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끄적인 그대로 쓰면 가독성이 개쓰레기이므로 남들이 볼 수 있게끔 다듬었음


그래서 매우비틱스러움 좆같으면 비추박으셈





만약에...? 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매우 적당해 보이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이하 쏘불) 은 씹덕이신 두분과 함께 관람하였습니다.


다만 저는 애니씹덕이 아니라서 제작사인 샤프트에 특징이나 연출의 특징같은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말할 수 있는건 영화 자체에 대한 내용정도밖엔 없겠네요.


영화를 앞 10분만 봤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징은 러닝타임상의 오프닝이 이야기의 오프닝은 아니라는 점이겠네요.


그래서 러닝타임 시작하자마자 나온 오프닝 부분 (남주랑 나즈나쟝이 물에 빠진것같은 장면)은 글의 도입부에선 설명할수가 없어요.


그 미스테리한 오프닝을 제외하고 영화를 따라가다보면 친구들도 나오고 담임도 나오고 신비로운 나즈나쟝도 나오고...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한 설명이 나열되면서 문제의 사건이 등장하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이야기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면서 나오는 것들은 '만약에...' 라는 물음으로 정리될 수 밖에 없겠네요. 작품의 주제와도 닿아있는 이 물음은 사실 꽤나 노골적입니다.


빡쳐서 시간을 다시 뒤로 돌릴때마다 나오는 IF라는 글씨나 작품의 무대가 일본어로 '모시모' 라던지... 


결국 영화의 출발점은 '만약에...' 라는 물음에서 시작하는거죠.




그럼 만약이라는 물음 뒤에는 무슨 말이 따라오게 될까요?


라는 물음이 영화의 중반부를 이어주는 열쇠입니다. 쏘불에서는 이런 것들이 매우 직관적이라서 이야기의 전개가 처지는 느낌이 들진 않아요


나쁘게 말하면 너무 단순하지만요.


남주인공의 관점에서 보자면 남주인공의 희망은 '만약 내가 나즈나쟝과 도망간다면?' 인거죠.


좀 더 살을 붙이자면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했지만 동경하던 혹은 호감이 있었던 나즈나쟝과 도망가 단 둘이 있을 수 있게 된다면?' 으로 좀 길게 풀어쓸수는 있겠네요.


철저하게 영화 속의 이야기에만 집중하자면 두어번의 실패 끝에 남주인공은 어느 정도 원래 목적을 이룹니다.


여기에서 언급해야 할 영화에서 가장 빛나고 또 중요한 순간은 단둘이 있는 목적을 이루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이제 잠깐 시선을 영화 밖으로 돌려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우리)의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봅시다.


쏘불은 사실 제목부터 시작해서 초반부의 구도라던지 중요한 대사들이 2지선다의 모습을 하고있습니다.


불꽃을 1. 밑에서본다 2. 옆에서본다

불꽃의 모양이 1. 동그랗다 2. 납작하다

카메라의 앵글이 1. 하이앵글이다 2. 로우앵글이다

혹은 평평한 이미지보단 의도적으로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가 돋보이죠. 


그렇기에 이지선다의 틀을 깨는 순간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 셈이지요.


다시 영화 내부로 다시 들어가 단둘이 있는 목적을 이루는 순간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목적을 이루는 순간은 다음 기차역에서 친구들과 나즈나의 부모님을 따돌리는 그 순간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영화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지점입니다.

(친구들가 부모님이 지키고 있던 양 옆의 길이 아닌 나즈나와 둘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세번째 길인 선로 바깥쪽으로 점프를 택한 부분이지요)


그렇기에 그 이후 터지는 불꽃은 납작하지도, 둥그렇지도 않은 전혀 다른 제 3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개의 선택지라는 틀을 깨고 선택한 세번째 선택지가 남주인공의 입장에선 본인이 가장 하고 싶었던 선택이였던 셈이지요.


이 이후의 이야기는 영화 내적으로는 남주인공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잔잔한 러브스토리로 전개됩니다. 따라서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와 연계하기 위해서는


나즈나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짚어봐야 할 시점입니다.




등장인물이 꽤나 제약되는 쏘불은 명확히 남자주인공이 특정됩니다.


그 부분에서 관객들은 자연히 남주인공과 심리적으로 동화되어 그처럼 몰입하게 됩니다.


이 말은 작중에서 주인공의 소망하는것을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도 느끼고 소망하게 된다는 것이죠.


즉, 나즈나의 존재는 남주인공의 소망이기도 하고 우리가 소망했던 혹은 원했던 무언가를 비유적으로 상징하는 캐릭터가 될 수 있습니다.


소망'했던' 이라는 과거형을 쓴 이유는,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중학생 시절이며 (많아도 나이가 16세가 되진 않죠) 

이 영화를 혹은 이 후기를 볼 사람들은 대부분 15세를 넘었을테니 우리가 소망했던 그 시기는 과거형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즈나와 함께 한 세번째 선택과 나즈나가 우리의 소망을 투영하는 존재라면


쏘아올린 불꽃이라는 한편의 이야기는 우리가 어렸을 때나 학창시절 소망했던 그 무언가를 비유하는 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학창시절 하고 싶거나 이루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첫사랑이나 꿈을 추억하게끔 하는 이야기인 셈이지요


즉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내가 어렸을 때 이루지 못했던 사랑이나 꿈에 대해 추억하거나 혹은 대리만족 하는 '한여름밤의 꿈'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번째 길 + 나즈나로 비유된 소망이나 꿈이라는 비가시적 개념은 필연적으로 잠시동안의 꿈에 불과할 수 밖에 없으며


이 부분이 쏘불에서의 후반부의 이야기의 전개와 맞닿은 부분입니다.


사실 영화의 중간이 지나면 관객들은 쏘아올린 불꽃이 납작한지 둥그런지 알 수 있습니다.


둥그렇지 못한 불꽃은 결국 우리가 존재하는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의 파편일 뿐이에요.


세번째 선택은 현실에선 선택할 수 없는 개념이며, 세번째 선택이 없이는 더이상 나즈나와 함께 할 수 없기에


우리의 소망이나 꿈은 말그대로 여름날의 '꿈'에 머무르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영화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바닷속 키스신과 쏘불의 오프닝을 연결해 볼 수 있겠네요.


영화를 보는 우리는 어렸을때 간직한 우리의 소망을 구하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소망도 나에게 구해지고 싶어하고요.


하지만 우리는 소망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때의 꿈을 접은채로 어른이 되었다는 말로 포장되어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거지요.


그래도 영화속에서 나즈나와 남주인공은 짧게나마 키스를 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우리도 이 90분짜리 영화를 통해 짧게나마 우리가 가졌던 소망과 연결되었다면 짧았던 두 캐릭터의 키스신도 꽤 감성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네요.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서 여름방학은 끝나고 나즈나는 전학을 가 빈자리만 남아있습니다.


선생님은 주인공의 이름은 부르지만 주인공은 대답하지 않죠.


그 선생님의 호명은 주인공에게 하는게 아닌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89분간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주인공과 감정적으로 동화되었기 때문이죠.


즉, 선생님이라는 캐릭터를 빌려 감독은 우리를 호명하는 셈입니다.


89분간 영화를 통해 추억에 대한 여행이 어땠는지를 물어보는거죠


그렇기에 영화내에서 주인공이 대답할 이유는 없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이 답해야죠 마음속으로. 그 침묵의 여백은 89분간의 여행에 초대해준 감독이 우리에게 묻는 마지막 질문이자 인사입니다


'이루어지진 못해도 아름답게 남아있을 당신의 추억에 대한 여행은 즐거우셨나요?'


















사실 이 영화에서 특히 구도에 대한 부분은 깔끔하게 보이지 못한 면도 있었습니다.


제가 감독을 잘 모르지만 감독 본인의 스타일은 영화적인 이미지의 완성보다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몇몇 구도를 통해 이를 강화하는것으로 느꼈습니다.


즉, 영화적으로나 이미지가 모든 점에서 맘에 들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몇몇 장면 (특히 가장 중요했던 역 플랫폼에서의 점프씬)에선 영화적인 완성도가


어느정도는 잡혀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걸작이니 명작이니 매우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서 나쁘진 않았던. 그래서 야외극장에서 더 어울렸던 그런 영화로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시간나면 한번정도는 더 볼 생각이에요. 그러면 영화의 ost와 관련되서 몇몇 내용들이 더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존나 인성쓰레기인데 글은 그렇게 못써서... 비틱스러워서 죄송합니다 괜히 개추하지마시고 그냥보고 잊어버리세요 그럼ㅅㄱ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