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최 씨가 삽질을 함에,

흙의 결을 따라서 공사장 바닥을 나라시 하니

높고 낮음이 같아지는 것에 막힘이 없더라.

이윽고 무아에 빠져 삽과 최 씨가 하나를 이룸에,

최 씨가 하는 것이 삽질인지 춤을 추는 것인지

지켜보던 사람들은 알 수가 없더라.

마침내 토사가 스스로 몸을 뒤집고 잡석들이 물러서니

그 이치를 궁금히 여겨 최 씨에게 물음에.

본래 삽이라 함은 몸통은 나무요. 머리는 무쇠라
나무(木)와 무쇠(金)의 조화로 흙(土)을 파헤침이니
이는 모두다 오행의 이치를 따름이라.

다시, 삽의 형상과 쓰임을 들어 도를 설파하시니

삽질이란, 널리 땅을 이롭게 쓰고자

하늘의 기운을 빌어 사람이 흙을 가꾸는 것이니

이는 천지인(天地人)을 조화롭게 하기 위함이라.

이렇듯 평생의 심득을 담아 도(道)를 설파하심에

천기마저 누설하시어 원기까지 크게 손상하시니

크헤엑! 하고 걸쭉하게 가래침을 뱉으시더라

마지막으로 젊은 대학생이 등록금 한 번 벌어본다고

공사장에 왔다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더니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담배 다 폈으면 일하자 말씀하더라

이에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삽자루를 들고

삽신지로(揷申之路)에 들어선지 어언 20년이 흘렀다

하루는 일이 끊겨 오랜만에 일당을 나가 삽질을 함에,

때마침 그 곳을 지나시던 직영 반장님께서 내게 말하길

아저씨. 어디서 삽질 좀 했나봐

내일도 꼭 나오세요. 하더라.

- 삽신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