), 조선민중과 황민화정책의 2장 1절 지원병제도의 전개와 그 의의(宮田節子)...이런 논문 쓴 사람들이 다 바보라 80만명이나 되는 뻥구라를 가지고 연구를 하겠습니까? -_-;;;
일본육군 중에 데이비드 커퍼필드가 한 백명쯤 있나봅니다....80만명을 펑~하고 만들어내고...
믿기 싫다고 눈을 가리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난늘궁금해//죽창부대를 구태여 만든다니요? 일본전국토 총옥쇄를 했다면 무기는 대부분 죽창,일본도,석궁으로 사용했을텐데요/
지원자가 많았다고해도 6년간 15000명이라면 사실상 80만 지원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이후에 충분히 지어냈다고 생각됩니다만/
난늘궁금해//말씀하신것 과 같이 \'일제말기 식민지 지배정책연구 \'는 \'일제말기\' 입니다만...? 그것이 44년도에 씌여진것인지 아니면 모병제 당시 쓰여진것인지 정확히 알수 없네요
난늘궁금해// 그리고 조작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바로 참정권론자가 서술했다는것 아닙니까
엄연히 자세한 행정기록이 남아있는데 님은 아니라고 부득부득 우기려면 뭔 증거가 있어야 할 것 아니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도 수치 자체에 대해서 반박하지 않는데, 님은 아무 증거도,지식도 없이 왠 억집니까? -_-;;;
난늘궁금해//사학계는 이미 이병도때문에 썩어버려서`
난늘궁금해//엄연히 자세한 행정기록이라뇨? 자신들의 공적을 올리려는 인간들이 충분히 그 숫자를 늘렸다고 볼수 있는데요? 그 이유가 바로 6년간 실제 모병수가 15000이라는거 아닙니까
이병도씨의 저서는 읽어는 보셧는지? -_-;;;
그니깐 그 모병제도가 아주 시험적인 성격이었어요....지금 우리가 갑자기 모병제로 바꾼다고 해서 내년부터 징병제가 바로 없어집니까? 조선인에 맞는 훈련과정과 부대편성, 그리고 조선인들의 군입대에 대한 태도 및 호응도....이런걸 조사하는 과정이었던 거죠....그렇게 서서히 모병수치를 늘리다가 조선인들의 지원율도 높고해서, 징집제를 완성한게 44년인거에요?
난늘궁금해//이병도의 진짜 성질은 알고 계신건지?
난늘궁금해//시험적인 성격의 근거는 무엇이죠? 6년이라는 기간이 시험적인 성격입니까? 이미 중국전선에선 게릴라로 인한 벙력피해와 늘어나는 전선으로 병력이 부족했는데요?
그니깐 남들이 이병도선생을 뭐라 평가하던지 간데 본인이 읽었냐구요? -_-;;; 내가 제일 기가막혔던게 삼국사기 한번 읽어본 친구들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적이다\' 라고 하데요,....하하하하하하하 -_-....그래서 제가 물었죠 \'읽어는 봤니?\'....그랬더니 묵묵부답...
난늘궁금해//삼국사기 읽어봤고, 이병도씨의 저서 읽어 봤습니다만?
낸들 알겠습니까? 일본 정부가 본토 일본 젊은이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나보죠....아니면 병력 말고도 각종 근로현장에 투입할 인원to도 급하니깐 거기로 보내려 했겠죠...실제로 그랬고....그러다 전선이 급박해지고 본토에서 대규모 육전이 벌어질 것 같으니 징집제를 서둘러 실행한거겠죠.
이병도씨가 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그 분 이래로 일제의 조작마저 덮어주는 사학계가 되었다는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_-
난늘궁금해//이병도씨가 지금 한국 사학계의 큰 획이지만, 그와 그제자의 본질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이 시절 그는 조선사편수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등에 한4군(漢四郡)의 강역을 한반도 내의 존재 설을 강력히 주장하고 고려시대 풍수도참(風水圖讖) 사상, 그리고 조선시대 유학사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당연히(?) 일어(日語)로 쓴 것들이었다. 이때 쓴 논문들은 문헌고증학의 관점에서는 꽤 수준이 높은 것이었으나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단재 신채호의 민족주의사학과는 서로 배치되는 논리들이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학계, 흔히 말하는 강단사학계가 일제의 침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조작을 덮어준다는 건가요? 진짜 그럴까요? 님은 그런 말 아닙니까? 80만 지원병이 조작인데 국내 사학계는 못믿겠다면서요?
이병도에 대한 사학계의 접근에 따라 그의 친일행적을 파해친 논문들도 꽤 됩니다만/
난늘궁금해//앞에 말한것 읽지도 않으셨나 보군요? 식민지 말기가 되면서 행정상의 부폐는 당연 커지는것이고, 자신들의 공적을 부풀리기 위해서 그 숫자도 당연히 부풀려졌겠죠, 그 이유가 바로 6년간 모병된 인원이 15000명이라는 겁니다.
그럼 일제치하에서 일본어 쓰라는데 써야지 별 수 있나요? -_-;;; 한사군이 요동에 있다고 주장해야 진정한 사학인이란 말인가 ㅠ.ㅠ 하기사 평양에 낙랑직인이 일제의 조작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참 일본인들도 할 짓 없네요....
최근에 광개토대왕릉비 조작설도 결국은 아닌걸로 밝혀졌다죠?
난늘궁금해//그에대한 인적따위에 총독부에서 일일이 검사힐리도 없을테고, 대충 이름과 키등을 써넣었으면 됬다는거죠
난늘궁금해//일제치하에서 일보어로 써라지 별수 있나요라뇨? 그당시는 민족분열통치기로서 1910년대보다 훨씬 완화되었습니다만? 그리고 단재선생님은 한글,또는 한문으로 항상 서술하셨는데요?
그니깐 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님의 상상과 추측만 가지고 말을 하는데 그 어떤 근거도 증거도 없자나요? 그리고 당시 일제가 급박한 상황에서 뭐가 아쉬워서 80만명치 자료를 일일이 만들어가며 조작을 한답니까? 그냥 징병제 실시하면 조선인들이 체제를 전복시킬까봐요?
난늘궁금해//급박한 상황에서 왜 80만 장병을 다 안쓰냔 말입니다.
자료에 출신지역과 학력, 생활수준까지 다양한 정보가 있다더군요....그런 자료는 만들 필요도 없을뿐더라 80만명치나 거짓으로 만들다보면 오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그랬으면 이미 벌써 밝혀졌을꺼에요....수백년 전의 일도 아니고 아직 관련 생존자도 꽤 있거든요? 말도 안돼는 억지 주장이에요.
난늘궁금해//황국신민화 정책이 자리를 잡아가는데 체제 전복이라뇨? ㅎㅎㅎㅎ 오이혀 난늘씨쪽이 억지스럽네요
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안쓰냔 말입니다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안쓰냔 말입니다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안쓰냔 말입니다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안쓰냔 말입니다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안쓰냔 말입니다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안쓰냔 말입니다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안쓰냔 말입니다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안쓰냔 말입니다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안쓰냔 말입니다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안쓰냔 말입니다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안쓰냔 말입니다난늘궁금해//그렇게 급박한데 왜 80만 장병을
난독증이세요? 그러니깐 조작이 아니란 말이자나요....조선인들이 징병제에 강하게 거부해서 폭동을 일으킬 것도 아닌데 왜 조작을 하겠냐구요....
난늘궁금해//난늘씨는 자신의 의견에 두서가 안맞음을 모르시고 계시네요... 후..
80만명이 대부분 일본인들이 세운 조건에 미달했다더군요. 예를들어 학력이라던지...그건 예전에 관련글이 있었죠.
난늘궁금해//학력미달이라뇨? 일제는 자신들의 명령을 잘듣는 황국신민을 만들기위해 초등교육은 의무적으로 시켰습니다만? 그리고 그렇게 급박한데 왜 조건을 달죠?
근데 당시 조선인이 그렇게 많이 지원한게 사실이면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생기는건가요? 왜 그렇게까지 억지를 써서라도 부정을 하고 싶어들 하시는지....이해가 안가는군요....과거는 과거일뿐인데 -_-
제가 알겟습니까? 일본군 지휘부가 그렇게 생각했다는데...
난늘궁금해//아니 난늘씨의 주장이 이제 안맞으니까 갑작스럽게 일본군 지휘부로 넘어가네요...ㅎㅎ 방금전까지만해도 급박하다면서요?
급박하니깐 징집제를 실시했죠 44년부터...
급박하지 않았으면 조선인을 군대에 넣지 않았을겁니다....전후에 조선인들이 권리를 주장할게 뻔하거든요.
난늘궁금해//난늘씨가 주장한 급박한 시기는 38년도 모병제부터였는데요/ ㅎㅎㅎ
난늘궁금해//황국신민화 정책으로 이미 조선인은 사라졌습니다만/
징집전 시험적인 모병제를 실시할때 그 많은 지원자를 왜 다 안뽑았는지는 당시 일본군 관계자한테 물어보세요.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다만 일본육군이 내세운 조건이 나름 까다로왔다는 점과 처음 준비과정이라 to가 크지 않았다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http://gall.dcinside.com/list.php?id=koreauniversity&no=38023
요거 한번 읽어봐. 조선 청년들이 무수히 일본군에 자원입대를 희망했다면 1960년 4.19는 반민주적인 반란이다. 부정선거의 득표율이 의미가 있는가? \'강제 자원\'의 자원자 수가 의미가 있는가?
조선인이 사라졌는데 광복 후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늘에서 구름타고 내려왔나효? -_-;;;
의미가 있다면 얼마나 선거의 부정이 심했는지, 얼마나 일제의 식민지 착취가 심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겠지.
부정선거와 강제지원이라? 그럼 그 지원자들이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들이 임의로 등록시켰다는건가요? 근거는?
난늘궁금해//조선인이 사라진것이지 배달(한)민족은 사라진것이 아닙니다만?
난늘궁금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 3.15부정선거의 근거를 찾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선인으로 주관을 상실했다면 그 이전 역사에 대한 정신적 주체성은 더 확실하게 없어지지 않겠나효? ㅠ.ㅠ
강제자원의 근거를 말하라는 거죠.
난늘궁금해//조선인으로서의 주관 상실뒤, 자신의 조국을 되찾았다면,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더 커지는 법이랍니다. ^^
결국 1930~40년대 시기에 조선인이 주관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물타기를 하고 싶어하시는 듯...^^ 그렇게 조상의 정체성을 죽여가면서까지 그런 사실을 부정할 필요가 있나요?
난늘궁금해//일제의 추악한 행위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만?
웬 동문서답 -_-;;; 전 님이 그렇게까지 사실을 부정하려는 의도에 대해 물엇는데요? \"일제의 추악한 행위\" 란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죠?
2대겔에서조차 이병도가 등장하다니 ..... 이병도&후예들 먼치킨설은 이미 역겔본좌들에게 캐관광당한 적이 2년은 된 거 같은데.. 그리고 이병도를 주적으로 만들어놓은 문군수님은 무려 친일군수출신에 그뒤를 이어 이병도까기에 열중한 임모씨는 29만원 문어를 민족의 지도자 운운한 ㅈㅂㅅ. 왠지 환빠스틱한 주장이 튀어나오네 ㅎㅎ
님은 결국 일제군대에 지원한 사람들이 조선인으로써 주관을 상실했다는 말로 자기합리화를 하시려는듯 한데요.....그것 역시 좀 억지라고 보여집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난늘궁금해//그러면 왜 대일본제국의 전쟁에 나갔을까요? 그들이 조선인인데?
글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아직 생존하신 분들이 계시니 직접 여쭤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네요....다만 당시에 조선인에게 있던 국가조직은 일본정부라는 것은 현실이었다는거죠.
어떤 조선인의 꿈이 검사였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그가 조선인으로써 존재하지도 않는 조선국의 검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마찬가집니다....당시 사람들에겐 거기가 터전이니깐 그랫겠죠. 이제와서 친일이었네 뭐네 별로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이제와서야 미드웨이에서 나구모가 뻘짓을 했네 뭐네 하지만....당시 제대로 된 총 한자루 만들 줄 모르고....소달구지 끌던 조선인들 입장에서 항모전단에 항공기 띄우고 태평양을 휩쓰는 일제가 망하리라 생각할 순 없었겠죠....그냥 여기는 내가 태어난 땅이고 그 와중에 내 꿈을 찾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하다보니 군장교도 되어 있고, 공무원도 되어 있고 했었을겁니다.....과연 당시 사람들이 넌 왜 일제군대에 들어가냐? 이렇게 서로 생각했을까요? 그건 지금 우리 시각일뿐.
난늘이가 미텼구나... 제대로 된 총 한자루 만들 줄 모르고....소달구지 끌던 조선인들 입장에서 -> 일본 농부들은 그럼 제대로 된 총 한자루도 잘 만들고 트랙터 끌었나요? 난늘은 2대갤의 보배 2대갤의 병크!. 네가 있어서 즐겁다. 그.. 그거 있잖아. 10억 vs 고자되기. 네가 하는 말 볼때마다 그거 생각나 ㅋㅋㅋ
그럼 조선인들이 제대로 된 병기나 자동차를 양산할 수 있었나효? ㅋㅋㅋ 일본농부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고, 일본엔지니어들은 가능했죠. ^^
이병도 추종자였다니... 흠좀무
난늘궁금해//기술이전을 해줬으면 만들어줬지 ㅅㅂ새캬. 공장에서 콜리처럼 부려 처먹었으면서 기술은 쥐젓만큼도 인수 안해준 너네 원숭이 새키들에게나 따지렴
난늘궁금해는 잘살고 싶어서 자기 조상과 이름과 말과 글을 버리는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는 건 말이지. 당신은 그냥 대한민국 국민 하지 말고 황국신민하세요. 왜 한민족의 탈을 쓴 일본인이 여기서 생난리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