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바가 이게 운명이라고 했잖는가... 이번에도 그런것이겠지...”
노인은 가장 익숙한 표현으로 자신과 주위를 달래고자 했다.


모든 일은 여기서 시작했다.
어쩌면 결혼하기 전부터 예정된 일이였는지도 모른다..
죽음 자체를 부당하게 여기는 남편 앞에서 그런 운명론적인 이야기는 역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놈의 뜻이 뭐기에 사람이 죽어야 합니까!!”
젊은이는 그것을 부인했다. 젊은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시답잖은 말이 아니라, 후타바의 죽임이 부당했다는 신의 사죄. 혹은 그것을 대신할 무언가였다.


모든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당신이 평생을 바쳐오고 이어진 신사는 어쩌면 딸과 거의 같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노인의 입장에서 딸은 가장 확실한 ‘미야미즈’였잖은가?

어쩌면 결혼한 탓에 시작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알 필요도 없는 일이다.


두 사람 다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몰려있었다.
아내가 살아있었다면, 딸이 살아 있었다면 이번에도 그럴듯한 정답을 알려줬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 문제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딸은,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다.


어쩌면 정답을 말해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시키도, 젊은 아버지도 신관도 납득하지 못했다.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후타바라는 연결고리 대신 다른 고리를 걸만큼 가까워질 시간이 있었다면. 그러나 만약은 없는 것이다.
변명일 뿐이다.


“자네는 신관이네!  미야미즈 신사를 이어야 할 사람이 감히 신님께 무슨 흉참한 말인가!”


“신사 따위 계속 지켜봤자라고요!”


“뭣이! 자네 그게 사람이 할 소린가!”


“할 소리고 말고요!”



아버지도, 할머니도 소중한 것의 순위를 바꾸기엔 너무 나이를 먹어버렸다.

수주일간 멍하니 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달라져 버렸다.


동짓날 겨울에도 화로를 피운 것처럼 따스하던 눈동자가 서리처럼 차갑다. 
눈동자가 향하는 곳을 볼 수 없다.


어린 요츠하의 눈에 이런 일은 이질적이기만 하다.

조금은 조숙하게 자란 미츠하에게도 낯선것은 마찬가지다.


아버지를 누군가 삼킨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딸은 아빠의 보물이란다"라고 말해주지 않았던가.


어린아이다운 이상한 생각이지만 그것은 정답이기도 했다.
토시키는 분노에 삼켜져 있었다.


어린 미츠하의 두려움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어느새 길어진 거리, 벌어진 걸음 수를 모를 만큼.


왜 아내를 기리지 않는가.
왜 아내를 추모하지 않는가.
왜 죽음이 부당하다고 말해주지 않는가.


왜!
내가 살아 있지 않는가.
내 딸들이 살아 있지 않는가!


토시키가 보기에 그것은 마을을 떠다니는 망령이었다.
문득 언젠가 동료가 권력이란 마법 같다는 농을 한 것이 문득 떠올랐다.
제자를 가르치기 어렵다는 푸념이었나. 배우기 어렵다는 푸념이였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범인이 있다는게 중요했다.

누군가에게 이 불합리함을 책임지게 하고 싶었다.

정당한 댓가를 치루게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누군가가 있어야만 했다.

범인이 없다면 아내의 죽음은 뭐가 된단 말인가?

따라서 범인은 존재한다.


분명 어떤 게, 아내를 사로잡았다. 당연하지만 아내의 탓도 우연도 아니라면
진범이 있을 수밖에 없다.  범인이 있다.
아내를 죽인 범인이.


힘, 세력, 권력.
power...


그것을 좀더 엄말한 표현으로, 이렇게 바꿔 부를 수 있다.

미야미즈 신사.


미야미즈 신사야말로 범인일수밖에 없다.

인식이 죽였다면 인식의 주인이 죽인것이여야만 한다.


그렇다면 미야미즈 신사가 아내를 죽인 것이다!

미야미즈 신사가 아니었다면 아내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은사와 의절해버렸지만 병원을 막을 만큼 사이가 벌어지진 않았고,
은사에게 그럴 힘이 없었다.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죽었다.


토시키가 보기에 진범은 미야미즈였다.


신은, 운명은, 그게 뭐였던간에 모든 것을 앗아가지 않았다.
못했는지 않았는지 간에 미츠하가, 요츠하가 남았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붙잡혀 있어선 안된다.

안되었다도 아니고, 안될것이다도 안된다.


누군가는 이 아이들을 책임져야만 한다.

매듭을 맺었으면 그 사람이 풀어야 한다.
그 사람이 풀었으면 그 사람이 다시 묶어야 한다.
그것이 순리요 섭리였다.

적어도 머무르는 것 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나았다.


노인은 도망가는 것이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딱히 의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단 한마디의 위로가 필요했다.
신님이 데려갔느니 하는 말은 뭔가. 잘 죽었다는 뜻인가.


더이상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면 더 이상 아이를 맡길 수는 없다.
이 이상한 사람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야 한다.
물들어버린다면 아이가 다칠 것이다.

오들오들 떠는 아이들을 보면서 둘은 거의 같은 생각에 도달했다.
저 무도한 자로부터 이 아이들을 가급적 격리해야 한다고.


“당장 나가게!”
“암요, 나가고 말고요! 하.하.하!!!”


그게.. 나도 모르겠다.  화자가 누구냐? 미츠하냐? 타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