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1937년 9월 28일 무솔리니 베르린 방문
이것은 침략을 위한 군사적 조치가 아니라, 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평화적 수단이다.
1938년 3월 13일 히틀러의 나치스 군대가 오스트리아에 무혈집입한다.
오스트리아 병사였던 \'카를 티찌안\'은 이렇게 회고했다.
\"독일군이 아무 저항 없이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신께서 오스트리아를 구원했다\'고 히틀러가 말했다\"
\"거리에는 나치스 휘장이 걸리고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했지만, 히틀러가 공산주의자로부터 우리를 구했다고 애기했다\"
\"우리가 승자의 편에 서게 된 것이다\"
도른비른에서는 만여 명의 시민들이 히틀러의 이름을 연호했다.
신의 뜻에 따라 한 소년이 이곳에서 독일로 떠났다
그리고 지도자가 되어 돌아와 고향을 독일제국에 복속시켰다.
체코슬로바키아
독일군의 이동 소식에 영국과 프랑스는 작은 분쟁이 전쟁을 불러 올 수 있다고 확신했다.
히틀러가 영구그이 총리인 네빌 체임벌린을 만난 자리였다.
밤 협정이 체결됐다.
그것은 우리 두 국민의 의지를 담은 것으로
다시는 서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나는 이러한 조치들이 이 시대의 평화를 가져오리라고 믿는다.
영국의 승인 속에 독일군은 주데텐란트로 진군해 들어갔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했다.
하지만 그것이 양해를 구하는 마지막 부탁이 될 것이다.
1939년 6월 12일
히틀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오스트리아의 피슐함을 방문한다.
...
주민들 모두 존경심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폴란드를 침공하면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1939년 9월 1일 이른 아침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한다.
거리가 완전히 비었고 병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쟁을 개시했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시민은 없었다.
이틀 뒤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다.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의 막을 올린 것이다.
히틀러는 폴란드의 패전이
영국과 프랑스에게 경고가 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평화안이 거부되자 히틀러는 몹시 분노한다.
1940년 5월 10일 독일이 서방에 대한 대공습을 시작한다.
1940년 6월 22일 프랑스가 항복을 선언한다.
1940년 6월 28일 오전 6시 히틀러가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입성한다.
1941년 5월 영국과 전투에서 독일군이 처음으로 패배한다.
총통께서 유대인이 세계대전을 일으킨다면
멸종될 운명에 처할 거라고 예견하셨다.
이제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으니 유대인의 멸종은 당연한 결과이다.
1942년이 끝나갈 무렵
공산주의를 제거하는 것이 히틀러의 숙원이기도 했다.
1941년 6월 22일 새벽 3백만 명의 독일군이 소련 국경을 넘는다.
영국은 인도를 점령하고 독일은 소련을...
처칠과 루스벨트가 돈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그 뒤에서 유대인들이 그들을 조종하고 있다.
하지만 내 뒤에는 독일민족이 있다.
1944년 6월 6일 새벽 연합군은 독일군이 점령중인 프랑스 수복에 나선다.
독일이 전쟁을 원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 전쟁은 서구 정치인들이 충돌질한 것이다.
그들 모두 유대인을 위해 일했다.
나는 행복하게 죽을 수 있다.
1945년 1월 소련군이 베를린 외곽 70Km까지 접근한다.
전쟁에서 2천망 명을 잃었던 소련군 지휘부는
병사들에게 승리를 자축하도록 허락했다.
24살의 힐데가르트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들어왔다.
그들은 문을 잠그지 못하게 했고
총을 겨누면서 우리를 빈집으로 몰아넣었다.
젊은 여성들은 모두 끌려 나갔다.
그리고 밤새도록 우리를 욕보였다. 한명도 빠짐없이...
낡이 밝아오고 그들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기어서 집으로 갔고 많은 여성들이 자살을 했다. 2백만 명의 독일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다 히틀러 \"우리 군대, 여성과 노동자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억할 것이다.
ps. 어느 뇌입어 나치빠의 글이랍디다 헐헐
무플이라니.... 펌글에다 뻘글이라 그런가.... 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