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오후 2시 30분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전 탄약고 유폭.
야마토 (2,500여명 중 270명 생존), 순양함 야하기 외 구축함 4척 격침.
미군기는 300기 작전기 중 10대 격추 파일럿 12명 실종.

1945년 6월 오키나와 점령

...............................

1944년 10월 쇼고 작전 직후 구리다 제독이 피해를 입지 않은 중앙군 20척에 대해 귀환명령을 내려
그 덕에 레이테 섬에 있던 맥아더 지상군들이 살아나게 되지만.
이노우에 중장이나 나구모 중장 같은 타입은 아닌데.
단지 쇼고 작전을 지속하기에 피해가 너무 컸었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만약 피해를 감수하고도 침공군에 대한 압박을 계속했다면?

중앙군들 막아내느라 태피 3의 희생이 컸음: 구축함 2척, 항모 2척, 호위 구축함 1척 침몰.
(1,000명 이상 수병과 해군 파일럿 전사. 침몰된 전함에서 거의 1,000명 가까이 생존자 구조. 이들은 상어가 출몰하는 해상에서 70시간 이상을 버팀.)
태피 3는 작전 중 비범한 용기를 보여준 데 대해 대통령 부대 표창 수상. 존스턴 호의 어네스트 에반스 함장에겐 사후 명예훈장 수여.

손상 입고 퇴각한 야마토에겐 아무런 명예도 없었음. 사마르 전투가 야마토가 건조 목적대로 작전을 수행할 그나마 유일한 기회 아니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