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외곽의 많고 작은 강 줄기들 사이로 노랗게 물든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황금처럼 노랗게 빛나며 바람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어쩐지 아름답게 느껴졌다.
분명 이걸 위해 수 많은 인간들이 고생했겠지.
마침 풍년인 것 같고…아, 이 즈음이면 분명……그 시기일텐데.
"대축제야."
"음……어쩐지 마을이 시끄러운 것 같더라니."
왠지 미리내는 기분이 나쁜지 잔뜩 인상쓴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부터 계속 마을이 웅성웅성대는게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축제였나.
이젠 내가 축제에 관여하는 것도 아니고, 관심도 없으니 잊고있었다.
"그런데 너는 왜 그래? 얼핏 봐도 풍년인 것 같고 다들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는 축제 싫어."
"작년엔 좋아하지 않았나? …뭐, 나도 축제는 안 좋아하니 상관없나."
한 200년 전까지만 해도 축제 때면 제사장들이 내게 인사를 왔었다.
흰 쌀밥 한 덩이 툭 던져주고선 개구리처럼 납짝 엎드리고 신님, 내년에도 풍년을 위해 힘 써주십사…했었지. 그 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신역도 넓었었고…….
뭐, 따지고보면 그 때도 제사장이란 놈들은 내 힘은 상관없이 저들끼리 알아서 해먹는 놈들이었다.
이제는 그저 축제라며 나를 알아보지도 못 하고 따르지도, 신앙하지도 않으면서 제 멋대로 신님, 신님 하며 내 이름을 빌려 마을 사람들을 모아 축제를 즐길 뿐.
"작년부터 축제 때만 되면 결혼 얘기가 나오거든."
……흐음, 꼬맹이가? 아…그러고보니……벌써 그렇게 됐나.
별로 관심을 갖질 않아 잘 몰랐는데 어느샌가 훌쩍 자라긴 했다. 대충 봐도 제법 몸이 다부져보일 정도로는…뭐, 아직 어린 티를 못 벗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좋지 않나? 시끄럽긴해도 귀 기울이면 웃음소리들도 들리고."
"난 그런거 관심 없어. 딱히…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야 결혼하겠니. 엄마는 고민이예요~"
"누가 엄마야, 신이면서."
"흐음……."
5년 전, 개울가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꼬맹이는 버릇이 없었다.
아무한테나 거리낌없이 다가와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이 왠지 거슬려서 도중에 버릇 좀 잡아보겠다고 신이란걸 밝혔었다.
그 뒤로는 글쎄, 크게 달라진건 없었던 것 같은데.
어라, 나 손해봤던건가? 음…뭐, 상관없겠지.
"……그리고 축제의 의미도 모르면서 웃고 떠드는건 좋지 않아."
축제의 의미……별로 좋은건 아니다.
실제로 무엇이, 어떻게, 왜 그런 지는 외면한 채 그저 신을 믿고 따를 뿐.
신앙하고 기적을 바라며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면 신이 모든 것을 해줄 뿐.
내가 축제를 싫어하는건 그 뿌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지, 지금처럼 인간들이 모여 웃고 즐기는걸 싫어하는게 아니다. 오히려 시끄러운 것만 빼곤 좋아하는데.
축제 자체를 싫어했으면 진작에 힘을 써서 없앴겠지.
이 녀석은 내가 신이란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던 것인지, 쓸데없이 전통과 옛 이야기에 집착하는 면이 있다.
어차피 자기도 잘 모르면서 쓸데없이 반감 가지기는. 뭐, 이게 그건가? 어어…사춘기……아니, 흠…질풍노도의…아~ 모르겠다. 난 저런거 겪어본 적 없어.
"…하아, 그런 얘기보다…그래. 축제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자?"
예를 들면……음식이 맛있다던가?
제사장이 찾아오지 않게 된 이후 마을을 돌아다니다 참 많이 놀랐었다.
제사장 놈들은 순 흰 쌀밥만 들고왔었는데 이런 저런 신기한 음식들이 많았으니.
"이번에 당과자라는게 들어왔다던데 궁금하다. 마을로 가자."
"……그리 먹는게 좋아?"
"오래 살다보면 삶의 낛이라는게 별로 없는 법이다."
내가 흰 쌀밥만 먹었던 세월이 얼마나 되는데, 아마 넌 평생을 살아도 모르겠지.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가 식도락이다. 최근엔 대륙에서 건너왔다는게 많아서 매 년 입이 새롭다. 그 즐거움은 평범한 인간은 알지 못 한다.
"또 먹고싶은거 있어? 사줄게."
"글쎄…지금 고민하는 것보단 일단 마을에 가서 보도록 하자."
……그러고보니 작년엔 떡이 맛있었는데. 그 것부터 먹을까.
"마유고로 씨, 떡 좀 주세요."
"참 많이도 산다. 작년에도 와서는 양껏 사가더니…하긴, 우리 마누라가 떡 맛은 기가 막히지!"
"대화가 영 이상하잖아……."
"예, 엄청 좋아하던데요. 올해도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떡이 잔뜩 쌓여있는 매대 앞에 듬성듬성 난 수염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아저씨가 서 있었다. 축제 때면 아내가 만든 떡을 팔러 나오는 마유고로 씨다.
마음같아선 직접 사 먹고 싶지만 이제 난 평범한 사람은 볼 수도 없고 돈도 없으니까…미리내가 대신 사주게 되었다.
그런데 흘러가는 대화가 어째……정작 당사자들은 자각도 없는 것 같다만.
"오…네가 먹는 줄 알았는데 네게 아니라 선물이었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아저씨한테도 소개 좀 시켜줘라. 여자친구가 있으면 어른들한테 얘길 해야지. 결혼 얘기 나오는데도 그동안 그렇게 꽁꽁 숨겨놓고 있었어?"
"하하……그런거 아니예요."
"뭐 그건 그렇다 치고…아무튼 올해는 당과자 때문에 판매량이 영 시원치가 않아서…아내가 슬퍼할 것 같았는데 네 덕분에 살았다."
"아뇨, 뭘요. 저희도 맛있게 먹었는걸요. 아…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옆에서 기가 막힌 표정으로 쳐다보자 미리내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마유고로 씨와 하던 대화를 끝냈다.
"아까…"
"? 뭐냐."
"아니…아까 마유고로 씨랑 대화할 때, 옆에서 계속 쳐다보고……뭐라 했었잖아."
"별 것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라."
"떡 먹고 싶었던거지?"
이 것 봐라. 이 녀석은…….
속으로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은 이래서 인간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이래선 늘 이용당하고 뒤통수나 맞을 것 같은데. 걱정된다. 걱정돼.
"아니다. 신이 배고플 리가 없지."
"하지만 맛있는건 좋아하잖아? 애초에 떡 사러 왔던거고……. 아, 혹시 아저씨가 말한 것 때문에 화났어? 알잖아, 아저씨 눈엔 네 모습은 보이지도 않아."
"시끄럽다. 당과나 사러가자."
"……알았어."
…쓸데없는 얘기나 덧붙이고, 저 녀석은 정말 걱정된다.
신역이 줄어든 이후로 내게 신앙을 바칠 신민들이 줄어들면서 발휘할 수 있는 힘도 줄어들었었다.
인간들에게 내 모습이 보이지않는 것은 신앙이 부족해서다.
…뭐, 그래도 나는 근원이 인간들의 신앙에 기반하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힘이 없어지는게 아니라, 발휘할 수 없게되는거지만.
다른 신들과는 달리 나는 소멸할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건 그렇고 당과자는 며칠 전에 알게 된 새로운 음식이다.
오랜만에 새로운게 마을에 들어온다기에 귀를 기울였더니 뭔가 바다 건너 대륙에서 만들어졌다던가.
과일이나 꽃 모양을 한 화려한 과자라던데 어떨까. 달달하니 맛있다던데.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도착한 강가의 가게에선 소문대로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당과자들을 팔고 있었다.
"…와, 대단하네."
"난 가끔 널 보면 정말 신일까 싶을 때가 있어."
"무슨 소리 하는거냐. 지난 5년간 함께 했으면서."
미리내와 실 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살펴본 당과자는 피어나다 만 꽃잎처럼, 아직 다 여물지 못 한 열매처럼 약간은 아쉽지만 귀여운 모양이었다.
이걸 먹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먹는다면 작은 아이의 천 인형을 빼앗는 기분이 들 것 같은 음식이었다.
아이들 장난감처럼 귀엽다고 하면 알까.
먹으면 안 될 것 같으면서도 먹어보고 싶게 생겼다.
"이런건 본 적이 없다. 인간은…가끔 보면 신기해. 본 적도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니."
"흠, 그래봐야 과자잖아."
"그래봐야 과자라니, 넌 이걸 만들 수 있느냐? 그렇게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다."
나는 이런 것을 처음 보았다.
누가 이런 것을 생각 했을까 생각하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신은 인간 위에 존재할 뿐.
신은 신역을 지배할 뿐.
신은 기적을 행할 뿐.
신은 이 땅 위에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창조와 기적은 해당되는 신의 힘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신은 이런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신이 전해준 것은 곡물을 키우는 법과 단순히 그 것들을 굽고, 찌고, 삶는 것 뿐.
그 것만으론 흰 쌀밥 정도나 만들 수 있을까?
이 것은 어떨까, 저 것은 또 어떨까 하며 여러 농작물들을 키우고 수 많은 시도를 해서 만들어낸 다양한 음식들은 전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저 꽃과 열매를 닮은 과자는 그런 인간의 힘을 한 곳에 담아낸 것이다.
"어어…왜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쳐다봐. 화났어? 난 그냥…"
무심코 인상을 썼던 것 같다.
고개를 휘저으며 정신을 차리자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 미리내가 눈에 들어왔다.
…겁에 질린 와중에도 내 걱정을 하는 녀석이라, 왠지 헛웃음이 나왔다.
"화난게 아니니까 걱정하지마라. 신이 화난다면 이 정도로는 안 끝난다."
"……정말 화 안 났어?"
"흠, 그리 걱정이 되면 당과 100개로 용서해주지."
"너무 많아. 당과는 비싸니까…나한테 그 만한 돈은 없어."
"그럼 10개로 하자. 90개는 나중에 갚아라."
"…여전히 비싼데?"
그러고보면 이 녀석 아직 15살 밖에 안 됐던가.
얼마 전에야 성인이 되었으니 아직 일도 배우고 있는 중일테고…돈이 없을만도 하려나. 그래도 과자 10개도 못 사나? 음, 가난뱅이네. 이 녀석.
"그래서 결혼이나 하겠어? 오늘도 축제인데 여자랑은 안 놀고. 이제 성인이잖아."
"맨날 어린 놈 취급하면서 이럴 때만 성인이래."
"그건 '나'니까. 인간으로 따지면 성인 맞잖아."
정말 이래서야 이 녀석 결혼이나 할까?
흠, 흐음……하아…그러고보면 옛날엔 그다지 하지않았을 뿐이지, 뭐든 인간들에게 내놓으라고 하면 냉큼 내다 바쳤었는데 이게 뭐람.
이젠 이런 꼬맹이한테도 못 받아내다니.
"그럼 2개로 하자. 그 정도는 낼 수 있지?"
"어어……그 정도는…."
"나머지 98개는 달아두는걸로 하고……."
"어? 뭐라고 했어?"
…그래도 뭐, 다 가질 수 있던 때보다 즐겁다. 그러고보면 이 녀석이랑 만난 뒤부터 재밌는 일이 참 많았다.
꼬맹이가 이래저래 신한테 챙겨주려는게 귀여웠고 이 녀석이 잡아끄는 손을 따라 간 마을은 늘 새롭고 재미있었다.
"으으,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자. 2개밖에 없으니까 아껴먹어."
"……음."
그렇게 말하며 당과를 내 양 손 위에 한 개씩 쥐어주는 미리내의 모습은 평소와 같았다. 평소와 같은 모습, 약간은 어리면서도 의지가 되는 꼬맹이….
그러나 이제는 꼬맹이라기엔 좀 자랐다. 아직은 영 작지만.
"2개 샀으니까 하나는 너 먹어라."
"읍?!"
단순히 여기까지 오는 길 내내 오물거리며 먹은 떡 탓에 배가 부를 뿐이다.
아니면…이렇게 맛있는 당과를 혼자 먹을 수 없었다.
그 것도 아니면……음, 그래. 갑자기 내키지않았던 것 뿐이다. 단순한 변심.
"흠, 좋은건 나눠야지. 그래서 준거다."
"읍, 윽…아, 갑자기 입에다 넣어버리면 어떻게 해? 놀랐잖아."
"그래서 싫으냐? 줄 때 먹어라. 줘도 못 먹는 놈 같으니."
"아니…싫은건 아닌데……말은 해줬으면 좋겠어."
……에휴.
이런 녀석을 누가 줏어가냐. 내가 볼 땐 이런 놈은 줏어갈 사람 없어.
"세상은 원래 갑작스러운거다."
"아니, 그래도…."
"그러니까 그 1개까지 해서 99개, 평생동안 갚으라고."
신기한 세계관이다. 맘에 들엉
설호 왜 유동추밖에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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