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까 말까 하다가 나한테도 도움 될 일이라 회사 점심시간에 써봅니다
좋은 시란 뭘까 오랫동안 고민하던 바가 있는데 정리할 기회가 될 듯싶어서요
황유원, 「세상의 모든 최대화」 앞쪽 일부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
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철로만은 알지,
짓밟힌 몸길이를 짓밟힌 시간으로 나눠 기차가 절망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는 지점까지 걸린 속도를 계산해 내며 자기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짓밟고 가는 기차의 무게를 참고 견디지
기차가 아무리 짓밟고 가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잘리지 않는 건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어서
손가락을 잃은 기타리스트는 알지 흉측한 음악을 만들 바에야 약을 먹고 죽는 게 낫다는 걸
발가락이 없는 애벌레는 알지 발가락이 없으면 기어서라도, 가고 싶은 곳엔 가고 봐야 한다는 걸
말하자면 비시각적 음표들의 시각적 극대화
그러나 약은 치료하기도 하는 것,
병명보다 더 많은 치료제를 잔뜩 싣고 가던 기차가 마침내 말기에 다라라 포기하고 탈선할 때
눈 내린 들판에 처박힌 기차에서 동그란 알약들이 쏟아져나올 때의 기분이란
그 기분 누가 알겠냐마는 환자들만은 알지,
환자들은 꿈속에서 거기까지 걸어가 그 약을 모두 주워먹은 다음날 아침 병실에서 깨어나 기차의 차가운 몸을 이해하지 넘어진 채 몸을 뒤로 돌리던 기차를 이해하며 몸을 정확히 당신들 반대편으로 돌리지
현실도피는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이 있을 뿐
(이하 생략)
'비시각적 음표들의 시각적 극대화'가 대체 뭔데...?
'현실의 최대화'가 대체 뭔데...?
존나 관념적이지 않아요?
근데, 존나 관념적이긴 한데, 다른 대목의 장면과 진술들이랑 엮어서 가만 생각하다 보면
알 거 같긴 하지 않아요? 최소한 우리 주변의 일상적 세계 혹은 언어가 좀 낯설어지고,
어떤 면에서는 어떤 것을 표현하는 데 저것보다 더 적확한 언어가 없을 거 같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이 글을 쓰는 건 '너 시 너무 관념적이야'라는 피드백에 대한 반감에 동조하려는 건 아니고
오히려 반대쪽. 관념어 써도 되는데, 다만
('관념시'라는 정의는 잘 모르겠음. 합의되지 않은 대상을 가지고 헛도는 논의를 하게 될 거 같으니
우리가 일상적으로 '그거 좀 관념적인데'라고 말할 때 모호하게나마 지칭하는 바로 그 속성...을 갖고만 얘기합시다.
뭔말알이려나요)
관념어를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혹은 자폐적인 한계를 넘지 못하고 사용하는 데 있어
'시에 일률적인 평가 기준이 어디 있냐' '문단에서 좋아하는 틀이 있는 것일 뿐 아니냐'라는 식의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짚고 넘어가보자는 얘기.
황유원의 저 시를 갖고 온 이유는, 관념적인 발상 혹은 관념적인 표현(언어의 사용)도
시를 매개하는 상호작용을 위한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잘 확보되어 있을 때 제대로 기능한다는 사례로 좋은 것 같아서예요.
그 공통분모가 정확히 무엇일지는 아직 매끄럽게는 말 못 하겠는데
최소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게,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감춰져 있더라도'인 듯하구요...
합평에서 '너 시 너무 관념적이야'라는 말이 사실 너무 값싼 발언일 때가 많다는 것에는 십분 동의하는데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진정성이나 시적 소양에 관계없이,
'관념적이다'라는 피드백이 나오는 습작들은 자기만 아는 어떤 것을 자기만 알게 표현하려 한 경우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이 무슨 뜻으로 '관념적이야'라고 말하는 건지는 그 사람만 알 테지만(꼽게 볼 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 습작이 난해하거나 자폐적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볼 필요는 있다는 거죠.
누가 '하늘의 유목에는 미학적 수치심이 전승된다'라는 식의 문장을 썼다고 칩시다.
나도 그랬지만(아직 그러고 있을 수도 있지만) 초기 습작러들한테 자주 보이는 경향인데
'하늘의 유목' 정도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미학적 수치심'이란 대체 몰까...
그게 또 '전승'된다는 건 몰까.... '하늘의 유목'이 무슨 장소나 공간이어서
그 안에서 '미학적 수치심'이라는 게 전승된다는 걸까...
근데 또 여기서 '미학적'이라는 건 대체 몬데... 너의 아름다움은 어떤 모습이니ㅠㅠ
결국 저런 류의 문장은 자기만 아는 문장이 되는 것.
설명해야만 닿을 수 있다면 좋은 시일까여...
극단적인 예시긴 하지만... 최소한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알게 해야 한다는 것.
관념어를 쓰더라도 분명한 문장으로.
쉽게 쓰라는 얘기가 아니라, 분명하고 정확하게.
통제하지 못하는(의도하지 않은) 비문을 쓰지 말 것.
초기 습작러들에게 '관념어를 피하라'고 하는 건
관념어를 쓰는 게 나빠서가 아니라
관념어를 쓰다 보면 의도대로 그럴듯한 시를 쓰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
무협지에서 초식만 십 년 수련하듯이, 내 언어를 통제하고, 하려는 말을 하기 위해
어떤 장면과 감각을 펼치고 걔네를 결합시켜서 어떤 준비를 해놓아야 하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게 좋은 시를 위한 정도가 아닐까... 싶고.
황유원의 시를 읽다보면
'비시각적 음표들의 시각적 극대화'가 결국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타를 싣고 달리는 열차가 그려지고
그 밑에서 무거워하는 철로가 있고
기타리스트와 애벌레와 환자들이 생각하고 행위하고
최소한 쟤네가 뭘 하는지는 알겠으니까
최소한 분명한 장면이 그려지고 선명한 감각이 있으니까
그 속에 좀 빠져 있다 보면 난해한 관념적 표현도 알 듯 모를 듯 정도로는 느껴지고
그렇지 않나요...
뭔말알일까여... 정리가 안 되네
*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라는 거대하고 답도 없는 문제를 먼저 갖고 와야 하는데
얘는 너무 좀 그렇다...
하지만 문제가 복잡하다고 해서 상대주의를 빌려오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주의가 목적이 되어버려서 '좋은 시'라는 물음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림.
그건 뭐랄까 건전하지 않은 거 같고...
제가 예술론이 좀 보수적이긴 합니다 네...
또 여기에는 '예술 그냥 하면 되지 '좋음'을 논해야 할 필요가 있냐' 물으면
그거 또 복잡한지라
오늘은 여기까지.
이론 반론 환영
혹시나 해서: 이거 '관념시도 좋아요'를 비판하는 건 아님니다. 습작 단계에서 '너 그거 너무 관념적이야'라는 피드백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피드백이라는 정도...가 요지인 듯
그런 피드백을 주는 사람의 무책임함이나 태도 불량과는 별개로... 솔직히 나도 '관념적이야'무새 싫어하긴 해요
근데또 앞에 글들 다시 읽다보니 내가 포인트를 잘못 잡앗나 싶기도 하고
글 좋아요 잘읽었어요
디시에는 안온다고 하다가도 좋은 글들땜에 또 온다는
황유원 시 오랜만이다! 사실 이 시는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 이 이미지 하나로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가는 시 같아, 이 문장-이미지가 없었다면 다른 문장들도 어떤 심상이 되지 못하고 겉돌았을 거 같거든 그런 점에서 단어 단위로 시를 평가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보고. (사실 “너무 관념적이다” 방식의 합평이 문창과 내에서 합의된 데에도 맥락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거는 언제 한번 써보겠음..) 어쨌든 규범화된 합평언어라고 해도 엄밀히 말하면 독자1의 의견이라는 점에서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 - dc App
그치 단어 단위로는 무리지... 관념어든 뭐든 시적 표현의 성패는 결국 요소(형식)들 간 관계 속에서...
'너무 관념적이다'식 합평의 맥락 이야기는 궁금하네요 담에 풀어주세요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