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피해망상에만 가득차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서 일본 자신의 입장에서 식민화와 태평양전쟁을 말해보고 싶은거라고 하고싶은데 잘 모르겠군.
사실 일제의 한반도 식민화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을 진짜로 사무치게 미워할 것들은 요즘 한국인이 아닐걸? 풋. 당시 일본 국민들이지. 당시 일본 국민들이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걸 들었다면 간토대지진 이래 최대의 조선인 학살극이 벌어졌을걸?
메이지유신, 근대화의 성공으로 새로운 부층이 출현하고 일본은 강대해져서 능히 유럽의 열강과 위치를 나란히 하게 되었지. 그리고 애초부터 한반도의 식민화는 말그대로 식민지로부터의 경제적 수탈이 제1목표니까 일본은 부강해졌어야 마땅했지.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나? 천황과 신국에 대한 충성으로 일본국민들이 얻은게 무엇인가?
식민지로 배를 불린 것은 권력자들과 메이지 유신 이래의 신흥 부유층이지. 실제로 대부분의 일본의 농어민 서민들에게는 별 혜택이 없었다. 오히려 쌀값폭등(한반도 수탈미의 대량유입과 관련이...)에 서민경제는 완전히 붕괴되고 그런 강대한 국가에서 기아로 사람들이 때거지로 굶어죽는 사태까지 발생을 했으면 그것이 뭐가 좋다는 건가.
또한 애초부터 군부쿠데타의 \"전쟁하면 경제산다\"라고 국민들 현혹시켜서 선전포고도 없이 미국 뒤통수치고, 자국 국민들에게조차 인권 따위는 내팽개쳐버린 지휘관들의 전략/전술개념은 물론, 대전차죽창술과 자살특공대라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안나오는 짓거리까지 했지.
\"천황폐하와 대일본제국을 위해\" 라는 미명아래 얼마나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자신의 손을 피로 물들이고 덧없이 목숨을 버려야 했는지 안다면 절대로 과거의 영광 어쩌고 하는 헛소리가 나올리도 없을뿐더러 식민과 개전을 다시 들먹이는 사람도 없을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떨까.
자국국민 굶겨죽이는 것도 모자라 자살시키는 국가가 아무리 강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묻고 싶은거라고. 그런 희생 위에 성립한 무개념 군대가 \"강하고 좋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냐고. 차라리 동시대 독일인들은 밥걱정 안하고 국민차타고 고속도로라도 달렸지.
때문에 지금 재벌이 된 여러 기업체들을 일군 사업가들이 일제시대 미곡상으로 시작한 경우가 많았죠......그러다 6.25 때 토지채권을 사들이고 그게 재벌이 된겁니다....-_-
..... 1919년부터 1931년까지 가혹한 수탈에 들고일어난 조선인 소작쟁의가 3천건, 부당대우에 들고 일어난 동맹파업이 1천건이 넘는데 어디서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를심정이로다. 일본이 그만큼 조선인 농민들고 노동자들에게 가혹하게 대했다는 증거랍니다.
그럼 지금 우리나라 기업체에서 일어나는 파업은 전부 대주주가 외국인이라서 일어난답니가? -_-;;;;;;
어디서 무슨 헛소리를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꼴에 식민지가 있다는 국가가 자국 서민들을 굶겨죽이고 전염병 돌게하는 수준밖에 안되는 국가를 왜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옹호하는지 정녕 모를 노릇이빈다
전국에서 지금 동맹파업이 매일같이 일어납니까? 아니면 농민반란이 일어납니까? 비교할걸 비교해야죠. 바보입니까?
옹호라.....저는 사실을 진짜 사실대로 말하자는건데요?
일본인들이 의도적으로 조선인 땅 뺐으려고 비싼 이자로 돈 빌려준다음 기일이 돼서 조선인이 갚으러 오면 일부러 자리 피해서 숨고, 날짜 넘겼다고 어거지부려서 땅 뺐는 일이 빈발했다는 건 모르시나요?
조선시대 일어났던 수 많은 농민폭동도 토지주가 왜인들이라 그런건가요? 말도 안되는 이론입니다.....
일본인들 자체가 조선에서 농업관련 사업에 별로 투자를 하지 않았다니깐요.... -_-;;; 대지주들은 여전히 조선인들이었어요...
안드로메다 행성의 사실을 말하는듯
물론 일본의 첨단 신기술과 근대산업제품의 유입으로 1차산업인 농업제품의 가치가 떨어지다보니 상대적으로 소작인들이 어려워질순 있었겠죠.
조선인을 소작인으로 전락시키고 대지주가 일본인이 되엇다는게 님들의 주장인데....한번 조사해보세요....당시 조선인 부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휴...
조선이 사실상 엔블럭 내부에서 30년대 중반까지 농업생산에 특화되어있었고 대조선 자본수출의 80% 이상이 농업부문에 투자되었는데;;;; 농업에 투자하지 않았다는건 무슨소리?
오케이 자침. 조선시대 말기의 민란은 탐관오리들의 착취와 수탈때문에 일어난 것이외다. 일제시대 소작쟁의도 지주가 왜인이라서 일어난게 아니라 왜인 지주들이 일본 정권의 비호 아래 수탈을 하니까 들고 일어난 것이고. 수탈을 수탈이 아니면 뭐라고 하리오?
일본인 지주가 없었다고 주장하려면 전체 지주가 몇 명인데 일본인 지주가 몇 명이었나 말해보세요.
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boardid=DDA003&qid=3LQrI&q=%B5%BF%BE%E7%C3%B4%BD%C4%C1%D6%BD%C4%C8%B8%BB%E7
일본인 직업 통계에서 농업 종사자가 적은 건 맞지만, 그건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일본인 농토 소유자는 조선인에게 소작을 주었으니까요. 대지주건 중소지주건.
아이고...당시 토지소유 대부분이 조선인인데 어떻게 일본인 지주가 나옵니까? 조선에서 일본인들은 이미 공업과 같은 2차산업이나 운송, 서비스같은 3차산업에 투자를 했어요...
일단 저기보면 총독부가 \'전국토의 40% 면적의\' 토지 임야를 차지하고 그것을 동척등 토지회사와 이민자들에게 불하했다고 나오는군요.
응, 그러니까 그 대부분이 몇 %냐고요?
자 그럼 이제 남은건 나머지 60%인데 총독부가 확보한 40%가 1918년 토지조사 종료시점이니까 이후엔 더 늘어났다고 볼 수 있겠죠? (적어도 줄어들었을 리가 없는건 확실하고)
219.254 // 그래요...기존 통설은 동양척식주식회사가 40%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 그게 10%에 미치지 않았다는 자료가 나왔습니다.....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는게 좋죠...
누가 공업하고 서비스업에만 투자했대요? 농토 소유하고 지주 노릇도 안 한 거 아니라니까?
동양척식주식회사가 10%의 토지만을 회수한 주장이 나왔을때 반대쪽에선 그걸 반박하지 못했습니다.....그건 뭘 이야기하는지 아시겠죠?
일본인 소유 토지의 비중은 식민지 시기 내내 계속 증가하면 증가했지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난늘궁금해씨는 \"토지조사사업에서 동척이 획득한 10%\"이외에 일본인 토지는 없었다 이 소립니까? 확실히 합시다.
저 링크를 다시 보세요...동척이 40%가 아니라 조선총독부라니까요..-_-
별 미친 좃병진을 보겠네 어느 제국주의국가가 식민지 잘살라고 투자를 한다는건지....머릿속에 회충이 사나
그리고 심심하면 사실, 사실 하시는데...적어도 한국에서, 한국 사학계에 의해 통설로 인정된-귀햏과 반대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의-이론을 부인하시려면 그쪽에서 먼저 자료를 들고와야하는거 아닌가요? 어째 위치가 뒤바뀐거 같군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주인미상으로 회수한 토지가 전부 일본인에게 불하되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다시 조선인들이 불하받은 토지도 있겠죠....근데 중요한건 당시 일본사업가들은 조선에서 농업관련 사업에는 별로 투자하지 않았다니깐요....에이구...
219.154 // 그 자료에서 말하는 총독부가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말하는거에요.
전부 일본인에게 불하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없겠군요. \'다시 조선인들이 불하받은 토지도 있겠죠....\'라는 추측은 애매한 표현이군요. 그리고 사업가의 범주에 들어가는건 대단위 영농기업인가요? 아니면 자영농까지 포함한 범주인가요?
만약 일본의 근대산업의 유입으로 조선 소작인들이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 1차산업의 위치때문에 가난해졌다면 인정하겠지만....일본인들이 만석꾼이 되어 조선농민들이 소작인이 되었다는 설은 좀 아스트랄하군요.....당시 조선의 대토지 소유주는 여전히 조선인들이었어요.....일본 사업가들은 대게 공업과 서비스업에 투자를 했구요....-_-
동양척식회사 자체가 뭐 하는 회산지는 알고 계세요? 회사니까 돈 벌겠죠? 뭐 해서 돈 버는 회살까요?
쉽게 말하면 총독부가 실무기관으로 동척에 업무위임해서 명의는 총독부 명의로 40% 잡아두고, 총독부는 그중 일부를 동척 명의로 돌려놓은거 같은데요? 이젠 총독부와 동척도 합병시켜버리십니까? -_-;;
그리고 동양척식회사는 정부기구인가요? 총독부가 아니라 토지조사사업을 동양척식회사가 한 걸까요?
일젝강점기에 조선인 대주주, 흔히 말하는 만석군, 천석군들이 많이 생겨서 광복후에 정부가 토지를 사들이고 채권을 발행했던거에요....일제강점기때 토지편중 현상이 심해졌거든요....그게 만약 대부분 일본인들 소유였다면 간단하게 정부가 다시 소유하면 그만이지....당시 부자들한테 채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죠....그 채권이 6.25때 헐값에 거래되는데, 그때 그 채권을 많이 사들인 영남쪽 상인들이 거부가 되었습니다....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 영남쪽 재벌가문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죠...전쟁때 피난온 만석꾼들한테 토지채권을 헐값에 샀거든요....대한민국 근대사에 대해서 공부좀 하세요.
딱 걸렸네. 일제시대 형성된 천석군 만석군 때문에 나중에 토지증권 발행했다고요?^____^
스크랩사마에게 악한 일본따윈 없스빈다
총독부가 토지까지 관리했으면 동척은 왜 만드나요? -_-;;; 근대식 토지조사사업의 주체가 동양척식주식회사랍니다.
일제시대 일본인 토지, 그거 어떻게 됐는지 모르죠?
그리고 동척이 뭐하는 회사냐는 질문은 왜 대답 안 해요?
그 자료에서 말하는 총독부가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말하는거에요<- 그렇다면 오히려 님말대로 10%가 아니라 동척 만이 보유한게 40%가 되는데요?
토지조사사업의 주체가 동척이지 토지보유의 주체가 동척은 아니잖습니까? (이 문장이 무슨 의민지 구분 안되신다면...-_-;)
그 40%라는 설은 조선 최초로 실행된 근대식 토지조사사업때 동척이 소유미상으로 간주하고 가져간 토지를 말하는 건데요....실제론 알려진 것과 달리 동척이 나름대로 조선인들에게 충분히 홍보했고 그 비율도 10%정도였다고 하데요....더 이상 같은말 반복하기 힘들군요. 맘데로 생각하세요.
딴소리 말고 질문에 답하셈. 1. 동척은 뭐하는 회사? 2. 해방 후 일본인 토지?
공식적으로 나온 문서자료만 보시나본데 말이에요....저희 고향에서 들은 얘기에 의하면 말이죠. 그해 봄부터 여름까지 눈치빠른 일인지주들은 자기네 소작짓던 조선사람들한테 헐값에 넘기고 그것도 못하고 귀국한 사람들 땅은 소작짓던 사람들이 그냥 나눠가졌더랍니다. 그걸 나중에 토지재분배니 어쩌니 하면서 말나와서 다들 \'왜정시대 끝나도 세상 g랄맞다\'고 그랬다더군요
근데 난늘은 왜 항상 근거없는 이야기만 들고오는거야? 꼴에 30%니 몇%니 아는척은 열심히 해대는데 그게 나와있는 공식적인 사료는 흠좀무..
그리고 그 10% 설 근거나 좀 대보세요. 링크라도 말이죠.
난늘아.. 사학계에선 말이지.. \'사료\'라는게 절대적이야.. 니가 말한 각종 수치들이 공식적으로 나와있는 조선측 문서, 하다못해 일본측 문서라도 좀 갖고와보겠니? 니 논리대로라면 그 수치가 나타난 사료는 우리나라에서 파기했다 치고, 일본쪽에 과연 그런 문서가 하나도 안건너갔을까?
난늘은 항상 자료를 가져오지 않고 우리더러 가져오라고 한다, 라최와 비슷한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1990년대 토지조사사업에 대해서 연구한 이영훈교수의 말에 의하면 미신고토지는 0.05%에 불과했고 오히려 조선농민들은 자신들의 토지가 정확히 측량되는걸 반겼다더군요....워낙 그분이 친일학자로 몰려서 대표성이 인정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연구를 하던 사람들이 기존의 학설과 너무 달라 놀랐다는...
일제시대 일본인 보유토지는 대부분 미 군정이 몰수한 다음 공매처분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요-_-
그 서울대 패거리꺼 외의 자료는 없는겁니까?
일제시대 연구하는 국내 사학계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참고하는 1차사료의 출처가 조선총독부 내부문서 및 관보라는건 알고는 있냐?
그리고 토지조사사업에서 임자 없는 토지로 규정되어 총독부 소유, 즉 국유지가 된 토지는 대부분이 법적으로 관청 소유였던 역둔토나 관유지, 왕실 인사의 소유였던 궁방전입니다. 개인 소유 토지의 경우에도 의도적으로 신고를 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고, 몰라서 못 한 사례도 있었고요.
토지조사사업에 관련되어 남은 자료를 연구한게 바로 이영훈교수팀이죠....ok? 김해지방에 남은 자료가 있었다더군요. 오히려 40%라고 주장하는 무슨 자료인지?
근데ㅐ 우리는 왜 알면서도 늘 낚이는 걸까?
난늘씨~~위에서 한 질문에 대답 좀 해보라니까요? 1. 동척은 뭐해서 돈 버는 회사? 2. 해방후 일본인 토지는 어떻게 처리?
저는 제가 낚이는 것 같은데요? -_-
사실 일제의 한반도 식민화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을 진짜로 사무치게 미워할 것들은 요즘 한국인이 아닐걸? 풋. 당시 일본 국민들이지. 당시 일본 국민들이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걸 들었다면 간토대지진 이래 최대의 조선인 학살극이 벌어졌을걸? - 그런놈들 다 죽여준다면 우리로써도 고마운일 아닌가?
추가로 질문 좀 해야겠네. 토지조사사업 이후 동척 토지 늘었어요 줄었어요?
40%의 근거는 일제가 남기고 간 서류뭉치 뒤져서 연구한 국사책인뎁쇼.
슈타인 // 토지공사는 뭘로 돈 벌까효? ^^; 해방 후 일본인 토지는 정부소유로 넘어갔겠죠....뭐 아직까지 일본인 명의로 된 토지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안병직 교수 인터뷰한거 좀 보니까, 그 사람도 자기가 확실한 자료가 없는 부분은 추측으로 때워버리는군요. 토지분쟁 자료가 없으니 아무일 없었던거다? ㅋㅋㅋㅋ 그러면서 현재의 한국인 기준으로 과거의 한국인도 소송에 적극적이었을 것인데 그런 자료가 없으니 별일 없이 순조로왔던 것이다...라니..ㅉㅉ
토지공사하고 동척이 같아요? 원....\"동양척식주식회사가 주인미상으로 회수한 토지가 전부 일본인에게 불하되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다시 조선인들이 불하받은 토지도 있겠죠....근데 중요한건 당시 일본사업가들은 조선에서 농업관련 사업에는 별로 투자하지 않았다니깐요....에이구...\"이거 때문에 내가 그 질문을 한 건데?
그리고 난늘아 제발 자료좀 들고와라 응? 이따구로 라최식으로 공작질할래?
동척이 뭘 목적으로 하는 회사고, 그 토지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모르니까 저런 소리 하는 거 아닌가요? 풋.
제가 자료를 올리면 일본 자료는 못믿겠다느니....이러면서 무슨...오히려 저한테 반박하시는 분들이 제대로 근거를 대는적을 본적이 없네요....^^
반박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한민국에서 상식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론들이거든요. 가까운 서점가서 중고딩용 참고서만 뒤져봐도 나오는. 그나저나 스핏파이어 배치근거는 언제 나옵니까?
1+1=2가 상식인 세계에서 1+1=1이 맞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경우, 증거를 내놓아서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건 후잡니까 전잡니까?
난늘씨, 일본 쪽 자료에서도 일본인들이 대규모로 토지 소유했다는 건 인정하거든요? 나늘씨가 하는 것처럼 농업에 손도 안 댔다고 주장하지 않거든요?^___^
스크랩사마의 자료집에는 스크랩된 전함도 물에 뜬다고 되어 있지 말이빈다.
한 가지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님들이 분노하는(?) 역사사실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사학계보단 경제학계에서 많이 나옵니다....그건 사학자들은 통계자료 보단 정치적 흐름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반면 경제사학자들은 통계자료를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이죠....윗 님이 언급한 안병직교수나 이영훈 교수 모두 경제학 교수죠....실제 통계자료는 경제적인 분야에서 진실을 말해주고요.
(특정 범주의) 집단내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이론에 반박을 하려면 반박하려는 사람은 그 이론을 확실히 뒤집을만한 자료를 들고와야하는게 정상적이지 않습니까? 가급적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의 것이면 좋고, 그런저런 자료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백으로 남겨야지요? 그런 부분은 님도 스리슬쩍 추측으로 때우시면서 반대편에 선 다수에게 \'니들의 근거는 뭐야?\'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합니까? -_-
내가 바보가 된 느낌이네 아주 걍.
혹 제가 경제학 수업들었던 얘기를 한 적이 있었나요? 경제학자들 이론대로라면 미국 남부의 노예제도도 지극히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인지세에 반대해서 독립한 미국민들은 그냥 인지세 내고 식민지 2류국민으로 사는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이죠. 경제분야의 자료는 경제적인 분석을 말해줄 뿐이지 그걸 가치관과 인간심리까지 포괄해야 하는 분야에 까지 끼워맞추는건 학문적으로도 독선이지요.
난늘씨 주장 - 토지 몰수가 많지는 \"았았을 거다\", 일본인 농업 투자는 \"없었을 거다\", 일본인 농지가 있었다면 정부가 다 \"뺐었을 거다\", 한국인 대지주는 다 일제시대부터 \"있었을 거다\".......우리가 언제까지 낚여 있어야 하나? ㅋㅋ
219.254 // 그건 인정합니다....다만 수탈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는거죠...엄연히 재화에 대한 댓가를 지불했고, 시장을 분리해서 폭리를 취한것도....토지를 이유없이 강제로 빼앗은 것도 아니니깐요.
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거다ㅍ
에라, 관두고 나가렵니다. 녹음기에 스피커 틀어놓고 주절대는데 상대해봐야 나만 피곤하지. 지혼자 떠들다 정식적 승리를 하던지 말던지....앞으로 난Q라고 불러버릴까? 풍Q처럼...ㅋㅋ
http://ko.wikipedia.org/wiki/%EB%8F%99%EC%96%91%EC%B2%99%EC%8B%9D%EC%A3%BC%EC%8B%9D%ED%9A%8C%EC%82%AC
http://kr.dic.yahoo.com/search/enc/result.html?p=%B5%BF%BE%E7%C3%B4%BD%C4%C1%D6%BD%C4%C8%B8%BB%E7&pk=12736200&subtype=&type=enc&field=id
http://ja.wikipedia.org/wiki/%E6%9D%B1%E6%B4%8B%E6%8B%93%E6%AE%96
어디 가서 동양척식회사가 어쩌구 저쩌구 주절대기 전에 저거나 읽으3-_-
저번에도 말씀드렸던 걸로 기억하는데요....경제에 있어서 정부(의 정책)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말이죠. \"정당한\" 댓가가 이뤄지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가는 아무도 모르더라도 서류상으로 양측 도장이 곱게 찍혔으니 정당한거고, 일본제국의 수호라는 중차대한 이유를 위한 신작로를 내기위해서 라는 좋은 이유를 위해서 길가의 조선인 농가는 밀어버릴 수도 있는거라면 할말이 없지요.
일제시대 자료라는게 항상 이영훈과 안병직것만 가지고 찌질찌질, 다른사람들것도 좀 참조하지 그래? 하다못해 니가 씹어대던 조선에서도 교차검증 기록만큼은 완벽했다
안병직 교수 인터뷰한거 보니 딱 그생각이 나더군요. 자기땅 이런저런 이유로 신고누락되어서 뺏긴 조선농민이 항의하러 주재소 갔다가 몇대 더 두들겨 맞고 울면서 돌아나오는 장면이요.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남지않죠. \"공식적\"인 역사자료에는 \"그날은 아무일도 없었다\"로 남겠지요. 그런 소송자료가 없다고 그 교수님은 토지조사사업이 별 잡음없이 끝났다고 하시더군요. ㅎ
이영훈, 안병직 교수의 조사가 오류가 많다면 그걸 반박하는 쪽에선 왜 토지와 관련된 이슈로 반박하지 않고 식민체제 자체가 에러라는 식으로 나왔을까요? 그건 그들의 조사가 나름 객관적이었기 때문아닐까요?
16.52///그날은 아무일도 없었다\'라는 대목을 보니 \'서부전선 이상없음\'이 생각나는군요
조사 자체는 건질만한게 있었겠죠. 그런데 그 중간중간 자료가 붕 뜨는 부분이라던지 그 해석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거겠지요.(반박 자료 본적없어서) 그리고 이미 근대화론에 대한 부분은 익히 보시지 않았나요? 무언가 새로운 문물을 한반도에 깔아놓았다라는건 부정못하는 사실이죠. 다만 그게 누구의 무엇을 위한거냐? 라는 부분에 있어서 보통 사람들은 조선에 사는 일본인이 쓰거나 조선인과 조선물자를 이용하는데 편하려고..라고 생각하는데 그 분들은 조선인들도 탄적이 있으니까 조선인도 고마워해야지?라는게 문제인거죠.
난늘//아 그러니까 이영훈 안병직 자료만 가져와서찌질찌질하지말고 다른사람들것도 좀 가져와보라니까, 이영훈 안병직 2인의 연구결과만 있다고 해서 그게 진실이라면-_-;;;;
개인적으로 경제학자들의 연구라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연구라는게 그런 수치화된 소위 객관적 자료도 중요하지만 가급적 당시의 보다 주관적인 자료들도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입장에서는 그런 자료들은 의미가 없거나 해석할 잣대가 없어서 무시되곤하죠.
새로운 문물을 깔기 위해 구한말에는 철도 약간 놓고 금광채굴권이니 벌채권이니 하는 잇권들 따간거 자체가 조선인들을 위해 새로운 문물을 한반도에 깐거냐? 머릿속에 두부만 쳐넣었나;;;;;
예를 들어서, 19세기 흑인 사망률이라는 자료를 아프리카 노예해안 지대와 미국남부 루이지애나 두 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자료가 있다고 할때, 그리고 루이지애나의 흑인 사망률이 월등히 적었다고 할 때, 아프리카의 흑인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느낀 어이없음은 바로 이런거지요.
219.254 // 그런 측면이라면 식민자라는 상황 자체에서 분명 에러죠.....근데 논쟁의 시작은 조선이 미곡을 수탈당했느냐 아니냐인데....단지 미곡거래라는 단일 현상만을 놓고 보자면 지배-피지배의 관계는 아니었다는거죠.
사실 하다못해 일제시대 발행된 조선신문에 쇼화 같은 일본 연호가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참 불쾌하죠....그렇다고 있지도 않았던 수탈을 비난해선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총들이대고 걍 뺏어가는 수준은 후반기에나 나온거 같습니다만, 청일-러일 전쟁기에도 일본군 진격로상에 국한되었다고는 하지만 인력과 물자에 대한 강제징발이 있어서 해당 촌락은 황폐화 되곤 했다는군요. 한편, 일본이 그런 (내면은 어떻더라도) 외형상으로라도 그런 정상적인 거래시스템을 만들었었다는 것은 1. 이미 조선의 경제 시스템에 일본 민간의 자본이 상당히 들어가 있었거나 2. 경제원리가 아닌 단순 정복-약탈의 방식으로는 원하는 만큼의 자원을 획득할 수 없었다라는 반증은 아닐까요?
네, 전쟁이 벌어진 1939년 이후에는 그야말로 수탈이 이뤄졌죠....그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다만 청일, 일러전쟁에선 일본쪽 보단 청, 러시아쪽의 수탈이 훨씬 심각한 피해를 입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오히려 일본군은 고용한 조선노동자들에게 정확하게 돈을 지불하고 군기가 엄해서 반감이 적었다더군요.
그리고 일본이 조선에서 다른 서양제국들이 했던 일방적인 자원수탈 보다는 투자를 통한 발전을 유도했던 이유는 저도 뭐라 딱히 말씀드리기 어렵네요....다만 조선이 워낙 자원이 없어, 내내 적자였던 지역이라는 점(짜봐야 뭐가 나오질 않으니 차라리 일본열도의 일부로 만들고자 했겠죠.)과, 그렇지만 제국주의 일본정부가 장차 노리던 만주와 지나대륙을 넘보기 위해선 조선을 산업화시켜야할 전략적 위치에 있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흠..여기에서도 이견이 있군요 ㅎㅎㅎ 돈 안주고 짐꾼으로 끌고가는 바람에 주민들이 도망가서 텅빈 마을들이 천지였다던데요.(청, 러의 민폐야 뭐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http://blog.ohmynews.com/nojp/tag/%EB%8F%84%EC%8B%9C
/ 국가재산인 양무호조차도 강제징발했다는데...글쎄요...그 고용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또 알아봐야하겠지만(농사짓던 촌민인지, 도시빈민인지 그런 따위. 그리고 얼마나 주었나 등등) 달보러 나가야해서 이만 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