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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4일 p.m. 8:01 도쿄
「과거개변이라는 말 알고 있어?」
자신을 미래에 살고있는 타치바나 타키라며 자기소개를 마친 그는 미츠하의 목소리로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기억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질문을 받으니 선뜻 대답하기가 껄끄럽다. 그러나 적어도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인물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기에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대답했다.
「그건... 말 그대로 과거를 바꾼다는 뜻 아니야?」
「그래. 말 그대로 과거를 바꾼다는 의미. 그리고 세계의 역사, 우주, 인과관계를 바꿔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그렇지만 과거라는 건 절대로 바꿀 수가 없어. 모든 결과에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과정과 연속성이 뒤따르니까 말이지. SF소설에나 나오는 타임머신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불가능한 이야기야.」
「뜬금없이 갑자기 무슨...」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런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너와 나, 미츠하에게서만.」
그런 알수없는 이야기를 스마트폰 너머의 인물은 미츠하의 목소리로 입에 담았다. 하지만 다짜고짜 설명을 한들 현 상태에서 내가 이해할수 있는건 거의 없었다.
나는 다소 불만스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스마트폰 너머의 인물에게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그렇게 의미 모를 말들을 쏟아내 봤자 제대로 알아들을리가 없잖아. 도대체 언제부터, 어째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건데?」
「사건의 발단? 그건 미츠하의 모습을 한 내가 전철에서 너를 만났을 때부터야.」
전철에서 만났을때? 다짜고짜 전철에서 끌여져 내려 스파게티를 먹으러갔을 때를 이야기 하는 건가?
「....어째서 그게 발단이 된다는 거지?」
「글쌔? 하지만 적어도 미래의 내가 과거의 자신을 만났다는 말은 뭔가 굉장히 이상하게 들리지 않아?」
미래의 자신이라. 평소에는 들을 일이 전혀 없는 단어다 보니 상당히 이질적으로 들려왔다. 그러나 사건의 경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제대로된 반론을 할수가 없었다. 그가 내게 의도하고 있는 질문은 분명 타임 패러독스에 관한 것이다. 미래의 자신이 과거에 있는 나를 만난다는 이야기는 앞뒤가 안맞고 이상하다는 것, 즉 모순이라는 것이다. 사실여부를 떠나 듣기에는 그럴듯 해보이지만 아직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있다.
「지금 모순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너는 미츠하의 모습이었잖아. 도플갱어마냥 똑같이 생긴 미래의 자신을 만난 것도 아니고 나는 네가 미래의 나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타임 페러독스라는 건 내가 미츠하의 모습을 한 너를 미래의 자신이라고 인식해야 발생하는 거 아니야? 그 어디에서도 모순이 존재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그게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거지?」
「아니, 원인이 있어도 크게 있지. 애초에 역사에는 그런 적이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했으면 안되는 거였으니까...」
조용하고 차분한 음성,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은연중에 절망이 묻어 있었다.
「존재했으면.... 안됐다고? 무슨 의미야 그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내겐 너와는 달리 중학생 시절에 미츠하의 모습을 한 미래의 나를 만난 기억이 전혀 없어. 이게 무슨 뜻인줄 알아? 나는 초면인 여고생에게 난데없이 전철에서 강제로 끌여내려 진 적도, 함께 스파게티를 먹은 적도, 갈곳이 없다고 해서 집에서 들여보내 준 적도, 건축 스케치를 도움받은 적도, 매운 파에야를 먹고 술에 취한 적도 없었다는 이야기라는 거야. 그 시절의 나는 그저 부모님이 이혼한 충격에 휩싸여 방황하고 있었겠지. 갑자기 말도없이 사라져버린 미츠하만 생각하던 너와는 다르게 말이야.」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입에서 당연한 의문이 튀어나왔다.
「...뭐?」
「한마디로 나와 너는 동일인물이지만 100%똑같은 타치바나 타키는 아니라는 거야. 전철에서 우리가 만난 시점부터 과거개변이 일어난 탓에 너와 나는 다른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까. 무슨말인지 알겠어?」
「자, 잠깐! 너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고있는 거야?」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설명에 머리가 아파져 왔다. 애써 감기 기운을 억누르며 간신히 설명을 요약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자칭 미래의 나라는 인간이 설명해준 것들은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 이야기들 투성이었다.
「그러니까 넌 설마.... 지금 내가 너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너와 내가 다른사람이라는 건 당연히 믿을수 있어. 넌 미츠하의 모습을 하고있으니까... 하지만 설령 네가 미래에서 온 나라고 해도 우리가 동일인물이라는 근거는 어디 있다는 건데?.」
「음... 뭐 완전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테세우스의 배와 유사한 원리야. 여기서는 새로운 판자 대신에 원래는 없었던 다른 과거를 박아넣기 시작하겠지만.」
「테세우스의 배라니... 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나는 예전에 역사수업에서 흥미가 생겨 저 이야기를 집에서 인터넷으로 찾아본 기억이 있다.
테세우스의 배란 아테네의 영웅인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고 아테네로 귀환할 때 타고 온 배로 아테네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정성을 들여 보존해왔다. 그 과정에서 낡아 썩어버린 나무 판자를 새로운 판자로 하나,둘 씩 교체해나가기 시작했고 최후에는 모든 판자가 교체되었다. 처음에 테세우스의 배를 이루고 있던 부품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든 부품이 교체되어버린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말할수 있을까?라는 역설. 세간에 제법 알려져 있는 유명한 난제다.
형이상학적으로 깊게 파고들면 상당히 복잡한 문제지만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뜻밖에도 간단한 이야기였다.
사람의 과거는 비유하자면 절대로 접촉할 수 없는 불가침 구역이다.
그리고 과거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수있다. 요컨대 타치바나 타키라는 인간의 본질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쌓아온 과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원래대로라면 절대 바뀔 일이 없는 과거가 바뀌어버렸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전철에서 만난 시점부터 과거라는 판자는 교체되기 시작하여 나비효과가 일어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로 다른 기억과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든 것이 똑같은 존재. 동일인물이라고도,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도 할수 없는 우리를 뭐라 정의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행동일 것이다.
「먼저 말해두겠지만 네가 기억을 못 하는 이상 사실관계 따윈 입증못해. 즉, 지금 믿거나 말거나 하는 건 네 자유라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따질 필요 없이 넌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잖아?」
「뭘?」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미래의 너라는 거.」
어이가 없을 정도로 유치하고 불합리한 주장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왠지 모르게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듯한 연륜이 느껴지고 있었다.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내용보다는 거짓말을 치는 상황과 이유가 중요한 법이다. 설령 그가 펼치고 있는 주장을 거짓으로 치부하더라도 그가 내게 거짓말을 칠만한 마땅한 이득이나 이유가 없다.
상황은 며칠 전부터 이미 미지를 넘어 신비의 영역으로까지 넘어가 버린 상태다. 최근에 일어났던 기이한 상황들은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보편적인 상식과는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만으로는 미안하게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우선 나는 이해하고 있는 절반을 토대로 핵심적인 문제를 물어보기로 했다.
「일단....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네 말처럼 굳이 나한테 전화해서 정체를 알릴 정도면 너와 내가 타임 패러독스에 휘말린것 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거 아니야?」
「빙고~ 뭐 구태여 이야기하자면 원인 자체는 타임 패러독스야. 하지만 그 패러독스에 휘말려 수정되지 않아야만 했던 과거가 어떤 이유로 다시 수정되어 버린 것에 비하면 패러독스따윈 그리 큰 문제라고 할수가 없지.」
「과거의 수정?」
어딘가 능글맞은 태도로 나를 놀리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미츠하가 된 꿈을 꾼 것은 어렴풋이 알고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까부터 계속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침묵이 어느 정도 이어지자 스마트폰 너머의 그는 내가 헤매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듯, 미츠하의 목소리로 답을 알려주었다.
「내가 처음에 과거개변에 대해 이야기 했었지? 나와 미츠하는 9월 초쯤부터 처음으로 몸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이 사실에 대해서는 너도 미츠하의 몸에 빙의됐을 때 미츠하의 일기어플을 본적이 있지 않아? MyDiary.」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하지만 그 다음에는...」
「뭐 일단 끝까지 들어봐. 나와 미츠하는 몸이 바뀌어 왔지만 거기에는 3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었고 나는 도쿄로 미츠하를 만나러오기 전까지 그것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어. 달력같은거야 여러 번 봤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하리만큼 신경쓰이지 않았고 어차피 꿈에서 깨어나면 모두 잊혀져 버렸거든. 그리고 미츠하를 만나러 도쿄에 온 나는 전철에서 너를 만나고 너는...」
그는 고민이라도 하는 듯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쿠치카미사케를 마시고 3년후의 미래로 날아가 버렸지.」
「쿠치카미사케?」
「아. 쿠치카미사케라는건 무녀인 미츠하가 쌀을 씹어서 만든 술이야. 쉽게 설명하자면 마신 사람의 몸을 강제로 바꿔버리는 매개체같은 건데..... 기억나지 않아? 내가 너한테 집에서 입으로 강제로 먹였었는데?」
「입으로?」
흐릿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나가자 내게 강제로 키스하여 뭔가를 먹이는 미츠하의 모습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너,너... 도, 도대체 무, 무슨 짓을....」
갑자기 혀가 꼬이며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개변? 3년후의 미래? 미래에서 과거를...? 이 이야기야 말로 모순이 따로없지 않은가.
「잠깐... 내가 3년후의 미래로 날아갔다고? 과거개변은 말 그대로 과거개변이야. 과거는 미래가 아닌 과거에서만 바꿀 수 있는 거라고! 네 말대로 내가 3년후 미래로 날아가 버렸다면 어떻게 과거개변따위가 가능한 건데?」
「지금의 너처럼 사람들은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100% 객관적이지 못할 때가 많아. 조금만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임에도 "불가능"하다라는 주관과 선입견이 전제로 깔려버리거든.」
그는 나를 비난하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스마트폰 너머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지만 미츠하의 얼굴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목소리만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반전된 그의 태도에 나는 무심코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는 난데없이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결론을 선고했다.
「미츠하는 죽었어. 과거개변 때문에.」
미츠하의 목소리를 빌려 침울하게 말하는 그의 선고에 위가 오그라들었다. 미츠하의 투명한 목소리는 내 귀를 통과해 틀림없이 뇌에 도착했을 터이지만,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감기기운이 심한 탓인지 허공을 올려다보던 시야도 점점 흐려져 갔다.
그것은 아마, 내가 예상하고 있던 말 중 가장 두려워하고 있던 말이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미츠하가 죽었다고?」
「정확히는 과거개변에 의해 살아났다가 과거개변으로 다시 죽은거야... 그 과거개변의 직접적인 방아쇠는 네가 미래에서...」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나는 소리쳤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너는 지금 미츠하의 몸으로 살아 숨쉬고 있잖아!! 왜 내가 미래로 간 것으로 미츠하가 죽었다는 건데!?」
「너는 분기점인 2016년 9월 28일부터 2016년 9월 29일까지 잠을 자지않고 2일동안 미래에 남아있었어. 다음날 갑자기 바뀌어버린 세계와 부러져버린 타카기의 다리가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 거야?」
「......뭐」
갑자기 휘청, 순간 몸의 중심이 무너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마천루를 달리는 전철, 커다란 보름달, 단풍잎이 밤에 젖어 휘날리는 밤. 공포와 피로에 절어 절망하던 저녁.
나는 분명 그곳에 있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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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8일 p.m. 11:00 도쿄
「언니. 그러고보니 어제저녁에는 어디 갔었어? 제법 늦게 들어왔잖아?」
「어제? 어제는 미키랑 같이 쇼핑하다가 카페에서 과제 했는데... 아. 이거 봐봐, 제법 잘나왔지~?」
「음.... 뭐, 언니들치고는 평범하게 나온것 같은데?」
미츠하가 으쓱하며 셀카 사진을 보여주자 요츠하는 옅게 미소지으며 시큰둥한 평가를 내렸다. 미츠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살짝 볼을 부풀리며 내게도 셀카 사진을 들이밀었다.
「타키는 어때?」
「으, 응?」
미츠하가 들이민 셀카속에는 미츠하와 미키라는 여자가 얼짱 각도로 미소지으며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청초한 이미지의 미츠하와는 달리 미키라는 여자는 말 그대로 요즘 도시여자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갈색 웨이브 머리에 기다란 속눈썹, 높은 콧대와 아몬드형 눈매는 미츠하와 정반대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미츠하와 이사람이 같이 붙어 다닌다면 아마 길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하지 않을까ㅡ
「타-키?」
「...어, 어?」
미처 감상에 젖어들기도 전에 미츠하가 대답을 재촉해오기 시작했다. 미츠하는 아무래도 내게서 낯간지러운 말을 하게 하고싶어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엄청 부끄러운데 정말로 그런 말을 내 입으로 말해야 하는 건가...
「그, 그러니까... 두사람 다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데...」
「흐음... 그래? 둘중에 누가 더 예쁜데?」
「그런......... 사해...」
「응?」
얼굴의 온도가 한계치까지 달아오른 탓에 말끝을 흐리듯 읊조렸지만 미츠하는 그런 나를 놔주지 않고 대답을 요구하듯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사면초가다. 나는 어쩔수없이 미츠하의 시선을 피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부끄러운 말을 중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질문은 치사하다고... 굳이 알고 있으면서...」
「엇....어?」
용기를 내어 시선을 마주치자 갑자기 미츠하가 허를 찔린 듯 확 얼굴을 붉히며 얼굴을 돌렸다.
「......」
「......」
갑자기 대화가 끊기며 흐르는 조용한 정적. 이 정적을 깬 것은 어처구니 없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요츠하였다.
「그래서. 지금 둘이 뭐하고 있는 거야?」
「그..그게... 타키는 평소에는 저런식으로 부끄러워하면서 안말하는데.... 오늘은 저렇게 말하니까... 그게... 갑자기...」
「아~그러니까 평소랑은 다른 갭의 타키오빠가 사랑스러워서 미칠것 같다? 이소리야?」
요츠하의 물음에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미츠하. 하지만 이유를 듣고나니 왠지모르게 더 부끄러워졌다.
「으-소름돋아!!!나 잠시 방에 있을래!」
위험해라고 중얼거리며 자리를 피한 요츠하의 뒤에는 그저 정적만이 덩그라니 남아있었다.
3
시간이 흘러 분위기가 어느정도 누그러지자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소파위에 있는 점퍼와 양말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자 미츠하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내게 물었다.
「지금 집으로 가게?」
「응. 이제 슬슬 전철이 끊길 시간이니까. 아무래도 자고 가기에는 무리인 것 같기도 하고...」
요츠하의 눈치를 보다가 눈이 마주친 나는 그만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 모습에 요츠하는 환멸하는듯한 눈빛을 보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타키오빠가 자고가는 것 정도는 상관없는데 말이죠... 오늘은 안돼요.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시죠?」
「요, 요츠하... 아무리 그래도 지금 시간에 귀가하는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요즘 세상이 흉흉하기도 하고...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
세상이 흉흉하다니... 미츠하가 걱정해주는 것은 감동이지만 일본의 치안을 생각해보면 변명으로는 최악이다. 요츠하는 그 변명이 여간 어이가 없었던 모양인지 곧바로 논파해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이 새벽이면 몰라도 언니가 생각하는 만큼 늦은 시간은 아닌걸? 지금 당장 전철역으로 향하면 문제거리가 될만한 일은 없어.」
날카로운 지적에 미츠하가 입을 다물었다. 하긴, 늦었다고 말을 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시간이다. 막차시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돌아다닐 테니 지금 당장 집으로 향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만한 시나리오는 없을것 이다.
「거기에 어차피 언니는 내일 아침부터 대학교 수업이 있잖아? 타키오빠도 내일은 따로 등교해야 되는데 이만저만 번거로운 게 아니야! 무엇보다도 오늘 타키오빠랑 언니는 내앞에서.... 이상한 짓까지 했잖아?」
「「죄송합니다....」」
[이상한 짓]이라는 단어에 반응해 나와 미츠하는 거의 동시에 사과의 말을 뱉어냈다. 요츠하는 분명 웃고있는것 같았지만 눈만은 웃고있지 않았다. 사실 우리입장에서는 요츠하에게 뭐라 할말이 없다. 솔직히 말해 오히려 우리 쪽에서 억지를 부리고 있는 수준이니 더이상 뭔가를 요구하는건 무리다.
너무나도 지당한 요츠하의 논파에 힘없이 고개를 떨군 미츠하의 모습은 어딘가 기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표정을 보고 요츠하가 이내 뭔가를 떠올렸는지 풀이 죽어있는 미츠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것보다 언니는 오늘 타키오빠한테 그거 안줄거야? 나한테는 드디어 완성했다면서 자랑까지 해놓곤...」
「응? 그거? 아...!」
미츠하는 언제 풀이죽었냐는 듯 자신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이 미츠하는 물건을 찾은 모양인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이건?」
「쿠미히모.... 내 머리끈이랑 완전히 똑같은 색의 실로 만들었어. 타키는 머리가 짧으니까 묶을수는 없지만 손목에 차는 방법도 있으니까... 사실 예전부터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실매듭은 할머니네에서만 만들 수 있다 보니까 이렇게 늦어버렸네...」
미츠하는 약간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약간 수수할지도 모르지만... 괜찮으면 받아줄래..?」
올려다보는 듯한 시선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오기 시작했다.
「무, 물론이지! 오히려 수수하다는 생각보다는 커플느낌도 나고 정성도 느껴져서 정말로 기쁜걸?」
정말로 기뻤지만, 당황한 탓인지 아니면 단순히 중학생이라 언어구사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이 이상은 말로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미츠하는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고 요츠하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약간은 진저리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애초에 언니가 그렇게 부탁하지 않아도 타키오빠가 언니의 선물을 거절할 리가 없잖아. 3년 씩이나 사귄건 둘째치고, 언니는 평소에는 대담한 주제에 가끔씩 쓸데없이 너무 소심해진다니까.」
「하, 하지만 이왕 열심히 만든 거 가벼운 느낌으로 선물하는 것도 뭔가 좀 이상하잖아!」
「네~네~ 어련하시겠어요~저기, 타키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어?」
사이좋은 자매의 만담을 듣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 질문이 날라왔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무심코 생각나는 대로 입을 열었다.
「음... 미츠하는 확실히 그런면이 없지않아 있긴하지. 오늘 나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덮쳐온 것도 다름아닌 미츠하였...」
「네?뭐라구요?」
「어... 요츠하? 앗, 잠깐만! 폭력반대! 폭력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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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를 든 요츠하를 피해 다급하게 인사를 마치고 미츠하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나는 선물받은 쿠미히모를 자켓주머니에 넣고 곧바로 가까운 신주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었던 여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가을이 된 모양인지 신주쿠역 승강장에는 쌀쌀함을 머금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고 있었다. 이정도의 바람이 불어올 때쯤이면 서서히 일조시간이 줄어들고 완전히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증거다.
슬슬 환절기에 적응해야 할 시기지만 돌이켜보면 오늘은 그런 생각조차 할수가 없었다. 아직도 꿈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힘들지만 갑작스럽게 3년후의 미래로 날아와 버렸는데 당황하지 않을 사람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집까지 도착하는데 시간이 남아 웹서핑을 하기 위해 인터넷에 들어가니 유독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이토모리 참사 3주년. 티아매트 혜성의 비극과 기적]
대략적인 기사의 내용은 불운하게도 티아메트 혜성이 이토모리라는 마을에 떨어졌으나 마을에서 갑작스럽게 대피훈련을 실시하여 마을주민들이 대부분 무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아까 미츠하의 집에서 요츠하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꺼버린 뉴스인데 생각해보니 내가 살던 2013년 당시에는 엄청난 화제였다.
그 티아매트 혜성이 둘로 갈라져 일본에 떨어져 버린건가... 막상 미래에서 소식을 접하고 나니 별로 실감나지는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흥미롭게 느껴졌다.
때마침 실행한 대피훈련으로 마을의 절반을 날려버린 대재앙을 인명피해없이 회피한 것이니 기사제목의 "기적"이라는 단어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흥미롭게 기사를 읽어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리더니 상단 바에 어플알람 하나가 떠올랐다.
「MyDiary?」
하루가 끝나기 직전에 일기어플의 알람이 울린 건가. 아무래도 미래의 나는 제법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들었기에 나는 무작위로 일기를 불러왔다.
「응?」
[뒤바뀌게 되는 계기는 수면. 원인은 불명.]
이게 무슨 뜻이지?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데 갑자기 텍스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 이, 이게 갑자기 왜 이러지!?」
눈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팔등으로 눈을 비볐으나 텍스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꿈틀거렸다.
그리고 이내 일기의 내용들은 한글자 한글자 지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불법으로 게임을 받아 텍스트가 깨진 것처럼, 일기의 내용은 알수없게 변해 지워져갔다.
「도대체 이건...」
짧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전철은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도쿄의 마천루를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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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4일 p.m. 8:01 도쿄
「과거개변이라는 말 알고 있어?」
자신을 미래에 살고있는 타치바나 타키라며 자기소개를 마친 그는 미츠하의 목소리로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기억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질문을 받으니 선뜻 대답하기가 껄끄럽다. 그러나 적어도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인물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기에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대답했다.
「그건... 말 그대로 과거를 바꾼다는 뜻 아니야?」
「그래. 말 그대로 과거를 바꾼다는 의미. 그리고 세계의 역사, 우주, 인과관계를 바꿔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그렇지만 과거라는 건 절대로 바꿀 수가 없어. 모든 결과에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과정과 연속성이 뒤따르니까 말이지. SF소설에나 나오는 타임머신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불가능한 이야기야.」
「뜬금없이 갑자기 무슨...」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런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너와 나, 미츠하에게서만.」
그런 알수없는 이야기를 스마트폰 너머의 인물은 미츠하의 목소리로 입에 담았다. 하지만 다짜고짜 설명을 한들 현 상태에서 내가 이해할수 있는건 거의 없었다.
나는 다소 불만스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스마트폰 너머의 인물에게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그렇게 의미 모를 말들을 쏟아내 봤자 제대로 알아들을리가 없잖아. 도대체 언제부터, 어째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건데?」
「사건의 발단? 그건 미츠하의 모습을 한 내가 전철에서 너를 만났을 때부터야.」
전철에서 만났을때? 다짜고짜 전철에서 끌여져 내려 스파게티를 먹으러갔을 때를 이야기 하는 건가?
「....어째서 그게 발단이 된다는 거지?」
「글쌔? 하지만 적어도 미래의 내가 과거의 자신을 만났다는 말은 뭔가 굉장히 이상하게 들리지 않아?」
미래의 자신이라. 평소에는 들을 일이 전혀 없는 단어다 보니 상당히 이질적으로 들려왔다. 그러나 사건의 경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제대로된 반론을 할수가 없었다. 그가 내게 의도하고 있는 질문은 분명 타임 패러독스에 관한 것이다. 미래의 자신이 과거에 있는 나를 만난다는 이야기는 앞뒤가 안맞고 이상하다는 것, 즉 모순이라는 것이다. 사실여부를 떠나 듣기에는 그럴듯 해보이지만 아직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있다.
「지금 모순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너는 미츠하의 모습이었잖아. 도플갱어마냥 똑같이 생긴 미래의 자신을 만난 것도 아니고 나는 네가 미래의 나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타임 페러독스라는 건 내가 미츠하의 모습을 한 너를 미래의 자신이라고 인식해야 발생하는 거 아니야? 그 어디에서도 모순이 존재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그게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거지?」
「아니, 원인이 있어도 크게 있지. 애초에 역사에는 그런 적이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했으면 안되는 거였으니까...」
조용하고 차분한 음성,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은연중에 절망이 묻어 있었다.
「존재했으면.... 안됐다고? 무슨 의미야 그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내겐 너와는 달리 중학생 시절에 미츠하의 모습을 한 미래의 나를 만난 기억이 전혀 없어. 이게 무슨 뜻인줄 알아? 나는 초면인 여고생에게 난데없이 전철에서 강제로 끌여내려 진 적도, 함께 스파게티를 먹은 적도, 갈곳이 없다고 해서 집에서 들여보내 준 적도, 건축 스케치를 도움받은 적도, 매운 파에야를 먹고 술에 취한 적도 없었다는 이야기라는 거야. 그 시절의 나는 그저 부모님이 이혼한 충격에 휩싸여 방황하고 있었겠지. 갑자기 말도없이 사라져버린 미츠하만 생각하던 너와는 다르게 말이야.」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입에서 당연한 의문이 튀어나왔다.
「...뭐?」
「한마디로 나와 너는 동일인물이지만 100%똑같은 타치바나 타키는 아니라는 거야. 전철에서 우리가 만난 시점부터 과거개변이 일어난 탓에 너와 나는 다른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까. 무슨말인지 알겠어?」
「자, 잠깐! 너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고있는 거야?」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설명에 머리가 아파져 왔다. 애써 감기 기운을 억누르며 간신히 설명을 요약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자칭 미래의 나라는 인간이 설명해준 것들은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 이야기들 투성이었다.
「그러니까 넌 설마.... 지금 내가 너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너와 내가 다른사람이라는 건 당연히 믿을수 있어. 넌 미츠하의 모습을 하고있으니까... 하지만 설령 네가 미래에서 온 나라고 해도 우리가 동일인물이라는 근거는 어디 있다는 건데?.」
「음... 뭐 완전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테세우스의 배와 유사한 원리야. 여기서는 새로운 판자 대신에 원래는 없었던 다른 과거를 박아넣기 시작하겠지만.」
「테세우스의 배라니... 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나는 예전에 역사수업에서 흥미가 생겨 저 이야기를 집에서 인터넷으로 찾아본 기억이 있다.
테세우스의 배란 아테네의 영웅인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고 아테네로 귀환할 때 타고 온 배로 아테네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정성을 들여 보존해왔다. 그 과정에서 낡아 썩어버린 나무 판자를 새로운 판자로 하나,둘 씩 교체해나가기 시작했고 최후에는 모든 판자가 교체되었다. 처음에 테세우스의 배를 이루고 있던 부품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든 부품이 교체되어버린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말할수 있을까?라는 역설. 세간에 제법 알려져 있는 유명한 난제다.
형이상학적으로 깊게 파고들면 상당히 복잡한 문제지만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뜻밖에도 간단한 이야기였다.
사람의 과거는 비유하자면 절대로 접촉할 수 없는 불가침 구역이다.
그리고 과거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수있다. 요컨대 타치바나 타키라는 인간의 본질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쌓아온 과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원래대로라면 절대 바뀔 일이 없는 과거가 바뀌어버렸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전철에서 만난 시점부터 과거라는 판자는 교체되기 시작하여 나비효과가 일어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로 다른 기억과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든 것이 똑같은 존재. 동일인물이라고도,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도 할수 없는 우리를 뭐라 정의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행동일 것이다.
「먼저 말해두겠지만 네가 기억을 못 하는 이상 사실관계 따윈 입증못해. 즉, 지금 믿거나 말거나 하는 건 네 자유라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따질 필요 없이 넌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잖아?」
「뭘?」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미래의 너라는 거.」
어이가 없을 정도로 유치하고 불합리한 주장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왠지 모르게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듯한 연륜이 느껴지고 있었다.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내용보다는 거짓말을 치는 상황과 이유가 중요한 법이다. 설령 그가 펼치고 있는 주장을 거짓으로 치부하더라도 그가 내게 거짓말을 칠만한 마땅한 이득이나 이유가 없다.
상황은 며칠 전부터 이미 미지를 넘어 신비의 영역으로까지 넘어가 버린 상태다. 최근에 일어났던 기이한 상황들은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보편적인 상식과는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만으로는 미안하게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우선 나는 이해하고 있는 절반을 토대로 핵심적인 문제를 물어보기로 했다.
「일단....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네 말처럼 굳이 나한테 전화해서 정체를 알릴 정도면 너와 내가 타임 패러독스에 휘말린것 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거 아니야?」
「빙고~ 뭐 구태여 이야기하자면 원인 자체는 타임 패러독스야. 하지만 그 패러독스에 휘말려 수정되지 않아야만 했던 과거가 어떤 이유로 다시 수정되어 버린 것에 비하면 패러독스따윈 그리 큰 문제라고 할수가 없지.」
「과거의 수정?」
어딘가 능글맞은 태도로 나를 놀리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미츠하가 된 꿈을 꾼 것은 어렴풋이 알고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까부터 계속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침묵이 어느 정도 이어지자 스마트폰 너머의 그는 내가 헤매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듯, 미츠하의 목소리로 답을 알려주었다.
「내가 처음에 과거개변에 대해 이야기 했었지? 나와 미츠하는 9월 초쯤부터 처음으로 몸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이 사실에 대해서는 너도 미츠하의 몸에 빙의됐을 때 미츠하의 일기어플을 본적이 있지 않아? MyDiary.」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하지만 그 다음에는...」
「뭐 일단 끝까지 들어봐. 나와 미츠하는 몸이 바뀌어 왔지만 거기에는 3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었고 나는 도쿄로 미츠하를 만나러오기 전까지 그것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어. 달력같은거야 여러 번 봤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하리만큼 신경쓰이지 않았고 어차피 꿈에서 깨어나면 모두 잊혀져 버렸거든. 그리고 미츠하를 만나러 도쿄에 온 나는 전철에서 너를 만나고 너는...」
그는 고민이라도 하는 듯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쿠치카미사케를 마시고 3년후의 미래로 날아가 버렸지.」
「쿠치카미사케?」
「아. 쿠치카미사케라는건 무녀인 미츠하가 쌀을 씹어서 만든 술이야. 쉽게 설명하자면 마신 사람의 몸을 강제로 바꿔버리는 매개체같은 건데..... 기억나지 않아? 내가 너한테 집에서 입으로 강제로 먹였었는데?」
「입으로?」
흐릿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나가자 내게 강제로 키스하여 뭔가를 먹이는 미츠하의 모습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너,너... 도, 도대체 무, 무슨 짓을....」
갑자기 혀가 꼬이며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개변? 3년후의 미래? 미래에서 과거를...? 이 이야기야 말로 모순이 따로없지 않은가.
「잠깐... 내가 3년후의 미래로 날아갔다고? 과거개변은 말 그대로 과거개변이야. 과거는 미래가 아닌 과거에서만 바꿀 수 있는 거라고! 네 말대로 내가 3년후 미래로 날아가 버렸다면 어떻게 과거개변따위가 가능한 건데?」
「지금의 너처럼 사람들은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100% 객관적이지 못할 때가 많아. 조금만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임에도 "불가능"하다라는 주관과 선입견이 전제로 깔려버리거든.」
그는 나를 비난하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스마트폰 너머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지만 미츠하의 얼굴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목소리만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반전된 그의 태도에 나는 무심코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는 난데없이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결론을 선고했다.
「미츠하는 죽었어. 과거개변 때문에.」
미츠하의 목소리를 빌려 침울하게 말하는 그의 선고에 위가 오그라들었다. 미츠하의 투명한 목소리는 내 귀를 통과해 틀림없이 뇌에 도착했을 터이지만,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감기기운이 심한 탓인지 허공을 올려다보던 시야도 점점 흐려져 갔다.
그것은 아마, 내가 예상하고 있던 말 중 가장 두려워하고 있던 말이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미츠하가 죽었다고?」
「정확히는 과거개변에 의해 살아났다가 과거개변으로 다시 죽은거야... 그 과거개변의 직접적인 방아쇠는 네가 미래에서...」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나는 소리쳤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너는 지금 미츠하의 몸으로 살아 숨쉬고 있잖아!! 왜 내가 미래로 간 것으로 미츠하가 죽었다는 건데!?」
「너는 분기점인 2016년 9월 28일부터 2016년 9월 29일까지 잠을 자지않고 2일동안 미래에 남아있었어. 다음날 갑자기 바뀌어버린 세계와 부러져버린 타카기의 다리가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 거야?」
「......뭐」
갑자기 휘청, 순간 몸의 중심이 무너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마천루를 달리는 전철, 커다란 보름달, 단풍잎이 밤에 젖어 휘날리는 밤. 공포와 피로에 절어 절망하던 저녁.
나는 분명 그곳에 있었었다.
2
2016년 9월 28일 p.m. 11:00 도쿄
「언니. 그러고보니 어제저녁에는 어디 갔었어? 제법 늦게 들어왔잖아?」
「어제? 어제는 미키랑 같이 쇼핑하다가 카페에서 과제 했는데... 아. 이거 봐봐, 제법 잘나왔지~?」
「음.... 뭐, 언니들치고는 평범하게 나온것 같은데?」
미츠하가 으쓱하며 셀카 사진을 보여주자 요츠하는 옅게 미소지으며 시큰둥한 평가를 내렸다. 미츠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살짝 볼을 부풀리며 내게도 셀카 사진을 들이밀었다.
「타키는 어때?」
「으, 응?」
미츠하가 들이민 셀카속에는 미츠하와 미키라는 여자가 얼짱 각도로 미소지으며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청초한 이미지의 미츠하와는 달리 미키라는 여자는 말 그대로 요즘 도시여자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갈색 웨이브 머리에 기다란 속눈썹, 높은 콧대와 아몬드형 눈매는 미츠하와 정반대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미츠하와 이사람이 같이 붙어 다닌다면 아마 길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하지 않을까ㅡ
「타-키?」
「...어, 어?」
미처 감상에 젖어들기도 전에 미츠하가 대답을 재촉해오기 시작했다. 미츠하는 아무래도 내게서 낯간지러운 말을 하게 하고싶어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엄청 부끄러운데 정말로 그런 말을 내 입으로 말해야 하는 건가...
「그, 그러니까... 두사람 다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데...」
「흐음... 그래? 둘중에 누가 더 예쁜데?」
「그런......... 사해...」
「응?」
얼굴의 온도가 한계치까지 달아오른 탓에 말끝을 흐리듯 읊조렸지만 미츠하는 그런 나를 놔주지 않고 대답을 요구하듯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사면초가다. 나는 어쩔수없이 미츠하의 시선을 피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부끄러운 말을 중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질문은 치사하다고... 굳이 알고 있으면서...」
「엇....어?」
용기를 내어 시선을 마주치자 갑자기 미츠하가 허를 찔린 듯 확 얼굴을 붉히며 얼굴을 돌렸다.
「......」
「......」
갑자기 대화가 끊기며 흐르는 조용한 정적. 이 정적을 깬 것은 어처구니 없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요츠하였다.
「그래서. 지금 둘이 뭐하고 있는 거야?」
「그..그게... 타키는 평소에는 저런식으로 부끄러워하면서 안말하는데.... 오늘은 저렇게 말하니까... 그게... 갑자기...」
「아~그러니까 평소랑은 다른 갭의 타키오빠가 사랑스러워서 미칠것 같다? 이소리야?」
요츠하의 물음에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미츠하. 하지만 이유를 듣고나니 왠지모르게 더 부끄러워졌다.
「으-소름돋아!!!나 잠시 방에 있을래!」
위험해라고 중얼거리며 자리를 피한 요츠하의 뒤에는 그저 정적만이 덩그라니 남아있었다.
3
시간이 흘러 분위기가 어느정도 누그러지자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소파위에 있는 점퍼와 양말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자 미츠하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내게 물었다.
「지금 집으로 가게?」
「응. 이제 슬슬 전철이 끊길 시간이니까. 아무래도 자고 가기에는 무리인 것 같기도 하고...」
요츠하의 눈치를 보다가 눈이 마주친 나는 그만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 모습에 요츠하는 환멸하는듯한 눈빛을 보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타키오빠가 자고가는 것 정도는 상관없는데 말이죠... 오늘은 안돼요.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시죠?」
「요, 요츠하... 아무리 그래도 지금 시간에 귀가하는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요즘 세상이 흉흉하기도 하고...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
세상이 흉흉하다니... 미츠하가 걱정해주는 것은 감동이지만 일본의 치안을 생각해보면 변명으로는 최악이다. 요츠하는 그 변명이 여간 어이가 없었던 모양인지 곧바로 논파해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이 새벽이면 몰라도 언니가 생각하는 만큼 늦은 시간은 아닌걸? 지금 당장 전철역으로 향하면 문제거리가 될만한 일은 없어.」
날카로운 지적에 미츠하가 입을 다물었다. 하긴, 늦었다고 말을 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시간이다. 막차시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돌아다닐 테니 지금 당장 집으로 향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만한 시나리오는 없을것 이다.
「거기에 어차피 언니는 내일 아침부터 대학교 수업이 있잖아? 타키오빠도 내일은 따로 등교해야 되는데 이만저만 번거로운 게 아니야! 무엇보다도 오늘 타키오빠랑 언니는 내앞에서.... 이상한 짓까지 했잖아?」
「「죄송합니다....」」
[이상한 짓]이라는 단어에 반응해 나와 미츠하는 거의 동시에 사과의 말을 뱉어냈다. 요츠하는 분명 웃고있는것 같았지만 눈만은 웃고있지 않았다. 사실 우리입장에서는 요츠하에게 뭐라 할말이 없다. 솔직히 말해 오히려 우리 쪽에서 억지를 부리고 있는 수준이니 더이상 뭔가를 요구하는건 무리다.
너무나도 지당한 요츠하의 논파에 힘없이 고개를 떨군 미츠하의 모습은 어딘가 기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표정을 보고 요츠하가 이내 뭔가를 떠올렸는지 풀이 죽어있는 미츠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것보다 언니는 오늘 타키오빠한테 그거 안줄거야? 나한테는 드디어 완성했다면서 자랑까지 해놓곤...」
「응? 그거? 아...!」
미츠하는 언제 풀이죽었냐는 듯 자신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이 미츠하는 물건을 찾은 모양인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이건?」
「쿠미히모.... 내 머리끈이랑 완전히 똑같은 색의 실로 만들었어. 타키는 머리가 짧으니까 묶을수는 없지만 손목에 차는 방법도 있으니까... 사실 예전부터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실매듭은 할머니네에서만 만들 수 있다 보니까 이렇게 늦어버렸네...」
미츠하는 약간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약간 수수할지도 모르지만... 괜찮으면 받아줄래..?」
올려다보는 듯한 시선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오기 시작했다.
「무, 물론이지! 오히려 수수하다는 생각보다는 커플느낌도 나고 정성도 느껴져서 정말로 기쁜걸?」
정말로 기뻤지만, 당황한 탓인지 아니면 단순히 중학생이라 언어구사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이 이상은 말로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미츠하는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고 요츠하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약간은 진저리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애초에 언니가 그렇게 부탁하지 않아도 타키오빠가 언니의 선물을 거절할 리가 없잖아. 3년 씩이나 사귄건 둘째치고, 언니는 평소에는 대담한 주제에 가끔씩 쓸데없이 너무 소심해진다니까.」
「하, 하지만 이왕 열심히 만든 거 가벼운 느낌으로 선물하는 것도 뭔가 좀 이상하잖아!」
「네~네~ 어련하시겠어요~저기, 타키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어?」
사이좋은 자매의 만담을 듣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 질문이 날라왔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무심코 생각나는 대로 입을 열었다.
「음... 미츠하는 확실히 그런면이 없지않아 있긴하지. 오늘 나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덮쳐온 것도 다름아닌 미츠하였...」
「네?뭐라구요?」
「어... 요츠하? 앗, 잠깐만! 폭력반대! 폭력반대!」
4
빗자루를 든 요츠하를 피해 다급하게 인사를 마치고 미츠하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나는 선물받은 쿠미히모를 자켓주머니에 넣고 곧바로 가까운 신주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었던 여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가을이 된 모양인지 신주쿠역 승강장에는 쌀쌀함을 머금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고 있었다. 이정도의 바람이 불어올 때쯤이면 서서히 일조시간이 줄어들고 완전히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증거다.
슬슬 환절기에 적응해야 할 시기지만 돌이켜보면 오늘은 그런 생각조차 할수가 없었다. 아직도 꿈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힘들지만 갑작스럽게 3년후의 미래로 날아와 버렸는데 당황하지 않을 사람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집까지 도착하는데 시간이 남아 웹서핑을 하기 위해 인터넷에 들어가니 유독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이토모리 참사 3주년. 티아매트 혜성의 비극과 기적]
대략적인 기사의 내용은 불운하게도 티아메트 혜성이 이토모리라는 마을에 떨어졌으나 마을에서 갑작스럽게 대피훈련을 실시하여 마을주민들이 대부분 무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아까 미츠하의 집에서 요츠하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꺼버린 뉴스인데 생각해보니 내가 살던 2013년 당시에는 엄청난 화제였다.
그 티아매트 혜성이 둘로 갈라져 일본에 떨어져 버린건가... 막상 미래에서 소식을 접하고 나니 별로 실감나지는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흥미롭게 느껴졌다.
때마침 실행한 대피훈련으로 마을의 절반을 날려버린 대재앙을 인명피해없이 회피한 것이니 기사제목의 "기적"이라는 단어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흥미롭게 기사를 읽어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리더니 상단 바에 어플알람 하나가 떠올랐다.
「MyDiary?」
하루가 끝나기 직전에 일기어플의 알람이 울린 건가. 아무래도 미래의 나는 제법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들었기에 나는 무작위로 일기를 불러왔다.
「응?」
[뒤바뀌게 되는 계기는 수면. 원인은 불명.]
이게 무슨 뜻이지?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데 갑자기 텍스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 이, 이게 갑자기 왜 이러지!?」
눈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팔등으로 눈을 비볐으나 텍스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꿈틀거렸다.
그리고 이내 일기의 내용들은 한글자 한글자 지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불법으로 게임을 받아 텍스트가 깨진 것처럼, 일기의 내용은 알수없게 변해 지워져갔다.
「도대체 이건...」
짧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전철은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도쿄의 마천루를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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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실화입니까??
미쳤다
와 이게 얼마만이야
그러나 이 이후로 연재글이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Tlqkf연재 더 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