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고픈 지망생입니다.

어제 나온 하루키 작가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다가 갑자기 받은 느낌대로 쭉 써본 습작입니다.


커뮤니티에 익숙하지 않아, 혹시 갤러리 취지에 맞지 않는 글이라면 지우겠습니다 (_ _)


*   *   *


그녀와는 2년 전에 처음 만났고, 작년에 헤어졌다. 헤어지고 싶어서 헤어진 것은 아니다. 불가피한 일이 있었다. 

오늘도 나는 그녀의 묘지를 내려다 본다.

그렇다. 이것은 이미 비극적인 결말이 예정된 과거의 일이다. 내 기억은, 그녀와의 추억은, 그렇게 2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우리가 만난 곳은 어두운 골목이었다. 마을에 2개 있는 편의점 중 하나를 지나 커피점으로 향하는 곳에는 골목이 하나 있다. 사람이 드나들기엔 너무 어둡고, 더러운 골목이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느껴지는 기척에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왜 그랬을까? 내가 발걸음을 돌려 골목으로 향했다. 


평소에 나는 조용한 편이었다. 내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쓴 생기부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이라고. 그런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발걸음을 돌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적어도 말을 걸어온 나를 피해 떠나가진 않았으니까. 계속해서 말을 걸자 반응이 돌아왔다. 그 작은 반응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그녀의 목소리는 예뻤다.


이후로도 길을 지나다 보면 항상 그 자리에서, 혹은 그와 비슷한 어딘가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그녀를 보고 굳이 횡단보도를 건넌 적도 있었다. 아마 그 당시의 나는 그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있었나 보다. 


어느 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흘렀다. 내 시간도, 그녀의 시간도 그랬다. 우린 어느새 한집에 있었다.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내 집에 그녀를 들인 것은 내게 큰 결심이었다. 그녀는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고, 직장도 없었다. 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저 멍하니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것이 주요 하루 일과였다.


그래도 좋았다. 학교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맞이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내게는 상당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는 내게 오기 전부터 병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끝까지 내게 알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아픔을 곱씹어 삼키고, 끌어안은 채 버텼을 뿐이다.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니, 어쩌면 눈치채기 싫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이야 뻔했으니까. ...아니다. 정말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녀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정말로 떠났다는 말이다. 어느 날 학교를 가기 위해 문을 여니 그 틈 사이로 재빨리 빠져나갔다. 한동안 힘없이 누워만 있던 그녀였는데 아마 그게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짠 것일지도 몰랐다. 


급하게 뒤따랐지만 찾을 수 없었다. 며칠을 거리를 방황하며 찾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와 자주 마주쳤던 골목, 편의점 주변 길가, 횡단보도 건너편. 전혀, 그림자조차 발견해 내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는 내 곁을 떠났다. 


다시 그녀와 만난 것은 2주가 지난 후였다. 그땐 이미 그녀가 내가 질려서 떠났다고 굳게 믿은 후였기 때문에 찾아다니지 않던 상태였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편의점을 나서는데 그녀와 처음 마주쳤던 골목이 괜히 아른거렸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했다. 더럽고 축축한 곳. 사람이 지나다니기엔 너무나도 불쾌한 곳. 그녀를 찾아다닐 때도 여긴 아니겠지, 하고 들어가지 않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그날에는 그럴 각오가 섰다.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그녀가 있다고. 그리고 그 이후에 내가 마주하게 될 결과도. 그래서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엔 그녀가 없겠지, 너무 더럽고 축축하잖아, 라며 눈과 몸을 돌렸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날은 달랐다. 심호흡이나 결심도 없이, 그저 묵묵한 마음으로 발을 쑥 집어넣었다.

골목은 좁았고, 어깨가 쓸려 옷이 더러워졌다.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눈은 그저 바닥과 구석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골목 구석에서, 그녀와 재회했다.


이미 그녀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녀가 창문 너머로 내다보던 곳은 빌라의 뒷산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땅을 파고, 그녀를 묻었다. 묘비는 없었다. 대신 나뭇가지를 두어 개 꺾어와 꽂아 넣었다.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 겨우 삼켜가며 그러고 있으니 지나던 빌라 주민들이 말을 걸어왔다. 괜찮다고 대답하곤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창가에 앉는 버릇이 생겼다. 정확히 그녀가 앉던 곳이다. 몸집이 작고 가늘던 그녀에게 딱 맞던 곳이라 내가 앉기엔 조금 부담스럽지만, 어찌저찌 앉아는 졌다. 그곳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본다. 빌라의 볼품없는 뒷산이 내 시야 한가득 들어온다. 그리고 거기엔 조잡하게 꽂힌 나뭇가지 두어 개가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여전히 거기에 꿋꿋이 서 있다. 


그 옆에 앉은 그녀도 나를 올려다 본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짓는다.


*   *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30페이지에 주인공이 '내 친구'라는 주제로 '암고양이'에 대해 글을 썼다는 걸 보자마자 느낌이 와서 그 자리에서 책을 덮고 썼습니다.

제목은 '길고양이, 그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