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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콘테스트 팬픽부문 제출글입니다. 원작의 설정을 어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2022년 12월 24일 토요일, 날씨 흐리다 눈
“삑삑, 삑삑, 삑삑, 삑삑”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키고는 단잠을 깨우는 요란한 알람을 껐다. 핸드폰 화면에서 나오는 옅은 불빛은 오전 6시 정각을 알리고 있었다. 바깥 날씨는 구름이 잔뜩 껴 우중충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고 이에 대한 반발심리로 인해 나는 다시금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이불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귀찮음은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 끝나야 한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다시 잠에서 깨려고 노력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는 부엌으로 나와 4인 가족의 아침밥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비록 토요일이었지만 아버지와 나는 출근을 해야 하는 처지였고 동생과 할머니는 늦게 일어날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기 전에 먼저 먹고 출근을 해야 해서 가족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밥과 반찬 다 해놨다. 덥혀서 먹어!’
간단한 쪽지를 남기고는 밖으로 나갔다.
토요일은 본래 일을 하는 날은 아니지만, 회사 차원에서 비상을 거는 바람에 휴일에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이탈리아에서 선보인 여러 패션쇼의 의상들은 우리가 전에 세운 노선과는 정 반대방향이었다. 그래서 봄 시즌과 여름 시즌에 대한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지 아니면 원안대로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방향성을 잡고자 하는 중요한 회의를 위해 모두 출근을 한 것이었다.
다행인 것은 이번처럼 특별한 사안으로 인해 출근하는 경우,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휴일출근에 대한 수당이 넉넉히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마시며 팀원들과 함께 최종결재를 받으러 가신 팀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팀장님이 최종안을 결재받아오시자 우리는 퇴근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환호성을 질렀다.
“자, 여러분! 모두 이브에 출근하느라 고생했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오후 3시, 팀장님의 퇴근과 함께 우리 팀 모두 일제히 옷을 챙겨입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 바깥의 축제 분위기 속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의 유부남과 유부녀는 각자 가정으로, 애인이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애인을 만나러 떠났다. 짝이 없는 팀원들은 끼리끼리 모여 이브를 즐길 예정이었다. 나의 경우는 학창시절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러 갔다.
오후 5시, 시부야 역 앞 스타벅스. 이번에는 달콤한 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는 창가 쪽에 앉았다. 밖의 사람들은 분주히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친한 친구끼리, 가족끼리, 연인끼리 이브를 즐기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들로 역 앞 사거리는 붐볐다. 내 친구들도 길을 잃지 않고 잘 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문득 들기 시작했다. 빨대로 커피를 마시는 소리가 살짝 거칠어지는 순간, 등 뒤에서 친구들이 나를 불렀다.
“미츠하!”
“사야카! 텟시! 얼마 만이야 대체!” 나 역시 반가운 얼굴로 친구들을 맞이했다.
“텟시, 커피 좀 사와 줘. 난 아메리카노로.” 사야카는 남편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고는 내 옆에 앉았다.
“미츠하, 정말 예뻐졌네. 가족들은 다들 잘 지내지?”
“응, 아버지는 출근하셨고 동생은 아직 방학을 안 했어.”
“남자친구는 있고?”
“아니, 아직 없어.” 나는 겸연쩍은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이렇게 예쁜 여자가 아직도 남자친구가 없다고? 이건 남자들이 잘못 한 거야!” 사야카의 볼은 추위 때문인지 흥분해서인지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런 건 아니고, 내가 거절해서 그래. 마음에 팍하고 꽂히는 사람이 없어.”
“미츠하, 그런 거 따지면 결혼 못 한다?”
“그런가?”
“결혼은 운명적 상대와 하는 게 아니고 결혼할 때에 사귀는 사람과 하는 거야.” 사야카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그래도.”
“내 친구 미츠하가 처녀로 늙으면, 앗 뜨거워!”
“미츠하에게 뭐라고 하지 마! 자, 미츠하도 여기.” 카즈히코는 커피 한 잔을 사야카의 볼에 댔다가 내려놓고는 다른 한 잔은 내게 건넸다.
“내 것도 있어? 정말 고마워.” 비록 방금 한 잔을 다 마셨지만, 굳이 사주는 걸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혜성으로 마을이 산산조각이 난 뒤 우리 삼총사도 정부의 정착지원사업에 따라 새 터전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 흩어졌었다. 나만 도쿄로 왔고 나머지 둘은 다른 도시로 가는 바람에 서로 떨어져 지냈고 수험생활과 각자의 대학생활, 그리고 취직준비로 인해 서로의 얼굴을 보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꼭 만나서 같이 놀자고 약속한 것도 벌써 9년 전 이야기다.
우리는 만나서 지난 1년간 있었던 이야기를, 그리고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지면 고향에서 있었던 일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토모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매년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딱히 지루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도쿄의 꽃미남으로 살게 해달라고 캄캄한 밤에 목청껏 소리치기도 했고 고등학교를 빨리 졸업해서 도쿄로 가고 싶다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고향이 없어진 지금은 그 당시 있었던 일들, 그땐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들까지도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커피 두 잔에 허니 브레드 하나를 먹은 뒤, 수다를 잠깐 쉬는 타이밍에 사야카가 말을 이었다.
“저, 미츠하, 있잖아.”
“응?”
“내년에는 첫째 출산하고 육아하느라 못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정말? 벌써 그렇게 됐어? 잘 됐네! 축하해!”
나는 친한 친구들의 출산 예정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럴 것이 사야카는 항상 카즈히코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 역시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알고 있었다. 다만, 카즈히코는 그렇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웠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둘이 결혼을 하고 이제 아이까지 가졌다고 했다. 내심 기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크리스마스이브 때마다 이렇게 같이 모이기 힘들 것이다. 육아라는 것이 아이를 24시간 돌보는 일이고 특히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이는 부모의 더욱 특별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다만, 내년 이브부터는 홀로 커피숍에서 쓸쓸히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에서 눈물이 글썽이려고 했다.
“어, 벌써 시간이 9시네. 나도 슬슬 집에 가봐야겠다. 다들 잘 지내고, 나중에 아기 사진 찍어서 보내주고.”
“벌써 가게?” 사야카는 아쉬운 목소리였다.
“조금만 더 있다 가지?” 카즈히코 역시 조금 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내일 반찬거리와 가족들 크리스마스 선물 사고 들어가야 해서 그래. 그럼 다들 잘 지내고.”
나는 적당한 핑계를 대며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그 자리에 계속 있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로움 혹은 쓸쓸함 등의 감정이 솟구치면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도망치듯이 거리로 나왔다. 한층 어두웠던 내 표정과는 달리 거리에는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을 반사하는 눈송이들은 샹들리에처럼 시부야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러 가족과 연인들, 그리고 친구들은 큰 우산 아래서 함께 눈을 피하며 사랑과 우정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파 속에서 홀로 서 있었던 나 자신이 처량하면서도 불쌍해 보였다. 다행이게도 날씨는 춥지 않았다. 날씨마저 추웠으면 추위에 서러움이 배가 되었을 텐데.
그래도 하얗고 투명한 눈송이가 만들어내는 장관에 매료된 나는 잠깐이나마 시간을 내어 주변을 돌아다녔다. 하늘에 내리는 눈을 조금 더 하늘 가까이서 보기 위해 주변의 육교 위로 올라갔다. 육교 밖으로 손을 뻗어 눈송이를 받아보았다. 차가웠다. 눈송이를 손으로 받으며 겨울감성에 충만해질 때, 작년 이 무렵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 날도 육교 위에서 집으로 가던 도중이었다. 스쳐 가던 한 남성에게서 그리운 기억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 기억의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그 기억은 잊고 싶지 않은, 잊어서는 안 되는 그런 소중한 것이었던 사실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 옆을 스쳐 간 그 남자를 향해 뒤를 돌아봤지만, 그 남자는 그저 자기의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당시에는 착각이었나 하는 생각에 나도 지나쳤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남자가 내 운명의 남자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왜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잠시 멈춰 세울 생각을 못 했을까.
머리로는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당시 그 육교로 향하고 있었다. 혹시나 작년과 같은 일이 다시 한 번 일어나는 기적이 있기를 간절히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육교 위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힐끗힐끗 곁눈질로 살펴보면서 혹시 그 날의 그 남자가 왔는지 훑어보고 있었다. 사실 그 남자를 특정할 그 어떠한 단서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 시간에 왜 그곳에서 우두커니 그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그 남자에 대한 내 마음이 절박해서였을까? 아니면 단지 절친한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 내 내면의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바람에 이러는 거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날은 점점 추워졌다. 바람도 조금씩 불기 시작하면서 내 옷의 틈새를 파고들어 내 체온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손끝과 발끝이 저릿해지기 시작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10시 반이 넘었다. 이만큼 여기에 있었으면 더 이상의 기다림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나는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만, 육교를 지나서도 계속해서 나는 잠깐 멈칫하면서 육교를 향해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아 왜 저 위에 dcinside 안없어지냐
오 없어져따 - 누구보다도 다정한 느갤러입니다.
출품 감사합니다 - dc App
충성충성충성^^ - dc App
으아.. 읽으면서 아쉬운 감정이 들었던 작품입니다..! 둘이 만났다면 좋으련만 ㅠㅜ..
아련..아련..