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에 의존한 글이기 때문에 절대로 객관화 시킬 만한 글이 아님을 우선 밝힘. 개인적인 경험상 게임유저들의 대다수는 용돈으로 게임 생활을 영위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배타적인 성향은 있었지만, 그게 타기종에 대한 비방, 날조까지 이어진건 플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음.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오는게 웃기다면 웃긴거긴 하지만-_-;
1. 16비트 시절의 기종 싸움은 대단한거 없었다. 메가드라이브에 비해 슈패가 압도적이기도 했었지만, 슈패의 특성상 스피드한 슈팅게임이나 액션게임은 상대적으로 밀렸기 때문에 슈패 유저들도 거기에 대해선 인정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음. 왜냐. 파이널 파이트2와 베어너클2가 나왔을 때 파이널 파이트2가 베어너클2에 비해 압도적으로 구렸거든. 때문에 오락실에도 시간제로 베어너클2를 더 들여놨었다.
대신 JRPG쪽에선 메가드라이브가 비빌만한 구석이 1도 없긴 했었음. 때문에 서로의 영역을 어느정도씩 인정하는 분위기였지만 워낙에 FF와 DQ, 곁다리로 여신전생의 위세가 대단했기 때문에 세가빠들이 닌빠에게 개길 생각을 안 했다는 편으로 보는게 좋을듯.
아케이드 격겜 이식작은 그땐 ‘집에서 하는게 어디냐’ 분위기 였기 때문에 스파2 이후론 크게 위세를 떨치진 못했다. 어차피 둘다 완벽이식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으니까. 드래곤볼 초무투전으로 인해 슈패가 짱이다라는 분위기가 잠깐 있긴 했었는데 워낙에 반짝 인기였어서…
2. 32비트 초반기엔 플빠들이 생길 여지도 없었다. 새턴, 플스의 가격이 워낙에 비쌌기 때문에 잡지 보면서 손가락 빠는게 다반사였으니까. 95년에 90만원 하는 게임기를 옛다하며 사주는 집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었을까? 그럼에도 어떻게든 장만하는 놈들이 있기는 했다.(시바 왜 이리 일본에 친척들이 많이 살어) 그게 플스보단 새턴이 ‘더’많았었다.
그 시절엔 철권은 버파의 짝퉁이었고 릿지레이서보단 데이토나 USA였기에 그 게임들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메리트는 겜돌이라면 참을 수 있는 유혹은 아니었다. 게다가 엑스맨 같은 게임을 하려면 새턴밖에 없긴 했기도 했고. 게다가 불가능해 보였던 버파2의 새턴이식이 새턴치곤 꽤 잘나왔어서 그 당시엔 플빠들은 내 주변엔 존재치 않았음. 이때가 새턴의 전성기였고, 세가빠들은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리던 마지막 시기였다.
3. 이 모든 상황이 뒤엎어진건 스퀘어의 이적과 FF7 체험판, 철권2, 바이오하자드의 연타석 콤보였다.
먼저 스퀘어의 이적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좌청룡과 같았던 그 스퀘어가 소니로 이적했다는건 N64를 목빠지게 기다렸던 JRPG팬들. 특히 FF시리즈의 팬들에겐 N64를 버리고 플스를 장만해야 할 이유가 생긴것이었고 그 잠재유저들은 그때까지 새턴을 산 유저수보다 많은 수치였다. 특히 96년 여름에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급우의 집에서 그 당시 우리반에서 겜좀 좋아하는 놈들이 목격했던 FF7의 체험판은 겜돌이들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꿔버릴만한 충격을 줄 만하기에 충분했다. 세가빠였던 나 조차도 ‘플스가 대세다’라고 느낄정도였으니 더 언급하진 않겠음.
철권2의 이식은 그 당시에 거의 존재치 않았던 완벽이식을 넘어 ‘초월이식’이 뭔지 보여줬던 교과서였음. 때문에 많이 존재하지 않았던 플스 유저들에게 몇 안되는 자부심이었고, 그 당시로썬 눈돌아가던 엔딩컷신과 오프닝컷신은 그거 구경하려고 플스하러도 많이 갔었다.
바이오하자드의 압도적인 공포는 새턴에 아직 없었고, 새턴에는 비빌만한 게임조차 없었다. 그 당시 새턴의 강점은 아케이드 이식이었고 당시 새턴으로 이식된 킹오파 95는 버파2의 뒤를 이어 오락실 게임을 하려면 새턴이구나 하는 인식이 박히려고 한 시절에 오리지날은 플스네? 하는 인식을 박아준 게임이 바로 바이오하자드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새턴이 가진 강점이 플스를 찍어누르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플빠들이 패악질까지 부리진 않았음.
4. 누가 나에게 게임기를 연결 했을때 제일 두근거렸던 순간이 언제냐라고 물어보면 베스트3 중의 하나는 FF7을 하기 위해 플스를 우리집 TV에 연결했을때라고 말할거임.
FF7은 그 당시 겜돌이들의 눈을 높여줬고, 게임의 문법을 영원히 바꿔놨으며,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특히 일본게임) 인식을 심기에 바빴던 우리나라 주류 언론들이 게임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도를 한 게임이었다. 그리고 FF7은 새턴을, 세가를 침몰시킨 외부적인 핵폭탄이었다.
FF7의 발매 이후 플스유저들은 우후죽순격으로 많이 생겼다. 비싸긴 해도 못 살 가격은 아닌 플스였고 복사CD의 보급은 더 이상 남의 집에서가 아닌 우리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게임기로 바뀌었다. 즉 FF7이라는 게임으로 인해 그 당시 콘솔게임과 무관하던 사람들이 플스를 장만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그 당시 콘솔유저들이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던 ‘비교는 하되 비방ㄴㄴ요’를 무시하던 층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들은 ‘플스가 짱인데 왜 새턴게임들은 플스로 안 나옴?’과 같은 패악질을 부리기 시작했고 당시 3D 기능이 새턴보다 앞섰던 플스였기에 플스게임의 그래픽은 무조건 새턴보다 낫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요즘 누가 2D겜 함?’ 하면서 플스용 스파제로2는 재밌게 하기는 하더라.
5. 새턴과 세가는 누가봐도 안 될 집안이었기에 새턴으로 독점발매 됐던 게임들도 플스로 나오기 시작했다. 새턴 독점작이었기에 새턴의 하드를 잘 살린 게임들은 플스로 그래픽이 다운되고 대신 소소한 추가요소들이 있었는데(대표적으로 썬더포스5. 배경 그래픽과 브금이 다운되고 추가요소가 생겼다.) 그들에겐 다운된 것 보다 소소한 추가요소가 더 좋다며 떠들어댔다.
그 화룡점정은 DC와 플스로 같이 나왔던 CVSPRO에서 찍었다. 누가봐도 DC보다 후진 그래픽에 후달리는 프레임이었지만 그들은 누가 DC의 병신같은 패드로 격겜을 하냐면서 격겜하려면 플스지를 외쳤다.
근데 CVSPRO는 DC패드에 최적화된 격겜이었음.
글쓰다보니 생각보다 길어졌고 주절대는 잡소리가 길어졌음. 생각나면 다음에 이어서 쓰겠음.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오는게 웃기다면 웃긴거긴 하지만-_-;
1. 16비트 시절의 기종 싸움은 대단한거 없었다. 메가드라이브에 비해 슈패가 압도적이기도 했었지만, 슈패의 특성상 스피드한 슈팅게임이나 액션게임은 상대적으로 밀렸기 때문에 슈패 유저들도 거기에 대해선 인정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음. 왜냐. 파이널 파이트2와 베어너클2가 나왔을 때 파이널 파이트2가 베어너클2에 비해 압도적으로 구렸거든. 때문에 오락실에도 시간제로 베어너클2를 더 들여놨었다.
대신 JRPG쪽에선 메가드라이브가 비빌만한 구석이 1도 없긴 했었음. 때문에 서로의 영역을 어느정도씩 인정하는 분위기였지만 워낙에 FF와 DQ, 곁다리로 여신전생의 위세가 대단했기 때문에 세가빠들이 닌빠에게 개길 생각을 안 했다는 편으로 보는게 좋을듯.
아케이드 격겜 이식작은 그땐 ‘집에서 하는게 어디냐’ 분위기 였기 때문에 스파2 이후론 크게 위세를 떨치진 못했다. 어차피 둘다 완벽이식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으니까. 드래곤볼 초무투전으로 인해 슈패가 짱이다라는 분위기가 잠깐 있긴 했었는데 워낙에 반짝 인기였어서…
2. 32비트 초반기엔 플빠들이 생길 여지도 없었다. 새턴, 플스의 가격이 워낙에 비쌌기 때문에 잡지 보면서 손가락 빠는게 다반사였으니까. 95년에 90만원 하는 게임기를 옛다하며 사주는 집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었을까? 그럼에도 어떻게든 장만하는 놈들이 있기는 했다.(시바 왜 이리 일본에 친척들이 많이 살어) 그게 플스보단 새턴이 ‘더’많았었다.
그 시절엔 철권은 버파의 짝퉁이었고 릿지레이서보단 데이토나 USA였기에 그 게임들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메리트는 겜돌이라면 참을 수 있는 유혹은 아니었다. 게다가 엑스맨 같은 게임을 하려면 새턴밖에 없긴 했기도 했고. 게다가 불가능해 보였던 버파2의 새턴이식이 새턴치곤 꽤 잘나왔어서 그 당시엔 플빠들은 내 주변엔 존재치 않았음. 이때가 새턴의 전성기였고, 세가빠들은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리던 마지막 시기였다.
3. 이 모든 상황이 뒤엎어진건 스퀘어의 이적과 FF7 체험판, 철권2, 바이오하자드의 연타석 콤보였다.
먼저 스퀘어의 이적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좌청룡과 같았던 그 스퀘어가 소니로 이적했다는건 N64를 목빠지게 기다렸던 JRPG팬들. 특히 FF시리즈의 팬들에겐 N64를 버리고 플스를 장만해야 할 이유가 생긴것이었고 그 잠재유저들은 그때까지 새턴을 산 유저수보다 많은 수치였다. 특히 96년 여름에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급우의 집에서 그 당시 우리반에서 겜좀 좋아하는 놈들이 목격했던 FF7의 체험판은 겜돌이들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꿔버릴만한 충격을 줄 만하기에 충분했다. 세가빠였던 나 조차도 ‘플스가 대세다’라고 느낄정도였으니 더 언급하진 않겠음.
철권2의 이식은 그 당시에 거의 존재치 않았던 완벽이식을 넘어 ‘초월이식’이 뭔지 보여줬던 교과서였음. 때문에 많이 존재하지 않았던 플스 유저들에게 몇 안되는 자부심이었고, 그 당시로썬 눈돌아가던 엔딩컷신과 오프닝컷신은 그거 구경하려고 플스하러도 많이 갔었다.
바이오하자드의 압도적인 공포는 새턴에 아직 없었고, 새턴에는 비빌만한 게임조차 없었다. 그 당시 새턴의 강점은 아케이드 이식이었고 당시 새턴으로 이식된 킹오파 95는 버파2의 뒤를 이어 오락실 게임을 하려면 새턴이구나 하는 인식이 박히려고 한 시절에 오리지날은 플스네? 하는 인식을 박아준 게임이 바로 바이오하자드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새턴이 가진 강점이 플스를 찍어누르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플빠들이 패악질까지 부리진 않았음.
4. 누가 나에게 게임기를 연결 했을때 제일 두근거렸던 순간이 언제냐라고 물어보면 베스트3 중의 하나는 FF7을 하기 위해 플스를 우리집 TV에 연결했을때라고 말할거임.
FF7은 그 당시 겜돌이들의 눈을 높여줬고, 게임의 문법을 영원히 바꿔놨으며,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특히 일본게임) 인식을 심기에 바빴던 우리나라 주류 언론들이 게임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도를 한 게임이었다. 그리고 FF7은 새턴을, 세가를 침몰시킨 외부적인 핵폭탄이었다.
FF7의 발매 이후 플스유저들은 우후죽순격으로 많이 생겼다. 비싸긴 해도 못 살 가격은 아닌 플스였고 복사CD의 보급은 더 이상 남의 집에서가 아닌 우리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게임기로 바뀌었다. 즉 FF7이라는 게임으로 인해 그 당시 콘솔게임과 무관하던 사람들이 플스를 장만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그 당시 콘솔유저들이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던 ‘비교는 하되 비방ㄴㄴ요’를 무시하던 층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들은 ‘플스가 짱인데 왜 새턴게임들은 플스로 안 나옴?’과 같은 패악질을 부리기 시작했고 당시 3D 기능이 새턴보다 앞섰던 플스였기에 플스게임의 그래픽은 무조건 새턴보다 낫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요즘 누가 2D겜 함?’ 하면서 플스용 스파제로2는 재밌게 하기는 하더라.
5. 새턴과 세가는 누가봐도 안 될 집안이었기에 새턴으로 독점발매 됐던 게임들도 플스로 나오기 시작했다. 새턴 독점작이었기에 새턴의 하드를 잘 살린 게임들은 플스로 그래픽이 다운되고 대신 소소한 추가요소들이 있었는데(대표적으로 썬더포스5. 배경 그래픽과 브금이 다운되고 추가요소가 생겼다.) 그들에겐 다운된 것 보다 소소한 추가요소가 더 좋다며 떠들어댔다.
그 화룡점정은 DC와 플스로 같이 나왔던 CVSPRO에서 찍었다. 누가봐도 DC보다 후진 그래픽에 후달리는 프레임이었지만 그들은 누가 DC의 병신같은 패드로 격겜을 하냐면서 격겜하려면 플스지를 외쳤다.
근데 CVSPRO는 DC패드에 최적화된 격겜이었음.
글쓰다보니 생각보다 길어졌고 주절대는 잡소리가 길어졌음. 생각나면 다음에 이어서 쓰겠음.
나이가 대체 몇임?
비난 멈춰! - dc App
중년임
본투비겜창이네요 아재
성장 환경이 겜창되기가 쉬웠어서 부정할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