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시 창작에 입문한 습작들을 보면서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감상 중에 하나는 상당히 관념적인 경우가 많다는건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경향이 시가 무언가 대단하고 특별한 생각이나 정서를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 혹은 오해 때문인거 같애.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소설에 이런 부분이 있는데, 주인공이 작문 숙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독백을 하는 부분이 나와. 그 중에 그 책을 읽은지 거의 삼십년이 되가는데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나는 그렇게 관념적인 주제에 대해선 작문을 잘 할 수 없다.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은 오랫동안 애착을 가지고 있었듼 야구글러브에 관한 글이다.
  또, 예전에 개인적으로 중고등학생 때 미술 수업에서 정물화 같은 것을 그리는 과제 같은게 있었는데. 많은 친구들이 사과 같은 것을 그려서 평범한 점수를 받았을 때. 1등을 했던 친구의 작품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그 친구가 그렸던건 자기 책상 한 편에 올려져 있던 초코파이였던 기억이 있어.
  이런 경험을 지금 이제 막 시창작을 시작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전하는 이유는. 우리가 시를 쓸 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원칙 같은게 있기 때문이야.
  첫 째로, 자신이 남들보다 잘 쓸 수 있는 소재나 이야기를 가지고 시를 써라. 야구글러브. 초코파이 같은게 그런거겠지. 그렇게 구체적인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직관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시를 쓴다면 그 자체로 남들은 할 수 없ㅇ는 자기만의 표현이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지는거라고 생각해. 그런 과정을 습작으로 오래 거치면 어는 샌가 자기만의 문법이나 문장이 나오게 되는거고. 아주 나중이 되면 아 이 시는 누가 쓴거구나. 이런식으로 되겠지. 이런 개념들을 포괄해서 자기화라고 부를 께.
  둘 째로, 작고 구체적인 것들을 쓰라는 거야. 고등학생 때 첫 습작에서 나는 인간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를 건방지게 표현하려고 그럤었는데. 지금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거 보니까 완전히 망했던게 분명한 거 같애. 욕도 많이 먹었고. 시라는게 뭔가 특별하고 대단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이나 오해가 나에게도 있었던거지. 더욱이 애초에 그 정도 주제를 소화할 수 있는 필력 같은게 나에게 없기도 했고. 호밀밭의 파수꾼 식으로 처음부터 내가 잘 할 수가 없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었던거지.
  이렇게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것들을 쓰는 걸 작은 시라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쓰라는 이야기는 시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표현의 구체성에서 나오기 때문이야. 초코파이 그림이 사과 그림보다 좋았던건 그 형상이 이미 더 복잡하고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이를 시에 적용한다면 같은 문장이나 생각도 비유하고 섬세하게 묘사하고 비틀거나 배열 등을 통해서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이런 모든 미학적인 시도들이 시를 시답게 만들어주는 것이고. 사실상 기억에 남는 모든 좋은 표현들은 자신만의 구체성을 가지고 있다는거지.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함축도 시에서는 구체서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고도로 압축된 구체성의 발현 같은거라고 생각하면 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