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글 올렸더니 자아를 줄이라 하셔서 줄였습니다. 근데 너무 비문학 느낌 나나요?



행복이란 뭘까? 사람들은 행복을 줄곧 신성한 것으로 정의하곤 하지. 하지만 아니다.

행복이란 도파민이 보상 없이도 안정적으로 분비되는 상태를 뜻한다.

나는 매일 내 침대에 누워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논문을 쓰고 사고 실험을 하며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든다. 물론 다음 날이 되면 모두 잊어버리지만. 나는 다시 똑같은 논문을 쓰고 사고 실험을 하며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든다. 또 잊어버리고 다시 똑같은 논문을 쓰고 사고 실험을....

 

나에 대한 논문을 쓰는 일은 흥미롭다. 내 뇌는 컴컴한 두개골 속에 갇혀 눈과 귀, , 피부와 혀로 세상을 해석하려 애쓴다. 내가 보는 것은 내가 보는 게 아니고 내가 듣는 것은 내가 듣는 게 아니야. 내 불안함, 내 기쁨과 슬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내가 느끼는 황홀함, 그리고 절망감 모두 생존 번식을 위해서 진화된 뇌 속에 작은 전기 신호일 뿐, 무의미하다. 그래서 난 누워서 생각하는 게 좋다.

생각할 때는 내 눈도 귀도 코도 혀도 피부도 방해하지 못한다. 눈을 감고 숨을 죽이고 고요함 속에서 나는 엄숙해진다. 그리고 내 정신에 집중하지. 내 뇌에 집중해.

위대한 생명은 줄곧 거짓말을 한다.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며.

사람들은 그걸 본능이라고 부른다. 야생에서는 몰라도 현대 사회에서의 본능은 대체로

거짓말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됨은 더는 생존에 위협되지 않고, 음식이 넘치는 현대 사회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 많이 먹어둘 필요가 없다. 본능의 거짓말을 안다.

 

현대의 인간은 쉽게 중독에 빠진다. 도파민 때문에. 도파민은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고 삶의 원동력을 준다. 원시 시대 때는 원시에는 도파민 추구가 생존 번식의 이점이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정반대이다. 도파민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자손을 남기는 데에 더 유리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중독자가 될 것이 뻔하다.

우리의 뇌는 여전히 원시 시대의 규칙을 따라 신호를 보낸다. 도파민을 추구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원한다면 도파민을 마음껏 공급받을 수 있다.

생존 본능이라는 물살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고통. 그 고통을 이겨내야 현대를 살아갈 수 있다.

보상과 도파민 그리고 행복. 뇌는 사채업자고, 도파민은 행복이란 이름의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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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어떤가. 마치 비굴한 채무자처럼, 감당할 수 없는 쾌락을 먼저 당겨 쓰고는 늘 뒤늦게 후회한다. 아니, 이 사회는 어떤가. 마치 사람들을 중독 시키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무슨 위대한 업적이라도 되는 양 떠들고 그 피해자들을 조롱한다.

세계적인 대기업에 뇌과학 석박사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자신들의 서비스에 중독시킬 수 있을지 논의한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마약을 제조하는 자들과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포장과 브랜드와 법률을 안다는 것뿐이다.





아직 다 쓴 거 아니고 뒤에 내용 많이 남았는데요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