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휴행탄수 얘기를 하다보니 준비탄 얘기가 나왔는데, 나온 김에 T-34/85와 판터의 준비탄 숫자와 그 배치 얘기나 해야겠군요.

먼저 T-34부터.

T-34의 경우 앞서 말했듯 포탄 대다수를 포탑 바닥판 아래에 보관합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쉽게 꺼내 쏠 수가 없죠. 실제로 전투중에 지속적으로 쏠 수 있는 포탄은 미리 탑재된 준비탄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준비탄은 과연 몇 발이나 될까요?

T-34 계열 전차는 공통적으로 포탑 내부에 준비탄을 둡니다. 85mm형의 경우에는 포탑 후방에 4층으로 3발씩을 쌓아 두어서 총 12발이 \"굴러 떨어져서 유폭하지 않도록 잠금장치에 걸려\" 있습니다. 또한 포탑 내부 탄약수측 벽에 4발이 역시 \"굴러 떨어져서 유폭하지 않도록 잠금장치에 걸려\" 있지요. 여기에 마지막으로, 차체 측면의 현수장치 공간 바로 옆에, 2발이 마찬가지로 \"굴러 떨어져서 유폭하지 않도록 잠금장치에 걸려\" 보관됩니다. 도합 18발이 준비탄인 셈이죠. 하지만 준비탄이라고 하기는 좀 민망합니다. 왜냐하면... 다 잠겨 있기 때문에, 한 발 장전할 때마다 랙을 풀고 꺼내는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_-; 숙련된 사람이라면 일단 랙을 풀고 포탄을 꺼내는 데 대략 10초 정도가 걸립니다. 여기에 이걸 밀어넣는 데 1~2초. 합쳐서 12초. 랙을 풀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포탑 측면의 4발과 차체 측면의 2발은 4~5초에 1발을 쏠 수 있겠습니다만... T-34/85는 사격 후 포신의 동요가 안정되는 시간이 꽤 긴 관계로 10초에 1발 남짓 쏘는 게 한계입니다.
(참고로 이게 크게 문제될 건 없는 것이, 어차피 다음 목표 찾아 조준하는 데, 또는 탄착을 수정하는 데 10초 내로 끝나는 전차는 20세기 후반까지 안 나왔습니다. 완전히 동 제원으로 속사를 날려대는 - 즉, 고정표적에 대한 제압사격 - 상황만 아니라면 문제가 안 되죠. 물론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주로 대전차포 진지나 보병진지를 밟아버릴 때뿐입니다만, 이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속사성능 자체가 별반 의미가 없기 십상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판터는?

일단 판터는 이 그림을 보십시오.



차체 바닥판의 바스켓 주변에 있는 탄약이 포수 준비탄입니다. 이건 포수가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쓸 수 있는 포탄이죠. 포탑이 얼마나 선회했느냐에 따라 손에 잡히는 주변 탄약 랙 4개의 포탄 중 최대 3개까지 포수가 바로 쓸 수 있는 거죠. (하나는 반드시 포수에게 가려서 쓸 수 없게 됩니다. 하나는 차장 때문에 조금 거북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쓰자면 쓸 수 있고요.) G형 기준으로 최소 13발, 최대 15발. 게다가 이 포탄들은 바닥에 만들어진 랙에 그냥 꽂혀 있기 때문에, 잠금장치를 푼다든가 하는 귀찮은 작업 없이 바로 뽑아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포탄들을 모두 썼을 때, 포수는 차체 측면의 예비탄약 가대에서 포탄을 꺼내 준비탄 가대에 다시 올려놓고 쓰게 됩니다. 이중 전투기동을 실시하면서 적의 포화로부터 최대한의 안전을 확보한 채로 포수가 마음껏 준비탄 가대로 옮겨놓을 수 있는 탄약은 차체 우측 측면의 랙 2개에 준비돼 있는 24발이고, 반대쪽의 28발과 조종수/무선수석 바로 직후방의 8발은 아무래도 전투기동 중에 옮겨 쓰기는 상당히 곤란한 수준입니다.


이쯤 되면 전차 한 대의 전투지속능력에 있어서 판터와 T-34의 차이가 대충 감이 잡히실 겁니다. 만약 전장에서 서로 최대교전거리에서부터 사격을 주고받기 시작한다면, 양자가 비슷한 명중률을 낸다고 가정할 경우 판터는 최대 3~4배까지의 T-34/85와 \"대등한 포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전투지속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전에서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만...

참고로, 저 준비탄들 중 실제 철갑탄의 비율은 전체의 1/3정도로 보는 게 정답입니다. 대전 후기쯤 되면 독일군 전차는 적 보병보다는 전차와 교전할 일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바람에 고폭탄 넣을 자리에도 철갑탄을 넣고 다니는 데 반해 소련 전차는 전차와 교전하기보다는 보병과 교전할 일이 더 많아서 철갑탄까지 고폭탄으로 대체하는 일이 잦았다는 걸 고려하면... 1944년 여름에 보여준 판터 VS T-34/85의 실제 전투손실비 - 대략 최소 1:3 이상으로 추정되나, 확실한 수치정보가 없음. 워낙 많은 독일전차가 유기 처분되었던 관계로... -_-; - 에서 이 탄약적재량 및 배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컸으리라는 것은 바로 짐작이 가능하실 겁니다.

 - 혁이가 -

P.S : 흔히들 독일 전차 승무원들이 소련 전차 승무원들보다 숙련도가 높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만, 이건 오산입니다. 사실은 독일 전차 승무원들이 더 숙련도가 낮습니다. -_-;; 소련은 전방에 전차가 5000대밖에 안 남아 있을 때에도 1만 대 가까운 전차를 후방 훈련부대에서 굴리면서 조종훈련과 사격훈련을 충분히 시켜서 훈련 때 타던 차를 그대로 태워서 전장에 내보내는 데 반해, 독일군은 전차 한 대라도 더 전방에 보내야 하는 형편이라 실제 전장에서 운용하는 전차와는 전혀 다른 구식 전차로 기본훈련을 받고 나오는 경우도 많았고, 그나마 전차 및 전차병 소모를 보충할 만한 인력 풀이 1943년쯤 되면 거의 고갈된 관계로 일단 급한 대로 기초훈련만 시켜서 전방에 내보내는 일이 잦았습니다. 안 그래도 훈련 자체를 후방부대가 아닌 각급 사단 보충부대에서 시키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문제라면 문제고요. 알려진 것과는 달리 독일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싸운 군대들 중 \"기초훈련기간이 제일 짧은\" 군대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더구나 예비역에 이르면... 미국을 제외하고 훈련받은 예비역 숫자가 100만이 안 되는 유일한 열강국이라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 주십시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