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할 수 있지만 그런 부족한 부분 짚어 주시면 나은 글 쓰겠습니다. 



生死


“설아, 난 네 손에 죽고 싶어.”


내 옆에 누워 손을 만지작거리던 설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안 그래도 동그란 설의 눈이 더 동그래졌다.

아. 저 눈에 반했지


“네 손에 죽고 싶다니까.”


설은 고개를 저으며 내 품에 얼굴을 한참이나 묻고 있었다. 설의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날 혼자 두고 가는 것도 모자라서 살인자로 만들고 가게?”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설의 모습에 나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라고 죽고 싶겠니.


금이라도 너와 함께이고 싶다.

네 아름다운 미소를 조금이라도 더 내 눈에 담고 싶고

네 작디작은 몸을 영원토록 안아주고 싶고

내 남은 모든 순간을 너와 함께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난 네 손에 죽어야 한다.

네가 아닌 다른 것에게 내 목숨을 내놓고 싶지 않다.

설아, 내 마지막은 너여야만 해.



민을 처음 본건 열여덟이다. 우리는 같은 반임에도 그다지 접점이 없었다. 민은 곁을 잘 내주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보다 책과 더 친했다.


항상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시간을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몸을 쓰며 놀거나 게임을 즐기는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민은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저 책을 읽었고 그런 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남자는 없었다. 여자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의 뽀얀 피부와 오뚝한 코, 그에 어울리는 짙은 검은 색의 곱슬머리, 더불어 하얀 손으로 무뚝뚝하게 책장을 넘기는 모습은 꽤 많은 여자를 홀렸다. 물론 말을 걸어오는 대부분에게 눈길 한 번 던지지 않은 민이었지만 그런 모습마저 얼굴값을 한다며 좋아하던 애들도 꽤 있었다.


반면 나는 조금은 형편이 없는 편이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아침에 일어나 내 얼굴을 보면 부모님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여드름 가득한 피부, 넙데데한 코, 살에 묻혀있는 눈. 좋게 말해도 못생겼다. 말주변이라도 있었으면 조금은 나았을까. 내가 사이에 껴서 한마디라도 뱉으면 분위기가 싸해지는 건 중학교 때부터 일상이었다. 내게는 사람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회피 수단으로 수학을 택했다.


수학은, 사람과 다르다. 나만 올바르게 접근한다면 다른 말 하지 않고 올바른 결과를 내놓는다. 실수하더라도 바로 잡을 기회를 몇 번이고 준다. 내가 숏컷을 했던, 치마가 무릎까지 오던, 알이 두꺼운 안경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던 날 편견 없이 대한다. 수학은 내게 안식처이자 도피처인 것이다.


나는 특히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수학과 씨름하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에는 사람이 가득하고 시끌벅적한 공간이 아침만 되면 고독하고 고요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기분 좋은 적막감이 이 큰 세상에 나와 문제만 남겨 놓는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그게 나만의 행복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 행복한 아침을 위해 겨울 해가 채 뜨지 않은 거리로 나와 찬 바람을 느끼며 학교로 향했다. 유난히 바람이 산뜻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교실에 도착하고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시간은 이제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사람이 없어야 할 시간인데, 생각하며 교실 문을 열자, 창틀에 앉아 독서를 즐기는 민이 눈에 비쳤다.


난 홀린 듯 널 바라봤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네 뽀얀 살결에 부딪혀 빛을 내고 있었고, 책을 읽으며 고민하는 네 표정은 성스럽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네 눈, 눈은 내가 본 그 어떤 별보다 더 반짝였다. 활자에 보물이라도 있던 걸까.


민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 빛나는 눈의 초점을 나에게로 맞췄다. 내 눈과 민의 눈이 맞은 그 순간, 나는 신의 계시를 받았음에 틀림없다. 나는 너와의 사랑에 빠져버렸다.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얼굴은 뜨겁다.

이건 사랑이다.


가방을 자리에 던지듯 내려놓고 화장실로 도망치듯 나와 세면대 앞에 섰다. 새빨간 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 말고는 평소처럼 초라해 보였다. 다를게 없는 나다. 부끄러웠다. 내가 바라본 민의 찬란한 모습과 민이 나를 바라보았을 때의 모습, 두 모습의 차이가 내게도 선명히 보였다.


그날 이후로 민을 바라보는 건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그의 얼굴을 내 눈에 담으려 했다. 이따금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다시 수학 문제로 던졌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진 건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민에게 다가가 그의 옆에서 일상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외모가 떠올랐다. 먼발치에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내 용기의 한계치였다. 해가 넘어가고 민과 반이 달라졌지만 나는 민의 반을 몰래 찾아가 문밖에서 그를 자주 염탐했다. 음침한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 서서히 민은 내 또 다른 행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학교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설은 보통의 아이들과는 달랐다. 늘 어딘가에서 수학을 풀고 있었다. 애게 말을 걸거나 귀찮게 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설을 확실히 인식한 건 학기 말 아침이었다.


전날 밤을 새우며 소설을 읽어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이었다. 이대로 침대에 누우면 일어나지 못할 게 뻔해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학교로 향했다. 창틀에 걸터앉아 마저 책을 읽고 있을 때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어느새 교실에 들어와 날 바라보고 있는 네가 있었다. 두꺼운 안경으로는 가려지지 않는 동그란 두 눈으로 넌 분명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설은 허둥대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붉어진 두 볼은 감춰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설은 종종 내게 관심을 던졌다. 말을 걸거나 다가온건 아니다. 그녀가 몰래(모를 수가 없지만) 나를 바라보면 나도 설에게 시선을 던졌다. 일치하는 시선의 방향이 느껴졌다.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녀가 궁금했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삶을 사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다가가지는 못했다. 나는 로미오도, 베넷도 아니니까. 학년이 바뀌어 다른 반이 되어도 


나는 그 미묘한 관계가 썩 마음에 들었다.

소소한 행복을 찾았다. 내가 학교를 나가지 못할 때까지는.

튼튼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제 역할은 하던 몸이 나를 배신했다. 집에서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울며 구급차를 불렀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 기억은 없다.


눈을 뜨자 하얀 천장과 각종 기계음이 나를 반겼다. 얼마나 지난 걸까. 시간의 흐름이 또렷하지 않다. 양팔에는 알 수 없는 멍과 주삿바늘이 가득했다. 나는 기억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머릿속을 되짚었다.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기억도 없다. 도대체 내가 왜 갑자기 낯선 공간에 누워있는 걸까.


온갖 잡념들이 머릿속에 들이닥칠 때쯤 어떻게 살아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마른 의사와 간호사가 문을 열며 들어왔다. 빠지기 시작하는 머리, 푸석한 피부, 하얀 걸 넘어 창백한 안색. 흰 가운과 목에 두른 청진기가 아니라면 환자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의사는 내 얼굴을 쓱 살피고 침대 옆에 섰다.


"의식이 돌아왔네요? 언제 일어나셨나요?"


깡마른 의사는 정보를 원하듯 내게 간결히 물어봤다.


"얼마 안 됐어요. 제게 무슨 일이 있던 거죠? 얼마나 누워 있던 건가요? 어머니는요?"


나는 조금은 다급하게 질문을 쏟아냈다.


"사흘간 의식이 없었고, 급성 백혈병입니다. 혈소판 수치가 기준치보다 낮습니다···. 빠르게 항암이 필요합니다. 보호자께는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사는 자기 할 말만 툭 던져놓고는 병실을 나섰다.

백혈병? 저게 무슨 소리지? 저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병인 건가? 꿈은 아닐까.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 없던 듯 난 내 방 안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아닐까.


내 상상은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로 병실에 들어오는 어머니 덕에 박살 났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현실감이 몰려왔다.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쥐고서는 울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어느새 뺨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항암은 열아홉의 나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했다.

첫 한두 달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단지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구토와 아무리 자도 쏟아지는 잠, 반복되는 병실 생활이 조금 귀찮았을 뿐이다. 잠을 자지 않을 때는 대부분의 시간에 책을 읽었다. 조용한 병원 생활에서 내 쾌락은 책이 유일했다. 시간이 많아져 입원하기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망할 놈의 병은 내가 그럭저럭 사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나 보다. 암세포 덩어리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메마른 목소리로 내게는 재앙 같은 심판을 내렸다.


"차도가 없네요. 투약 늘리겠습니다."


마루타 취급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방사능은 암세포와 내 삶을 함께 부숴나갔다.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많아졌다. 깨어있는 시간조차 몽롱했다. 내가 아닌 순간들.


괴로운 시간은 내게 글자를 읽을 여유도 남기지 않는다. 그렇게 나에게서 책 마저 앗아갔다. 어머니는 나 못지않게 수척해지셨다.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시고 짧은 휴식 시간 마저 내 침대 옆의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주무셨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 빠져버리기 전에 밀어버린 머리, 사막같이 건조한 피부, 창백한 안색, 놀라울 정도로 담당의의 모습과 닮아있다.  죽음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다 이런 모습이 돼가는 걸까.


수척한 어머니, 거울 속의 나, 나빠지는 상황만을 말해가는 의사.

내 몸을 뒤 덮는 고통.

내 몸은 서서히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있지.

고민을 거듭해도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살아있는 자의 특권인 감정이 괴로운 것의 연속이라면 죽은

것보다 나은 게 무엇일까.


죽자.


생각을 굳히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백혈병 환자의 자살법은 꽤 간단하다. 적당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이미 약해진 몸은 중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다.

내 마지막 장소로 병원 옥상에 있는 옥외 정원을 택했다. 낮에는 이곳에서라도 햇빛을 즐기기 위해 환자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해가 질쯤부터는 고요해지는 공간. 나는 그 간극이 퍽 마음에 들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나는 슬그머니 병실에서 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한걸음 씩 발을 옮길 때마다 다리가 가벼워진다. 눈치챌 때쯤 난 옥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삶의 미련이 사라진다.


옥상은 역시나 누구도 없이 고요했다. 나는 난간에 걸터앉아 눈을 감으며 선선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았다.

죽기에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은 날씨다.


어둠과 적막 속을 뚫고 머릿속에 기억의 파편들이 떠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헌신하는 어머니, 우리를 오래전에 떠난 아버지도 아닌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은 설. 그 설의 눈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의아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 네가 떠오르다니.

설의 모습은 내 안에서 커지다 못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설을 내 두 눈으로 마주하고 싶다는 욕구가 죽음에 관한 생각을 덮어나갔다.


아. 난 살아서 널 봐야겠다. 너와 함께 있어야 한다.


나는 곧장 난간에서 내려와 내 뺨을 때렸다. 결심이 생겼다. 널 다시 만날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


설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나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