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깨질듯이 아파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할때마다 너무나 큰 고통이 몰려온다.
베게는 나를 질식 사라도 시키려는 것인지 너무나 내얼굴에가까이있다
. 침대가 느껴질 정도다. 이대로 다시잠이 드는 것도 좋은 선택지지만 나는 가야할 곳이있으므로 그럴수가 없다.
일을 그만 둔다면 얼마못가 노숙자가 될게뻔했다. 나는 운이 나쯘편이라서 일자리를 쉽게 구할수 없으며 일자리가 넘치는 시대도 아니기때문이다. 결국 나는 이불을 바닥에 던지고 굴러서 떨어졌다.
아픈은 느껴지지않았다 단지 떨어몄다는 충격이 느껴졌을 뿐이다. 나는 두팔로 내몸를 이르켜 세워 침대옆에놓은 거울을 볼수있게했다. 거울에는 어디서 심하게 두들겨 맞은 얼굴의 30대 남자가 있었다.

오른손으로 얼굴의 상처들중 하나를 쓰다듬지만 내얼굴이 아닌건 어쩔수가없다.
나는 20대 후반의 남자 유료화는 해본적이없는 웹소설가겸 일용직 노동자다. 주로 택배 알바 이삿짐나르기 위주로 그때그때 시키는 일을 하고있다. 돈은 일당으로  치면 나쁘지는 않다.
하루에 12만원 정도로 한달 정도 쭉 하면 먹고 살만하게는 나온다.  하지만 너무나 힘들어서 따로 일을 할수가 없다..
어제도 일을 나가서 일당을 받고 집에와서  술에 치킨을 먹고 퍼질러잤다. 특별한 일 따위는 없었다.
나는 이남자에 대해 알기위해 방을 뒤졌다. 방은 책한권도 없고 컴퓨터 한대와 단촐한 옷가지들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바지 주머니에 있는 지갑 하나가있었다.
지갑에는 신분증이들어있었고 200만원 정도되는 현찰과 카드가 있었다. 머릿속에 순간 물음표가 떠올았다. 이거 대박아닌가. 컴퓨터는 비밀번호 때문에 확인 할수가없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기다란 복도가 있었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되어있었고 벽지는 크림색이었다. 그림이 몇점 걸려있는데 그중에 한점은 내가 아주 잘아는 인도네시아 유명  작가의 그림이다.  

대학에 입학하기전 놀러갔던 자카르타에서 처음만났다. 그때 그는 아직 유명하지않는 미대 대학원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력을 적은 판넬을 세워두고 길거리에서그림을 팔았는데 사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림은 좋았지만 굳이 그림을 사야하나? 하는 생각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속 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때문이다. 19세기가 지나가면서 집안에 걸어두는 그림같은 건 의미릉 상실했다.  미국의 유명 미술 평론가가 90년대 현대미술 붐과 아시아 부자들이 미술시장에  오기전에 침체된 미술 시장을 보며  한말이다.
이때 그가 그린그림은 초판 이라고 하여 크기에 상관없이 그림당 2천만원에 팔리고있다.  작가가 말하기를 그시절 자기는 딱 100개만 팔았고  그중에 10개는  도둑 맞은 것이라고 했다.  도둑맞은 10개의 그임은 그의 그림에 중요한 모티브로써 그를 유명하게해주는데 일조했다.  그의 그림을 훔쳐갔던 마약에 쩔음 동남아에서 흔히보는 백인 중 하나의 아버지가 유명 미술상이었다.   아버지가 딸을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하려고 찾아왔더니 뛰어난 작가를 발견한다. 무슨 동화속 이야기도 아니고.
하지만 동남아에서는 흔하게 나오는 이야기도 그게 스타가 되지는 않게해주지만 적어도 미국에는 가게 해준다.

보통은 섹스를 통해서지만. 가끔가다가 이런일도 있는 법 거기다 그는 미술상의 딸과 결혼 까지하고 잘살고있다.

그사람의 그림이 여기에 걸려져있다는 건. 이사람은 엄청난 부자라는 것이고 나는 더이상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그것도 잠시 뿐 거실에서 죽어있는 여자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손이 벌벌 떨렸다. 시체 옆에있는 핸드폰의 화면을 켰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는데 몸이기억했는지 아무번호나 입력했더니 열렸다.  

아무래도 바람핀것을 시체가돤 여자에게 걸렸고 싸우다가 죽인것 같다. 바닥에 깔린 유리 조각이 그것을 대변해주는 듯 하다. 이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미인이었으며 바람을 피고있는 여자도 미인이었다. 집도 부자흘 넘어서 소위 말하는 재벌 인것 같다.
그래서 119에 전화를 했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으나 사건은 조용히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