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직 Barbarossa작전에 대해서 자세히는 안배웠는데(다음시간에 배우거든요)
교수님 말씀으로는
유고/그리스침공때문에 소련침공이 한달 늦어졌다는데 사실인가연?
원래 소련은 5월에 공격할려고 했는데
유고/그리스가 히틀러한테 밉보이는바람에 (유고:반파시즘정부의 쿠데타, 그리스:영국군주둔)
소련으로 갈 병력을 유고/그리스한테 돌리고, 또 침공후에 재배치, 정비등등으로
어쨋든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한달을 늦게 공격했다고 하는데... (6월 22일 침공하죠)
그니깐 제 질문은..
만약에 히틀러가 유고/그리스무시하고
원래 계획대로 소련을 한달정도 먼저 침공했으면
좀 승산이 있었을까여?
아니그니깐...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바로사가 성공을 못한 이유가 전선이 너무 빨리 전진했는데 보급은 늦춰지고 겨울준비도안하고
그렇게 주춤하는사이 쏘련은 전력을 가다듬고 반격을한건데...(내가 이해를 잘 한건가??)
그니깐 제가 성공을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건 독군이 한달먼저 전선/보급/겨울준비등등이 잘못된다는걸 깨닿고 겨울이오기전에(아님 조금이라도 더 일찍) 저런 문제점들을 해결했으면 소련에 좀 승산이 있지 않았을까요????
근데 왜 내가 자꾸 소련이 아닌 쏘련이라고하지-_-;;
애초 작전일자는 5월 15일이고, 말씀대로 발칸반도에 대한 작전 때문에 개시일이 늦어진 것도 맞습니다. 다만 5주 일찍 작전을 개시했으면 어땠을까...는 다소 상상의 영역이 될 듯 하네요.
질문이 소련에 좀 승산이 아니라 독일에 승산을 말하는 건가요? 하나 큰 줄기 하나만 언급한다면 핀소전쟁 직후 대숙청을 거쳐 3만 5천명의 소련 고위급 장교들이 제거된 걸로 이미 소련은 독일과 전쟁준비가 전혀 안되었다고 봐야할 듯 싶네요. 그리고 소련군 조직체제하에선 1941년 6월이 아니더라도 한두달 늦춰졌어도 초반 소련의 고전은 자명해 보입니다. 독일의 침공징후는 이미 파악했어도 손쓸 수가 없었겠죠.
헉...클리브님 ㄳ... 그렇죠 독일에 승산이 있냐는 질문이었죠... 제질문은 소련의 반격전에 독일이 재정비를 할수 있었을까고,,,만약에 그랬다면 전쟁의 판도가 변하지 않았을가에요...(물론 노르망디이후론 독일 어쩔수 없이 떡실신???)
이탈리아 그리스 침공때문에 차량이 그쪽으로 빠지냐고 늦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래봤자 겨울이되기전에 모스크바나 코카서스의 유전지대 그리고 우랄산맥쪽으로 진군은 힘들었을꺼라 전체적인 흐름은 변화가 없었을것같네요. 하지만 소련의 공장이사가 실패하는등의 차질이 빚어졋으면 독일이 이겼을 일말의 가능성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1달 빠르면 겨울이 1달 늦는다는건데.. 음.. 어느정도 더 진격이 가능했을듯?
관심분야가 공군력이다 보니까.. 전격전 때는 큰 역할을 수행해 낸 독일공군에게 두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죠. 그 중 하나는 BOB에서 이미 노출된, 주로 전선주위에서 육군의 공격을 지원하는 전술폭격의 역할만이 강조되어서 소련 후방 군수공업지대를 폭격할 수 없는 장거리 전략폭격기가 없다는 점 (드넓은 소련영토에 특히 4발 중폭격기가 아쉽죠..). 소련의 항공기와 전차 생산을 근원부터 막지않는 한 전장에서 하나하나 격파하는 데엔 무리가 따르죠. 두번째는 항공기 숫자자체. BOB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구식 항공기까지 긁어모아도 4,300대. 전선이 넓어지면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선 BOB수준이상의 항공력이 밑받침되어야 했는데. 소련은 1941년 6월 기준 구형,신형기를 합쳐 7,000기 이상을 보유했다죠.
솔직히 독일공군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더군요.... 독일군은 지상군빼곤 별로;;
한달 앞당긴게 어떤 결과를 불러 일으킬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그 한 달이 독일군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육상군의 진격이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었겠죠. 하지만 역사를 바꾸기엔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여겨집니다.
공군력 비교를 해보니 소련은 뻥튀기 한것을 걷어내도 6천대 이상인 반면에 독일은 5천 대였죠. 그나마 기량면에서 차이가 너무 나다보니 초기 소련 공군의 피해가 막대했지만, 근본적으로 독일 공군기의 발전은 1941년 이후로 제트 전투기가 실용화 될때까지 전투기와 폭격기 면에서 큰 발전이 별로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